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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신재집(日新齋集)
  • 권12
  • 잡저(雜著)
  • 일지록(日誌錄)

일신재집(日新齋集) / 권12 / 잡저(雜著)

자료ID HIKS_OB_F9001-01-202101.0012.0001.TXT.0004
일지록
내 나이가 올해로 44살이다. 이 나이는 옛사람이 말한 불혹(不惑)과 지명(知命)의 시기주 15)이건만 학문은 더 진전되지 못하고 마음은 더 보존하지 못하였으니 무지하고 어리석기가 곧 당시 동몽(童蒙) 시절의 우매한 식견일 뿐이다. 그러나 정신(精神)과 기백(氣魄)으로 말하자면 날이 갈수록 쇠퇴하여 예전과 어느덧 너무도 달라졌다. 생각하면 슬픈 탄식만 나올 뿐이니 이번 생을 어찌할까? 다만 평생에 걸친 학업을 늙은 나이에 이르러 바꿀 수도 없으니 그저 쉬지 않고 부지런히 노력하면서 뒤늦게라도 효과가 있기를 바랄 뿐이지만, 보고 들은 것을 앞뒤로 잊어버리고 놓쳐서 이해하여 무젖어 들 연고가 없다. 이에 조그만 책자 하나를 마련해 놓고 하루 중에 있었던 응대와 사색을 통한 모든 깨달음을 손이 가는 대로 간단하게 기록하여 한편으로는 온고(溫故)의 계책으로 삼고 한편으로는 취정(就正)주 16)의 자료로 삼는다.

음양(陰陽)의 대대(對待)는 교역(交易)이고 유행(流行)은 변역(變易)이다. 주자(周子 주돈이(周敦頤))의 〈태극도설(太極圖說)〉은 유행 변역(流行變易)을 위주로 말을 하였지만 변역의 기(氣)는 곧 대대 교역(對待交易)의 기이다.

정자(程子)가 말하기를, "성(性)에는 인(仁), 의(義), 예(禮), 지(智)가 있을 뿐이지 어찌 효제(孝弟)가 있겠는가."주 17)라고 하였다. 이 말에 근거하면 성(性)에는 효제(孝弟)가 없는 듯하다. 그러나 이 넷의 이면에는 세세한 조리가 모두 포함되어 있다. 예를 들어 오행(五行)에서 목(木)을 말하면 송(松), 백(柏), 상(橡), 장(樟)이 모두 그 이면에 포함되어 있고 수(水)를 말하면 강(江), 회(淮), 하(河), 한(漢)이 모두 그 안에 포함되는 것과 같다.

정자(程子)가 말하기를, "몸에 가득찬 것이 측은(惻隱)하게 여기는 마음이다."주 18)라고 하였으니, 여기에서 천지 만물이 일체(一體)임을 깨달은 것이 가장 적확하고 확실하다. 만약 몸[腔子] 밖에서 찾는다면 끝없이 광대하여 교섭(交涉)이 없다고 하였다. 사욕(私欲)이 전혀 남아있지 않고 생리(生理, 생생지리(生生之理))주 19)가 완전하면 미발(未發)일 때는 천지와 동체(同體)이고 이발(已發)일 때는 천지와 동류(同流)한다. 이른바 "공정하면 하나가 된다."주 20)라거나 "조용한 가운데 만물을 보면 모두 봄의 뜻을 지니고 있다."주 21)라는 것도 이러한 뜻이다.

태극(太極)은 눈으로 볼 수 있는 사물이 아니다. 하늘의 측면에서는 온갖 이치를 일컫는 총명(總名)이지만 사람의 측면에서는 온갖 선(善)의 총체(總體)이다.

음양(陰陽)이라는 양단이 비록 만 가지로 변화하지만 생리(生理)가 두루 흐르지 않는 경우가 없다. 사람이 살아가는 일용은 쟁기, 질그릇, 병기, 문서 따위일지라도 생리(生理)에 필요한 도구가 아닌 것이 없다.

"명(命)을 모르면 군자가 될 수 없다."주 22) 이 구절에서 '명(命)' 자는 기수(氣數)주 23)를 가리키는 말이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한결같이 천리(天理)를 따르고 인위(人爲)를 범하는 일이 없으며, 길흉과 영욕(榮辱)의 도래에 터럭만큼도 스스로 취함주 24)이 없는 다음에야 명(命)에 맡길 수 있다. 이것을 안다면 이로움을 보고도 이로움을 향해 나아가지 않고 해로움을 보고도 해로움을 피하지 않으며 오직 의리(義理)가 있다는 것만 알 뿐이니 어찌 군자가 되지 않겠는가.

"천하의 한 가운데에 서서 사해(四海)의 백성을 안정시키는 것을 군자는 즐기지만, 군자가 본성으로 여기는 것은 여기에 있지 않다."주 25) 본성으로 여기는 것이 이미 여기에 있지 않다면 유독 다른 곳에 있겠는가. 본성으로 여기는 것은 천만인이 모두 같지만 지분(地分 지위(地位))은 천만인이 모두 다르다. 같지 않기 때문에 본성으로 여기는 것이 존재하지 않고 같지 않음으로 말미암아 또 저마다 행해야 하는 도리를 지니고 있다. 이것은 부족하고 저것은 풍족하다고 하지 않는다면 어찌 굳이 이것을 버리고 저것을 바라겠는가.

유기(游氣)주 26)는 어떤 기(氣)인가? 천지 음양의 기를 중심으로 삼으면 만물이 유기가 되고 본체(本體)의 기를 중심으로 삼으면 음양이 유기가 된다.

사악함을 막아내면 성(誠)이 저절로 보존되는 것이지주 27) 사악함을 막아내는 것 외에 별도로 성(誠)을 보존하는 방법이 있는 것이 아니다. 극기복례(克己復禮) 또한 그러하다. 다만 선(善)으로 옮겨 가는 것, 잘못을 바로잡는 것은 본래 두 가지 일이다. 대체로 마음에서 발(發)하는 것은 천리(天理)와 인욕(人欲) 두 가지일 뿐이다. 천리가 아니면 곧 인욕이고 인욕이 아니면 곧 천리일 뿐, 이 둘이 서로 대치하는 경우는 없기 때문이다. 일에 응하는 것에는 선한 것이 있고 잘못한 것이 있어 만 가지로 다르다.
주자(朱子)의 〈답여자약서(答呂子約書)〉에 이르기를, "'반드시 일삼음이 있다.', '솔개는 날아 하늘에 다다르고 물고기는 연못에서 뛰논다.'라고 논한 것은 의미가 또한 매우 합당합니다. 이것이 이미 바꿀 수 없는 것임을 안 뒤 다시 마음을 비우고 뜻을 넉넉하게 하며, 생각을 바꾸어 비교하거나 헤아리지 말고 밖으로 향하여 뭇 이치를 널리 살피고 더욱 북돋아 준다면 뿌리는 매우 단단해지고 가지와 잎은 더욱 무성할 것이다. 정좌한 곳에서만 탐구한다면 도리어 미리 기대하고 마음에서 잊으며 조장(助長)하는 병통주 28)을 벗어나지 못할까 두렵다.……"라고 하였다. 이 말이 내 병에 들어맞는 것이 증상에 따라 조제(調劑)를 하는 듯하니, 천 년이 지난 뒤를 기다려 준비한 듯하였다. 여러 번 읽으려니 비통한 마음이 들어 이 말의 의미를 늦게 깨달은 것이 더욱 한스럽다.

