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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신재집(日新齋集)
  • 일신재집 권13
  • 서(序)
  • 《용한유고》 서문(容閒遺稿序)

일신재집(日新齋集) / 일신재집 권13 / 서(序)

자료ID HIKS_OB_F9001-01-202101.0013.0002.TXT.0017
《용한유고》 서문
읍(邑)에 대부(大夫)가 있으면 송사하는 사람들이 그의 집에 나아가고, 주(州)에 학교가 있으면 배우는 사람들이 그 문 앞으로 달려가게 되니, 나는 그러한 말을 듣고, 또 그러한 사람을 보았다. 용한(容閒) 오공(吳公)은 이릉(爾陵 능주(綾州))의 남쪽에 은거하였는데, 일찍이 나라를 경영하고 세상일에 대응할 기량(技倆)을 품고 있었으나 때에 등용되지 못하여 끝내 시험해 보지 못했다. 그러나 마을과 동네에서 시비를 따지거나 다툼이 있는 사람들은 그에게 찾아와서 결정을 취하였고, 의심스럽거나 모르는 것이 있는 사람들은 그에게 찾아와서 올바름을 취하였으니, 몸이 집에서 나가지 않은 80년 동안 그의 이로움과 은택이 만물에 미친 것이 많을 뿐만이 아니었다.
공은 평소 글 짓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서 혹 저술할 것이 있으면 바로 산묵(散墨 자잘한 시문)으로 대신하였다. 이 때문에 공이 죽은 뒤에 건연(巾衍 글을 넣어 두는 상자)에 한 글자의 유묵(遺墨)도 없었다. 그런데 10년 뒤에 손자 재홍(在鴻)이 옛 친구들의 집을 두루 방문하여 약간의 시문(詩文)을 찾을 수 있었고, 증손 창호(昌鎬)가 또 여러 집에서 수창(酬唱)했던 것과 만장(輓章), 행장(行狀) 약간을 덧붙여 한 편으로 합쳐 만들고 《용한유고(容閒遺稿)》라 명명하였다.
아, 사람이 어버이에 대해서 비록 땅에 떨어진 침이나 눈물이라도 오히려 공경하였는데, 하물며 정신과 마음이 담겨있는 지묵(紙墨)이 비록 적막할 만큼 적을지라도 어찌 사라지고 흩어지도록 내버려 둔 채 수습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내가 어버이를 여읜 몸으로 지금 죽은 벗의 유고에 대해 사사로이 슬픈 감정이 없을 수 없어서 삼가 이와 같이 서문을 쓴다.
容閒遺稿序
邑有大夫。而訟者造於其廬。州有庠序。而學者趨於其門。吾聞其語矣。又見其人矣。容閒吳公。隱於爾陵之南。早抱經國酬世之具。而時不見用。卒無所試。然鄕里之間。有辨爭者。來取決焉。有疑晦者。來取正焉。身不出家八十年。其利澤之及物。不啻多矣。公平日不喜著書。或有所著。輒付之散墨。是以公歿後。巾衍無一字遺墨。後十年。孫在鴻遍閱知舊家。得詩若干文若干。曾孫昌鎬。又附之以諸家唱酬。及輓章行狀若干。合爲一編。名曰容閒遺稿。嗚呼。人之於親雖落地唾洟。猶敬之。況精神心術之寓於紙墨者。雖其寂寥。豈可任其泯散而不收哉。余以風樹餘生。今於先友遺稿。不能無悲感之私。謹序之如此云爾。