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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덕윤의 자설(金德潤字說)

일신재집(日新齋集) / 일신재집 권13 / 잡저(雜著)

자료ID HIKS_OB_F9001-01-202101.0013.0001.TXT.0015
김덕윤의 자설
김생(金生)이 이별하고 떠나간 지 여러 해가 되었는데, 하루는 관례를 치르고 찾아왔다. 내가 표덕(表德 자(字))을 무엇으로 했는지 묻자, "덕윤(德潤)입니다. 부친께서 명명해 주신 것입니다."라고 하니, 내가 말하였다. "의미가 있구나. 명명함이여. 의로운 방도로 가르쳤다고 이를 만하다. 마음에 부끄러움이 없어 몸이 항상 펴지고 느긋한 것은 덕이 몸을 윤택하게 해서이다. 양기가 만물을 기르듯 성대한 기운이 몸에 가득하고, 산처럼 의연하게 서며, 얼굴이 옥빛처럼 아름답고, 목소리가 종소리처럼 쟁쟁한 것은 덕이 몸을 윤택하게 해서이다. 덕이 맑게 얼굴에 드러나며 등에 가득하여 사체(四體)가 말하지 않아도 깨닫게 되는 것은 덕이 몸을 윤택하게 해서이다. 좌로 준승(準繩)이 되고 우로 규구(規矩)가 되어 거동과 용모가 예에 맞는 것은 덕이 몸을 윤택하게 해서이다. 진실로 존양성찰(存養省察)주 36)의 공부가 쌓여서 지극히 순수하고 완숙한 경지에 이른 자가 아니라면 어떻게 여기에 미칠 수 있겠는가?
공자가 말하기를, '덕을 아는 사람이 드물다.'라고 하였는데, 대저 '덕' 한 글자를 어느 누가 모르겠는가마는 드물다고 말한 것은 어째서인가? 여기에 반드시 지극한 뜻이 담겨 있을 것이다. 모르겠네만 덕윤은 그 뜻을 알고 있는가? 부친께서 명명하신 것인데 모른다고 말해서야 되겠는가. 내 자신이 이름으로 삼은 것인데 모른다고 말해서야 되겠는가. 친구들이 부르는 것인데 실상도 없이 응답해서야 되겠는가. 반드시 '덕윤'의 실상이 있는 뒤에야 '덕윤'이라는 이름에 부응하고, 부친께서 명명하신 뜻을 저버리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니, 나는 김생을 위해 두렵게 여기네."
주석 36)존양성찰(存養省察)
'존양'은 마음을 보존하여 성을 기르는 것[存心養性]을 말하며, '성찰'은 자신의 사욕을 살펴 막는 것을 말한다.
金德潤字說
金生別去有年。一日突弁而來。余問其表德云何。曰德潤。大人所命。余曰。有意哉命之也。可謂敎之以義方也。心無愧怍。體常敍泰者。德之潤身也。揚休山立。玉色金聲者。德之潤身也。粹面盎背。四體不言而喩者。德之潤身也。左準繩。右規矩。動容中禮者。德之潤身也。苟非存養省察積累純熟之至。何以及此。孔子曰。知德者鮮。夫德之一字。人孰不知而曰鮮何也。此必有至義存焉。未知德潤知之乎。大人所命。其可曰不知乎。吾身所名。其可曰不知乎。朋友所呼。其可曰無實而答之乎。必有德潤之實而後。可副德潤之名。而不負大人丈命之之意也。吾爲生懼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