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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신재집(日新齋集)
  • 권14
  • 기(記)
  • 밀양 박씨 영모재 중수기(密陽朴氏永慕齋重修記)

일신재집(日新齋集) / 권14 / 기(記)

자료ID HIKS_OB_F9001-01-202101.0014.0001.TXT.0004
밀양 박씨 영모재 중수기
이릉(爾陵 능주(綾州))은 예로부터 산수(山水)가 좋은 고을이라 일컬어졌고, 그 수려하고 맑은 기운이 서쪽 지역에 많이 모여 있었으니, 예컨대 천태산(天台山)이나 해망산(海望山), 문산(文山), 덕봉산(德峰山)처럼 헤아릴 만한 것들이 한둘이 아니다. 그러나 덕을 체득한 중립의 모습으로 서쪽 지역의 아름다움을 다 얻은 것으로는 또 덕봉산만한 것이 없다.
옛적 선묘조(宣廟朝 선조(宣祖)) 충신 박공(朴公) 휘 지수(枝樹)가 왕대인(王大人 조부(祖父)) 감찰공(察公)을 이곳에 장사지냈고, 자손들이 이로 인하여 산 아래에 거주하게 되었으며, 감찰공의 6세손 상언(尙彦)이 여러 종친들과 함께 산의 오른쪽 기슭에 나아가 안정(安亭)과 서로 마주보는 곳에 평탄한 한 곳을 얻어 몇 칸짜리 집을 지었는데, 덕봉과 안정 사이에 있기 때문에 한편으론 덕안재(德安齋)라 일컬었고, 대대로 우러러 사모하는 곳이기 때문에 다른 한편으론 영모재(永慕齋)라 일컬었다. 그러나 청전(靑氈)의 구물(舊物)주 9)이  이제 거의 200여 년이 되어 가는지라, 굳고 단단했던 것들은 풀어지고 느슨해졌으며, 칠하여 꾸민 것들은 더러워지고 흐릿해져서 다시 긍구(肯構)주 10)해야 할 우려를 끼치게 됨을 면치 못하게 되었다. 정해년(1887) 봄에 문중(門中)의 의론이 일제히 일어나 장래에 수리할 것을 도모하였으니, 준채(準彩)가 그 일을 관리하였고, 춘진(春鎭)이 그 공역(工役)을 감독하였으며, 현수(賢秀)가 그 재무를 맡았고, 인진(麟鎭)이 그 장부를 주관하여 처음부터 끝까지 8개월 만에 공역을 마쳤다. 동쪽의 방(房)과 서쪽의 실(室), 앞의 대청과 뒤의 침실이 각기 옛 규모를 따라서 환하게 경관이 바뀌었으니, 선대의 뜻을 계승하여 사업을 잇는 것이 지극하다고 이를 만하였다. 자손으로서 이 재실(齋室)에 들어가는 자들은 반드시 느끼는 바가 있을 것이니, 효제(孝悌)의 마음이 어찌 세차게 일어나지 않겠는가.
맹자가 말하기를, "상ㆍ서ㆍ학ㆍ교를 설치하여 백성들을 가르쳤으니, 이는 모두 인륜을 밝히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이 재실은 선조를 사모하는 곳이고, 겸하여 여러 자손들이 학업을 익히기 위한 방도이니, 고을의 서당이나 글방에 비해 그 소중함이 또한 차이가 있지 않겠는가.
사람이 살아가며 책을 읽는 것은 무엇 때문이겠으며, 선대가 자손에게 바라는 것은 무슨 일이겠는가? 한가로이 지내며 경치를 완상하는 것과 같은 무익한 유희를 경계하고, 문장을 꾸미는 것과 같은 쓸모없는 습관을 버리고서 항상 조고(祖考)를 대면하는 것처럼 엄숙하고 공경하며 조심하고 두려워하면서 한결같이 천서(天敍)와 천질(天秩)주 11)처럼 사람이 살아가는데 일상생활에서 마땅히 해야 할 도리로 과정(課程)을 엄격하게 세운 다음에 책을 읽어 이것을 밝히고, 벗들을 모아 이것을 강습하여 마음에 보존하고 몸에 체득함으로써 청소하고 응대하는 것으로부터 이치를 궁구하고 본성을 다하는 것에 이르기까지, 어버이를 사랑하고 형을 따르는 것으로부터 나라를 다스리고 천하를 태평하게 하는 것에 이르기까지 차근차근 힘써 나아가 성취함이 있기를 기약한다면 선조를 길이 사모하고 사업을 계승하는 도리가 어떠하겠는가. 이렇게 된다면 단지 박씨(朴氏) 한 가문의 복일뿐만이 아닐 것이다.
