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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신재집(日新齋集)
  • 권12
  • 잡저(雜著)
  • 박경립의 자에 대한 설(朴景立字說)

일신재집(日新齋集) / 권12 / 잡저(雜著)

자료ID HIKS_OB_F9001-01-202101.0012.0001.TXT.0013
박경립의 자에 대한 설
사람이 학문에 종사하는 것은 집을 짓는 일과 서로 비슷하다. 용마루는 태극(太極)에 대비되고 귀퉁이를 마주하고 떠받치는 것은 사덕(四德)주 86)에 대비되고 서까래와 문설주가 종횡으로 채워져 있는 것은 3천 곡례(曲禮)주 87)에 대비된다. 먹줄, 수평기, 자는 용모와 행동거지를 점검 단속하는 것이고 벽에 회칠하고 무늬를 넣는 것은 문장(文章)이 드러나는 것이고 당(堂)에 오르고 방에 들어가는 것은 도(道)로 들어가는 단계이다. 여기에서 노래를 부르고 여기에 모이는 것은 거처의 편안함이고, 종묘(宗廟)와 백관(百官)의 아름다움은 자뢰(資賴)함의 깊음이며,주 88) 천하의 빈한한 선비를 크게 감싸주는 것은 은혜를 널리 베풀어 대중을 구제하는 것주 89)이다.
그러나 먼저 알맞은 터를 제대로 분별할 수 없다면 많은 사물이 모두 똑바로 설 곳이 없게 되니 언제 눈앞에 높이 솟은 이 모습을 보겠는가. 반드시 탁 트이게 하여 막히거나 장애가 되는 우환을 없게 하고 다지고 쌓아서 기울거나 무너질 염려가 없게 해야 한다. 그런 다음에 하늘에서 비를 내리기 전에 계획을 하고 집을 지으며 길옆에 지나면서 전해주는 다른 말을 끊어 버리고 자신의 부친이 이미 다다른 법도를 생각한다면 넓은 집에 머무르고 바른 자리에 서게 되니주 90) 아득한 팔황(八荒 온세상)이 모두 내 문지방 안에 놓이게 된다.
아, 기초가 있어도 서지 못하는 자가 많다. 하물며 기초도 없이 스스로 수립할 수 있겠는가. 학자가 만약 큰 뜻을 확정하여 성신(聖神)주 91)을 자기의 임무로 삼고 천지를 동체(同體)로 여기지 않는다면 허다한 공부를 장차 어디에서 수립할 수 있겠는가. 요컨대 학문은 반드시 먼저 기초를 갖추어야 하고 기초가 갖추어진 뒤에는 반드시 수립하는 것이 있어야 한다. 기초를 갖추고 수립하는 것이 있다면 또한 도에 가깝지 않겠는가.
나의 벗 박준기(朴準基)가 자(字)를 경립(景立)이라고 하였으니 취한 뜻이 진실로 여기에 있다.
주석 86)사덕(四德)
원래는 《주역(周易)》에서 말한 천지자연의 네 가지 덕, 즉 원(元), 형(亨), 이(利), 정(貞)을 이르는데, 주자는 이를 사람 마음에 적용시켜 인(仁), 의(義), 예(禮), 지(智)를 성(性)의 사덕이라 하였다. 《朱子語類 卷6 四端義》
주석 87)3천 곡례(曲禮)
《예기(禮記)》 〈예기(禮器)〉의 "경례가 3백 가지이고 곡례가 3천 가지인데, 그 정신은 하나이다.[經禮三百, 曲禮三千, 其致一也.]"에서 유래하였다.
주석 88)자뢰(資賴)함의 깊음이며
맹자가 "군자가 깊이 나아가기를 도로써 함은 자득하고자 해서이니, 자득하면 처하는 것이 편안하고 처하는 것이 편안하면 자뢰(資賴)함이 깊고 자뢰함이 깊으면 좌우에서 취하여 쓰는 데에서 그 근원을 만나게 된다. 그러므로 군자는 자득하고자 하는 것이다."라고 한 말을 인용하였다. 《孟子 離婁下》
주석 89)은혜를……것
《논어(論語)》 옹야(雍也)에 나오는 내용이다.
주석 90)넓은……되니
넓은 집은 인(仁)을, 바른 자리는 예(禮)를 비유하는 비유하는 말이다. 맹자는 대장부를 말하면서 "천하의 넓은 집[仁]에 살며 천하의 바른 자리[禮]에 서며 천하의 큰 도[義]를 행하여, 뜻을 얻으면 백성들과 더불어 그 도를 행하며 뜻을 얻지 못하면 홀로 그 도를 행해서, 부귀로도 흔들 수 없으며 빈천해도 바꾸게 하지 못하며 위무로도 굽히게 할 수 없는, 이런 사람을 두고 대장부라고 한다."라고 하였다. 《孟子 滕文公下》
주석 91)성신(聖神)
《맹자》 〈진심 하(盡心下)〉에 "크면서도 그 큼을 볼 수 없게 화할 수 있는 사람을 '성인(聖人)'이라 이르고, 지극히 신묘한 그 성스러움을 측량할 수 없는 사람을 '신인(神人)'이라 이른다."라는 내용이 보인다.
朴景立字說
人之爲學。與建屋子相似。屋脊方太極。對隅支柱方四德。榱櫨居楔縱橫塡補方曲禮三千。繩墨準尺者。容儀之檢束也。塗墍繪畵者。文章之著見也。升堂入室者。入道之等位也。歌於斯聚於斯。居之安也。宗廟百官之美。資之深也。大庇天下寒士。博施濟衆也。然不先有以辨得其基。則許多物事。都無立定處。而何時眼前見此突兀哉。必須展之拓之。使無阻礙之患。杵之築之。使無傾頹之慮。然後迨天未雨。經之營之。絶道傍携貳之言。念闕考已底之法。則居廣居立正位。而茫茫入荒。皆在我闥矣。嗚呼。有基而不能立者多矣。況無基而能自樹立乎。學者苟不確定大志。以聖神爲已任。以天地爲同體。則多少大功夫。將何自而能樹立哉。要爲學必。先有其基。旣有其基。必要有其立。有基有立。其亦庶幾乎。吾友朴準基字以景立。其取義固在此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