인욕(人欲)의 해로움은 대체로 세 가지가 있다. 첫째는 기질(氣質)의 치우침[偏]이고, 둘째는 눈과 귀의 가림[蔽]이고, 셋째는 외물(外物)과 자신의 구별[形]이다. 나약하고 혼란스러우며 포악하고 경박한 것이 기질의 치우침이다. 탐욕과 인색에 빠져 경영에 골몰하는 것이 눈과 귀의 가림이다. 남을 시기(猜忌)하고 각박하게 대하며 잔인(殘忍)하게 구는 것, 교만하게 굴다 부끄러움에 위축되는 것이 외물과 자신의 구별이다. 이 세 가지가 거듭거듭 반복하여 더욱 심각하게 서로를 거들어 준다. 그러나 기질의 치우침이 그 본령이기 때문에 옛사람은 기질의 변화를 말하였다.

마음에 편협한 바가 있으면 넓고 큰 생각으로 이를 극복하고, 허위가 있으면 진실한 생각으로 이를 극복하고, 게으르고 산만한 바가 있으면 엄숙하고 장중한 생각으로 이를 극복하고, 사곡한 바가 있으면 정직한 생각으로 이를 극복한다. 하루하루가 이와 같아서 선(善)을 행하는 힘이 앞서 말한 것들을 이기기에 충분한 다음에야 진전이 있을 수 있다.

정자(程子)는 "성(性)에 어찌 일찍이 효제(孝弟)가 있었는가."주 29)라고 하였다. 그렇다면 효제는 사람을 기다려 배정(排定)되는 사물인가? 그렇지 않다. 본성으로 여기는 것주 30) 안에는 천리(天理)가 온전히 갖추어지며 이 이치가 부모에게 베풀어지면 효(孝)라고 하고, 군주에게 베풀어지면 의(義)라고 하고, 연장자에게 베풀어지면 제(弟)라고 한다.
다만 성(性)은 만물(萬物)의 일원(一原)이고 효제(孝弟)는 사람의 직분을 가지고 하는 말이다. 그러므로 일원(一原)이라는 측면에서 효제라는 명칭을 덧붙일 수 없다. 그러므로 다음과 같이 말하겠다. "효제의 이치가 본래 일원(一原)에 달려 있으니, 아버지와 아들이 되고 군주와 신하가 되고 형이나 연장자가 되는 까닭은 일원에 달려 있지 않겠는가?"라고. "아버지와 아들, 군주와 신하, 형과 어른은 기(氣)이기 때문에 본래 일원(一原)에 있지 않지만, 아버지와 아들이 되고 군주와 신하가 되고 형과 어른이 되는 까닭은 이미 일원 안에 있다."라고.

일본(一本)은 본래 천명의 전체(全體)이고 만수(萬殊)는 천명의 유행(流行)이다. 그렇다면 만수(萬殊)는 과연 기(氣)로 말미암아 있는 것인가?

일설에 따르면 궁리(窮理)의 도에는 소당연(所當然)과 소이연(所以然)이 있다. 소당연(所當然)은 아버지의 자애로움, 아들의 효성스러움 같은 것이고 소이연(所以然)은 자애로움과 효성스러움이 비롯된 곳이니 곧 천명의 성(性)이다. 일설에 따르면 소당연은 본래 아버지의 자애로움, 아들의 효성스러움이고 소이연은 아버지와 아들 관계에서 자애롭고 효성스러워야 하는 이유이다. 두 가지 설이 어떤지 모르겠다.
내가 말한다. 궁리(窮理)의 도는 본래 일단(一端)이 아니다. 이치의 측면에서 보는 것도 있고 사물의 측면에서 보는 것도 있으며 일의 측면에서 보는 것도 있다. 자애로움과 효성스러움에서 궁구하는 것은 이치의 측면에서 보는 것이고, 아버지와 아들 관계에서 궁구하는 것은 사물의 측면에서 보는 것이고, 아버지의 자애로움과 아들의 효성스러움에서 보는 것은 일의 측면에서 보는 것이다. 만수(萬殊)에서 일본(一本)에 이르기까지 중간에 얼마나 많은 곡절이 있는가. 이러한 곡절이 있기 때문에 만수(萬殊)에 이른다. 만수(萬殊)의 소이(所以)는 이러한 곡절이 있는 것에서 말미암기 때문에 일본(一本)임을 알게 된다. 이치에 나아가 궁구한다면 소이연(所以然)이 정말 일본처(一本處)이다. 사물에 나아가 궁구한다면 곡절이 다름을 아는 것이 일본에 나아가는 방법이다.

전에 〈태극도설(太極圖說)〉을 보니 "동(動)이 극에 달하면 정(靜)하게 되고 정(靜)이 극에 달하면 다시 동(動)하게 된다."라는 말이 있었다. 혼자 생각하기를 이것은 유행(流行)이라는 측면에서 하는 말이고 대대(對待)의 체(體)가 아니라고 여겼다. 얼마 지나 생각해보니 '동(動)하고[動而]', '정(靜)하고[靜而]'라는 것은 유행(流行)의 용(用)이고 소자(邵子 소옹(邵雍))가 이르는 "용(用)은 천지보다 먼저 일어났다."주 31)라는 것이었다. '양(陽)을 낳고[生陽]', '음(陰)을 낳는다[生陰]'주 32)라는 것은 대대(對待)의 체(體)이고 소자가 이른 "체(體)는 천지보다 나중에 확립되었다."주 33)는 것이었다. 다만 한번 동(動)하고 한번 정(靜)하는 용(用)이 천지보다 앞서 일어나서 천지의 뒤에서 유행하는 것이지 음으로 나뉘고 양으로 나뉜 이후에 유행하는 별도의 기(氣)가 생기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정(靜)이 극에 달하면 다시 동(動)한다."라고 한다.

이 몸은 나의 사유물이 아니다. 무릇 일신(一身)의 시청(視聽), 행보(行步), 의식(衣食), 어묵(語黙)은 천기(天機)가 아닌 것이 없지만 터럭만큼의 사의(私意)가 개입하게 되면 그것은 천칙(天則)이 아니다.