내가 이 재실에서 노닌 지 여러 해인데, 가만히 엿보건대 메뚜기와 산초나무처럼 자손들이 매우 번성하여 넘쳐나고, 시례(詩禮)를 묻고 배우는 가풍이 성대하게 한창 펼쳐지고 있으니, 그 아름답고 상쾌하며 맑고 깨끗한 기운이 반드시 도와 발현하게 해주어서 자손들이 구양자(歐陽子)주 12)와 같은 한 사람에 그칠 뿐만이 아닐 것이다. 이 재실에서 노니는 자들은 각각 힘써야 할 것이다.
주석 9)청전(靑氈)의 구물(舊物)
청전은 푸른 모포라는 뜻으로 선대(先代)로 전해져 내려오는 유물을 가리키는데, 여기서는 영모재를 비유한 말이다. 진(晉)나라 왕헌지(王獻之)가 누워 있는 방에 도둑이 들어와서 물건을 모두 훔쳐 가려 하자 "도둑이여, 그 푸른 모포는 우리 집안의 유물이니, 그것만은 놓고 가라.[偸兒, 靑氈我家舊物, 可特置之.]"라고 하였다는 고사에서 유래하였다. 《晉書 卷80 王羲之列傳 王獻之》
주석 10)긍구(肯構)
자손이 선대의 유업을 잘 계승하는 것을 뜻하는 말로, 여기서는 선대가 지은 건물을 다시 중수하는 것을 비유한 말이다. 《서경》 〈대고(大誥)〉에, "만약 아버지가 집을 지으려 작정하여 이미 그 규모를 정했는데도 그 아들이 기꺼이 당기(堂基)를 마련하지 않는데 하물며 기꺼이 집을 지으랴.[若考作室, 旣底法, 厥子乃弗肯堂, 矧肯構.]"라고 한 구절에서 유래하였다.
주석 11)천서(天敍)와 천질(天秩)
천서는 군신(君臣)ㆍ부자(父子)ㆍ형제(兄弟)ㆍ부부(夫婦)ㆍ붕우(朋友)의 순서를 말하고, 천질은 존비(尊卑)ㆍ귀천(貴賤)의 등급을 말한다. 《書經 皐陶謨》
주석 12)구양자(歐陽子)
송(宋)나라 문장가 구양수(歐陽脩, 1007~1072)를 말한다. 당송팔대가(唐宋八大家)의 한 사람으로 훌륭한 고문(古文)을 많이 창작하였다.
密陽朴氏永慕齋重修記
爾陵古稱山水鄕。其秀爽淸淑之氣。多聚於西方。若天台海望文山德峯。可數者非一。然體德中立。而盡得西方之美者。又莫若德峯焉。昔者宣廟朝。忠臣朴公諱枝樹。葬其王大人監察公於此。子孫因居山下。監察公六世孫尙彦與諸宗。就山之右麓。得一平坦與安亭相對處。構數椽屋子。以其在德峯安亭之間。故一稱德安齋。以其世世爲瞻慕之所。故一稱永慕齋。靑氊舊物。殆二百餘年于玆矣。鞏固者縱緩。塗飾者漫漶。有不免再貽肯構之慮。歲丁亥春。門議齊發。將謀葺理。準彩尸其事。春鎭董其役。賢秀掌其財。麟鎭主其簿。首尾八個月。工役告訖。東房西室。前廳後寢。各遵舊規。渙然改觀。其繼志述事。可謂至矣。爲子孫而入此室者。必有所感而孝悌之心。豈不油然而生乎。孟子曰。設爲庠序學校以敎之。皆所以明倫也。此室是思慕祖先之地。而兼爲諸子孫肄業之方。視諸鄕黨庠塾。其所重。不亦有間乎。人生所以讀書者。爲何事。先世所以期望於子孫者。爲何事。戒燕玩無益之遊。去纂組無用之習。嚴恭寅畏。常若對越祖考。一以天敍天秩人生日用合做底道理。立定課程。讀書以明之。會友以講之。存之於心。體之於身。自灑掃應對。至於窮理盡性。自愛親從兄。至於治國平天下。循循征邁。期有成立。則其於永慕似述之道。爲何如哉。此不但爲朴氏一門之福而已也.予遊此齋有年耳。竊覸其螽斯椒聊。至爲蕃衍。而詩禮問學之風。蔚然方張。其秀爽淸淑之氣。必有以助發。而所産將不止爲一歐陽子而已。遊此室者。其各勉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