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화콘텐츠
  • 특화콘텐츠
  • 호남근현대문집
  • 일신재집(日新齋集)
  • 일신재집 권13
  • 서(序)
  • 《흥학회안》 서문(興學會案序)

일신재집(日新齋集) / 일신재집 권13 / 서(序)

자료ID HIKS_OB_F9001-01-202101.0013.0002.TXT.0028
《흥학회안》 서문
완도군(莞島郡)은 남해(南海)의 궁벽하고 삭막한 바닷가에 있고, 서울에서 천여 리나 떨어져 있어 문물(文物)과 예교(禮敎), 의장(儀章)의 등위(等威)가 내륙 지역의 여러 군(郡)들보다 조금 손색이 없을 수 없는 것이 오래되었다.
해의 운세가 양구(陽九)주 139)를 침범하고, 구야(九野)주 140)가 막혀 이단의 학설과 가르침이 날로 치성하고 달로 확장하면서 바람에 휩쓸리고 파도에 진탕되어 마르고 깨끗한 땅이 없게 된 듯하였다. 그러나 완도의 선비들이 먼저 부자묘(夫子廟)를 세우고, 그 다음에 학문을 진흥시키는 규례를 갖추어서 학교에 모여 시서(詩書)의 학업을 강습하고, 제물을 진설하여 읍(揖)하고 사양하는 예절을 익히는 것이 성대하게 바람이 불 듯 유행하여 풍속이 크게 바뀌었다. 이는 내륙 지역의 여러 군에는 없는 것이니, 어찌 기수(氣數)가 순환하여 드러나고 감추어짐에 때가 있어서 그렇겠는가. 어쩌면 하늘이 사문(斯文)을 다 잃지 않고자 하여 한 줄기 양맥(陽脈)을 한 모퉁이 지역에 모아 두게 함으로써 훗날 크게 올 장본(張本 일의 근원)으로 삼으려는 것인가?
무성(武城)에서 소 잡는 칼을 사용했다고 한 것은 대체로 자유(子游)가 홀로 실행한 것을 훌륭하게 여겨서인데주 141), 하물며 오늘날 같은 세상에 궁벽하고 삭막한 바닷가에서 한 무리의 사람들이 거문고를 타며 시 읊는 소리를 들을 수 있음에랴. 만약 부자(夫子 공자)가 살아계셨다면 어찌 빙그레 웃을 뿐이겠는가.
민중(閩中)주 142)은 예로부터 먼 남쪽 오랑캐 지역으로 일컬어졌는데, 치산(廌山)과 구산(龜山)주 143) 두 선생을 얻고 나서 마침내 천하의 문명한 고을이 되었으니, 지금의 완도군이 다만 당시의 민중이 되지 않게 될 줄 어찌 알겠는가. 오직 완도군의 선비들은 노력하고 노력해야 할 것이다.
이 계(契)는 김군(金君) 석욱(錫旭)이 창도하였는데, 그의 벗 관산(冠山 장흥(長興))의 김군(金君) 영엽(泳燁)을 통해 나에게 서문을 부탁하였다.
주석 139)양구(陽九)
음양도(陰陽道)에서 수리(數理)에 입각하여 4천 5백년 되는 1원(元) 중에 다섯 번 발생하는 양액(陽厄)과 네 번 발생하는 음액(陰厄)을 합한 말로, 극에 달한 재액(災厄)을 말한다. 여기에서는 외세의 침략으로 인한 대한제국의 어지러운 시대 상황을 비유한다.
주석 140)구야(九野)
하늘의 팔방과 중앙을 가리키는 것으로, 온 세상을 비유하는 말이다.
주석 141)무성(武城)에서……여겨서인데
공자의 제자 자유(子游)가 무성(武城)의 수령으로 있을 때, 예악(禮樂)의 정사를 펼쳐 고을 사람들이 모두 현악(弦樂)에 맞추어 노래를 불렀는데, 공자가 무성에 가서 그 소리를 듣고는 빙그레 웃으며 "닭을 잡는 데 어찌 소 잡는 칼을 쓰느냐.[割鷄焉用牛刀?]"라고 한 데서 인용한 말이다. 《論語 陽貨》
주석 142)민중(閩中)
지금의 복건성(福建省)에 해당하는 지역으로, 회암(晦庵) 주희(朱熹)가 이곳에서 강학하며 성리학을 대성하였다.
주석 143)치산(廌山)과 구산(龜山)
치산은 북송(北宋)의 유학자 유초(游酢, 1053~1123)의 호로, 당시 지부구현(知扶溝縣)이었던 정호(程顥)의 부름을 받아 학사(學事)를 맡고 그때부터 정호 형제를 사사하였다. 구산은 북송(北宋)의 유학자 양시(楊時, 1053~1135)의 호로, 정호 형제를 사사한 뒤 이정자(二程子)의 도학을 발전시켜 낙학(洛學)의 대종이 되었고, 주자(朱子)를 비롯하여 장식(張栻)ㆍ여조겸(呂祖謙) 등 뛰어난 학자들을 많이 배출하였다. 이들은 여대림(呂大臨)ㆍ사량좌(謝良佐)와 함께 정문 사선생(程門四先生)으로 불렸다.
興學會案序
莞之爲郡在南海窮漠之濱。去京師千餘里。文物禮敎。儀章等威。不能無少遜於內地諸郡久矣。歲侵陽九。九野閉塞。異說異敎。日熾月張。風靡波盪。無地乾淨。然而莞之士。先立夫子廟。次設興學之規。講聚乎庠塾詩書之業。遊習乎樽俎揖讓之節。蔚然風行。俗以丕變。此是內地諸郡所未有也。豈氣數循環。而顯晦有時者然耶。抑天不欲盡喪斯文。而使一縷陽脈。收斂翕聚於一隅之地。以爲他日大來之張本耶。武城牛刀。蓋善子游之獨行。況在今日域中。而得聞其一隊絃誦之聲於窮漠之濱。若使夫子而在焉。則豈惟莞笑而已哉。閩中古稱蠻荒之區。而得廌山龜山兩先生。遂爲天下文明之鄕。安知今日之莞。獨不爲當日之閩耶。惟莞之士。勉之勉之。是契也。金君錫旭倡之。因其友冠山金君泳燁。問序於余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