기축년(1889, 고종26) 봄, 관산(冠山)의 사문(斯文)인 치운(穉雲) 위용규(魏龍奎)가 벽산 서사(碧山書舍)에서 나와 종유(從遊)하였다. 하루는 부부유별(夫婦有別)의 뜻에 대해서 강론을 하였는데 치운(穉雲)이 말하기를, "예전에 남파(南坡) 이장(李丈)주 34)이 노사 선생(蘆沙先生)과 이 뜻에 대하여 논의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남파가 한 쌍의 부부가 내외에 거처하는 뜻을 가지고 말하자 선생께서 말씀하시기를, '아니다. 이것은 부부가 되는 모든 사람에게는 각각 정해진 짝이 있어 문란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래서 「부부에게 분별이 있는 다음에 부자간이 가까워진다.」주 35)라고 하고 또 「금수(禽獸)가 어미가 있음은 알지만, 아비가 있음을 모르는 것은 부부의 분별이 없기 때문이다.」'주 36) 하셨습니다."라고 하였다.
여태까지 나도 유별(有別)의 뜻에 대한 이해나 인식이 남파의 견해와 같았기에 이 말을 듣고는 나도 모르게 실의(失意)에 빠졌다. 만약 한 쌍의 부부가 함께 지내는 뜻으로 말하자면 반드시 "부부 사이에는 은혜가 있다."라고 해야지 다만 "부분 간에는 분별이 있다."라고 말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부부가 되는 모든 사람에게는 각각 정해진 짝이 있어 어지럽히지 않는다."라는 것은 진실로 정당한 도리이고 "한 쌍의 부부가 내외에 거처하는 것"은 단지 그 안에 포함된 세세한 조리이다. 아, 선생을 모시던 날에는 미처 듣지 못했던 것을 선생이 돌아가시고 십 년이 지나서야 비로소 듣게 되었으니 이것이 모여서 강론하는 즐거움이 없어서는 안 되는 이유이다.

돕는 것과 잊는 것은 항상 서로 의존한다. 잊기 때문에 돕고 돕기 때문에 잊는다. 잊지 않는다면 어찌 돕는 일이 있겠으며, 돕지 않는다면 어찌 잊는 일이 있겠는가. 모름지기 잊지도 말고 조장(助長)하지도 않는주 37) 사이가 곧 본심(本心)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경립(景立 박준기(朴準基)의 자)이 말하기를, "허다한 조리를 어찌 늘 기억할 수 있겠는가. 일에 응할 때 또 어찌 유의하여 안배(安排)할 수 있겠는가. 비유하자면 맑은 거울이 사물을 비추지만, 만상(萬象)이 늘 거울 안에 있을 수 없는 것과 같다. 다만 먼지와 때를 닦아내어 깨끗하고 선명하여 막힘이 없이 두루 비추게 한다면 사물이 비록 이르지 않더라도 만상(萬象)이 여기에 잠겨있지 않다고 이를 수 없다. 어떤지 모르겠다."라고 하였다. 나는 이 주장이 진실로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다만 거울을 닦는 방법이 격물치지(格物致知)의 실천에 공력을 들이는 쪽으로 향하지 않고 그저 두 눈을 부라리고 벽을 향한 채 심성(心性)만 관찰한다면 반드시 텅 비고 적막한 곳으로 들어갈 것이다.

요컨대 사려(思慮)를 멈춰야 곧 다소간의 사려가 있게 된다. 장중함과 경건함으로 지키고 기르는 것주 38)이 가장 번잡하지 않으면서도 요긴한 일이다.

묻건대, 격물(格物)의 도에는 소당연(所當然)도 있고 소이연(所以然)도 있는데 이것은 무슨 뜻인가? 대답한다. "발의 모습은 진중해야 한다[足容重]주 39)고 말한다면 발은 땅이다. 일신(一身)의 아래에서 허다한 것들을 떠받드니 그 모습이 진중하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이 소이연이다. 단정함과 침착함, 경솔하거나 성급하지 않은 것, 이것이 소당연이다. 또 잰걸음으로 갈 때는 어떠해야 하는가? 서 있을 때는 어떠해야 하는가? 올라가거나 내려갈 때는 어떠해야 하는가? 나아가고 물러날 때는 어떠해야 하는가? 부모 앞에서는 어떠해야 하는가? 군주 앞에서는 어떠해야 하는가? 이것이 '족용중(足容重)' 안에 있는 세세한 조리이고, 또한 각각의 소이연이 없는 경우가 없다."

인(仁)은 애초에 자연적으로 부여받아 본디 존재하는 것이지 천지 만물이 일체가 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생생(生生)주 40)과 지애(至愛)의 이치가 있기만 하면 곧 천지 만물은 저절로 일체가 되니, 한 개의 종자(種子)가 생생(生生)의 이치를 지니고 있어 수많은 천 개의 가지 만 개의 잎새가 돋는 이치가 저절로 완비되는 것과 같다. 이것이 인(仁)하기 때문에 일체가 된다는 것이다. 만약 시용처(施用處)로 말하자면 이 또한 일체이기에 인(仁)하다고 이를 수 있다. 생생의 이치가 있기 때문에 부자의 분변이 있고 부자가 일체(一體)이기 때문에 자애(慈愛)와 효성(孝誠)의 도리가 있다. 지난해 계원(繼元)주 41)과 이 뜻을 논의하느라 서신을 꽤 많이 주고받아 소소한 결론이 없지 않았다.

먼저 일상의 사물을 가지고 인의예지(仁義禮智)에 대해 사색을 하고 눈앞 가까운 곳에서 천리(天理)가 유행하는 것을 본 다음에야 비로소 근거로 삼아 지키는 곳이 있게 된다. 만약 그저 고묘(高妙)한 곳을 향해서 성(性)을 말하고 이(理)를 말한다면 전혀 손에 잡히는 것이 없게 된다.

사(邪)와 정(正)은 본래 병립하지 않고 공(公)과 사(私)는 본래 병행하지 않는다. 날마다 대공지정(大公至正)한 이치를 보고 날마다 대공지정한 영역으로 나아간다면 자질구레한 편벽함이나 사특함은 저절로 용납될 곳이 없게 된다.

몸가짐이 반듯한 다음에 예의(禮義)가 행해진다. 노여움을 옮기지 않는 것주 42)은 몸가짐을 바르게 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일신(一身)은 태극(太極)의 상(象)이고 형기(形氣)는 음양(陰陽)의 상이다. 기혈(氣血)과 골육(骨肉)은 오행(五行)의 상이고 백해(百骸)와 만규(萬竅)주 43)는 만물(萬物)의 상이다.

허공에 매달린 이치가 없으므로 일찍이 별도로 통체(統體)로서의 태극도 있었던 적이 없다. 다만 양(陽)의 입장에서 하나의 태극이 되고, 음(陰)의 입장에서 하나의 태극이 되고, 오행(五行)의 입장에서 또한 각각 하나의 태극이고, 만물(萬物)의 입장에서 또한 각각 하나의 태극이며, 음양ㆍ오행ㆍ만물을 합쳐 통체의 태극이 된다. 그러나 통체의 태극은 각구(各具)주 44)의 태극보다 많지 않고 각구의 태극은 통체의 태극보다 적지 않다. 이는 각구 안에 절로 통체라는 것이 있다는 의미이다.

