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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신재집(日新齋集)
- 권14
- 기(記)
- 낙청헌기(樂淸軒記)
일신재집(日新齋集) / 권14 / 기(記)
낙청헌기
낙청헌(樂淸軒) 위공(魏公)은 천관산(天冠山)주 22) 산중에 은거하며 덕업을 닦고 의리를 행한 세월이 앞뒤로 57년이 되기에 호남의 선비들이 일제히 흠모하여 선배와 큰 덕망을 지닌 분으로 칭송하였다. 나는 어린 시절부터 진실로 이미 어르신의 명성을 익히 들어왔지만, 단지 고루하게 집에만 있었기에 공의 헌(軒)에 올라 '낙청(樂淸)'이라 하게 된 뜻을 묻지 못했다.
삼가 생각건대, 시세(時勢)는 쇠퇴함과 융성함이 있기에 풍속이 모두 순박할 수 없고, 기질은 아름다움과 악함이 있기에 사람들이 모두 선할 수 없으니, 비록 맑음을 즐긴다고 하더라도 장차 어느 곳에서 즐길 수 있겠는가. 아니면 그 즐기는 바가 풍기(風氣)와 형체 밖에 있어서 평범한 사람이 생각할 수 있는 바가 아닌 것인가?
정해년(1887) 겨울에 내가 선롱(先壠)의 일로 금릉(金陵)주 23)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단촌리(丹村里)에서 공을 뵈었는데, 그 집안을 살펴보니, 산림과 수석(水石), 정원의 돌과 궤석(几席)이 거울처럼 열려 있고 옥처럼 배열되어 한 점 티끌도 없이 깨끗하였다. 또한 백발에 화사한 얼굴로 높이 관을 쓰고 느슨한 띠를 두른 채 그 사이에서 사쁜사쁜 가볍게 거니는 모습이 표연(飄然)하여 마치 하늘의 신선이 내려와 앉아 있는 것 같았다. 내가 밤새도록 곁에서 모셨는데, 경계하고 깨우쳐주는 사이에서 나온 말씀들이 모두 지극하고 긴요한 것들이었고, 끊임없는 천기(天氣) 중에서 흘러나왔기에 더욱 나도 모르게 송연(悚然)히 옷깃을 여미었다.
아, 풍속이 경박하여 온 세상에 탁류가 넘쳐나는데, 어느 누가 천관산 아래에 이처럼 깨끗한 한 곳이 있을 줄 알겠는가. 영원히 세속을 떠나 스스로를 깨끗하게 하는 것은 비록 그 본심이 아닐지라도 한 조각 아교(阿膠)주 24)가 진흙 물결이 일렁이는 사이에서 쓸모가 없다면 나의 우물을 지키며 홀로 그 맑음을 즐긴다 한들 어느 누가 불가하다고 말하겠는가. 그러나 가슴에 쌓은 경륜을 드러내지 않고, 담박하면서도 간명한 도를 스스로 감춘 것이 세상의 혼탁한 사람과 같지 않아 매우 구별되었는데, 공이 어찌 일찍이 그 맑음을 스스로 말한 적이 있었겠는가. 공이 오히려 감히 스스로 말하지 않았으니, 하물며 공의 맑음을 아는 자가 몇 사람이나 되었겠는가. 오직 남쪽 고을로 부임해 온 송석(松石) 송공(宋公)만이 한번 보고 알아서 그 헌에 '낙청'이라 썼으니, 낙청의 뜻을 송공이 아니면 누가 알 수 있었겠는가. 이것이 지사(志士)가 서로 만나 어울리는 한 부분이다.
나의 어리석음으로도 감히 그 사이를 엿보아 헤아리지 못하지만, 눈과 귀로 보고 들은 것만으로도 사사로이 염모하고 흠앙하는 마음을 이기지 못하여 삼가 이와 같이 그 대략을 기술한다.
- 주석 22)천관산(天冠山)
- 전라남도 장흥군 관산읍과 대덕읍 경계에 있는 산이다.
- 주석 23)금릉(金陵)
- 조선시대 김산군(金山郡)의 별호(別號)로 지금은 김천시에 속해 있다.
- 주석 24)아교(阿膠)
- 혼탁한 물을 맑게 하는 약물이라고 한다. 《포박자(抱朴子)》 외편(外篇) 〈가둔(嘉遯)〉에 "얼마 안 되는 아교(阿膠)로는 황하의 흐린 물을 맑게 만들 수가 없다.[寸膠不能治黃河之濁]"라는 내용이 보이고, 주희가 친구 남헌(南軒) 장식(張栻)에게 준 〈수남헌(酬南軒)〉에서 "어찌 한 치의 아교로 천 길의 혼탁함을 구하겠는가.[豈知一寸膠, 救此千丈渾.]"라고 하였다.
樂淸軒記
樂淸軒魏公。隱居天冠山中。修德行義。前後五七十年。湖之士。翕然向之。稱先輩長德。余自童丱。固已艶聞。而但固陋屛居。未獲登公之軒。問所以樂淸之意。切念時有汚隆。俗不能皆淳。氣有美惡。人不能皆善。雖樂淸。其將何所可樂乎。抑其所樂。有在於風氣形殼之外。而匪夷所思者耶。歲丁亥冬。予以先壠事。往金陵。其歸謁公於丹村里。見其邱林水石。庭石几席。鑑開玉排。瑩然無一點塵累。而華顔白髮。峨冠博帶。婆娑其間。飄然若天仙降坐。予終宵侍側。而發於警咳提喩之間者。皆至言要語。自滚滚天機中流出。尤不覺悚然斂衽也。嗚乎。風澆俗漓。擧世淊淊。而誰知天冠山下有此一區乾淨哉。長往自潔。雖非其心。而一片阿膠。無所用於淈泥揚波之間。則守我井渫。獨樂其淸。孰謂不可哉。然含蘊不露。淡簡自晦。與世之汶汶者不似。大故逈別。則公何嘗自道其淸也。公猶不敢自道。況知公之淸者。幾人哉。惟松石宋公來莅南州。一見知之。題其軒曰樂淸。樂淸之意。非宋公孰能知之。此是志士相遇一副節拍處也。以余之愚。亦不敢窺涯其間。而但以耳目之睹記。不勝艶欽之私。謹述其梗槩如是云爾。