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화콘텐츠
  • 특화콘텐츠
  • 호남근현대문집
  • 일신재집(日新齋集)
  • 일신재집 권13
  • 서(序)
  • 《풍양조씨파보》 서문(豊壤趙氏派譜序)

일신재집(日新齋集) / 일신재집 권13 / 서(序)

자료ID HIKS_OB_F9001-01-202101.0013.0002.TXT.0005
《풍양조씨파보》 서문
민가에서 보책(譜冊)을 만드는 것도 하나의 역사이니, 세계(世系)를 밝히고 종족(宗族)을 거두어 세상의 교화에 보탬이 되는 것이 어떠했겠는가. 삼가 생각건대 우리 조선이 문무(文武)의 계책과 공열(功烈)로 지켜온 5백 년 동안 사대부 집안에서 보책(譜冊)을 숭상하지 않은 적이 없었으니, 조상을 높이고 근본을 중히 여기며, 윤리를 바르게 하고 은혜를 돈독하게 하는 것이 성대하게 풍속을 이루었다.
풍양 조씨(豊壤趙氏)는 우리나라의 큰 성씨로, 일파가 대대로 강진(康津)에서 살았는데, 조정의 반열에 올라 훌륭한 공적을 이룬 감사공(監司公)과 학문과 행실이 뛰어난 참판공(參判公),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쳐 충절을 세운 주부공(主簿公) 같은 분들이 우뚝하게 빛났고, 그 나머지 문관(文官)이나 무관(武官), 음관(蔭官), 문학(文學), 효행(孝行), 열행(烈行) 등으로 향리(鄕里)에서 칭찬을 받은 자들이 다 기록하지 못할 정도였으니, 그 일파의 문벌과 신망, 명성과 업적 등으로 볼 때 또한 남쪽 지방에서 명망이 높은 종족이었다.
보계(譜系)는 정종(正宗) 정사년(1797)에 처음으로 수찬(修撰)하였고, 50년이 지나 헌종(憲宗) 병오년(1846)에 다시 수찬하였으며, 병오년부터 지금까지 54년이 흐르면서 생존했던 사람은 죽고 어렸던 사람은 장성하여, 태어나고 죽은 날짜와 함자(銜字), 혼인, 무덤 등에 관한 기록이 잘못되고, 상고할 것이 없어질지 모른다는 염려가 없지 않았다. 이에 문중의 의론이 일제히 일어나고, 충분한 상의 끝에 의론이 하나로 모아져서 경영하고 간행하는 일이 힘들이지 않고 이루어졌다.
내가 생각건대 조씨의 보책이 일반 사람의 것과 다른 점이 두 가지 있으니, 족파(族派)가 번다하지 않고, 보책을 만드는 기간이 촉박하지 않다는 것이다. 근세 보가(譜家)의 경우에는 으레 대부분 족파를 넓히는 것에 힘써 원근(遠近)과 친소(親疎)를 따지지 않고 한데 섞어 한 편으로 만드니, 속임과 망령됨이 어느 것인들 극심하지 않겠는가. 그런데 지금 조씨는 단지 도강(道康 강진의 옛 이름) 일파만 함께 하였으니, 규모가 협소한 것 같지만 친근한 이를 친근하게 하는 데에서 소원한 이에게까지 미쳐갔으니, 이치가 진실로 이와 같다.
근세 보가(譜家)의 경우에는 보책을 만드는 기간이 늦거나 빨라 일정하지 않아서 혹 어제 마쳤는데 오늘 시작하기도 하고, 혹 아침에 간행하였다가 저녁에 폐기시키기도 하여 통문을 보내는 일이 연이어지고, 돈을 분배하여 거두어들이는 일이 빈번하였다. 그런데 지금 조씨가 오십 년에 한 번씩 수찬한 것은 삼십 년의 규례와 비교하면 조금 느슨한 것 같지만 당시의 폐단을 바로잡았으니, 이치가 또한 이와 같다. 이것으로 문중의 풍습이 두텁고, 마음을 쓰는 것이 치밀함을 볼 수 있다. 아, 선공(先公)의 유풍(遺風)과 여운(餘韻)이 사라지지 않았으니, 이대로 나아간다면 조씨의 문중이 어찌 창대해지지 않을 수 있겠는가. 힘써야 할 것이다.
창구(昌九)은 참판공 16대손인데, 문중 부형의 명을 받들고 와서 서문을 청하였다. 내가 진실로 받들어 감당할 수 있는 일이 아님을 알지만, 대대로 맺어온 교분이 무겁기에 감히 고집스럽게 사양하지 못했다.
豊壤趙氏派譜序
譜於人家。亦一史也。所以明世系收宗族。而有補於世敎。爲何如哉。恭惟我朝。文謨武烈五百年。士大夫家。莫不崇譜規而尊祖重本。正倫篤恩。蔚然成風。豊壤趙氏東方巨姓也。而有一派世居康津。若監司公之立朝偉蹟。參判公之文學行義。主簿公之殉國立慬。磊落光明。而其餘文武官蔭。文學孝烈。見稱鄕里者。有不殫記。其門望聲猷。亦南州之望族也。譜系在正宗丁巳。始修之。至五十年而憲宗丙午。再修之。今距丙午爲五十四年矣。存者沒。幼者壯。生卒諱銜。昏娶墳墓。將不無失錄無稽之慮。於是門議齊發。爛商歸一。經紀刊釐。不勞而成。余謂趙氏之譜異於人者。有二焉。族派之不煩也。年限之不促也。近世譜家。例多務廣。不計遠近親疎。而混同一編。欺誣幻妄。何所不至。今趙氏只與道康一派共之。規模似若狹小。而親親及疎。理固如此。近世譜家。遲速無常。或昨訖而今始。或朝刊而暮毁。發通絡繹。排斂仍疊。今趙氏五十年而一修。較諸三十年之規。似若少緩。而矯當時之敝。理亦如此。可以見門風之厚而用心之密矣。嗚呼。諸先公之遺風餘韻。爲不食矣。率是以往。趙氏之門。安得不昌大乎。勉旃焉。昌九參判公十六代孫也。奉其門父兄之命。來謁弁卷之文。余固知非可以承當者。而世契之重。有不敢牢讓云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