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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신재집(日新齋集)
  • 권12
  • 잡저(雜著)
  • 영남 열읍의 유생들에게 통고하는 글(通告嶺南列邑章甫文)

일신재집(日新齋集) / 권12 / 잡저(雜著)

자료ID HIKS_OB_F9001-01-202101.0012.0001.TXT.0005
영남 열읍의 유생들에게 통고하는 글
백이(伯夷)를 탐욕스럽다고 하고 유하혜(柳下惠)를 포악하다고 한다면 사람들이 장차 믿겠는가. 아마도 사람들이 믿지 않아서 사설(辭說)을 늘어놓고 교묘하게 전거(典據)를 끌어들이며 휘황찬란하게 만들어 사람들을 현혹시킬 것이다. 이것이 성인이 교묘한 말을 두려워하고주 56) 말재주 있는 자를 미워하며주 57) 아첨하는 자를 멀리한주 58) 까닭이다.
오직 우리 노사(蘆沙) 기 선생(奇先生)께서 세도(世道)가 쇠미해진 뒤에 태어나 선학을 계승하고 후학을 인도하였으니 그 공이 적지 않았다. 멀리로는 사수낙민(洙泗洛閩)주 59)을 받들고 가까이로는 동방의 제현(諸賢)을 모범으로 삼았으며 율곡 선생(栗谷先生)을 더욱 독실하게 믿으셨다. 이(理)에 대한 논의는 율곡의 이통기국설(理通氣局說)주 60)을 종지(宗旨)로 삼고 성정(性情)에 대한 논의는 율곡이 말한 "수만 가지의 정(情)이 모두 이(理)에서 발(發)한다."주 61)는 것을 명확한 의론으로 여기셨다. 〈신구율곡소(伸捄栗谷疏)〉주 62)를 보고는 만세(萬世)를 위해서 비태(否泰 행(幸)과 불행(不幸))의 소장(消長)에 대하여 전하는 것으로 여기고 《격몽요결(擊蒙要訣)》을 외우고 본받는 것을 보고는 《논어(論語)》, 《맹자(孟子)》에 견주어 논의하셨다. 이와 같은 부류는 일일이 적을 수 없으며 문집(文集)을 펼치면 뚜렷하게 볼 수 있다.
다만 "음(陰)이 정(靜)하고 양(陽)이 동(動)하는 것은 기기(氣機)가 스스로 그러한 것이지 시키는 것이 있는 것이 아니다."주 63)라는 단락의 말은 약간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있어 매번 문구에 얽매이지 않고 본의를 살펴 이해한 뒤 이것은 유행의 측면에서 말한 것으로 여겼다. 근래 주기설(主氣說)이 세상에 성행하면서 태극(太極)과 천명(天命)의 본체(本體)가 가려지고 분명하지 않았다. 그래서 선생께서 몹시 탄식하시고 문답을 하고 편지를 주고받는 과정에서 깊이 분변하고 통렬히 질책하지 않으신 적이 없었는데, 혹자가 그때마다 "누가 시키는 것이 아니다."라고 한 말을 끌어들여 주기(主氣)의 관련 증거로 삼았다. 그래서 선생께서 비로소 조어(措語)가 타당하지 못하여 이렇게 저렇게 변하여 잘못된 뜻에 이르렀음을 분변하고 이로 인하여 "전현(前賢)께서 이에 대해 본디 명쾌하게 말씀하셨으나 훗날의 폐단이 여기에 이를 줄을 살피지는 못하였다."라고 하였다. 이것은 전현이 다하지 못한 뜻을 펴서 요즘 사람들의 무궁한 폐단을 없애려는 목적이었다.
그러나 여전히 감히 스스로 편안히 여기지 못하여 외필(猥筆)이라고 하고, 여전히 감히 스스로 전단(專斷)하지 못하여 "실로 질정을 드리고자 한다."라고 하고, 여전히 감히 스스로 옳다고 여기지 못하여 "내가 의심하는 바가 사라지면 유문(儒門)의 다행이겠다."라고 하셨다. 말씀이 간절할수록 예는 더욱 공손하였으며 의지가 간절할수록 뜻은 더욱 겸손하였으니 전현을 더욱 영광스럽게 하고 선철(先哲)을 실제로 존숭한 방도가 어떠하였는가. 만약 이것을 가지고 율곡을 헐뜯었다고 여긴다면 주자(朱子)의 《본의(本義)》는 정자(程子)를 헐뜯고 회재(晦齋)의 《보유(補遺)》주 64)는 주자를 헐뜯은 것이 되는가. 율곡 또한 성정(性情)과 사단칠정(四端七情)의 분변에 대해서 어찌 한결같이 퇴계(退溪)의 설을 따르지 않았던가.