하늘은 만물에 대해서 사물 하나하나를 조각(雕刻)하지 않는다. 또한 아득히 만물이 하는 대로 내버려 두는 것도 아니다. 천지 만물은 단지 일체(一體)이고 다시 분별이 없으니, 사람의 일신 사체(一身四體)에 생리(生理)가 두루 돌면서 서로 관여하지 않음이 없는 것과 같다.

성선(性善)을 분명히 하고 충신(忠信)을 주로 하는 것, 이것은 "먼저 그 대체(大體 心)를 확립한다."주 45)고 하는 것이니, 선유(先儒)가 긴요하게 사람들을 위해 말해준 것이다. 학문을 하는 도가 어찌 이것보다 더하겠는가. 이것이 《대학(大學)》이 초학자가 덕의 세계로 들어가는 문이 되는 까닭이니 힘쓰지 않을 수 있겠는가.

불성무물(不誠無物)주 46) 4자를 자세히 완미하고 탐구해야 한다.

사심(私心)이 사라지면 동정(動靜), 어묵(語黙)이 모두 천기(天機)이다. 장자(莊子)가 이른 "기욕(嗜欲)이 깊은 사람은 천기(天機)가 낮다."주 47)라는 말도 이러한 의미이다.

주자(朱子)가 이르기를, "정(正)을 중(中)에 짝지어 놓으면 중(中)이 중요하고, 의(義)를 인(仁)에 짝지어 놓으면 인(仁)이 근본이 된다.……"주 48)라고 하였다. 정(靜)을 위주로 한 주자(周子 주돈이(周敦頤))의 주정(主靜)의 설로 보자면 정(正)과 의(義)가 주가 될 듯하건만 주자의 말이 이와 같은 것은 어째서인가? 대체로 음양(陰陽)이 서로 뿌리가 되는 것주 49)은 인의(仁義)가 서로 체(體)가 되기 때문이다. 정(正)과 의(義)를 근본으로 삼으면 중(中)과 인(仁)이 용(用)이 되고 중(中)과 인(仁)을 체(體)로 삼으면 정과 의가 용(用)이 된다.

"무극(無極)이면서 태극(太極)이다."는 이치상 말하는 것이고 "텅 비고 고요하여 아무런 형체가 없지만, 만상(萬象)이 빽빽하게 이미 갖추어져 있다."주 50)는 마음의 측면에서 말하는 것이다.

성(性)은 곧 태극(太極)이다. 태극은 음양 동정(陰陽動靜)이 지닌 본연(本然)의 묘(妙)이다. 그러나 유독 미발(未發)을 성(性)으로 여기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말하자면 미발은 성(性)이 아니다. 다만 미발한 상태에 갖춰진 것이 성이다. 미발한 상태에서는 기(氣)가 용사(用事)하지 못하고 도의(道義)가 온전히 갖추어졌기 때문에 성(性)이라고 이른다.

일본(一本 하나의 근본)주 51)은 이(理)를 가지고 말하는 것이고 대본(大本 큰 근본)주 52)은 심(心)을 가지고 말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각구(各具)에 일본이 있다고 이르는 것은 가하지만 대본이 있다고 이르는 것은 불가하다.

혹자가 "만수(萬殊) 외에 별도로 일본(一本)이 있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면 천(天)은 만물(萬物)의 일본이고 심(心)은 만사(萬事)의 일본이니 천(天)과 심(心)은 사(事), 물(物)과 구별되는 것이 아닌가?"라고 하였다. 내가 말한다. "천(天)은 만물에 대해서 일본이라고 하는 것은 가하지만 대본이라고 하는 것은 불가하다. 심(心)은 만사에 대해서 대본이라고 하는 것은 가하지만 일본이라고 하는 것은 불가하다. 대체로 천(天)과 심(心) 또한 만수(萬殊) 안에 있는 일물(一物)이다. 나는 일찍이 천지 만물을 합한 것을 일본으로 여기고 천지 만물을 나눈 것을 만수라고 생각하였다. 지금에 와서 보자니 매우 타당하지 못하다. 일본과 만수는 애초에 위계와 등급이 없다. 다만 일본 안에 만수가 있고 만수 안에 일본이 있을 뿐이다."

사람이 태허(太虛)와 음양(陰陽)의 기(氣)에 뿌리를 두는 것은 물고기가 물에 뿌리를 두고 나무가 흙에 뿌리를 두는 것과 같아 활동과 휴식, 호흡이 한순간도 끊이지 않는다.

마음이 장중하면 목소리가 편안하고 마음이 화평하면 목소리가 평안하다. 강론과 연구가 정밀하면 그 말이 조리가 있고 후련하며 존심 양성(存心養性)이 익숙해지면 그 말이 느긋하고 진중하다.

묻건대, 천일(天一)이 수(水)를 낳고 지이(地二)가 화(火)를 낳지만주 53), 사람과 사물이 생겨날 때 하늘에서 양을 받고 땅에서 음을 받는 것은 어째서인가? 천일(天一)과 지이(地二)는 대대(對待) 안의 착종(綜錯)이고, 양을 받고 음을 받는 것은 착종 안의 대대이다. 음양이 있은 다음에 오행(五行)이 있고 오행이 있은 다음에 만물이 화생(化生)한다. 그러므로 천일(天一)이 수(水)를 낳고 지이(地二)가 화(火)를 낳는 것은 그 위의 하나의 일이다. 그러나 모든 사물이 생겨날 때 처음에는 청허(淸虛)했다가 조금씩 견실해져 수(水), 화(火), 금(金), 목(木)이 차례로 생성되는 상(象)이 있게 된다. 기는 점진적으로 진행되지만, 이(理)는 일시에 모두 갖추어져 완전하고 자족하여 조금도 모자라거나 남는 것이 없다. 기질의 변화는 이(理)를 분명히 알고 함양이 숙련되는 것에 달려있다. 만일 이(理)임을 알고서도 함양하지 않는다면 구이지학(口耳之學)주 54)일 뿐이니 어찌 기질을 변화시킬 수 있겠는가.

무릇 사물이 있으면 법칙이 있는 것은 모두 본래부터 절로 있던 도리이다. 바르고 반듯하여 깨달음이 분명하다면, 이는 사물을 각각 사물에 맡겨 두는 것이니주 55) 어찌 사사로운 뜻에 이끌리는 근심이 있겠는가.

