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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신재집(日新齋集)
  • 권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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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신재집(日新齋集) / 권14 / 기(記)

자료ID HIKS_OB_F9001-01-202101.0014.0001.TXT.0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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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무라는 식물은 복숭아나무나 오얏나무처럼 향기로운 꽃을 왕성히 피우는 데 모자람이 있고, 오동나무나 버드나무와 같이 짙은 그늘도 적다. 단지 단단한 줄기와 성근 가지, 가느다란 잎, 거친 껍질을 지닌 채 울울창창할 뿐이다. 그러나 성현(聖賢)과 은일(隱逸), 문인과 시인들 중에서 애호하고 숭상하여 노래하고 읊으면서 그 품성을 모든 나무들 위에 올려놓고, 그 부류를 장부의 반열에 견주지 않은 사람이 없었으니, 그 까닭이 어디에 있는가? 살펴보건대, 봄과 여름 사이에 온 산의 모든 식물들이 푸른빛 일색이다가도 가을 서리가 맹위를 떨치면 쇠락하여 거의 다 그 빛을 잃어버리는데, 오직 빼어나게 자신의 색을 지키고 있는 것은 이 소나무뿐이다.
아, 절개를 혹 만년에 바꾸기도 하고, 지조를 혹 마지막에 잃기도 하며, 일을 혹 오랜 세월 끝에 폐지하기도 하는데, 더욱이 매우 곤궁한 때와 다급한 즈음에 지조를 잃지 않고 태연하게 나의 의리를 행할 수 있는 자가 몇 사람이나 되겠는가. 이 때문에 만년의 절개를 보호하는 것이 사군자의 첫 번째 일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창졸간에 갖출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반드시 편안하게 지내는 평소 때부터 궁리하고 실천함으로써 옳음과 그름, 삿됨과 바름이 마음과 안목 사이에서 명료하여 호연지기(浩然之氣)를 강대하고 충만하게 한다면 평탄한 때든 험난한 때든 처음과 끝을 보존하는 데 무슨 어려움이 있겠는가.
나는 가죽나무나 상수리나무처럼 졸렬한 품성으로 풍상에 얽매여 거의 스스로를 보존할 수 없었으니, 지금 이후로 소나무 밑을 따른다면 혹 상유(桑楡)주 17)에 만분의 일이나마 수습할 수 있지 않겠는가.
주석 17)상유(桑楡)
뽕나무와 느릅나무라는 뜻으로, 해가 떨어질 때 빛이 뽕나무와 느릅나무의 가지 끝에 걸린다고 하여 인생의 노년기를 비유한다.  반대로 동우(東隅)는 해가 뜨는 곳으로 젊은 시절을 비유한다. 후한(後漢)의 장군(將軍) 풍이(馮異)가 적미병(赤眉兵)과의 전투에서 처음에는 패주했다가 나중에 적을 격파하자, 광무제(光武帝)가 "동우에는 잃었으나 상유에 수습하였다.[失之東隅, 收之桑榆.]"라고 했던 고사(故事)가 전해진다.《後漢書 卷47 馮異列傳》
松下記
松植物也。欠桃李之紛芳。少梧柳之繁陰。而只有硬幹疎枝。細髥鹿甲。鬱然蒼然而已。然聖賢隱逸。文人韻士。無不愛尙歌咏。擅其品於衆木之上。比其類於丈夫之班。其故何在。觀夫春夏之際。滿山品彙。一色蒼翠。及其秋霜動威。零落殆盡。而惟挺然自守者此耳。嗚乎。節或移於晩。守或失於終。事或廢於久。況於窮塞之時。顚沛之頃。能不迷所守而泰然行吾義者。幾人乎此保晩節所以爲士君子第一事也。然此非倉卒可辦。必須窮理實踐於平居燕安之日。使是非邪正。瞭然心目。而浩然之氣。剛大充滿。則其於處夷險。保終始。何難之有哉。余以樗櫟劣品。纏滯風霜。幾不能自保。自今以往。從松下子。庶或有桑楡萬一之收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