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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신재집(日新齋集)
  • 일신재집 권13
  • 서(序)
  • 《영귀회안》 서문(詠歸會案序)

일신재집(日新齋集) / 일신재집 권13 / 서(序)

자료ID HIKS_OB_F9001-01-202101.0013.0002.TXT.0004
《영귀회안》 서문
삼대(三代)주 72) 때 교화를 일으킨 실마리는 반드시 고을에서 시작되었다. 이 때문에 다섯 명씩 백성을 묶고, 아홉 등분씩 정전(井田)을 나누어 화합하고 함께 살면서 떠돌지 않게 하였고, 통속(統屬)하고 유지하여 혼란스럽지 않게 하였다. 집안에는 부형의 가르침이 있었고, 마을에는 삼노(三老)주 73)의 훈육이 있었으며, 학교에는 스승과 동학(同學)들의 가르침이 있었고, 골목에는 출입하는 벗들이 있었으며, 들에는 지키고 망보는 도움이 있었고, 향촌에는 양노(養老)와 양현(養賢), 삼물(三物)과 팔법(八法)주 74)이 있었으니, 무릇 출입하고 기거하는 것과 가고 머무는 것, 말하고 침묵하는 것 등이 애초부터 하루도 올바른 길에서 벗어난 적이 없었다. 이 때문에 풍속이 아름답고, 어진 인재가 많았으니, 후세에 미칠 수 있는 바가 아니었다.
아, 시대가 멀어지고 사람이 없어지면서 유풍(遺風)이 땅을 쓴 듯 사라져 고을과 마을 사이에 은덕(恩德)과 정의(情誼)가 서로 이어지지 않고, 권면과 경계가 서로 미치지 못하여 일반 사람들은 자신을 사사롭게 여기고, 선비들은 학문을 사사롭게 여겨 이단(異端)의 말과 행위가 끝없이 멋대로 흘러넘치는 데에 이르렀다. 비록 그렇지만 여남은 집밖에 안 되는 마을에도 반드시 충신이 나오고, 한 고을에도 반드시 착한 선비가 있어 예로부터 지금까지 훌륭한 사람이 없지 않았으니, 진실로 그들의 음성과 기색을 본받아 화합하면서 그들과 지속적으로 함께 할 수 있다면 비록 삼대의 교화가 깨끗하게 사라져 완전히 무료한 시대에 있다 하더라도 나의 부족한 점을 다스리고 나의 훌륭한 점을 권면하는 데에 길이 없을까 근심하지 않을 것이다.
정해년(1887) 중추(仲秋 음력 8월)에 내가 고을의 벗들을 따라 육칠 일에 걸쳐 서석산(瑞石山 무등산(無等山))을 유람하며 자못 바람을 쐬고 읊조리는 정취를 마음껏 누렸다. 그런데 이별할 때에 한마디 말로 서로 작별하면서 말하기를, "우리들이 거처하는 곳이 가깝지 않은 것도 아니고, 정이 두텁지 않은 것도 아닌데, 뿔뿔이 흩어져서 한 가지 선도 책망하지 못하고, 한 가지 의리도 강론하지 못한 채 이처럼 하염없이 세월만 보내고 있으니, 평소 서로 알아주는 뜻이 어디에 있는가? 만약 오늘의 모임으로 얼굴을 마주한 자리에서 규약을 정하여 남전(藍田)의 향약(鄕約)주 75)처럼 덕업을 서로 권면하고, 백록(白鹿)의 학규(學規)주 76)처럼 서로 강학하여 때에 따라 서로 모여 차례대로 거행하되 헛된 명성으로 귀결되지 않고 하나하나 실효가 있게 하는 것이 어떻겠는가?" 하니, 모두 찬성하였다. 이에 시골 마을에서 감당할 수 있는 제도와 재력을 따르고, 벗들이 모여 강학하는 방법을 덧붙여 참작하고 증감하여 오래도록 유지될 규례를 정하였다.