만물을 생성(生成)하니 그 덕이 천지보다 위대한 것이 없건만, 천지가 어찌 일찍이 오만한 마음을 가졌던가. 일세(一世)를 빚어내니 그 공이 성인보다 성대한 것이 없건만, 성인 또한 어찌 일찍이 만족스러운 마음을 지녔던가. 비록 효성이 대순(大舜)과 같더라도 이 또한 자식의 당연한 직분이고 학문이 공자(孔子)와 같더라도 이 또한 학자의 당연한 직분이니 어찌 오만하거나 만족스러운 마음을 지닐 수 있겠는가. 오만하고 만족하는 자는 단지 마음이 좁기 때문이다.
주석 15)불혹(不惑)과……시기
'불혹(不惑)'은 《논어》 〈위정(爲政)〉의 "마흔 살에 사리에 의혹하지 않았다."라는 것을 가리키며 '지명(知命)'은 "오십 살에 천명을 알았다."라고 한 것을 가리킨다.
주석 16)취정(就正)
스승을 찾아가 학문의 옳고 그름을 질정(質正)하는 것으로, 공자(孔子)는 "군자가 일을 민첩하게 하고 말을 삼가고 도가 있는 사람에게 찾아가 질정하면 배움을 좋아한다고 이를 만하다."라고 한 말에서 유래하였다. 《論語 學而》
주석 17)성(性) 안에……있겠는가
《논어》 〈학이(學而)〉 2장의 주자 주(朱子注)에 보인다.
주석 18)몸에……마음이다
《주자서절요(朱子書節要)》 권3 〈답장경부문목(答張敬夫問目)〉에, "가득한 것이 측은지심이니, 이는 사람의 몸에서 이 이치가 충만한 곳을 가장 절실히 가리킨 것입니다. 만약 이것을 깨닫는다면 만물이 일체이며 안팎의 구별이 없게 되고, 만약 깨닫지 못한다면 가슴속을 떠나 밖에서 찾느라 아득히 아무런 상관이 없게 됩니다.[滿腔子是惻隱之心, 此是就人身上指出此理充塞處最爲親切. 若於此見得, 卽萬物一體更無內外之別, 若見不得, 却去腔子外尋覓, 卽莽莽蕩蕩無交涉矣.]"라고 하였다.
주석 19)생리(生理) 생생지리(生生之理))
천지가 만물을 끊임없이 생성하는 자연의 이치를 이른다.
주석 20)공정하면……된다
《근사록집해(近思錄集解)》 권1 〈도체(道體)〉에 "공정하면 하나가 되고 사사로우면 만 가지로 달라지니, 인심이 사람의 얼굴처럼 각기 다른 것은 다만 사심 때문이다.[公則一, 私則萬殊, 人心不同如面, 只是私心.]"라는 이천(伊川) 선생의 말이 보인다.
주석 21)조용한……있다
《근사록(近思錄)》 권4 존양류(存養類)에 "마음을 고요하게 한 다음에 만물을 보면 자연히 봄 뜻이 있게 된다.[靜後見萬物, 自然皆有春意.]"라고 한 정이(程頤)의 말이 나온다.
주석 22)명(命)을……없다
《논어》 〈요왈(堯曰)〉에 "명을 알지 못하면 군자가 될 수 없고, 예를 알지 못하면 설 수 없으며, 말을 알지 못하면 사람을 알 수 없다."라는 말이 나온다.
주석 23)기수(氣數)
기운(氣運) 또는 운수(運數)를 말한다.
주석 24)스스로 취함
《맹자》 〈이루 상(離婁上)〉에 "동자가 노래하기를 '창랑의 물이 맑거든 나의 갓끈을 빨 것이요, 창랑의 물이 흐리거든 나의 발을 씻겠다.' 하니, 공자께서 말씀하기를 '소자들아 저 노래를 들어 보라. 물이 맑으면 갓끈을 빨고, 물이 흐리면 발을 씻는다고 하니, 이는 물이 스스로 취한 것이다.' 하셨다."라고 하였다.
주석 25)천하의……않다
《맹자》 〈진심상〉에 나오는 말이다.
주석 26)유기(游氣)
장재(張載)의 《정몽(正蒙)》 〈태화(太和)〉에 "유기가 어지러이 뒤섞여 있다가 모여서 형질을 이룬 것이 만 가지로 다른 사람과 사물을 낳는다. 끊임없이 순환하는 음기와 양기의 양단은 천지의 큰 의리를 세운다.[游氣紛擾, 合而成質者, 生人物之萬殊. 其陽陰兩端, 循環不已者, 立天地之大義.]"라고 하였다.
주석 27)사악함을……것이지
《주역》 건괘(乾卦) 문언전(文言傳)에 "평소의 말도 미덥게 하고 평소의 행실도 삼가며 사특함을 막고 성실함을 보존해야 한다."라고 하였다.
주석 28)미리……병통
《맹자》 〈공손추 상(公孫丑上)〉에 "반드시 호연지기를 기름에 종사하되, 효과를 미리 기대하지 말아서 마음에 잊지도 말며 억지로 조장하지도 말라."라는 말이 있다.
주석 29)성(性)……있었는가
《논어집주》 〈학이(學而)〉에 "성 가운데에는 다만 인ㆍ의ㆍ예ㆍ지 네 가지만 있으니, 어찌 일찍이 효제가 있겠는가.[性中, 只有箇仁義禮智四者而已, 曷嘗有孝弟來?]"라는 정자(程子)의 말이 보인다.
주석 30)본성으로 여기는 것
《맹자》 〈진심 상(盡心上)〉에 "군자가 본성으로 여기는 바는 비록 크게 행해지더라도 더 보태지지 않으며 비록 궁하게 살더라도 줄어들지 않으니, 분수가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군자가 본성으로 여기는 바는 인의예지로서 마음속에 뿌리박혀 그 빛남이 윤택하게 얼굴에 드러나며 등에 가득하며 사체에 베풀어져서 사체가 말하지 않아도 깨달아 올바르게 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주석 31)용(用)은……일어났다
소옹(邵雍)의 《격양집(擊壤集)》 권14 〈관물음(觀物吟)〉, "체(體)는 천지 이후에 확립되나, 용은 천지 이전에 일어난다.[體在天地後, 用起天地先.]"라고 하였다.
주석 32)양(陽)을……낳는다
주돈이(周敦頤)의 《태극도설(太極圖說)》에 "무극이면서 태극이니, 태극이 동하여 양을 낳고 동이 극에 달하면 정해지며 정하여 음을 낳고 정이 극에 달하면 다시 동한다.[無極而太極. 太極動而生陽, 動極而靜, 靜而生陰, 靜極復動.]"라고 하였다.
