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화콘텐츠
  • 특화콘텐츠
  • 호남근현대문집
  • 일신재집(日新齋集)
  • 권12
  • 잡저(雜著)
  • 홍사증에게 적어 보이다(書示洪士拯)

일신재집(日新齋集) / 권12 / 잡저(雜著)

자료ID HIKS_OB_F9001-01-202101.0012.0001.TXT.0011
홍사증에게 적어 보이다
학자(學者)는 배우지 않으면 그만이다. 만약 배우고자 했다면 반드시 먼저 성인(聖人)의 뜻을 구하는 것이 마치 활 쏘는 자가 과녁을 보듯 하고 나그네가 집을 향해 가는 듯한 다음에야 지향이 있어 어긋나지 않게 된다. 이른바 성인의 뜻을 구한다는 것은 평상시 짧은 시간을 통해 대략만 알고서 함부로 말하고 그치는 것이 아니다. 모쪼록 진실하게 감당하고 민첩하게 움직이며 용기와 의욕을 북돋아 천만인을 능가하는 정신과 기력을 갖추어 용이나 뱀을 사로잡듯 하고 호랑이나 표범을 때려잡듯 하며 하루 24시간 동안 조금도 나태함이 없게 하는 것, 이것을 일러 뜻을 지킨다[持志]고 한다. 이와 같다면 이른바 경(敬)을 주로 삼는 공부도 안배나 탐구에 기대지 않아도 이 과정에서 저절로 갖추어진다.
무릇 경(敬)은 주일(主一 하나에 집중하는 것)을 이르고 일(一)은 무적(無適 다른 데로 가지 않는 것)을 이른다. 이것이 학문(學問)의 밭이고 만사(萬事)의 본령이다. 항상 보존하여 수신 양성(修身養性)에 익숙해지면 치지(致知)와 역행(力行)이 모두 여기에서 나와 자연스럽게 채워지게 된다. 그러나 치지(致知)는 학문을 하는 관건이고 성문(聖門)으로 들어가는 길이니, 반드시 일용(日用)의 절실한 곳과 심술(心術)의 은미한 곳에 나아가 차례대로 지선(至善)에 꼭 들어맞는 곳을 궁격(窮格)주 83)하여 마음과 눈에 밝게 드러나도록 해야만 세월이 지난 뒤에 응당 패연(沛然)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 요지와 핵심은 단지 '신독(愼獨)' 2자에 있다. 이것을 놓치면 보존하는 것, 알고 있는 것은 모두 허망하고 거짓된 것으로 돌아가 끝내 덕을 닦는 단계로 들어갈 방도가 없다. 《중용(中庸)》에서 "군자의 미칠 수 없는 점은 오직 다른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바이다."라고 하였으니 힘쓰지 않을 수 있겠는가. 무릇 입지(立志), 주경(主敬), 치지(致知), 신독(愼獨), 이 네 가지는 형세로 볼 때 서로 의존하므로 있으면 전부 있게 되고 없으면 전부 없게 된다. 그러나 그 조리(條理)와 두서(頭緖)는 또 각각 진력(盡力)하지 않을 수 없다.
가만히 사증(士拯)이 학문으로 시작하는 정로(正路 정도(正道))를 보건대 연력(年力)이 매우 넉넉하니, 잘못된 길로 빠지지 않고 이단 사설(異端邪說)에 휘둘리지 않으면서 끊임없이 앞으로 나아가고 중도에 그만두지 않는다면 아마도 옛사람이 말하는 인생에서 가장 크고 기쁜 일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아, 의림(義林)은 오랜 세월 힘을 기울이지 않아 40, 50의 나이에 이르도록 알려진 것이 없는 사람이다. 아래를 굽어보고 위를 우러러보면 놀랍고 부끄러울 뿐이며 죽더라도 따라잡을 길이 없다. 다만 그를 아끼는 나의 처지를 참람되고 망령되다는 이유로 배척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서 삼가 그의 청으로 인하여 내 생각을 대략 얘기해주어 한거(閑居)하면서 수양하는 것을 거드는 방도로 삼는다.
주석 83)궁격(窮格)
궁리 격물(窮理格物)의 준말로, 사물의 이치를 철저히 연구하여 물리(物理)의 극치에 도달하는 일이다.
書示洪士拯
學者不學則已。旣欲學之則必須先有求爲聖人之志。如射者之視的。行者之赴家。然后有所向望而不差矣。所謂求聖人之志者。不是尋常霎時略知漫說而已也。須是眞實擔當。奮迅激勵。有聳千萬人底精神氣力。如捕龍蛇。搏虎豹。使一日十二時。無少懈怠。此之謂持志也。如此則所謂主敬之功。亦不待安排尋覓而卽此自在矣。夫敬者主一之謂。一者無適之謂。此是學問之田地。萬事之本領也。常常存存。涵養得熟。則致知力行。皆從此中出。自然充將去。然致知是爲學關鍵。入聖路脈。必須就日用切近心術隱微處。次第窮格得至善恰好處。令其昭著於心目之間。日累月積。自當沛然。然其要歸肯綮。只在於愼獨二字。於此放過。則所存所知。皆歸虛假。而終無以入德矣。中庸曰。君子之所不可及者。其惟人之所不見。可不勉乎。大抵立志主敬致知愼獨四者。其勢相須。有則俱有。無則俱無。然其條理頭緖。又不可不各致其力也。竊覵士拯發軔正路。年力甚富。不爲曲技所泥。不爲異說所劫。進進不已無容間斷。則古人所謂平生一大歡喜事者。庶乎有以見之矣。嗚呼。義林悠悠不力。至於四十五十。猶是無聞人。俯仰駭慙。有死莫追。但區區相愛之地。必不以僭忘見斥。故謹因其請而略道鄙意。以爲燕居潛修之助云爾。