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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귀순에게 써서 주다(書贈金龜淳)

일신재집(日新齋集) / 일신재집 권13 / 잡저(雜著)

자료ID HIKS_OB_F9001-01-202101.0013.0001.TXT.0005
귀순에게 써서 주다
회암(晦庵 주희(朱熹)) 선생이 말하기를, "배우는 사람이 부귀와 빈천에 대해 입장이 정해지지 않으면 입문하자마자 곧 어긋나게 된다." 하였다. 무릇 부귀와 빈천은 사람이 살아가는 데에 반드시 있게 되는 분수이고, 도덕과 인의는 사람이 살아가는 데에 반드시 있게 되는 성품이니, 부귀하다고 해서 풍부해지지 않고, 빈천하다고 해서 인색해지지 않으며, 부귀하다고 해서 행해지지 않고, 빈천하다고 해서 폐기되지 않는다. 진실로 그 만남을 편안하게 여겨 나의 법을 행할 수 있다면 사립문이나 옹기로 만든 창문은 곤궁함이 되지 않을 것이고, 말채찍을 잡거나 문을 지키는 것은 비천함이 되지 않을 것이다.
아, 나에게 있는 지극히 존귀한 것을 추구하지 않고 외면을 향해 바삐 내달리면서 의리와 분수를 침범하여 대낮부터 저물녘까지 말단 벼슬을 추구한다면 어찌 심히 생각이 없는 것이 아니겠는가. 이는 배우는 사람이 입장을 세우는 초기에 분별하여 취사와 향배를 결정해야 하는 것이다. 만약 여기에서 어긋나면 큰 근본을 이미 상실한 것이니, 다시 무슨 일을 배우겠는가.
맹자가 말하기를, "천하의 넓은 집인 인(仁)에 거처하고, 천하의 바른 자리인 예(禮)에 서며, 천하의 대도인 의(義)를 행하면 부귀가 마음을 방탕하게 하지 못하고, 빈천이 절개를 바뀌게 하지 못하며, 위엄과 무력이 지조를 굽히게 할 수 없으니, 이러한 사람을 대장부라 이른다."주 21)라고 하였으니, 아름답구나. 이 말이여! 여러 차례 반복해서 읊조리면 사람으로 하여금 끝없이 감개한 마음을 갖게 한다.
김생(金生) 귀순(龜淳)이 수개월 동안 나를 따라 공부하였는데, 이별할 때에 남은 회포를 이길 수 없기에 이 글을 써서 줄 것을 청하였다.
주석 21)천하의……이른다
《맹자》 〈등문공 하(滕文公下)〉에 나오는 말이다.
書贈金龜淳
晦庵先生曰。學者不於富貴貧賤上。立得定。則是入門便差了。夫富貴貧賤。人生所必有之分。道德仁義。人生所必有之性。不以富貴而豊焉。不以貧賤而嗇焉。不以富貴而行焉。不以貧賤而廢焉。苟能安其遇而行吾法。則蓽門甕牖不爲窮。執鞭抱關不爲賤。嗚呼。不求其至尊至貴之在於我者。而向外奔走。犯義犯分。以求一資半級於黃昏白日之間。豈非不思之甚耶。此學者立脚之初。所當分別劈破而爲取舍向背者也。若於此差却。則大本已失。更學何事。孟子曰。居天下之廣居。立天下之正位。行天下之大道。富貴不能淫。貧賤不能移。威武不能屈。此之謂大丈夫。旨哉言乎。三復諷詠。令人有感慨不盡之意。金生龜淳從余遊數月矣。於其別也。不勝餘懷。請書此以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