아, 한편으로는 시골 마을이고, 한편으로는 벗들이지만, 우리들이 만년에 어렵게 이러한 모임을 거행함으로써 삼대의 유의(遺儀)를 그래도 직접 볼 수 있는 날이 있게 되었으니, 어찌 다행이 아니겠는가. 더구나 나는 일찍 부모를 여의고, 운수가 궁박하여 다시는 사방에서 벗을 취할 만한 힘이 없어 궁벽한 집에 틀어박힌 채 그저 쓸쓸히 죽을 날만을 기다릴 뿐이었다. 어찌 이러한 상황에서 시골 마을의 벗들과 더불어 오르내리고 나아가고 물러나면서 절차탁마(切磋琢磨)하는 사이에서 노닐 줄 알았겠는가. 다만 용렬하고 형편없는 사람이 외람되이 한 고을의 훌륭한 선비 사이에 끼게 되었으니, 이것이 두려울 뿐이다.
염계 주 선생(濂溪周先生 주돈이(周敦頤))이 말하기를, "지극히 높은 것은 도이고, 지극히 귀한 것은 덕이다."주 77)라고 하였는데, 벗들로 인해서 존귀하게 되었으니, 그 의리가 또한 소중하지 않겠으며, 그 모임이 또한 즐겁지 않겠는가. 여러 벗들에게 바라니, 곧음과 신실함으로 서로 가르쳐주고 서로 알려주어서 내가 날로 나아가거든 너는 달로 나아간다면 고을의 풍속이 오직 평원(平原)만 아름답지 않을 것이고, 고을의 어진 인재가 오직 고령(古靈)에만 많지 않을 것이며주 78), 한 모퉁이에 있는 홍릉(紅綾 능주(綾州))도 또한 군자의 고을이 되지 않겠는가. 이 계(契)는 마침 서석산에서 바람을 쐬고 읊조린 나머지에 이루어졌기 때문에 이것을 인하여 영귀(詠歸)라 이름을 지었으니, 이 또한 여러 벗의 뜻이었다.
주석 72)삼대(三代)
중국 고대시대 때 성왕(聖王)으로 일컬어지는 우(禹)ㆍ탕(湯)ㆍ문왕(文王)이 다스렸던 하(夏)ㆍ은(殷)ㆍ주(周)나라 때를 가리킨다.
주석 73)삼로(三老)
한(漢) 나라 때 교화를 관장하던 관직으로, 향(鄕)마다 한 사람씩 두었다. 《한서(漢書)》에 "백성 중에 50살 이상으로 덕행이 있고 사람들을 이끌어 선(善)을 행하게 할 수 있는 사람을 뽑아서 삼로를 두었는데 향(鄕)에 한 사람이다. 향삼로(鄕三老) 가운데 한 사람을 가려 현삼로(縣三老)로 삼고서 현령과 승위(丞尉)와 더불어 정사로 가르쳤다."라고 하였다. 《漢書 高帝紀上》
주석 74)삼물(三物)과 팔법(八法)
《주례(周禮)》 〈지관사도(地官司徒) 대사도(大司徒)〉에 "향학(鄕學)의 삼물로 만민을 교화하고, 인재가 있으면 빈객의 예로 우대하면서 천거하여 국학(國學)에 올려 보낸다.[以鄕三物敎萬民而賓興之.]"라는 말이 나오고, 또 "향학의 팔형(八刑)으로 만민을 바로잡는다.[以鄕八刑糾萬民]"라는 말이 나온다. 삼물은 삼사(三事)와 같은 말로, 육덕(六德)ㆍ육행(六行)ㆍ육예(六藝)를 가리키는데, 육덕은 지(知)ㆍ인(仁)ㆍ성(聖)ㆍ의(義)ㆍ충(忠)ㆍ화(和)를 말하고, 육예는 예(禮)ㆍ악(樂)ㆍ사(射)ㆍ어(御)ㆍ서(書)ㆍ수(數)를 가리킨다. 팔형은 8종의 범죄행위에 대해 가해진 형벌로, 불효지형(不孝之刑)ㆍ불목지형(不睦之刑)ㆍ불인지형(不婣之刑)ㆍ부제지형(不弟之刑)ㆍ불임지형(不任之刑)ㆍ불휼지형(不恤之刑)ㆍ조언지형(造言之刑)ㆍ난민지형(亂民之刑)을 말한다.
