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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신재집 권13
  • 잡저(雜著)
  • 신안사에 머물며 김군식에게 써 주다(留新安社。書贈金君式。)

일신재집(日新齋集) / 일신재집 권13 / 잡저(雜著)

자료ID HIKS_OB_F9001-01-202101.0013.0001.TXT.0023
신안사에 머물며 김군식에게 써 주다
고(故) 대곡옹(大谷翁)주 46)은 우리 사문의 고족(高足 뛰어난 제자)으로, 그의 학술과 행실은 한 시대의 으뜸이 되고 후학의 모범이 될 수 있었는데, 사문(斯文)이 복이 없어 중도에 갑자기 삶이 멈추어 오래도록 식견이 있는 사람들이 안타깝게 여기며 슬퍼하였다.
임인년(1902) 봄에 내가 사문(師門)의 문집을 간행하는 일주 47)로 강성(江城 경남 산청의 옛 지명)의 신안사(新安社)에 갔었는데, 당시에 산석옹(山石翁)이 그 자리에 있었다. 한 소년이 그를 만나보게 하고 말하기를, "이 분은 대곡옹 집안사람으로, 자(字)가 군식(君式)입니다."라고 하였는데, 그의 부친과 여러 종친들이 대곡옹의 유고(遺稿)를 간행할 것을 도모하여 한창 글을 거두어 모으고 있었기 때문에 이 사람을 보내 여기에 오게 된 것이었다.
아, 대곡을 보지 못한 지 이십 년 만에 비로소 그 집안사람을 보게 되었으니, 슬프면서도 위안이 되는 마음이 어찌 원빈(元賓)주 48)을 만나는 것과 같을 뿐이겠는가. 더욱이 그의 문장을 모아 책으로 간행하여 대곡으로 하여금 백세토록 썩어 없어지지 않게 하였으니, 종친을 돈독히 하는 의리와 어진 이를 숭상하는 정성은 참으로 세상에 좋은 사람이 없다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군식을 삼가 살펴보건대, 함께 지내는 여러 날 동안 몸가짐이 한결같아 지초(芝草)의 뿌리와 예천(醴泉)의 원천임을 또한 속일 수 없었고, 분연히 뜻을 세워 쉬지 않고 끊임없이 나아가 대곡의 도로 하여금 문정(門庭) 사이에서 실추되지 않게 하였으니, 이것이 어찌 김씨(金氏) 한 가문만의 복일뿐이겠는가. 생각건대, 존대인 어른이 오늘날 애를 태우며 마음을 쓰고, 피땀을 흘리며 노력하는 것이 이러한 뜻이 아니라고 기필하지는 못할 것이다.
주석 46)대곡옹(大谷翁)
19세기 유학자인 김석구(金錫龜, 1835~1885)로, 대곡은 그의 호이다. 노사(蘆沙) 기정진(奇正鎭, 1798~1879)의 문인으로, 일신(日新) 정의림(鄭義林), 노백헌(老栢軒) 정재규(鄭載奎)와 더불어 노문 삼자(三子)라 일컬어졌다.
주석 47)임인년(1902)……일
노백헌(老栢軒) 정재규(鄭載圭) 등과 함께 경남 산청의 신안정사(新安精舍)에서 스승 노사(蘆沙) 기정진(奇正鎭)의 문집을 목판으로 삼간(三刊)한 일을 말한다.
주석 48)원빈(元賓)
원빈(元賓)은 당나라 때의 문장가인 이관(李觀)의 자로, 한유(韓愈, 768~824)의 절친한 친구 중 한 사람이었다. 당시에 한유와 함께 문장 공부를 하면서 서로 우열을 다툰다는 명성이 있었는데 29세에 요절하였다. 한유는 이관이 죽은 뒤에 이사석(李師錫)에게 답한 편지에서 "원빈을 생각하지만 보지 못하여 원빈이 사귀던 사람을 보면 곧 원빈을 보는 듯하다.[思元賓而不見, 見元賓之所與者, 卽如元賓焉.]"라고 말하였다. 《韓昌黎集 卷3 答李秀才書》 여기에서는 대곡 김석구를 비유한 말이다.
留新安社。書贈金君式。
故大谷翁我師門高足。其學術行義。足以爲一世之冠冕。來學之標範。斯文無祿。中途遽閼。而爲有識之怊悵久矣。歲壬寅春。余以師門刊事。到江城之新安社。時山石翁在座。一少年使見之曰。此卽大谷翁門內人。字君式也。其大人丈與諸宗。謀刊大谷翁遺稿。而方收聚文字。故送此人來此也。嗚呼。不見大谷二十年。乃見其門內人。其悲慰之情。豈惟如見元賓而已。況收其文刊其書。使大谷不朽於百歲。其惇宗之義。尙賢之誠。信不可謂世無好人也。竊覸君式。相處累日。操守有常。芝醴根源。又不可誣矣。奮然立志。循循不舍。使大谷之道。不墜於門庭之間。此豈惟爲金氏一門之福也耶。尊大人丈今日所以若心血力者。想未必非此意云爾。