일전에 영남 사람인 최동민(崔東敏), 권봉희(權鳳熙) 등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통문(通文)을 돌려 노사 선생이 지은 《외필》이 율곡을 공격하고 배척한다고 하였다. 아, 이것이 무슨 일인가! "기(氣)가 이(理)의 지위를 빼앗았다.", "두 개의 본령", "허명(虛名)만 있고 실사(實事)는 없다." 등의 말은 이(理)가 통솔하고 기(氣)가 부림을 받는다는 뜻이었건만, 이것을 일러 율곡을 공격하고 논척한 것이라고 하였다. "치우치고 지나치고 부정하고 회피한다.[詖淫邪遁]"주 65)와 "전도되고 제 멋대로이다.[顚倒昌披]"는 오늘날의 주기론(主氣論)이 야기하는 폐단이 장차 이 지경에 이를 것이라는 말이었건만, 이것을 일러 율곡을 공격하고 배척한 것이라고 하였다.
이 몇 마디 말만으로도 이미 매우 거짓이건만 또 다른 당(黨)의 도움을 끌어내고자 하여 "퇴계를 침해하고 배척하였다.",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을 비난하였다"라고 하였다. 사설을 늘어놓고 교묘하게 전거(典據)를 끌어들이고 시비를 변환(變幻)하며 사람들의 이목을 현혹하였으니, 《예기(禮記)》에서 이르는 "배운 것이 정도(正道)가 아니면서도 해박하고 행동이 잘못되었으면서도 견고하여 대중을 현혹하면 사형에 처하고 사면하지 않는다."주 66)는 것이 이 무리를 이르는 것이 아니겠는가.
남들은 그의 아버지를 욕되게 하지 않건만 자식인 자가 스스로 욕설(辱說)을 만들어 불러들인다면 이것은 스스로 자기 아버지를 욕되게 하는 일이다. 그렇다면 오늘날 율곡을 헐뜯는 것이 이쪽에 있는가, 저쪽에 있는가? 또 노사 선생은 4조(朝)에 걸쳐 예우를 받은 유신(儒臣)으로 존귀함이 삼달(三達)주 67)을 겸하고 온 나라에 명망(名望)이 높았건만 보잘것없는 저 후생(後生)들이 도리어 감히 성명(姓名)을 지적하면서 끝없이 욕보이고 있으니, 이것 또한 세도(世道)와 관련된 커다란 변괴이다.
영남은 예부터 추로(鄒魯)의 문명(文明)을 보존한 고을로 일컬었건만, 저 괴이한 무리가 이처럼 날뛰는 것을 내버려 두고 돌아보지 않는단 말인가. 참으로 매우 통탄스럽다! 이에 고하여 알리니 영남의 군자들이 그들의 죄를 성토하여 사류(士類)의 지위에 머물지 못하도록 한다면 사문(斯文)에 큰 다행이고 세도(世道)의 큰 다행이겠다.
주석 56)교묘한 말을 두려워하고
《주역》 태괘(兌卦)에 "구오는 양(陽)을 해치는 박을 믿으면 위태로움이 있으리라."라고 한 것에 대해서 정이천(程伊川)이 전(傳)에서 "비록 순임금과 같은 성인이라도 말을 교묘하게 하고 안색을 좋게 하는 자를 두려워하였으니, 어찌 경계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기쁨이 사람을 미혹하게 함은 받아들여지기 쉬워 이처럼 두려워할 만하다.[雖舜之聖, 且畏巧言令色, 安得不戒也? 說之惑人, 易入而可懼也如此.]"라고 하였다.
