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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신재집(日新齋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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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記)
  • 만은재기(晩隱齋記)

일신재집(日新齋集) / 권14 / 기(記)

자료ID HIKS_OB_F9001-01-202101.0014.0001.TXT.0010
만은재기
재주가 없는 나 같은 사람도 시골에서 태어나고 자랐지만 한 집안의 융성과 쇠퇴를 본 것이 또한 이미 많았다. 처음에 곤궁하다가 뒤에 태평해진 경우도 있고, 처음에 태평하다가 뒤에 곤궁해진 경우도 있으며, 처음과 뒤 모두 곤궁한 경우도 있고, 처음과 뒤 모두 태평한 경우도 있다. 이것은 본디 기수(氣數)가 그렇게 만든 것이지만, 또한 일찍이 사람의 일과 서로 연관되지 않은 적이 없다. 조부와 부친께서 성취해 놓은 뒤를 계승하였을 때에 어떤 이는 삼가 부지런히 지켜서 끝까지 안락를 누리기도 하고, 어떤 이는 교만하고 방자하며 제멋대로 행하고 안일하여 스스로 패망을 부르기도 하며, 쇠잔한 집안의 뒤를 계승하였을 때에 어떤 이는 옛날 습성대로 나약하고 게을러서 끝내 진작하지 못하기도 하고, 어떤 이는 힘을 내 분발하여 스스로 수립하기도 하니, 이러한 것을 살펴보면 그 사람의 대략을 알 수 있다만은(晩隱) 백공(白公)은 쇠락한 집안에서 태어나 수고로움을 거리끼지 않고 부지런히 일하여 빈틈없이 꼼꼼하게 대비하고 쉴 틈 없이 바쁘게 일함으로써 살아계신 부모님을 봉양할 때에는 그 즐거움을 모두 누리게 하였고, 돌아가신 부모님을 장사지낼 때에는 그 예를 다 갖추었다. 심지어 사당을 세우고 묘를 보수하며 제전(祭田)을 마련하고 제사를 받드는 예절과 종족을 보호하고 친족을 도탑게 대하며 이웃을 구휼하고 백성들을 돌보는 도리, 글방을 열고 서적을 쌓아 두며 선비를 맞이하고 자제들을 가르치는 방법에 있어서도 차례대로 배열하고 벌여서 법도에 맞게 하지 않음이 없었다. 이는 사람으로서 해야 할 일을 함에  있어서 완비했다고 이를 만하다.수명은 백세를 누렸고, 지위는 2품에 올랐으며, 네 아들은 과거에 급제하여 벼슬길에 오르는 영예를 바쳤고, 여러 손자들은 앞으로 학문에 대한 희망이 있으니, 어찌 사람의 일을 완비함으로써 하늘이 복을 내려 줌이 또한 이와 같지 않았겠는가.
만년에 이르러서는 크고 작은 집안의 일들을 일체 쓸어버리고 도외시한 채 별장 하나를 지어 날마다 친척이나 친구들과 함께 거문고를 켜고 술을 마시며 음풍농월하고 이리저리 소요하면서 그 즐거움을 다하였으니, 공은 나아가고 물러나는 의리에 있어서도 정밀하였다고 하겠다. 이것이 공을 만은(晩隱)이라 한 이유이다.
아, 공은 볼 수 없고 볼 수 있는 것은 오직 당시의 시고(詩稿) 약간 편뿐이지만, 이것을 열람한 뒤에 인하여 보잘것없지만 추앙하는 소회를 기술하여 은근한 뜻에 부응한다.
晩隱齋記
不佞生長鄕曲。見人家隆替。亦已多矣。有先困而後泰者。有先泰而後困者。有先後俱困者。有先後俱泰者。此固氣數使然。而亦未嘗不與人事相須也。承父祖成立之餘。或謹勤守成而終享安樂。或驕恣放逸而自速敗亡。承家戶殘替之餘。或因循懦怠而終於不振。或激勵奮發而自爲樹立。觀於此而可以知其人之大略矣。晩隱白公。生於家戶殘替。而服勤殫勞。綢繆拮据。使養生而致其樂。送死而備其禮。至於立祠修墓置田奉祀之節。保宗厚族賙隣賑民之道。開塾儲書延士敎子之方。次第排列無不如儀。此於爲人之事。可謂備矣。壽享百歲。位躋二品。四男供科宦之榮。諸孫有方學之望。豈不以人事之備而天之降福亦若是耶。及其晩年。大小家事。一切掃却。置之度外。修一區別業。日與族戚故舊。鳴琴行酒。吟風弄月。逍遙徜徉。極其行樂。公於進退之義。亦云精矣。此公之所以爲晩隱也。嗚乎。公不可見。而所可見者。惟當日詩稿若而篇耳。閱覽之餘。因以述區區追仰之懷。以塞勤意云爾。