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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토암기(土庵記)

일신재집(日新齋集) / 권14 / 기(記)

자료ID HIKS_OB_F9001-01-202101.0014.0001.TXT.0009
토암기
토암옹(土庵翁)은 이름이 학(㙾)이고, 자가 자술(子述)이니, 이는 대체로 선친 겸와공(謙窩公)께서 개미 새끼들이 흙을 물어 나르는 일을 배우고 익히는 것을 들어 명명함으로써 부지런히 힘써서 성취를 이루게 한 것이다. 옹은 평소에 이를 가슴에 깊이 새기고 수용하여 행하였는데, 만년에 이르러 노쇠하여 혹 실추시키게 될까 염려하다가 마침내 '토(土)' 자로 암자의 이름을 짓고 항상 눈앞에 두고 돌아보면서 경계하는 계책으로 삼았다
무릇 때때로 익히는 것은 징험할 길이 없지만, 흙을 쌓는 것은 자취가 있으니, 쌓인 흙의 많고 적음을 보고서 그 부지런함과 게으름을 알 수 있다. 아, 행실을 보면 그 상서로움을 알 수 있고, 일을 부과하면 반드시 그 공적을 바쳐야 하는데, 이는 몽사(濛汜)로 해가 저물어 갈 때주 20)에 마지막 결말을 지어 천지 부모(天地父母)와 교환하는 것이니, 그 뜻이 어찌 우연이겠는가.
주부자(朱夫子)는 시에서 이르기를, "무두질한 가죽을 차서 부친의 가르침을 따르고, 나무가 뿌리를 감추는 듯 행하여 스승의 전수(傳受)를 삼가 받드네.주 21)"
하였다. 또 침상에는 '위(韋)' 자를 써 놓고, 서재에는 '회(晦)' 자를 걸어 놓고서 종신토록 사모하는 마음을 부쳤다. 옹의 뜻도 이러한 데에 근본을 두고 있을 것이다.
주석 20)몽사(濛汜)로……때
인생의 노년을 비유한다. 몽사는 해가 지는 곳인데, 장형(張衡)의 〈서경부(西京賦)〉에 "해가 부상(扶桑)에서 떠올라 몽사로 넘어간다."라는 구절이 보인다.
주석 21)무두질한……받드네
주희(朱熹)가 만년에 복건성(福建省) 건양(建陽)의 고정서원(考亭書院)에 적어 놓은 것이다. 앞의 구(句)는 주희의 부친 주송(朱松)이 "조급한 성질이 도를 해친다."라고 스스로 경계하여 자신의 호를 '위제(韋齋)'라고 한 가르침을 이어 따를 것을 다짐한 것이다. 위(韋)는 무두질하여 부드럽게 만든 소가죽을 이르는데, 전국(戰國) 시대 위(魏)나라의 서문표(西門豹)가 급한 성질을 고치기 위해 이것을 차고 다니면서 느긋하게 처신했다는 고사가 전해지며, 예로부터 성급한 자들이 이것을 차고 경계로 삼았다고 한다. 뒤의 구는 주희의 스승 유자휘(劉子翬)가 주자에게 전수해 준 "나무는 뿌리를 잘 감추어야 봄에 잎이 무성하게 피고, 사람은 몸을 잘 감추어야 정신이 안에서 살찌는 것이다.[木晦於根, 春容燁敷, 人晦於身, 神明內腴.]"라는 가르침을 삼갈 것을 다짐한 것이다. 주자가 자로 삼은 원회(元晦)ㆍ중회(仲晦)와 호로 삼은 회암(晦菴)ㆍ회옹(晦翁)이 모두 여기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土庵記
土庵翁名㙾字子述。蓋其考謙窩公。以蛾子述學含土之事。擧而命之。俾其有勤苦作成也。翁平日服膺而受肘焉。及其晩年。恐慮衰而或失墜也。遂以土名庵。爲常目顧警之計。夫時迷無徵。累土有跡。視累土之多寡。而其勤慢可知也。嗚乎。視履可考其祥。賦事必獻其功。此在濛汜殘景。所以爲究竟結杪。而交還於天地父母者。其意豈偶然哉。朱夫子詩曰。佩韋遵考訓。晦木謹師傳。又題韋於寢。揭晦於齋。以寓終身之慕。翁之意。其亦有本於此云爾。