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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신재집(日新齋集)
  • 일신재집 권13
  • 서(序)
  • 《향약안》 서문(鄕約案序)

일신재집(日新齋集) / 일신재집 권13 / 서(序)

자료ID HIKS_OB_F9001-01-202101.0013.0002.TXT.0011
《향약안》 서문
선왕(先王)이 천하의 전토(田土)를 구획하자 백성들이 모여살며 생활하였는데, 사는 곳을 각기 구분 짓고 통속(統屬)하는 바를 두었다. 이런 까닭에 5가(家)를 인(隣)이라 하고 인에는 인장(隣長)을 두었으며, 5린을 이(里)라 하고 이에는 이장(里長)을 두었으며, 4리를 족(族)이라 하고 족에는 족장(族長)을 두었으며, 5족을 당(黨)이라 하고 당에는 당정(黨正)을 두어 주(州)ㆍ향(鄕)ㆍ방(邦)ㆍ국(國)에 이르렀다. 이렇게 조리(條理)와 기강(紀綱)이 찬란하게 빛나고 어지럽지 않게 되어 교화가 일어날 수 있었다.
아, 삼고(三古) 시대주 94)의 아름다운 법이 땅을 쓴 듯 사라진 지 오래되었으니, 훗날의 군자들이 오히려 남아 있는 법을 주워 모아 향촌과 마을 사이에서 모방하며 의지할 수 있는 것은 횡거(橫渠)의 정제(井制)주 95)와 남전(藍田)의 향약(鄕約)주 96)과 같은 것일 뿐이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대대로 여러 임금이 연이어 일어나 더욱 향수(鄕遂)주 97)의 제도를 중시하고 상서(庠序)주 98)의 가르침을 밝혔으니, 그 깊이 젖어 들고 배어든 것이 이미 오래되었다.
우리 능주(綾州) 고을에 마을[黨]이 여덟 곳인데, 송석(松石) 마을은 그중 하나이다. 강의 상류 쪽에 위치해 있고, 들과 산이 서로 섞여 있어 예로부터 의관을 차려입은 지체 높은 집안과 유림(儒林)에서 명망이 높은 가문이 많아 유풍과 여운이 여전히 남아 있으니, 이것이 어찌 유래한 바가 없겠는가. 다만 세대가 내려오면 기풍이 시들고, 법이 오래되면 실정이 쇠퇴하기 때문에 답습해 오던 것들이 흩어지고 사라져서 이에 이르렀다.
내가 변변찮은 사람으로 간혹 이곳에서 부형과 장로의 뒤를 따르며 삼가 들은 것이 있었다. 고금을 돌아봄에 사사로이 감개한 마음이 없을 수 없는데, 닦아 거행하고 고쳐 새롭게 할 것을 도모함에 어찌 분수에 넘친다는 이유로 사양할 수 있겠는가.
무릇 가정에는 부모에게 효도하고 형제에게 공손한 행실이 있고, 마을에는 어질고 후덕(厚德)한 풍속이 있으며, 골목에는 거문고를 타며 시를 암송하는 소리가 있고, 들판에는 망을 보며 지키는 관리의 도움이 있으며, 마을에는 예의를 지켜 사양하는 풍도가 있다. 어느 마을이든 그렇지 않은 곳이 없어 가까운 곳에서부터 먼 곳으로 미쳐나간다면 나라가 다스려지고 천하가 태평해질 것이다.
우리 동향의 여러 군자들은 서로 각기 이에 힘써서 자신에게 있어서는 몸을 수양하고, 집에 있어서는 그 집안을 가지런히 다스리고, 이웃에 있어서는 그 이웃을 교화하고, 마을에 있어서는 그 마을의 풍속을 바르게 하여 《여씨향악(呂氏鄕約)》주 99)의 규약처럼 덕업을 서로 권면하고, 과실을 서로 바로잡아 주며, 예의 바른 풍속으로 서로 사귀고, 어려움을 당하면 서로 구휼해야 한다. 또한 옛 규약을 참작하여 늘리거나 줄이는 등 알맞게 고쳐서 한 통을 써 놓고 매달 초하루 회합하기로 약속한 날이나  향음(鄕飮)과 향사(鄕射)주 100)를 행하는 날이 되면 반드시 큰 소리로 읽어 내려가면서 서로 갖추게 하고 깨우치게 해야 한다. 게다가 훌륭한 일과 잘못한 일에 대한 두 개의 장부를 만들어서 권면하고 경계하게 해야 한다. 이것이 어찌 삼고 시대의 남겨진 법이 아니겠으며, 우리나라의 여러 임금께서 선포한 조칙이 아니겠는가.
주석 94)삼고(三古) 시대
중국 고대를 세 시기로 나누어 상고(上古), 중고(中古), 하고(下古)라 하는데, 구체적인 시기에 대해서는 복희를 상고, 신농(神農)을 중고, 오제(五帝)를 하고라 하기도 하고, 복희(伏羲)를 상고, 문왕(文王)을 중고, 공자(孔子)를 하고라 하기도 한다. 여기에서는 성인이 정치와 교화를 담담하여 태평성대를 이룬 하ㆍ은ㆍ주 삼대(三代)를 가리키는 듯하다.
