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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신재집(日新齋集)
  • 권14
  • 기(記)
  • 영귀정기(詠歸亭記)

일신재집(日新齋集) / 권14 / 기(記)

자료ID HIKS_OB_F9001-01-202101.0014.0001.TXT.0001
영귀정기
지난 정해년(1887) 가을에 나는 여러 벗들의 뒤를 따라 서석산(瑞石山 무등산)에서 바람을 쐬고 영강(映江)에서 목욕하고서 읊조리며 부춘(富春)의 들녘으로 돌아왔다.주 1) 이로 인하여 규약을 만들어서 봄가을에 모여 강습하는 일을 행하였다. 처음에는 사람이 많고, 의례가 번다했기 때문에 큰 마을에 소속시켜 돌아가며 모임을 가졌고, 한가로운 들녘을 택해 베풀어 행하였는데, 이를 설행한 지 조금 오래되면서 모이는 사람들이 더욱 많아지게 되자, 촌마을의 재력으로는 계속 이어가기 어렵고, 들녘의 장소는 대부분 햇볕에 노출되어 이를 병통으로 여기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신묘년(1891) 9월 용리(龍里)의 모임에서 집을 짓자는 의론이 제기되어 임진년(1892) 봄에 칠송(七松) 마을에 터를 잡고 가을에 공사를 시작하여 이듬해 겨울 12월에 낙성하였는데, 방과 대청, 문, 행랑 등이 반듯하고 치밀한데다 크고 넓어서 거처할 만하였다. 그러나 이 일은 빈한한 선비들의 쇠잔한 힘으로 고생스럽게 부지런히 힘써 모아서 여러 해가 지난 뒤에야 비로소 성취를 보게 된 것인데, 그 뜻이 장차 무엇을 위해서인가? 고요한 곳을 찾아 한가로움을 즐기기 위한 계책을 위해서인가? 연회를 열어 술을 마시며 노는 것을 돕기 위해서인가? 글을 지어 벼슬을 구하는 장소로 삼기 위해서인가?
아, 선비가 이 세상에 태어나 사람 된 도리를 구할진댄 학문이 아니면 불가하고, 학문을 하는 방도를 구할진댄 사우(師友)들이 아니면 불가하니, 사우들을 가까이하고 학문을 말미암는 것도 또한 그 장소가 없으면 안 된다. 상ㆍ서ㆍ학ㆍ교(庠序學敎)주 2)가 본래 인륜을 밝히고 교육을 확립시키는 곳이었지만, 삼대(三代)주 3) 이후로 인도하고 통솔하는 것이 예스럽지 못하였고, 또 저자와 성곽 안에서는 분주하게 다투거나 열기로 떠들썩한 뜻이 많았고, 고요하고 한가로운 정취가 적었으니, 이것이 서원(書院)이 창설된 이유이다. 그러나 서원의 규례가 또 옛날과 같지 않게 되었으니, 오늘날의 선비들이 서로 교제하며 학업을 닦는 곳으로 이곳보다 훌륭한 곳이 아마도 없을 듯하다.
이 정자에서 노니는 자들은 《소학》으로 기본을 세우고 《대학》으로 규모를 정하여, 집에 들어가서는 어버이를 사랑하고 형에게 공경하며, 나가서는 스승을 높이고 벗들을 가까이하며, 충신(忠信)으로 마음을 세우고 단정함과 장중함으로 몸을 지키며, 강습과 토론으로 이를 밝히고 바로잡음과 경계로 이를 독려하며, 배움을 싫어하지 않고 지킴을 고치지 않아서 날로 원대한 것을 궁구한다면 아래로는 가정의 법을 세우고 마을의 풍속을 바르게 할 수 있을 것이며, 위로는 세도(世道)를 힘쓰게 사람들을 격려하고 나라의 영광을 도울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삼대 학교의 유제(遺制)이고, 또한 오늘날 이 건물을 짓기 시작했던 뜻이다.
주석 1)지난……돌아왔다
《논어》 〈선진(先進)〉에서 공자가 제자들에게 자신의 포부를 말하라는 물음에 증점(曾點)이 "늦은 봄에 봄옷이 이루어지거든 관자 대여섯, 동자 예닐곱과 함께 기수에서 목욕하고 무우에서 바람을 쐬고 읊조리며 돌아오겠습니다.[莫春者, 春服旣成, 冠者五六人、童子六七人, 浴乎沂, 風乎舞雩, 詠而歸.]"라고 대답하자, 공자 이를 허여했던 고사를 인용하여 산천 유람을 표현하였다.
주석 2)상ㆍ서ㆍ학ㆍ교(庠序學敎)
중국 고대의 교육기관으로, 《맹자》 〈등문공 상〉에서 "'상'은 봉양한다는 뜻이요, '교'는 가르친다는 뜻이요, '서'는 활쏘기를 익힌다는 뜻이다. 하나라는 '교', 은나라는 '서', 주나라는 '상'이라고 불렀으며 '학'은 삼대가 이름을 함께하였다.[庠者, 養也; 校者, 敎也; 序者, 射也. 夏曰校, 殷曰序, 周曰庠, 學則三代共之.]"라고 하였다.
주석 3)삼대(三代)
중국 고대 성인이 세운 하(夏)ㆍ은(殷)ㆍ주(周) 세 왕조를 가리키는 것으로, 흔히 요순 시대와 함께 '훌륭한 다스림이 행해졌던 시대'라는 의미로 인용된다.
詠歸亭記
往在丁亥秋。余從諸友後。風乎瑞石。浴乎映江。詠而歸於富春之野。因以創設規約。爲春秋講聚之擧。始以人衆儀繁。屬鉅村輪會。擇閒野設行。行之稍久。會者愈夥。村力難繼。野處多暴。人莫不病之。辛卯九月龍里之會經室之議起。壬辰春卜地于七松之里。秋設役。越明年冬十二月落之。其房室廳堂。牑戶序廂。端密宏敝。可以爰居爰處。然是擧也。以冷士殘力。辛勤拮据。積歲積年。乃始見就者。其意將欲何爲耶。爲尋寂耽閒之計耶。爲燕飮玩戱之資耶。爲作文干進之所耶。嗚乎。士生斯世。欲求爲人之道非學問不可。學問之道。非師友不可。所以親師友而道問學者。亦不可以無其所。庠序學校。固明倫立敎之地。而三代以降。導率不古。且在朝市城郭之中。多奔競熱閙之意。少寂寞寬閒之趣。此書院所由起也。然書院之規。又不如古。則今日之士所從遊業。恐無以多乎此矣。遊此室者。以小學立基本。以大學定規模。入則愛親敬兄。出則隆師親友。立心以忠信。持身以端莊。講討以明之。規警以督之。不厭不改。日究遠大。則下可以立家範正鄕俗。上可以勵世道補國光。此是三代學校之遺制。而亦今日經始之意云爾。