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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신재집(日新齋集)
  • 권12
  • 잡저(雜著)
  • 〈기우록〉을 읽고 감회가 일어 적다(閱奇遇錄有感而記)

일신재집(日新齋集) / 권12 / 잡저(雜著)

자료ID HIKS_OB_F9001-01-202101.0012.0001.TXT.0003
〈기우록〉을 읽고 감회가 일어 적다
내가 일찍이 공문(孔門)의 제자들이 천하의 대성(大聖)을 만나 스승으로 삼고 천하의 대현(大賢)을 만나 벗으로 삼아 스승에게 계발을 받고 벗과 강론을 하며 벗과 강론을 하고 스승에게 물어 바로잡았던 것을 생각해보니, 항항 간간(行行侃侃)한 위의(威儀)주 8)와 절절 시시(切切偲偲)한 즐거움주 9)이 천년 세월이 흐른 뒤에도 상상이 되어 나도 모르게 감탄을 하고 감흥이 일었다.
비록 요(堯)나 순(舜) 같은 군주와 고요(皐陶)ㆍ기(夔)ㆍ후직(后稷)ㆍ설(契)과 같은 무리를 만나 격의 없이 정사를 논하지는주 10) 못했을지라도 맹자(孟子)가 말한 천하에 왕(王)이 되는 것은 삼락(三樂)에 포함하지 않는 의리주 11)로 미루어 보자면 경중(輕重)과 저앙(低昂)의 분별은 차라리 저것을 버릴지언정 이것을 잃을 수 없게 된 지 오래되었다. 그렇다면 천하의 즐거움 가운데 이보다 큰 것이 있겠는가.
내가 을해년(1875, 고종12), 병자년(1876) 연간에 선생의 문하에서 김경범(金景範)주 12), 정후윤(鄭厚允)주 13), 기회일(奇會一)주 14), 정주윤(鄭周允)을 만났다. 태극(太極)과 성명(性命)의 은미함으로부터 3백 경례(經禮), 3천 곡례(曲禮)의 다양함에 이르기까지 각기 들은 바를 펼치고 각기 본 바를 말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 물러나서는 사실(私室)에서 강구하고 나아가서는 강석(講席)에서 질정(質正)하며 한 시대의 대현(大賢)을 만나 스승으로 삼고 한 시대의 대유(大儒)를 만나 벗으로 삼아 넘치는 훈도(薰陶)를 받고 빠져들고 젖어 들어 옛날과 동떨어진 시기에 사수(洙泗 공자의 문하)의 성대한 법도를 직접 경험하였다. 이것이야말로 이번 생에서 다시 만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실로 천백 세(世)에 걸쳐 겨우 한두 번이나 있을까 말까 한 일이다.
아, 세월이 덧없이 흘러 이제 벌써 17년이 지났다. 선사(先師)께서 이미 타계하시고 김경범도 이어서 세상을 떠나고 남아있는 2~3자(子) 또한 멀리 헤어져 있다. 나 또한 가난과 질병으로 이곳저곳 떠돌아 옛 학문은 성취를 이루지 못하였고 나이는 이미 늙고 정력은 이미 쇠퇴하였다. 병중에 묵은 종이 더미를 열람하다가 우연히 서문(序文) 1통(通)을 발견하였다. 이를 읽자니 부끄럽고 슬프고 분하여 스스로 제재하지 못하고 삼가 이 글을 지어 뜻을 보인다.
주석 8)항항 간간(行行侃侃)한 위의(威儀)
제자가 스승을 모시고 있을 때 굳세고 강직한 태도를 지니는 것을 의미한다. 《논어(論語)》 〈선진(先進)〉에 "옆에서 모시는데 민자건(閔子騫)은 온화하였고, 자로(子路)는 굳세었고, 염유(冉有)와 자공(子貢)은 강직하니 공자께서 즐거워하셨다."라는 내용이 있다.
