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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신재집(日新齋集)
  • 권12
  • 잡저(雜著)
  • 오여주에게 써 주다(書贈吳汝周)

일신재집(日新齋集) / 권12 / 잡저(雜著)

자료ID HIKS_OB_F9001-01-202101.0012.0001.TXT.0015
오여주에게 써 주다
주자(朱子)가 이르기를, "사람이 학문을 하는 것은 단지 하려고 하는 것과 하려고 하지 않는 것의 다툼일 뿐이다."주 97)라고 하였다. 대체로 기품(氣稟)이 편벽되어 기호(嗜好)가 다르고 견문(見聞)에 얽매어서 추향(趨向)이 일치하지 않는다. 이 때문에 평생토록 독서를 해도 읽는 내용이 무슨 일인지를 모르는 사람이 많다. 교유(交遊)하는 이들 사이에서 말이 간혹 여기에 이르면 거리낌 없이 난폭하게 굴거나 반드시 멍하니 반성하지 못하여 인가하고 승낙하는 자가 대체로 적었다.
병술년(1910, 순종4) 봄, 내가 오봉(五峯)에서 객지 생활을 할 때 오군 여주(吳君汝周)가 날마다 나를 찾아와 함께 어울렸다. 또한 "게으름을 피우다가 학문의 기회를 놓친 지 오래되었습니다. 지금부터는 간절히 이 일에 마음을 두고자 하니 경계가 되는 한 말씀 해주시기를 바랍니다."라고 하기에, 나는 "자네가 이미 하려고 하는 마음이 있으니 어찌 내 말이 필요하겠는가."라고 하였다. 그러나 경중(輕重)의 권도(權道)가 내면에 명확하지 않고 취사(取捨)의 분별이 외부에서 결정되지 않으면 길을 나섰다가 전도 착란(轉倒錯亂)되어 제대로 올라가지 못하고 중간에서 떨어지지 않는 자가 없었다. 이것을 여주(汝周)에게 알리지 않을 수 없다.
무릇 부귀와 빈천은 사람의 일생에서 미리 정해진 분수이고 도덕과 인의(仁義)는 사람의 마음에 고유(固有)한 성(性)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중요하고 무엇이 가벼운가? 무엇이 추구할 수 있고 무엇이 추구할 수 없는가? 무엇을 추구해야 하고 무엇을 추구하지 말아야 하는가? 입각(立脚)주 98) 초기에 팔자타개처(八字打開處)주 99)를 헤아려 변별해야 한다. 이 단계를 지나서 나아가면 또 하나의 험난한 관문이 나타나 눈에 힘을 주어야 할 곳이 있으니 위기(爲己)와 위인(爲人)주 100)이 그것이다.
일찍이 생각해보니, 하늘이 명하고 사람이 받은 모든 이치와 모든 법칙은 저절로 해야 하는 일인가, 외부의 사물을 쫓아 자기의 이익을 도모하는 일인가? 일상생활에서 이르는 곳마다 성찰하는 것을 놓치지 않는다면 본령(本領)이 수립된다. 이로 말미암아 정밀하고 투철하며 숙련되고 정통한 단계에 이르는 것은 곧 부지런히 힘쓰는 것에 달려있을 뿐이다. 맹자(孟子)가 "천하의 넓은 집[인(仁)]에 거처하며 천하의 바른 자리[예(禮)]에 서며 천하의 대도(大道)[의(義)]를 행하고 부귀가 마음을 방탕하게 하지 못하며 위무(威武)가 지조를 굽히게 할 수 없으며 빈천(貧賤)이 절개를 옮겨놓지 못한다."주 101)라고 하였다. 이와 같은 것이 비로소 남아 대장부의 일이다. 바라건대 여주(汝周)는 힘쓰거라!
주석 97)사람이……뿐이다
《대학장구(大學章句)》 〈독해학법(讀大學法)〉에 나오는 내용이다.
주석 98)입각(立脚)
어떤 경우에도 흔들리지 않고 몸을 의연히 지키는 것을 말한다.
주석 99)팔자타개처(八字打開處)
팔자 모양의 형태로 문을 활짝 열어젖혀서 가려져 있던 앞산을 보여 주었다는 뜻으로, 조금도 숨김없이 분명하게 설명해 주는 것을 비유한 말이다. 주희의 편지에 "요즈음 《대학》을 보다가 이러한 뜻이 매우 분명하다는 것을 알았다. 성현이 이미 '팔(八)' 자가 벌어지듯 활짝 펼쳐 주었건만 사람들이 스스로 깨닫지 못하고서 오히려 밖으로 미친 듯이 치달리고 있다.[近日因看大學, 見得此意甚分明, 聖賢已是八字打開了. 但人自不領會, 却向外狂走耳.]"라고 하였다. 《晦庵集 卷35 與劉子澄》
주석 100)위기(爲己)와 위인(爲人)
《논어(論語)》 〈헌문(憲問)〉에 "옛날의 학자들은 자신을 위한 학문을 하였는데, 오늘날의 학자들은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학문을 한다."라는 공자의 말이 보인다.
주석 101)천하의……못한다
《맹자》 〈등문공 하(滕文公下)〉에 나오는 말이다.
書贈吳汝周
朱子曰。人之爲學。只爭箇肯與不肯。蓋氣稟所偏。嗜好不同。見聞所拘。趨向不一。是以終身讀書。而不知是所讀爲何事者多。交遊之間語或及此。則非悍然不顧。必茫然不省。其印可而肯諾者蓋少矣。丙戌春。余客於五峯吳君汝周。日來相從。且曰。因循失學久矣。自今切欲留心此事。願賜一言警砭也。予曰子旣有肯可之意。何須於我言。然輕重之權。不明於內。取舍之分。不決於外。則未有不臨途顚錯半上落下者。此則不可不爲汝周告之。夫富貴貧賤。人生素定之分也。道德仁義。人心固有之性也。然則何者爲重。何者爲輕。何者可求。何者不可求。何者當求。何者不當求。立脚之初。所當商量辨別八字打開處。過此以往。又有一層重關猛着眼目處。如爲己爲人是也。試思天命人受。萬理萬法。是自然合做底事耶。是徇外自私底物耶。日用之間。隨處省察。不容放過。則本領立矣。由此而至於精透純熟。則在乎勉焉爾。孟子曰。居天下之廣居。立天下之正位。行天下之大道。富貴不能淫威武不能屈。貧賤不能移。如此方是男兒事。願汝周勉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