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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신재집(日新齋集)
  • 권12
  • 잡저(雜著)
  • 구사문에게 써서 주다(書贈具士文)

일신재집(日新齋集) / 권12 / 잡저(雜著)

자료ID HIKS_OB_F9001-01-202101.0012.0001.TXT.0040
구사문에게 써서 주다
교유(交遊)가 어수선하면 마음도 어수선하고 견문(見聞)이 혼란스러우면 마음도 혼란스럽다. 이것은 안팎으로 서로에게 의지하며 바뀌지 않는 이치이다. 매번 독서를 한다고 이름 붙여진 자들을 볼 때마다 그들의 평소 모습은 규방(閨房) 안에서 미적거리기도 하고, 여항(閭巷) 사이를 돌아다니며 놀기도 하고, 초목(樵牧)의 무리와 뒤섞여 있기도 하고, 술자리에 빠져 있기도 하여 무익한 사람을 마주하고 무익한 얘기를 하며 무익한 교유를 맺어 오래도록 어지럽게 시일만 보내고 있었다. 이와 같으면서 학문에 진보가 있기를 바란다면 음식을 물리치고 배부르기를 구하며 뒤로 걸으면서 앞으로 나아가기를 구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이것 또한 없는 이치이다. 반드시 먼저 조용한 곳에 방을 마련하여 필묵(筆墨)과 서책(書冊) 등 궤안(几案)에 필요한 모든 물건을 주위에 늘어놓고, 부모를 모시고 집안일을 돌보는 것 외에는 이곳에서 기거(起居)하고 이곳에서 침식(寢息)한다면 이 몸은 안정되는 곳이 있고 견문 또한 어지럽게 되지 않을 것이다. 밝은 창 아래에 놓인 책상에서 조용히 깊은 사색에 잠기고 깨닫는 것이 있으면 적어 놓고 의심스러운 사항이 있으면 적어 놓았다가 때때로 펼쳐 보고 때때로 사색 탐구한다면 저절로 깨달음이 쌓이게 될 것이다.
다시 열흘이나 한 달 사이에 선생이나 장자(長者) 및 현능(賢能)한 사우(士友)에게 나아가 시비(是非)를 묻는다면 의심은 쌓이는 것이 없고 지식은 정밀하지 않은 것이 없게 된다. 학문을 하는 방법은 이것을 넘어서지 않는다. 어찌하여 꼭 서숙(書塾 글방)에 나아가 스승이나 장자를 가까이한 이후에야 독서를 한다고 이름을 붙이겠는가. 하물며 동재(洞齋)는 시끌벅적한 것을 가까이하고 산당(山堂)에 머물면 직분(職分)을 저버리게 되니 온당하고 편리함으로 보자면 이보다 좋은 계책이 없다.
구생 사문보(具生士文甫)가 지난번에 한마디 말을 청하였다. 이제 그의 근실한 뜻을 저버리지 않고자 가만히 일상생활의 절도를 생각해보니 이보다 우선하는 계책이 없었다. 그래서 삼가 적어 준다. 생(生)은 힘쓰라.
書贈具士文
交遊淆雜。心亦淆雜。聞見紛挐。心亦紛挐。此內外相須不易之理也。每見名爲讀書者。其平居。或留連於閨房之內。或巡遊於閭巷之間。或雜錯於樵牧之伍。或沈溺於盃盤之席。對無益之人。打無益之話。作無益之遊。悠悠紛紛。拕過時日。如是而望其所學之有進。何異乎却食而求飽。却步而求前乎。此亦所無之理也。必須先置一區靜室。凡筆墨書冊几案之物。列於左右。事親幹蠱之外。起居於斯。寢息於斯則此身有所安頓。而聞見亦不至撓撓矣。明窓棐几。從容沈索。有得則記之。有疑則亦記之。以時看閱。以時思繹。自當有積累覺悟處矣。更以旬月間。就先生長者及賢士友。以質其是非。則疑無所畜。知無不精。爲學之道。無以過此。何必就書塾親師長。而後名爲讀書哉。況洞齋近熱鬧。山堂曠職分。其穩且便。莫如此計也。具生士文甫。向有一言之請。今欲不孤其勤意。而竊念日用節度。莫有先於此計。故謹書而贈之。惟生勉之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