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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신재집(日新齋集)
  • 일신재집 권13
  • 서(序)
  • 《운암유고》 서문(雲巖遺稿序)

일신재집(日新齋集) / 일신재집 권13 / 서(序)

자료ID HIKS_OB_F9001-01-202101.0013.0002.TXT.0026
《운암유고》주 129) 서문
《주역》에 이르기를, "절개가 돌처럼 단단한지라 하루를 마치지 않고 떠나가니, 정하고 길하다."주 130)라고 하였는데, 부자(夫子 공자)가 이 말을 찬미하여 말하기를, "절개가 돌처럼 단단하니, 어찌 하루가 다하기를 기다리겠는가. 바로 결단함을 알 수 있다. 군자는 기미를 알고 드러남을 알며, 유순함을 알고 강함을 아니, 수많은 사람이 우러러본다."주 131)라고 하였다. 송자(宋子 송시열)가 《춘추》나 《자치통감강목》과 같은 역사서에 기록된 소중옹(疏仲翁)주 132)을 안타깝게 여겨 대서특필한 것이 이 때문이 아니겠는가.
운암옹(雲巖翁)은 젊은 나이로 벼슬길에 올라 대직(臺職)주 133)을 역임하고, 명성과 덕망이 드높아 융중한 자리에 의망(擬望)될 것으로 기대되었으니, 한 고을을 다스리는 수령이 되어 어버이를 빛나게 하고 만종(萬鍾)의 봉록으로 어버이를 봉양하는 것들이 앞날에 차례대로 있을 일로 기약되었다. 그러나 기미를 보고 용감하게 결단하여 호연(浩然)하게 〈귀거래사(歸去來辭)〉주 134)를 읊으며 고향으로 돌아와 구름이 걸쳐 있는 적막한 숲속에서 화락한 모습으로 유유자적하며 노닐었다. 아, 나아갈 줄만 알고 물러날 줄 모르며, 얻을 줄만 알고 잃을 줄 몰라 승두(升斗)만한 조그마한 이익에 턱을 늘어뜨린 채 부유한 사람들이 가엾게 여기며 주는 음식에 침을 흘리는 사람이 어찌 이러한 의리를 알 수 있겠는가.
평소에 지었던 문고(文稿)는 산실되어 수습하지 못하였고, 만년에 주워 모은 것들 사이에서 얻은 것도 얼마 되지 않았다. 그러나 세상에서 《춘추》나 《자치통감강목》과 같은 역사서의 붓을 잡는 사람들이 송자(宋子)가 소중옹(疏仲翁)을 가엾게 여긴 것처럼 반드시 그를 대서특필하여 백세토록 썩지 않게 할 것이니, 보잘 것 없는 문고가 있든 없든 또는 많든 적든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다만 자손의 마음에 그것들이 사라지는 것을 바라지 않았기에 삼가 모아서 약간을 엮었을 따름이다.
주석 129)운암유고
대한제국 때 장흥(長興) 출신의 문신 정두흠(鄭斗欽, 1832~1901)의 문집인 《雲巖集》을 말하는 것으로, 1918년에 아들 제하(濟夏)가 편집ㆍ간행하였다. 권두에 정의림(鄭義林)의 서문이 있고, 4권2책이며, 목활자본이다. 운암은 정두흠의 호이고, 자는 응칠(應七)이며, 본관은 진주(晉州)이다. 처음 최상관(崔相琯)에게 글을 배웠고, 뒤에 이항로(李恒老)를 사사하였다. 1879년(고종 16) 식년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주서에 임명되었고, 성균관전적, 사간원정언을 거쳐 사헌부지평에 이르렀다. 개항에 반대하여 양이(壤夷)의 노선을 주장하였고, 〈만언소(萬言疏)〉을 올렸으나 뜻이 이루어지지 않자 용퇴를 결의하고 향리로 돌아왔다. 1910년 경술국치를 당하자 극약을 먹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주석 130)절개가……길하다
《주역》 〈예괘(豫卦) 육이(六二)〉에 보인다.
주석 131)절개가……우러러본다
《주역》 〈계사하전(繫辭下傳)〉에 보인다.
주석 132)소중옹(疏仲翁)
벼슬길에서 한창 득의(得意)했을 때 미련 없이 물러나 초야에서 자신의 지조를 지켰던 옛 인물이다.
주석 133)대직(臺職)
대간(臺諫)인 사헌부(司憲府)와 사간원(司諫院)의 관직을 말한다.
주석 134)귀거래사(歸去來辭)
중국 진(晉)나라 도연명(陶淵明)이 팽택 영(彭澤令)이 되었다가 80여 일 만에 그만두고 전원으로 돌아오면서 지은 작품이다.
雲巖遺稿序
易曰。介于石。不終日貞吉。夫子贊之曰。介如石。焉用終日。斷可識矣。君子知微知彰。知柔知剛。萬夫之望。宋子哀疏仲翁所以見與於春秋綱目之書。而大書特書者。其不以是耶。雲巖翁少年釋褐。歷踐臺職。聲望藹蔚。期擬隆重。專城之榮。萬鍾之養。此其前頭次第事耳。然而見幾勇決。浩然賦歸。囂囂徜徉於雲林寂寞之中。嗚呼。知進而不知退。知得而不知喪。朶頤於升斗之利。垂涎於輕肥之憐者。曷足以知此等義諦耶。平日文稿散逸不收。而得於晩後掇拾之間者。亦無幾焉。然世之秉春秋綱目之筆者。必將大書特書。使之不朽於百世。如宋子哀疏仲翁。何待於區區文稿之有無與多寡哉。但子孫之心。不欲其泯然。謹輯之爲若干編云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