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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군 회부 중기 에게 써서 주다(書贈李君晦夫【中基】)

일신재집(日新齋集) / 일신재집 권13 / 잡저(雜著)

자료ID HIKS_OB_F9001-01-202101.0013.0001.TXT.0031
이군 회부 중기 에게 써서 주다
내가 일찍이 서울에 갔을 때 길에서 한 노인을 만나 수천 리 쯤를 동행하면서 보니, 그의 몸은 매우 구부정하고, 그의 발은 매우 둔해서 다른 사람에 비해 짧은 걸음을 여러 번 내딛어야 겨우 한 걸음을 움직일 수 있었다. 길가는 사람들이 그런 모습을 비웃으며 그 사람처럼 느리게 함께 걷다가 앞서 가버렸다. 이 때문에 항상 홀로 걸었고 함께 가는 사람이 없었다. 십 여일 뒤 서울에 들어가서 그 노인을 만났는데, 이미 먼저 남대문 아래에 와 있었다. 이는 대체로 그의 걸음걸이가 비록 느릴지언정 종일 길을 걸으면서 잠시 잠깐도 멈추거나 쉬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여기에서 학문하는 방법을 알고서 몰래 스스로 힘쓰면서도 오히려 잘할 수 없을까 근심하였는데, 끝내 '간단(間斷)' 두 글자로 일생을 헛되이 보내었다. 아, 어찌 나만 그렇겠는가. 세상의 학자들이 끝내 성취를 이룰 수 없었던 것은 오직 이 때문이다.
보건대, 회부(晦夫)는 지금 한창 나이가 젊고, 힘이 강하며, 앞길이 만리이니, 모름지기 안장과 고삐를 다스리고 정돈하여 혹시라도 그치거나 멈추지 말고 끝내 한만(汗漫)과 서로 기약한 곳주 62)에 이르러서 나처럼 이 노인에게 비웃음을 받지 말아야 할 것이다. 평소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던 생각을 지금 회부를 위해 말하니, 회부는 힘쓰기 바란다.
주석 62)한만(汗漫)과……곳
한만(汗漫)은 세상 밖에서 노니는 신선, 즉 세상 밖을 가리키는데, 여기에서 광대무변한 학문의 경지를 말한다. 옛날에 도인(道人) 노오(盧敖)가 일찍이 북해(北海)에서 노닐다가 몽곡(蒙穀) 위에 이르러 약사(若士)라는 선인(仙人)을 만나서 그에게 말하기를 "당신이 나와 서로 친구가 되어 줄 수 있겠는가.[子殆可與敖爲友乎?]"라고 하자, 약사가 웃으며 이르기를 "나는 저 한만과 더불어 구해의 밖에서 노닐기로 기약했으니, 내 여기에 오래 머무를 수가 없다.[吾與汗漫期于九垓之外, 吾不可以久駐.]"라고 하고 바로 떠나 버렸다는 고사에서 나온 말이다. 《淮南子 道應訓》
書贈李君晦夫【中基】
余嘗之京師。道遇一老人。同行數里許。見其體甚傴。其足甚鈍。視他人數步頃。僅運一步。路人莫不笑之。同行若其遲而先去之。是以常獨行而無伴。後十數日。入京見老人。已先來在南門下矣。蓋其運步雖遲。而終日在道。無霎刻停息故也。余於此知爲學方法。竊自勉之而猶患不能。竟以間斷二字。枉過一生矣。嗚呼。豈獨余也。世之學者。不能終有所爲者。職此之由也。見晦夫方年富力强。前程萬里。須理鞍正轡。母或間斷停輟。終至於汗漫相期之地。勿爲此老人所笑如義林也。平日所蘊蓄。今爲晦夫發之。願晦夫勉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