주석 33)체(體)는……확립되었다
소옹(邵雍) 《격양집(擊壤集)》 권14 〈관물음(觀物吟)〉에 나오는 말이다.
주석 34)남파(南坡) 이장(李丈)
이희석(李僖錫, 1804~1889)이다. 본관은 인천(仁川), 자는 효일, 호는 남파(南坡)이다. 장흥군 청적리(聽笛里)에서 출생하였다. 기정진의 문하에서 공부했는데, 그를 스승은 벗으로 대하고 이희석은 스승으로 섬겼다. 《남파집》을 남겼다.
주석 35)부부에게……가까워진다
《예기》 〈교특생(郊特牲)〉에 "남자가 친영을 하여 남자가 여자에게 먼저 가는 것은 강유의 뜻이다.……예물을 들고 만나는 것은 공경하여 분별을 밝히는 것이다. 남녀가 분별이 있은 뒤에 부자가 친하고, 부자가 친한 연후에 의가 생겨나고, 의가 생겨난 연후에 예가 일어나고, 예가 일어난 연후에 만물이 편안하니, 분별이 없고 의가 없는 것은 금수의 도이다.[男子親迎, 男先於女, 剛柔之義也.……執摯以相見, 敬章別也. 男女有別, 然後父子親; 父子親, 然後義生; 義生, 然後禮作; 禮作, 然後萬物安. 無別無義, 禽獸之道也.]"라는 내용이 보인다.
주석 36)금수(禽獸)가…… 때문이다
위 〈교특생〉의 구절에 대한 진호(陳澔)의 집설(集說)에 나오는 말이다.
주석 37)잊지도……않는
《맹자》 〈공손추 상(公孫丑上)〉에 "반드시 이 일에 전념하되, 미리 정해서도, 마음에 잊어서도, 억지로 자라는 것을 도와서도 안 된다."라는 내용이 있다.
주석 38)장중함과……기르는 것
《예기》 〈표기(表記)〉에 "군자가 장중하고 경건하면 날로 강해지고, 안일하고 방자하면 날로 구차해진다."라는 말이 보이고, 《근사록》에는 정호(程顥)가 "자질이 아름다운 자는 밝히기를 다하여 찌꺼기가 곧 완전히 변화해서 천지 같은 체가 되고, 그다음은 오직 장중함과 경건함을 잡아 길러야 하니, 그 지극함에 이르면 똑같다.[質美者, 明得盡, 査滓便渾化, 却與天地同體, 其次惟莊敬持養, 及其至則一也.]"라는 내용이 보인다.
주석 39)발의……한다
《예기》 〈옥조(玉藻)〉에 군자가 가져야 할 아홉 가지 몸가짐인 구용(九容)에 속하는 것으로, "발의 모습은 진중하고, 손의 모습은 공손하다."라는 말이 나온다.
주석 40)생생(生生)
《주역》 계사전 상(繫辭傳上)의 "끊임없이 낳는 것을 '역(易)'이라고 이른다."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주석 41)계원(繼元)
문송규(文頌奎, 1859~1888)의 자이다. 본관은 남평(南平), 호는 귀암(龜巖)이다. 전라남도 화순 출신으로, 하락이수(河洛理數)와 천문(天文)의 물상을 확연하게 융회하였다. 노사(蘆沙) 기정진(奇正鎭)의 문하에서 수학하여 학문의 요체를 깨닫고, 심성과 이기의 묘리를 세밀하게 분석하였다.
주석 42)노여움을……않는 것
《논어》 〈옹야(雍也)〉에서 지독한 가난 속에서도 학문하는 즐거움을 버리지 않았다는 안연(顔淵)을 칭찬하는 공자의 말이다. 노나라 애공(哀公)이 공자에게 학문을 좋아하는 제자가 누구인지 묻자, 공자가 "안회라는 제자가 학문을 좋아하여 노여움을 옮기지 않고 허물을 거듭 범하지 않더니, 불행히도 단명하여 죽었습니다. 지금은 없으니 학문을 좋아하는 이가 있다는 말을 듣지 못했습니다."라고 대답하였다.
주석 43)만규(萬竅)
땅 위에 있는 모든 구멍이나 사람 몸에 있는 이목구비(耳目口鼻)를 가리킨다. 《장자》 〈제물론(齊物論)〉에 "거대한 땅덩어리가 기운을 내뿜으면 그 이름을 바람이라고 한다. 바람이 불지 않으면 그만이지만, 일단 불었다 하면 온갖 구멍들이 여기에 응해서 성내며 부르짖는다.[夫大塊噫氣, 其名爲風. 是唯無作, 作則萬竅怒號.]"라는 구절에서 유래하였다.
주석 44)통체(統體)와 각구(各具)
통체는 전체로서의 태극을, 각구는 개별 물(物) 속에 있는 태극을 뜻한다. 즉 이일분수(理一分殊)와 같은 말이다. 《성리대전》 권1 〈태극도〉에 "남녀의 처지에서 보면 남녀가 각각 그 성을 하나씩 간직하여 남녀가 하나의 태극이요, 만물의 처지에서 보면 만물이 각각 그 성을 하나씩 간직하여 만물이 하나의 태극이다. 합하여 말하면 만물이 통합된 본체로서 하나의 태극이고, 나누어 말하면 일물이 각각 하나의 태극을 구비하고 있는 것이다.[自男女而觀之, 則男女各一其性, 而男女一太極也; 自萬物而觀之, 則萬物各一其性, 而萬物一太極也. 蓋合而言之, 萬物統體一太極也; 分而言之, 一物各具一太極也.]"라고 하였다.
주석 45)성선(性善)을……것이다
《근사록(近思錄)》 권2 〈위학(爲學)〉에 보이는 내용이다. 원문은 "知性善, 以忠信爲本, 此先立其大者."로 되어 있다.
주석 46)불성무물(不誠無物)
《중용장구(中庸章句)》 제25장에 "진실함은 사물의 시종을 이루는 것이니, 진실하지 않으면 사물이 성립될 수 없다. 그러므로 군자는 진실함을 귀중하게 여기는 것이다."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주석 47)기욕(嗜欲)이……낮다
《장자(莊子)》 〈대종사(大宗師)〉에 나오는 말이다.
주석 48)정(正)을……된다
《주자대전》 권31 〈답장흠부서(答張欽夫書)〉에 보인다.
주석 49)음양(陰陽)이……되는 것