주석 57)말재주……미워하며
《맹자》 〈진심 하(盡心下)〉에 "겉으로는 비슷하나 속은 완전히 다른 것을 미워하니, 가라지를 미워함은 벼 싹을 어지럽힐까 걱정해서이고, 말재주 있는 자를 미워함은 의를 어지럽힐까 걱정해서이고, 말이 많은 자를 미워함은 진실을 어지럽힐까 걱정해서이고, 정나라 음악을 미워함은 정악(正樂)을 어지럽힐까 걱정해서이고, 간색(間色)인 자색(紫色)을 미워함은 정색(正色)인 주색(朱色)을 어지럽힐까 걱정해서이고, 향원을 미워함은 진정한 덕을 어지럽힐까 두려워해서이다."라는 내용이 보인다.
주석 58)아첨하는……멀리한
《논어》 〈위령공(衛靈公)〉에 "안연이 나라 다스리는 것을 묻자, 공자께서 말하기를 '하(夏) 나라의 책력을 행하며, 은(殷) 나라의 수레를 타며, 주(周) 나라의 면류관을 쓰며, 음악은 소무(韶舞)를 써야 한다. 정나라 음악을 추방해야 하며 아첨하는 사람을 멀리할 것이니, 정나라 음악은 음탕하고 아첨하는 사람은 위태롭다.'라고 하였다."라는 내용이 보인다.
주석 59)사수낙민(洙泗洛閩)
중국 춘추 시대 노나라 곡부의 수수(洙水)와 사수(泗水) 근처에서 공자가 강학을 하였기 때문에 '사수(洙泗)'는 공자와 그 학문을 뜻하게 되었다. '낙민(洛閩)'은 송나라 때의 낙양(洛陽)의 정호(程顥)와 정이(程頤) 형제, 민중(閩中)의 주희(朱熹)를 가리킨다.
주석 60)이통기국설(理通氣局說)
'이통기국'은 이(理)는 형체도 없고 작위도 없어 만물에 두루 통하여 내재하지만, 기(氣)는 형체도 있고 작위도 있어 만물에 국한되어 개별적으로 존재한다는 학설이다. 《율곡전서(栗谷全書)》 권10 〈답성호원(答成浩原)〉에서 이르기를, "이와 기는 원래 서로 떨어지지 않아 한 물건인 것 같으나 다른 까닭은 이는 무형이고 기는 유형이며, 이는 무위이고 기는 유위이기 때문이다. 무형과 무위이면서 유형과 유위의 주(主)가 되는 것은 이(理)이고, 유형과 유위이면서 무형과 무위의 기(器)가 되는 것은 기(氣)이다. 이는 무형이고 기는 유형이므로 이는 통하고 기는 국한되는 것이며, 이는 무위이고 기는 유위이므로 기가 발하면 이가 타는 것이다.[理氣元不相離, 似是一物, 而其所以異者, 理無形也, 氣有形也, 理無爲也, 氣有爲也. 無形無爲而爲有形有爲之主者, 理也; 有形有爲而爲無形無爲之器者, 氣也. 理無形而氣有形, 故理通而氣局, 理無爲而氣有爲, 故氣發而理乘.]"라고 하였다.
주석 61)수만……발(發)한다
《율곡전서(栗谷全書)》 권9 〈답성호원 임신(答成浩原壬申)〉에 보인다. 원문은 "情雖萬般, 夫孰非發於理乎?"이다.
주석 62)신구율곡소(伸捄栗谷疏)
하락(河洛, 1530~1592)이 지었다. 하락의 본관은 진양(晉陽)이고 자는 도원(道源), 호는 환성재(喚醒齋)이다. 남명 조식의 문인으로 선조 때 진사 시험에 장원하여 왕자사부로 지내다가 이이(李珥), 성혼(成渾) 등이 무고를 받아 조정을 떠나자 그들을 신구(伸捄)하는 소를 지었다. 《노사집》 권20에 〈환성재유고서(喚醒齋遺稿序)〉가 실려 있다.
주석 63)음(陰)이……아니다
《율곡전서》 권10 〈답성호원(答成浩原)〉에 보인다.
주석 64)보유(補遺)
《대학장구보유(大學章句補遺)》를 가리킨다. 이언적이 1549년(명종4) 강계(江界)로 귀양 가서 지은 글로, 주자의 《대학장구》의 편차를 일부 개정하고 독자적인 해석을 제기한 글이다.