주석 75)남전(藍田)의 향약(鄕約)
남전의 여씨향약(呂氏鄕約)을 가리키는 것으로, 송나라 때 남전에 살던 여대충(呂大忠), 여대방(呂大防), 여대균(呂大鈞), 여대림(呂大臨) 등 형제 네 사람이 그 고을 사람들과 서로 지키기로 약속한 자치 규범을 말한다. "덕업을 서로 권면하고[德業相勸], 허물과 잘못을 서로 경계하며[過失相規], 예의와 바른 풍속으로 서로 사귀고[禮俗相交], 근심스럽고 어려울 때에 서로 구휼한다.[患難相恤]"라는 네 조목이 후세 향약의 기준이 되었다. 《小學 卷6 善行》
주석 76)백록(白鹿)의 학규(學規)
백록동서원(白鹿洞書院)의 학규를 말한다. 주희가 지남강군(知南康軍)에 부임하였을 때 백록동서원을 중건하고 직접 강학하면서 학규를 제정하였는데, 그 내용은 오교(五敎)의 조목, 학문을 하는 차례, 수신(修身)의 요체, 처사(處事)의 요체, 접물(接物)의 요체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晦菴集 卷74 雜著 白鹿洞書院揭示》
주석 77)지극히……덕이다
《통서(通書)》 〈사우상(師友上)〉에 보인다.
주석 78)고을의……것이며
고령은 원래 산 이름이었는데, 송(宋)나라 때 문신이자 학자였던 진양(陳襄)이 고령서원(古靈書院)을 세우고 글을 읽었으므로 진양을 가리키는 말로 쓰인다.
詠歸會案序
夫三代興化之端。必自鄕井始。是以五五其民。九九其井。使合同而不離。統維而不亂。家有父兄之詔。里有三老之訓。庠有師友之敎。巷有出入之友。野有守望之助。鄕有養老養賢三物八刑之法。凡出入起居。行住語黙。未始一日而離於正。此所以風俗之美。賢才之多。非後世之能及也。噫。世遠人亡。遺風掃如。鄕井之間。恩誼不相接。勸戒不相及。以至人私其身。士私其學。而異言異行。橫流滔滔。雖然。十室之忠。一鄕之善。亘古亘今。不無其人。苟能聲氣比和。與之源源。則雖在蕩然無聊之日。而所以攻吾闕勉吾善者。不患無其路矣。歲丁亥仲秋。予從鄕友之後。遊瑞石首尾六七日。頗盡風詠之趣。其別也。一辭相別曰。吾輩居非不近。情非不厚。而落落渙散。未有責一善講一義。如是悠悠。烏在其平生相知之意耶。若因今日之會。爲之面定規約。以德業相勸如藍田之約。講學相從如白鹿之規。隨時相聚。次第擧行。不爲虛聲所歸。而俾有一一實效如何。衆皆唯唯。於是因其鄕井之制力可及者。而附以朋友講聚之方。斟酌增減。定爲久規。嗚呼。一則鄕井也。一則朋友也。吾輩晩生。間關擧此。而三代遺儀。庶有親見之日。豈非幸耶。況義林孤露蹇滯。力不復取友四方。而跧蟄窮廬。只有離索待盡而已。豈知到此而與鄕井知舊。遊於升降進退切磋琢磨之間耶。但醜劣無狀。叨忝於一鄕善士之間。是爲可懼也已。濂溪周先生曰。至尊者道。至貴者德。因朋友而得貴且尊。其義不亦重乎。其聚不亦樂乎。願諸友維直維諒。胥訓胥告。我日斯邁。爾月斯征。則鄕俗之美。不獨平原。鄕賢之多。不獨古靈。而一隅紅綾。亦不爲君子之鄕耶。此契也。適成於瑞石風詠之餘。故因以詠歸名之。此亦諸友之意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