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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신재집 권13
  • 서(序)
  • 정군 운약에게 써 준 서문(贈鄭君雲躍序)

일신재집(日新齋集) / 일신재집 권13 / 서(序)

자료ID HIKS_OB_F9001-01-202101.0013.0002.TXT.0025
정군 운약에게 써 준 서문
지금까지 영남 내의 여러 군(君)들을 전별하며 말을 해준 것이 다소 없지 않지만, 유독 운약(雲躍)의 요청에 더욱 감히 말을 해주지 못하는 것은 어째서인가?
나와 운약은 지난봄에 뇌룡정(雷龍亭)주 127)에서 한 번 만나고, 지금 또 화엄사(華巖寺)에서 다시 만났으니, 교분이 오래되고 마음이 맞았다. 게다가 운약이 애산옹(艾山翁)주 128)의 종부제(從父弟)가 됨에랴. 그 교분과 정분으로 보면 구구하나마 한마디 말을 해주는 것이 반드시 다른 사람보다 뒤에 있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발굽에 고인 물은 바다를 구경한 눈에는 물로 보이기 어렵고, 반딧불의 빛은 촛불을 마주한 자리에서 빛이 되기 어렵다. 나는 운약에게 발굽에 고인 물이나 반딧불이 되겠지만 사양하지 못하는 바가 있어 털끝만큼이나마 보탬이 되려함은 어째서인가? 말을 해주지 않기를 바라지 않는 것은 군이 애산옹의 아우이기 때문이고, 감히 말을 해주지 못하는 것도 군이 애산옹의 아우이기 때문이다.
명(明)나라의 유학자 방손지(方遜志 방효유(方孝孺))의 말에 이르기를, "사람들은 저명한 사람의 자손이 되는 것을 기뻐하지 않음이 없지만, 일반 사람의 자손이 되는 것보다 더욱 어렵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라고 하였는데, 비단 자손만이 그러할 뿐만 아니라, 친속(親屬 친족)의 경우도 그렇다. 선(善)은 크지 않으면 책무에 걸맞을 수 없고, 악은 비록 작더라도 오히려 조롱을 끼칠 수 있으니, 운약은 이것을 알고 있는가? 내가 운약에게 말을 해주지 않는다면 그만이겠지만, 만약 말을 해준다면 이 말보다 먼저 말해줄 것이 없으니, 운약은 힘쓰기 바란다.
주석 127)뇌룡정(雷龍亭)
남명(南冥) 조식(曺植, 1501~1572)이 45세 때 모친의 상을 당하고 고향인 삼가(三嘉) 토동(兎洞)에서 여묘를 마친 뒤에 이곳에 세운 정자로, 60세까지 강학(講學)하는 장소로 이용하였다.
주석 128)애산옹(艾山翁)
정재규(鄭載圭, 1843~1911)로 애산은 그의 호이다. 자는 영오(英五)ㆍ후윤(厚允)이고, 호는 노백헌(老柏軒)이며, 본관은 초계(草溪)이다. 경상남도 합천군 쌍백면 묵동에서 살았으며, 일신재(日新齋) 정의림(鄭義林)ㆍ대곡(大谷) 김석구(金錫龜)와 더불어 노사(蘆沙) 기정진(奇正鎭) 문하의 3대 제자로 불리었다. 저서로 《노백헌집》이 있다.
贈鄭君雲躍序
今爲嶺中諸君之別。不無多少贈言。而獨於雲躍之請。尤有所不敢者何哉。吾與雲躍。去年春。一見於雷龍亭。今又再見於華巖寺。舊交矣心契矣。而又爲艾山翁從父弟乎。以其契誼。則區區一言之贈。必不在他人之後矣。然蹄涔之滴。難爲水於觀海之眼。螢爝之光。難爲照於對燭之筵。吾於雲躍。爲蹄涔螢爝。有所不辭。而其絲毫之補何。不欲無言者。爲艾翁之弟故也。不敢有言者。亦艾翁之弟故耳。明儒方遜志有言曰。人莫不喜爲名人子孫。而不知其尤難於衆人。非但子孫爲然。在親屬亦然。善不大。則不足以稱其責。惡雖小。而猶足以貽其譏。雲躍知之乎。吾於雲躍。不告則已。如告之。則無有先於此者。願雲躍勉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