주석 65)치우치고……회피한다
《맹자(孟子)》 〈공손추 상(公孫丑上)〉의 "한쪽으로 치우친 말에서 그의 마음이 가려 있음을 알며, 지나친 말에서 마음이 빠져 있음을 알며, 부정한 말에서 마음이 도(道)와 멀리 떨어져 있음을 알며, 회피하는 말에서 논리가 궁함을 알 수 있다."에서 유래하였다.
주석 66)배운……않는다
《예기(禮記)》 〈왕제(王制)〉에 나오는 말이다. 원문은 다음과 같다. "행동이 거짓되면서도 견고하고, 말이 거짓되면서도 논리적이고, 배운 것이 정도(正道)가 아니면서도 해박하고, 행동이 잘못되었으면서도 문식을 잘하여 유려해서, 이런 것으로 대중을 현혹시키면 사형에 처한다."
주석 67)삼달(三達)
삼달존(三達尊)의 약칭으로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존숭하는 작위, 연령, 덕망을 말한다. 《맹자》 〈공손추 하(公孫丑下〉에서 "천하에는 보편적으로 존경되는 것이 세 가지가 있는데 작위가 그 하나이고 연령이 그 하나이고 덕망이 그 하나이다."라고 하였다.
通告嶺南列邑章甫文
謂伯夷貪。謂柳惠暴。則人將信之乎。恐人之不信。而文致辭說。巧引援據。玲瓏閃忽。致人眩惑。此聖人所以畏巧言惡利口遠侫人者也。惟我蘆沙奇先生。生於世衰道微之餘。而繼往開來。其功爲不少矣。遠宗洙泗洛閩。近法東方諸賢。而於栗谷先生尤篤信焉。其論理。則以栗谷所言理通氣局爲宗旨。其論性情。則以栗谷所言萬般之情。皆發於理爲確論。見伸捄栗谷疏。則以爲此是爲萬世傳否泰消息。見誦法擊蒙要訣。則以論語孟子。擬而議之。若此之類。不可殫記。而放諸文集。歷歷可見。但於陰靜陽動。其機自爾。非有使之一段語。有少未契而每活看而通之。以爲此特流行邊說話矣。近來主氣之說。盛行于世。而太極天命之本體。掩蔽而不明。故先生深加憂歎凡於問答往復之際無不深辨而痛斥之。則或者輒引非有使之之語。以爲主氣之證案。於是先生始辨其措語之未妥。以至輾轉差謬之意。而因曰前賢於此。發之太快。而未究乎後蔽之至此也。此所以發前賢未盡之意。微今人無窮之蔽者也。然猶不敢自安而曰猥筆。猶不敢自專而曰實有奉質之願。猶不敢自是而曰吾之所疑者忘。則儒門之幸也。辭益切而禮益恭。志愈苦而意愈遜。所以增光前賢。實尊往哲。爲何如耶。若以此爲誣毁栗谷。則朱子之本義。爲誣毁程子。晦齋之補遺。爲誣毁朱子耶。栗谷於性情四七之辨。亦何不一從退溪之說乎。日者嶺中人崔東敏權鳳熙輩。先後投通。以蘆沙所著猥筆爲攻斥栗谷。噫嘻。此何擧也。曰氣奪理位。曰兩箇本領。曰有虛名無實事等語。是說理氣帥役之義。而謂之攻斥栗谷。曰詖淫邪遁。曰顚倒昌披。說今人主氣之弊獘。將至於斯。而謂之攻斥栗谷。只此數語。已極誣虛。而又欲招引黨援。則曰侵斥退溪。曰譏切尤庵。文致辭說。巧引證據。變幻是非。眩惑視聽。禮所謂學非而博。行僞而堅。以惑衆。則殺無赦者。非此輩之謂耶。人不辱其父。而爲子者。自做辱說以徵成之。則是自辱其父者也。然則今日之誣毁栗谷。在此乎在彼乎。且蘆沙先生。以四朝禮遇之儒臣。尊兼三達。望重一國。而以彼幺麽後生。乃敢指斥姓名。詬辱罔極。此亦世道之一大變怪也。嶺中古稱鄒魯文明之鄕。而任他怪鬼輩之跳踉如是而不恤乎。誠極痛歎。玆以奉告。惟嶺中僉君子。聲討其罪。俾不置士類之地。斯文幸甚。世道幸甚。