주돈이(周敦頤)의 〈태극도설(太極圖說)〉에 "태극이 동하여 양을 낳아 동이 극에 달하면 정하고, 정하여 음을 낳아 정이 극에 달하면 다시 동한다. 한 번 동하고 한 번 정함이 서로 그 뿌리가 된다.[太極動而生陽, 動極而靜, 靜而生陰, 靜極復動. 一動一靜, 互爲其根.]"라고 한 데서 나온 말이다.
주석 50)텅 비고……있다
《근사록》 권1 〈도체(道體)〉에 있는 말로, "지극히 고요하여 조짐이 없을 적에 만상이 빽빽하게 갖추어져 있다.[冲漠無眹, 萬象森然已具.]"라고 하였다.
주석 51)일본(一本 하나의 근본)
《논어집주》 〈이인(里仁)〉에 "선생님의 도는 충(忠)과 서(恕)일 뿐이다."라는 증자(曾子)의 말에 대한 주희의 주에 "'지극히 성실하여 쉼이 없는 것'은 도의 체이니 만 가지 다름이 하나의 근본인 것이며, 만물이 각기 제 곳을 얻는 것은 도의 용이니, 하나의 근본이 만 가지 다름이 되는 것이다. 이것으로 본다면 '하나의 이치가 모든 사물을 꿰뚫은 것'의 실제를 알 수 있을 것이다.[至誠無息者, 道之體也, 萬殊之所以一本也; 萬物各得其所者, 道之用也, 一本之所以萬殊也. 以此觀之, 一以貫之之實, 可見矣.]"라고 하였다.
주석 52)대본(大本 큰 근본)
《중용》에 "희로애락이 아직 발하지 않은 때를 '중'이라 이르고, 발하여 모두 절도에 맞음을 '화'라고 이르니, 중은 천하의 대본이고 화는 천하의 달도이다. 중과 화를 이루면 천지가 자리 잡히고 만물이 길러진다."라고 하였다. 《中庸章句 第1章》
주석 53)천일(天一)이……낳지만
《근사록》 권1 〈도체(道體)〉의 주희주에 "오행이 생겨남은 대개 두 가지 기(氣)가 서로 변하고 합하여 각각 이루어진다. 천일은 수(水)를 낳고, 지이는 화(火)를 낳고, 천삼은 목(木)을 낳고, 지사는 금(金)을 낳고, 천오는 토(土)를 낳는다. 이것이 이른바 '양이 변하고 음이 합하여 수, 화, 목, 금, 토를 낳는다.'는 것이다.[五行之生也, 蓋二氣之交變合而各成. 天一生水, 地二生火, 天三生木, 地四生金, 天五生土. 所謂陽變陰合而生水火木金土, 是也.]"라고 하였다.
주석 54)구이지학(口耳之學)
남에게 배운 것을 깊이 연구하지 않고 그대로 남에게 옮기기나 하는 천박한 학문을 말한다. 《순자(荀子)》 권1 〈권학(勸學)〉에 "소인의 학문은 귀로 들어와 입으로 나간다. 입과 귀의 사이는 4촌일 뿐이니, 어찌 7척의 몸을 아름답게 하겠는가.[小人之學也, 入乎耳, 出乎口. 口耳之間則四寸耳, 曷足以美七尺之軀哉?]"라고 하였다.
주석 55)바르고……것이니
《근사록(近思錄)》 권4 〈존양(存養)〉에 "사람이 어떤 일을 합당하게 처리하지 못하는 이유는 다만 다른 일에 구애된 나머지 사물을 제각각의 사물에 맡겨 두지 못하기 때문이다. 사물을 제각각의 사물에 맡겨 두면 이는 내가 사물을 부리는 것이지만, 사물 때문에 일을 하는 것이면 이는 사물에 의해 부림을 받는 것이다.[人不止於事, 只是攬他事, 不能使物各付物. 物各付物, 則是役物, 爲物所役, 則是役於物.]"라는 말이 나온다.
日誌錄
余年今四十有四矣。此是古人不惑知命之日。而學不加進。心不加存。其蚩蚩貿貿。卽當日蒙蔀童昏之見耳。然至於精神氣魄。則日衰月頹。與疇昔遽已大不相同。撫念悲歎。此生何爲。但平生之業。不可到老改轍。只有黽勉不舍。庶幾餘效。而聞見所及。先忘後失。無緣會得浹洽。於是置一小冊子。凡日間應接及思索得失。隨手箚記。一以爲溫故之計。一以爲就正之資也。
陰陽之對待者。是交易也。流行者。是變易也。周子太極圖說。是主流行變易而言。然變易之氣。便是對待交易之氣。
程子曰。性中只有箇仁義禮智。曷嘗有孝弟來。據此似若性中無孝弟。然四者裏面。細條里都包在了。如五行言木則松柏橡樟都包在裡面。言水則江淮河漢都。包在裏面。
程子曰。滿腔子是惻隱之心。於此見天地萬物一體最爲的實。若去腔子外尋覓。浩浩茫茫。無交涉云。夫私欲淨盡。生理渾全。則其未發也。與天地同體。其已發也。與天地同流。所謂公則一。所謂靜中觀萬物皆有春意者。亦此意。
太極不是一箇可見之物。在天爲萬理之總名。在人爲萬善之統體。
陰陽兩端。雖極萬變。而莫非生理之周流。人生日用。雖耒耟陶冶甲兵簿書之類。莫非生理所須之具。
不知命。無以爲君子。此命字。指氣數而言也。人生一循天理。無犯人爲。凡吉凶榮辱之來。無一毫自取。而後可諉於命。知此則見利不趨。見害不避。惟知有義理而已。豈不爲君子乎。
中天下而立。定四海之民。君子樂之。所性不存。所性旣不存於此。則獨可存於彼乎。所性者。千萬人皆同。地分者。千萬人皆不同。不同故所性不存。而因其不同。又莫不各有當行之道。不爲此嗇而彼豊。何必捨此而慕彼哉。
游氣何氣也。以天地陰陽之氣爲主。則萬物爲游氣。以萬物當體之氣爲主。則陰陽爲游氣。
閑邪則誠自存。不是閑邪之外。別有存誠也。克己復禮亦然。但遷善改過。自是二事。蓋發於心者。則天理人欲二途而已。非天理便是人欲。非人欲便是天理。無兩相對峙故也。應於事者。則有善底有過底有萬不同也。
朱子答呂子約書曰。所論必有事焉。鳶飛魚躍。意亦甚當。知得如此。已是不易。更且虛心寬意。不要回頭轉腦。計較論量。却向外博觀衆理。益自培殖。則根本已固。而枝葉愈茂矣。若只於靜坐處尋討。却恐不免正心助長之病云云。此言偏中我病。如對證下劑。千載之下。似爲等待而準備者。三復悲悵。益恨得味此言之晩。
人欲之害。大槪有三。一則氣質之偏也。二則耳目之蔽也。三則物我之形也。柔懦昏濁。曓戾剛輕者。氣質之偏也。貪嗇浸淫。經營汨沒者。耳目之蔽也。忌克殘忍。虛驕羞縮者。物我之形也。三者輾轉因仍。相助益深。然氣質之偏爲其本領。故古人以變化氣質言之。
意有所褊隘。則以廣大底意思克之。有所虛僞。則以眞實底意思克之。有所怠散。則以嚴凝底意思克之。有所邪曲。則以正直底意思克之。日日如此。使爲善之力。足以勝彼。然後可以有進。
