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화콘텐츠
  • 특화콘텐츠
  • 호남근현대문집
  • 일신재집(日新齋集)
  • 권14
  • 기(記)
  • 송봉기(松峯記)

일신재집(日新齋集) / 권14 / 기(記)

자료ID HIKS_OB_F9001-01-202101.0014.0001.TXT.0008
송봉기
능주(綾州)의 송석(松石) 마을에 오봉산(五峯山)이 있고, 오봉산 아래에 나의 벗 송봉(松峰)이 거주하고 있으니, 대체로 거주하는 곳을 표지하여 호로 삼은 것이다. 그러나 일찍 핀 것이 먼저 시드는 것은 일반적인 만물의 이치이고, 처음엔 부지런하다가 나중엔 나태해지는 것은 보통 사람의 마음이니, 천 리 길을 혹 중도에 그만두기도 하고, 아홉 길 높이 쌓아올린 산이 한 삼태기의 흙이 부족해서 무너지게 되는 경우도 많은데, 하물며 사람이 늙고 남은 수명이 짧아지면 헛된 욕심이 일어나기 쉽고, 기운이 쇠퇴하고 마음이 약해지면 만년의 절개를 지키기 어려움에야 더 말할 것이 있겠는가.
옹(翁)은 지금 52세이니, 젊고 장성했을 때의 화려한 시절은 이미 지난 일에 속하고, 앉아서 기다리는 것은 오직 앞으로 남은 쇠잔한 시절일 뿐이다. 이는 뭇 초목들이 봄여름의 좋은 시절을 보내고 기다리는 것은 가을날의 서리뿐인 것과 같다. 그렇다면 옹이 지니고 있는 호가 비록 거처를 표지한 것이라고 말할지라도 일찍이 한편이나마 현위(弦韋)주 18)를 뜻하는 데에서 나오지 않은 적이 없을 것이다.
공은 어려서는 효성스럽고 우애가 있었으며, 늙어서는 의리를 좋아하였으며, 모든 말과 행동에 있어도 다른 사람을 따라 둘러대는 뜻이 없었으니, 청컨대 한 가지 일로 말해보겠다. 나는 옹에게 죽마고우로서 죽고 사는 일이나 기쁘고 슬픈 일을 서로 구제하지 않은 적이 없었고, 드나들며 놀고 즐길 때도 서로 따르지 않은 적이 없었으며, 시비(是非)와 득실(得失)을 서로 바로잡지 않은 적이 없었고, 재산을 경영하고 저축하는 데 서로 관여하지 않은 적이 없었는데, 어려서부터 50대의 노년에 이르기까지 어느 한 가지 일도 서로 속이는 것을 일찍이 본 적이 없었으니, 이를 미루어 보면 다른 것도 알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세한(歲寒)의 약속주 19)을 부칠 수 있고, 스스로 호로 삼는 바에 부끄러움이 없을 것이니, 청컨대 이것을 써서 송봉기(松峯記)로 삼게나.
주석 18)현위(弦韋)
활시위와 다룬 가죽을 말하는 것으로, 팽팽함과 부드러움을 상징하는 물건이다. 전국(戰國) 시대 위(魏)나라 서문표(西門豹)는 성질이 너무 급해 자기의 성질을 느슨하게 하기 위해서 부드러운 가죽을 차고 다녔고, 진(晉) 나라 때 동안우(董安于)는 자기의 성질이 너무 느슨하여 이를 바로잡기 위해 팽팽한 활시위를 차고 다녔다는 고사에서 나온 말로, 전하여 자신의 단점을 보충하는 자료가 됨을 뜻한다. 《韓非子 觀行》
주석 19)세한(歲寒)의 약속
만년의 절개를 지키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 공자(孔子)가 "날씨가 추워진 뒤에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뒤에 시듦을 알 수 있다.[歲寒,  然後知松柏之後凋也.]"라고 한 데서 유래하였다. 《論語 子罕》
松峯記
綾之松石坊。有五峯峯之下。余友松峰翁居之。蓋志其居而號焉者也。然早發先萎。恒物之理也。始勤終怠。凡人之情也。千里之軔。或廢於半途。九仞之山。多虧於一簣。況人老年促。虛欲易動。氣衰情弱。晩節難持乎。翁今五十有二歲矣。少壯繁華。已屬過境。而坐以待之者。惟是前頭衰颯時節。如衆卉群木。閱春夏許多時。而所待者。秋霜而已。然則翁之有號。雖云志居。而亦未嘗不出於一副弦韋之意也。翁幼而孝弟。老而好義。至於凡百云爲。無有徇人回互底意。請以一事言之。余於翁竹馬舊交也。死生歡戚。無不相求。出入遊衍。無不相從。是非得失。無不相規。財産營畜。無不相關。自幼至老五十年。未嘗見其有一事相欺。推此以觀。其他可知。此可以付歲寒之約。而無愧乎所自號者矣。請書此爲松峯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