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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신재집(日新齋集)
  • 권12
  • 잡저(雜著)
  • 동지들에게 적어 보이다(書示諸同志)

일신재집(日新齋集) / 권12 / 잡저(雜著)

자료ID HIKS_OB_F9001-01-202101.0012.0001.TXT.0001
동지들에게 적어 보이다
태극(太極)은 천지의 종조(宗祖)이고 조화(造化)의 주재자(主宰者)이며 만물(萬物)의 기저(基底)이고 천하 고금(天下古今)에 걸친 인사(人事)의 준칙이다. 지극히 미묘하지만 일용(日用)의 상도(常道)를 벗어나지 않고, 지극히 가깝고 절실하지만 실로 천명(天命)의 엄중함에 근원을 두고 있다. 세상의 치란(治亂), 인물의 현부(賢否), 풍속의 오륭(汚隆), 일의 성패가 오로지 이 도리가 밝은가 어두운가에 달려있을 뿐이다. 그러나 도리(道理)는 형체가 없고 사람의 마음에는 가려짐[蔽]이 있다. 마음이 이미 가려졌다면 비록 형기의 거친 흔적마저 명백히 볼 수 없다. 하물며 형체가 없는 오묘한 도리야 말할 나위가 있겠는가. 이 때문에 성인(聖人)이 경(經)을 짓고 현인(賢人)이 전(傳)을 찬술하여 천언 만어(千言萬語)에 이르도록 끊임없이 펼쳤던 것은 이 이치를 밝혀서 사람마다 볼 수 있게 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삼대(三代) 이후로 세교(世敎)가 밝지 못하여 순경(荀卿), 양웅(揚雄)과 같이 세상에 드문 호걸조차도 기(氣)를 성(性)으로 인식하는 것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성악설(性惡說)을 주장하기에 이르렀으니, 하물며 그들보다 못한 사람이야 말할 나위가 있겠는가. 오랜 세월 어둠에 뒤덮여 헤매며 갈피를 잡지 못하다가, 송(宋)나라 때에 이르러 낙양(洛陽)과 민중(閩中)주 1) 사이에서 2~3명의 선각자가 역량을 발휘하여 성선(性善)의 뜻을 세상에 크게 밝혀놓았다.
우리 동방에서는 정암(靜庵 조광조(趙光祖)), 퇴계(退溪 이황(李滉)), 율곡(栗谷 이이(李珥)),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 등 여러 선생께서 이를 독실하게 믿고 신중하게 지켜 노맥(路脈)이 안정되었다. 아, 유풍(遺風)이 점점 멀어지면서 미언(微言)이 쉽게 가리어져 태극(太極)이 기(氣)를 띤 사물이라고도 하고, 오성(五性)이 기(氣)로 인하여 있다고 하기도 하고, 명덕(明德)이 형이하(形而下)라고 하기도 하고, 만수(萬殊)가 기분(氣分)이라고 하기도 하며, 달도(達道)가 기발(氣發)이라고 하기도 하였다. 이와 같다면 성정(性情)과 체용(體用), 시종과 본말은 기(氣)가 주인이 되지 않는 경우가 없으니 이른바 태극의 주재라는 것이 과연 어디에 있는가.
대강(大綱)이 이미 어그러졌으니 나머지가 어떨지는 모두 알 수 있다. 선성(先聖)과 선현(先賢)이 몹시 애를 태우고 수고를 마다하지 않으면서 미언(微言)이 가리어진 상황에서 이것을 밝혀놓았건만, 이제 이미 밝아진 뒤에 다시 드러나지 않게 되었으니 탄식을 감당할 수 있겠는가. 사람들은 이 이치를 강구하고 토론하여 눈앞에 밝게 드러나도록 했더라도 운용(運用)의 과정에 이르면 쉽게 잘못을 저지른다. 하물며 눈앞에 보이는 것은 모두가 형기(形氣)가 거칠고 조악한 사물이니 정밀하고 순수한 민이(民彝 사람의 도리)에는 어떠하겠으며, 세도(世道)에는 어떠하겠는가.