程子曰。性中曷嘗有孝弟來。然則孝弟是待人排定底物事耶。曰不然也。所性之中。天理全具。而此理之施於親者。謂之孝。施於君者。謂之義。施於長者。謂之弟。但性爲萬物之一原。而孝弟是人分上說。故不可就一原上以孝弟之名加之也。曰孝弟之理。固在一原上。而所以爲父子君臣兄長者。則不在於一原耶。曰父子君臣兄長。是氣也。固不在於一原。而所以爲父子君臣兄長之理則已在於一原中矣。
一本固天命之全體。而萬殊是天命之流行也。然則萬殊果是因氣而有者哉。
一說窮理之道。有所當然所以然所當然。如父之慈子之孝所以然。是慈孝之所從來。卽天命之性也。一說所當然。固爲父之慈子之孝。而所以然。是就父子上所以慈孝之故也。未知二說何如。曰窮理之道。固非一端。有就理上看者。有就物上看者。有就事上看者。就慈孝上窮究。是理上看。就父子上窮究。是物上看。就父慈子孝上窮究。是事上看。自萬殊至一本。中間甚有多少曲折。有如此曲折。故至於萬殊。所以萬殊者。由其有此曲折。故知其一本。就理上窮究。則所以然。固是一本處。就事物上窮究。則知其曲折不同。所以造乎一本。
向看太極圖說。動極而靜。靜極復動之語。竊疑此是流行一邊說。而非對待之體。追後思之。動而靜而者。是流行之用。邵子所謂用起天地先者也。生陽生陰者。是對待之體。邵子所謂體立天地後者也。但一動一靜之用。起於天地之先。而行於天地之後。非分陰分陽之後。別生一箇流行之氣也。是故曰靜極復動也。
此身非我私物。凡身之視聽行步喫着語黙。莫非天機。纔着一毫私意。不是天則。
己丑春。冠山魏斯文穉雲龍奎。從我游碧山書舍。一日講及夫婦有別之義。穉雲曰。昔聞南坡李丈與蘆沙先生論此義。南坡以一夫婦居內居外之義言之。先生曰。非也。此是人人夫婦。各有定偶而不亂之義也。是以有曰夫婦有別。然後父子親。又曰禽獸知有母而不知有父。以其無別也。予從來解認有別之義。亦如南坡之見。及聞此語。不覺怳然。若以一夫婦相與之義言之。則必曰夫婦有恩。不但曰夫婦有別也。人人夫婦。各有定偶而不亂者。此固正義。而一夫婦居內居外。特其中細條理也。嗚呼。摳衣之日。未及聞之。而至於山頹十年之後。乃得聞之。此講聚之樂不可無也。
助忘常相因。忘故助。助故忘。不忘則何助之有。不助則何忘之有。須知勿忘勿助之間。乃是本心。
景立說許多條理。安能常常記念。應事時。又安能着意安排。比如明鏡照物。不成萬象常在鑑中。但洗磨塵垢。使淸明通徹。則物雖不至。而不可謂萬象不涵於此。未知何如。余謂此說固好。但磨鏡之方。不向格致踐履上用功。而若只撑眉努眼。向壁觀心。則必入空寂寂地去矣。
要息思慮。便有多少思慮在。惟莊敬持養四字。最不煩而要。
問格物之道。有所當然所以然。是如何。曰如說足容重。則足者地也。在一身之下。而承載得許多。其容不得不重。此所以然也。端重安詳。不輕躁不草率。此所當然也。且趨時當如何。立時當如何。升降時當如何。進退時當如何。在親前當如何。在君前當如何。此是足容重中細條理。又莫不各有所以然。
仁者合下天然自有之物。不爲天地萬物一體而有也。然纔有生生至愛之理。則便是天地萬物自然一體。如一箇種子。只有生生之理。所以千枝萬葉之理。自然完具此其仁故一體也。若以施用處說。則亦可謂一體故仁也。有生生之理。故有父子之分。而且父子一體也。故有慈孝之道。昔年與繼元論此義。頗費往復。不無小小歸宿。
先就日用事物上。窮索得仁義禮智。見眼前至近天理流行。然后方有據守處。若只向高妙處說性說理。都無着摸。
邪正本不倂立。公私本不竝行。日觀大公至正之理。日就大公至正之域。則區區邪私。自無容處。
容體正然后禮義行。不遷怒。自正容體始。一身太極之象。形氣陰陽之象。氣血骨肉。五行之象。百骸萬竅。萬物之象也。
無懸空之理。故亦不曾別有統體之太極。只是在陽爲一太極。在陰爲一太極。在五行亦各一太極。在萬物亦各一太極。合陰陽五行萬物爲統體之太極。然統體之太極。不多於各具之太極。各具之太極。不少於統體之太極。是各具中自有所謂統體者。
天於萬物。非物物刻而雕之也。亦非汗漫不關聽其自爾也。天地萬物只是一體。更無分別。如人之一身四體。生理周流。無不相管。
明性善而主忠信。此是先立乎大者云者。此是先儒喫緊爲人處也。爲學之道。豈有以加於此乎。此大學所以爲初學入德之門。可不勉哉。
不誠無物四字。當仔細玩求。
私意消化。則動靜語黙。皆是天機也。莊子所謂人於嗜欲深者。其於天機淺亦此意。
朱子曰。以正配中。則中爲重。以義配仁。則義爲本云云。以周子主靜之說觀之。似以正義爲主而朱子之言如是何耶。蓋陰陽互爲其根者。是仁義互爲其體故也。以正義爲本。則中仁爲用。以中仁爲體。則正義爲用。
無極而太極。是理上說。沖漠無眹。萬象森然已具者。心上說。
性卽太極也。太極是陰陽動靜本然之妙也。然獨以未發爲性何也。曰未發非性也。但具於未發者。是性也。未發則氣不用事。而道義全具。故謂之性。
一本以理言。大本以心言。故各具中。謂有一本則可。謂有大本則不可。
或曰。萬殊之外。非別有一本云爾。則天爲萬物之一本。心爲萬事之一本。而天與心。非別於事與物耶。曰天於萬物。謂之一本則可。以不可謂之大本。心於萬事謂之大本則可。而不可謂之一本。蓋天與心。亦萬殊中一物。予曾以合天地萬物爲一本。分天地萬物爲萬殊。以今觀之。殊甚未穩。一本萬殊。初無堦位等級。只是一本中有萬殊。萬殊中有一本。
人根於太虛陰陽之氣。如魚根於水。木根於土。其動息呼吸。未嘗須更間斷。
心莊則聲宏。心和則聲平。講治精則其言條暢。存養熟則其言舒重。
問天一生水。地二生火。然而人物之生。稟陽於天。稟陰於地何耶。天一地二。是對待中綜錯也。稟陽稟陰。是綜錯中對待也。有陰陽然後有五行。有五行然後萬物化主。則天一生水。地二生火。是其上一節事也。然凡物之生。莫不初淸虛而漸堅實。有水火金木次第生成之象。氣則推行有漸。而理則一時都具。完全自足。更無欠剩。變化氣質。只在見理明涵養熟。若見理而無涵養。則只是口耳之學而已。何氣質之可變哉。
凡有物有則。皆合下自有底道理。方方正正。見得分明。則此是物各付物。安有私意牽引之患哉。
生成萬物。其德莫大於天地。而天地何嘗有驕矜之心。陶鑄一世。其功莫盛於聖人。而聖人亦何嘗有滿足之意。雖孝如大舜。而亦人子分內當然底。學如孔子。而亦學者分內當然底。何驕矜滿足之有。人之驕矜滿足者。只是心狹故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