주석 9)절절 시시(切切偲偲)한 즐거움
친구 간에 착한 일을 하도록 서로 권하고 격려하는 일, 서로 도의(道義)를 절차탁마(切磋琢磨)하는 일을 의미한다. 《논어》 〈자로(子路)〉에 "자로가 '어떠해야 선비라고 이를 만합니까?'라고 묻자, 공자가 대답하기를, '간절하고 자상하게 권면하며 화락(和樂)하면 선비라 이를 만하다. 붕우(朋友) 간에는 간절하고 자상하게 권면하며 형제는 화락해야 한다."라는 내용이 있다.
주석 10)격의……논하지는
원문은 '都兪吁咈於太虛亭午之日'이다. '太虛亭午之日'이 문맥에 맞지 않아 이 부분을 생략하고 번역하였다.
주석 11)천하에……않는
《맹자》 〈진심상(盡心上)〉에 "군자가 세 가지 즐거움이 있으니, 천하에 왕 노릇하는 것은 여기에 끼지 않는다. 부모가 다 생존하고 형제가 무고한 것이 첫 번째 즐거움이요, 위로는 하늘에 부끄럽지 않고 아래로는 사람에게 부끄럽지 않은 것이 두 번째 즐거움이요, 천하의 영재를 얻어서 교육하는 것이 세 번째 즐거움이다"라고 하였다.
주석 12)김경범(金景範)
경범은 김석구(金錫龜, 1835~1885)의 자이다. 김석구의 본관은 김해(金海), 자는 경범, 호는 대곡(大谷)으로 전라도 남원에서 태어났다. 《맹자(孟子)》에 통달하여 '김맹자(金孟子)'로 불렸다. 학문에 전념하기 위해 담양군 대전면 대곡리(大谷里)로 이사하였고, 27년간 기정진의 문하에서 공부하였다.
주석 13)정후윤(鄭厚允)
후윤은 정재규(鄭載圭, 1843~1911)의 자이다. 자는 영오(英五)ㆍ후윤(厚允), 호는 노백헌(老柏軒)ㆍ애산(艾山), 본관은 초계(草溪)이다. 경상남도 합천군 쌍백면 묵동에서 살았다. 노사(蘆沙) 기정진(奇正鎭, 1798~1876)의 문인으로, 개화(開化)에 반대하여 위정척사(衛正斥邪)를 주장하였다. 저서로는 《노백헌집》이 있다.
주석 14)기회일(奇會一)
회일은 기우만(奇宇萬, 1846~1916)의 자이다. 본관은 행주(幸州)이고 호는 송사(松沙)이다. 참봉을 지내 기 참봉으로 불렸으며, 호남의 거유(巨儒) 기정진(奇正鎭)의 손자로 그 학업을 이어받아 문유(文儒)로 추앙받았다.
閱奇遇錄有感而記
余嘗思孔門諸子。得天下之大聖以爲師。得天下之大賢以爲友。開之於師而講之於友。講之於友而質之於師。行行侃侃之儀。切切偲偲之樂。想像千載之下。不覺感歎而興起也。雖不得唐虞之君與皐夔稷契之徒。都兪吁咈於太虛亭午之日。以孟子所謂王天下不與三樂之義推之。則其輕重低昂之分。寧可遺於彼而不可失於此久矣。然則天下之樂。其有以大於此乎。余於乙亥丙子年間。與金景範鄭厚允奇會一鄭周允。遇於先生之門。自太極性命之微。至三百三千之多。無不各陳所聞。各道所見。退而講之於私室。進而質之於函席。得一世之大賢以爲師。得一世之大儒以爲友。薰蒸洋溢。涵濡浹洽。親見洙泗盛儀於去古己遠之日。此不惟爲此生難再之遇。而實千百世絶無僅有之事也。嗚呼。荏苒日月。已十有七年于玆矣。先師已沒。景範繼逝。其餘二三子。又且離違在遠。余亦貧病流離。舊學未就。年力已替矣。病中偶閱舊紙堆。得所贈序文一通。讀之感愧悲憤。有不自裁者。謹書此而見志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