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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신재집 권13
  • 서(序)
  • 관서로 돌아가는 김군 성유를 송별하는 서문(送金君聖惟歸關西序)

일신재집(日新齋集) / 일신재집 권13 / 서(序)

자료ID HIKS_OB_F9001-01-202101.0013.0002.TXT.0014
관서로 돌아가는 김군 성유를 송별하는 서문
옛날 사마자장(司馬子長)은 20세에 남쪽으로 강회(江淮)를 유람하였는데주 103), 지금 박천(博川)의 김군(金君) 성유(聖惟)가 수천 리 길을 멀다 여기지 않고 남쪽으로 영호남 사이를 유람하기에 나이를 물어보니, 그도 20세였다. 이는 전후의 취지가 일치하고, 고금의 자취가 똑같다고 이를 만하다. 그러나 강회의 유람은 평상시의 일이었고, 영호남의 유람은 변란 때의 일이니, 그 마음을 세우고 일을 성취하는 것이 옛사람보다 더욱 어렵지 않았겠는가. 다만 부모가 생존해 계시면 멀리 나가지 않으니, 이는 평상시에도 오히려 그러한데, 하물며 변란과 우환이 눈앞에 가득하여 길목마다 저지당하고 부딪히는 때임에야 더 말할 것이 있겠는가. 아침저녁으로 마을 어귀의 문에 기대어 자식이 돌아오기를 애타게 기다리는 부모에게 끼쳐드릴 수고로움이 또한 적지 않을 것으로 생각되니, 날씨가 추워지기 전에 빨리 수레를 돌려 산으로 돌아갈 계책을 세우는 것이 어떻겠는가?
기성(箕聖)의 옛 도읍주 104)은 내가 평소에 유람해보고 싶은 곳이었지만, 지금은 이미 늙었다. 만약 혹시라도 하늘이 몇 년의 수명을 연장해주고, 어지러운 시세가 조금 안정된다면 오늘날 다하지 못한 유람이 대동강(大同江)과 연광정(練光亭)주 105)사이에서 다시 이어지지 않을 줄 어찌 알겠는가.
주석 103)옛날……유람하였는데
사마자장(司馬子長)은 한나라 무제(武帝) 때의 역사가 사마천(司馬遷)으로, 자장은 그의 자이다. 그는 20세 때에 남쪽으로 강회(江淮)ㆍ회계(會稽)ㆍ우혈(禹穴)ㆍ구의(九疑)ㆍ원상(沅湘)을 유력하고 북쪽으로는 문사(汶泗)를 건너고 제노(齊魯)의 땅에서 강학(講學)하고 양초(梁楚)를 지나 돌아왔다고 한다. 《史記 卷130 太史公自序》
주석 104)기성(箕聖)의……도읍
기성은 은(殷)나라 주왕(紂王)의 숙부인 기자(箕子)를 말하고, 기성의 옛 도읍은 평양을 가리킨다. 기자는 은나라가 멸망한 후에 주(周)나라 무왕(武王)에게 천하를 다스리는 아홉 가지의 대법(大法)인 홍범구주(洪範九疇)를 가르쳐 주고 조선의 평양(平壤)으로 옮겨와 기자조선(箕子朝鮮)을 세웠다고 전해진다.
주석 105)연광정(練光亭)
평양부의 대동강(大同江) 가 덕암(德巖) 위에 있는 정자로, 감사 허굉(許硡, 1471~1529)이 지었다고 한다. 《국역 신증동국여지승람 제51권 평안도》
送金君聖惟歸關西序
昔司馬子長。二十南遊江淮。今博川金君聖惟。不遠數千里。南遊嶺湖之間。問其年亦二十。此可謂前後同調。今古一轍。然江淮之遊。平時事也。嶺湖之遊。亂時事也。其所以立心就事。不爲尤難於古人乎。但親在不遠遊。此在平時猶然。況艱虞滿目。途塗阻搪之日乎。其貽尊庭朝暮倚閭之苦。想亦不少矣。迨天氣未寒。早爲回轅還山之計如何。箕聖舊都。余平生所願遊。而今已老矣。如或天暇數年。而時紛稍帖。則今日未盡之遊。安知不復續於大同練光之間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