오직 우리 노사 선생(蘆沙先生)께서 일찍이 이를 개탄하고 구원할 방도를 생각하였으니, 이것이 《납량사의(納凉私議)》와 《외필(猥筆)》을 지으신 까닭이다. 변석(辯析)하고 회통(會通)하여 선철(先哲)의 미지(微旨)가 세상에 다시 밝게 드러나기를 바랄 만하였다. 그러나 생각지도 못했건만 영남의 권(權)주 2), 최(崔)주 3) 등 여러 사람이 어구(語句)를 지적하여 사람들의 눈과 귀를 현혹하고 거짓된 사실로 전현(前賢)을 헐뜯었다. 이 사람들의 이 행위가 공심(公心)에 의해 일어났는지 아니면 시기와 혐의(嫌疑)에 부림을 당해서인지 모르겠다. 이제 《외필》이 간행되어 사방에 널리 퍼졌으니 눈이 있는 자라면 모두 볼 수 있게 되었다. 게다가 오랜 세월이 흘러 애오(愛惡)가 차츰 쇠미해졌으니 공의(公議)만 남아있을 뿐이다. 그저 입을 닫고 혀를 묶어둔 채로 청정(淸靜)한 마음을 지키고 분변을 하지 않으면서 백세(百世) 뒤의 사람을 기다려야 할 것이다.
그러나 다만 오당(吾黨) 선비들이 오늘날 변론을 벌이는 이기설(理氣說) 등을 시험 삼아 본다면 어느 것이 득(得)이고 어느 것이 실(失)이라고 여기겠는가. 그렇다면 이것은 후대에 맡길 수 없으며 즉시 사실을 규명해야 하는 일이다. 만약 자기는 지식이 없으면서 다른 사람의 비방이나 칭찬에 따라 편리함을 택하고 좋아하는 대로 편든다면 인습(因襲)과 구차스러움을 행하는 사이에 이 몸이 혹여 한쪽에 치우치는 죄과에 빠지지 않으리라는 것을 어찌 알겠는가. 다만 도리(道理)는 형체가 없는 오묘함이다. 모름지기 침착하고 독실한 태도로 오래도록 존심 양성(存心養性)을 해야만 비로소 볼 수 있다. 힘쓰라! 이것이 학문(學問)의 기본 법칙이고 자신과 집안을 위한 중대한 계책이니 또 어찌 이 하나의 일만 해내고 말 뿐이겠는가.
주석 1)낙양(洛陽)과 민중(閩中)
낙양은 정호(程顥)ㆍ정이(程頤)가, 민중은 주희(朱熹)가 거주하던 곳이다.
주석 2)권(權)
《일신재집》 〈통고영남열읍장보문〉에 따르면 권봉희(權鳳熙)를 가리킨다.
주석 3)최(崔)
《일신재집》 〈통고영남열읍장보문〉에 따르면 최동민(崔東敏)을 가리킨다.
書示諸同志
太極是天地之宗祖。造化之主宰。萬彙之根柢。天下古今人事之準則也。至微至妙。而不離乎日用之常。至近至切。而實原乎天命之嚴。世之治亂。人之賢否。俗之汚隆。事之成壞。只在乎此箇道理明不明如何耳。然道理無形而人心有蔽。心旣有蔽。則雖形器粗迹。見且猶不得了了。況無形之妙乎。是以聖賢作之經。述之傳以至於千言萬語。娓娓而不已者。無非所以明此理。使人人得以見之。然三代以降。世敎不明。雖間世豪傑如荀卿揚雄之徒。猶不免認氣爲性。至有性惡之說。況其下者乎。百世長夜。擿埴倀倀。至宋。洛閩間有二三先覺出而發揮之。使性善之義大明於世。曁于我東。如靜退栗尤諸先生。篤信謹守。路脈坦然。嗚呼。遺風浸遠。微言易晦。或以太極爲帶氣之物。或以五性爲因氣而有。或以明德爲形而下。或以萬殊爲氣分。而以達道爲氣發。如此則性情體用始終本末。無非氣爲之主。而所謂太極主宰者。果安在哉。大綱旣差。餘皆可知。先聖先賢。苦心苦口。所以明之於旣晦之餘者。今不免復晦於旣明之餘。可勝歎哉。人於此理講之討之。使昭然在目。至運用之際。易致差失。況目前所見。無非形氣鹿粗之物。則其於民彝何。其於世道何。惟我蘆沙先生。嘗慨然於此。思有以救之。而納凉猥筆之書所以作也。析以辨之。會而通之。使往哲微旨庶幾復明於世。不意嶺中權崔諸人。指摘句語。眩惑視聽。以爲誣毁前賢。未知此人此擧是公心所發耶。是猜嫌所使耶。今猥筆之書。刊布在四方。有眼者。皆可得以見之。況時移歲久。愛惡稍衰。則所餘者公議而已。只有緘口結舌。守靜無辨。以俟百世之人可也。然惟吾黨之士。試觀今日所辨如理氣之說。以爲何者爲得。何者爲失。此則不可委之於後。而所當卽下究覈者也。若已無知識。而隨人毁譽。惟便是擇。惟好是阿。則因仍苟且之頃。安知此身或不陷於偏側之科乎。但道理是無形之妙也。須從容沈索。積久存養。乃可以見。勉之勉之。此是學問大法。身家大計。又豈足止爲了此一事而已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