주석 95)횡거(橫渠)의 정제(井制)
횡거(橫渠)는 송나라 때 학자인 장재(張載)의 호이고, 정제(井制)는 장재가 "정전법을 천하에 시행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한 고을에서 시험해 볼 수는 있다."라고 하여 시행하려고 했던 정전제로, 끝내 뜻을 이루지 못하고 죽었다는 내용이 《맹자집주》 〈등문공 상(滕文公上)〉의 정전제에 대한 주석에 보인다.
주석 96)남전(藍田)의 향약(鄕約)
송(宋)나라 때 여대충(呂大忠)ㆍ여대방(呂大防)ㆍ여대균(呂大鈞)ㆍ여대림(呂大臨) 4형제가 남전현(藍田縣)에서 고을 사람들과 서로 지키기로 약속한 자치 규범으로, 여씨향악(呂氏鄕約)이라고도 한다. 그 대강은 "덕행과 공업을 서로 권하고, 허물과 그른 일을 서로 경계하며, 예의 바른 풍속으로 서로 사귀고, 근심스럽고 어려울 때 서로 구한다.[德業相勸, 過失相規, 禮俗相交, 患難相恤.]"로 구성 되어 있는데, 이것이 후세 향약의 모범이 되었다. 《宋史 呂大防列傳》
주석 97)향수(鄕遂)
지방의 고을을 비유하는 말이다. 주(周)나라 때 왕성(王國) 밖 100리 이내를 향(鄕)이라 하고, 100리에서 200리 사이를 수(遂)라 하여 각각 육향(六鄕)과 육수(六遂)로 행적 구역을 나눈 데서 유래하였다. 《周禮 地官司徒》
주석 98)상서(庠序)
국가의 교육 기관을 비유하는 말로, 하(夏)나라 때에는 교(校)라고 하였고, 은(殷)나라 때에는 서(序)라고 하였고, 주(周)나라 때에는 상(庠)이라고 한 데에서 유래하였다. 《孟子 滕文公上》
주석 99)여씨향악(呂氏鄕約)
송(宋)나라 때 남전(藍田)에 살던 여대충(呂大忠), 여대방(呂大防), 여대균(呂大鈞), 여대림(呂大臨) 형제가 그 고을 사람들과 서로 지키기로 약속한 자치 규범이다. 그 대강은 "덕업을 서로 권면하고[德業相勸], 과실을 서로 바로잡아 주고[過失相規], 예의 바른 풍속으로 서로 사귀고[禮俗相交], 어려움을 당하면 서로 구휼한다[患難相卹]."라는 등의 네 조목으로 구성되어 있고, 후세 향약의 기준이 되었다.
주석 100)향음(鄕飮)과 향사(鄕射)
향음주례(鄕飮酒禮)와 향사례(鄕射禮)를 말한다. 조선 세종 때에 이루어진 《오례의(五禮儀)》에 의하면 향음주례는 한성부(漢城府)와 외방 각 고을에서 매년 10월에 날을 가려서 나이가 많고 덕이 있는 사람과 재행(才行)이 뛰어난 사대부나 서인들을 모아 술을 마시게 하면서 충효와 교화 등을 펴는 의례이고, 향사례는 개성부(開城府)와 외방 각 고을에서 매년 3월 3일과 9월 9일에 효제충신(孝悌忠信)하며 예를 좋아하고 행실이 난잡하지 않는 사람을 뽑아 활쏘기와 잔치를 베풀면서 유학의 도덕과 기풍을 배양시키던 의례이다.
鄕約案序
先王疆理天下。居聚生息。各有區分。而有所統屬。是故五家爲隣。隣有隣長。五隣爲里。里有里長。四里爲族。族有族正。五族爲黨。黨有黨正。以達於州鄕邦國。條理紀綱。燦然不亂。而敎化可興也。嗚呼。三古美法。掃地久矣。後之君子。猶能掇拾遺經而依倣鄕里間者。如橫渠之井制。藍田之鄕約而已。至於我東。列聖繼作。尤重鄕遂之制。明庠序之敎。其所以涵濡薰蒸者。蓋已久矣。惟我綾之鄕。爲黨者八。松石其一也。處於上流。山野相錯。多衣冠舊族儒林名家。而遺風餘韻。猶有存焉。此豈無所自耶。但世降則氣有所蔽。法久則情有所替。故因仍渙解。以至于玆。余以無似。間從父兄長老之後於此。竊有所聞矣。緬古覸今。不能無感慨之私。而謀所以修擧更張者。又安得以僭踰而辭也。夫家有孝悌之行。里有仁厚之俗。巷有絃誦之聲。野有守望之助。黨有禮讓之風。無黨不然。自近及遠。則國治而天下平矣。維我同鄕諸君子。胥各勉焉。在身則修其身。在家則齊其家。在隣則化其隣。在里則正其里。以德業相勸。過失相規。禮俗相交。患難相恤。如呂氏鄕約之規。而且爲增損裁酌。書其一通。至於月朔會約之時。及鄕飮鄕射之日。必爲抗聲讀過。使相備曉。且立善惡二籍。俾有勸戒焉。此豈非三古遺法。而我朝列聖之所宣勑者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