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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호남근현대문집
  • 일신재집(日新齋集)
  • 권9
  • 서(8)(書(8))
  • 오양로에게 보냄(與吳陽路)

일신재집(日新齋集) / 권9 / 서(8)(書(8))

자료ID HIKS_OB_F9001-01-202101.0009.0001.TXT.0004
오양로에게 보냄
근년 이래로 가만히 듣건대 그대가 밖으로 치달리는 것을 벗어버리고 마음을 돌리고 생각을 바꾸어 강토(講討)하고 문변(問辨)함에 날마다 과정이 있다고 하니, 이것은 인간 세상에 얼마나 좋은 계획이며, 이것은 지구(知舊) 사이에 얼마나 좋은 소식인가? 대저 그대는 자질이 본래 아름답지 않은 것이 아니고 의사는 본래 좋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중간에 이유 없이 발을 내 디뎌 속진에 함부로 달려 한 때 어긋나고 잃은 것이 적지 않았네. 이윽고 번연히 개오(改悟)하여 곧장 바른 데로 돌아옴이 이미 이와 같아, 이른바 전날 잃은 것은 거울에 낀 먼지를 씻는 것이 되는 것에 불과할 뿐이니, 이에 양심은 반드시 돌아오는 날이 있고 아름다운 자질은 끝까지 혼미한 이치가 없다는 것을 알았네. 그러나 전날의 어긋나고 잃은 것은 반드시 그 까닭이 있으니, 오늘 바른 데로 돌아온 것 또한 어찌 그 까닭이 없겠는가? 그대의 마음은 남의 말을 기다리지 않아도 생각건대 반드시 분명하게 이미 깨달았을 것이네. 일신의 득실은 관계된 것이 이와 같으니, 어찌 두려워하지 않겠는가? 이것은 오직 한 때의 지극한 경계가 될 뿐 아니라 이를 지켜 평생의 요결(要訣)로 삼아 어진 이와 친하고 덕 있는 이에게 나아가 끝까지 수립하는 바탕으로 삼기를 매우 바라네.

[문] 재동(在東)은 《맹자》〈양혜왕 하(梁惠王下)〉제3장에서, "하늘의 위엄을 두려워하여 이에 보전한다.[畏天之威于時保之]"라고 한 상문에 낙천(樂天)과 외천(畏天)을 함께 말했는데 여기에서 단지 외천을 말한 것은 소주(小註)에서 이른바 한 쪽만 논한 것주 7)이라고 한 것을 옳다고 여기고, 철원(澈源)주 8)은 바야흐로 위의 외천을 이었기 때문에 그 한 쪽을 염두에 두고 말하였다. 그러나 이 인용한 《시경》을 나누어도 절로 한 단락이 되니 대개 의도가 있는 것이다. 대저 낙천은 또한 외천에서 나오니, 능히 외천하여 그 나라를 보존하면 낙천하여 천하를 보존할 수 있는지라, 낙천을 말하지 않은 이유는 바로 낙천의 공부를 참으로 말한 것이라고 여깁니다. 재동은 "태왕(太王)과 구천(句踐)은 모두 지자(智者)의 일로 말한 것이지만 그 일은 크게 같지 않은 점이 있다. 태왕은 자연히 의리의 당연함을 알고 시세의 필연을 알았기 때문에 그 도를 따라 어김이 없었던 것이고, 구천은 그 이해를 보고서 그 형세가 감히 거스를 수 없음을 알고 그 이치는 감히 어그러지게 할 수 없음을 알아 억지로 그 도를 인하여 어기지 않은 자이다. 주자가 이른바 '의사가 절로 같지 않다.'라고 한 것주 9)은 이 때문이다."라고 하였는데, 철원은 "그런 것 같다."라고 하였습니다.
[답] "낙천은 또한 외천에서 나오기 때문에 절로 한 단락이 된다."라고 한 것은 옳네. 내 일찍이 생각한 것이 이와 같았는데 이 의론을 봄에 어긋나지 않으니 기쁘네. 재동이 태왕과 구천의 등급을 나눈 것은 매우 상세하고 또 자세하여 한 구절도 나의 뜻에 어긋나는 것을 보지 못하겠네.
[문] 《중용장구》 제1장에 "하늘이 명한 것을 성이라 이른다.[天命之謂性]"라고 한 장구(章句)에서 "사람과 사물이 각각 부여받은 이(理)를 얻었다.……"라고 하였습니다. 이미 "사람과 사물이 각각 부여받은 이를 얻었다."라고 하였다면 사람은 온전하고 사물은 치우침을 볼 수 있으니, 허다한 분수(分殊)는 천명(天命)의 본연이 아님이 없습니다. 이어서 말하기를 "건순(健順)과 오상(五常)의 덕을 삼는다."라고 하였으니, 분수(分殊)는 이일(理一)을 벗어나지 않음을 볼 수 있습니다. 또 "사람과 사물이 각기 그 성(性)의 자연을 따른다."라고 하였으니 분수(分殊)이고, 또 "성(性)과 도(道)가 같다."라고 하였으니 이일(理一)이 분수(分殊)를 벗어나지 않습니다. 나뉘면서 하나이고 하나이면서 나뉘니, 이것이 이의 오묘함입니다. 세상의 선비들이 편전(偏全)을 기질로 여기는 것은 결코 주자의 뜻이 아닙니다.
[답] 그대가 말한 의미를 곱씹어 음미해 보니, 매우 공평하고 바르네.
[문] 《논어》 〈위령공(衛靈公)〉에 "사람이 도를 크게 한다.[人能弘道]"라고 하였는데, 이 '인(人)' 자는 인심(人心)이 주재하는 곳입니다. 주재가 이미 이 이(理)인데, 주재의 이로 이 도를 주재하니, 이로 이를 주재하는 혐의가 있습니다. 그러나 심이 성정을 통솔하는 오묘함을 이에 볼 수 있습니다.
[답] 본 것이 바르네.
[문] 《대학장구》 전(傳) 7장에서 '노(怒)'라고 하지 않고 '분치(忿懥)'라고 하고, '희(喜)'라고 하지 않고 '호요(好樂)'라고 하였으니, 대개 분치는 노가 드러나 또 머물러 있는 것이고 호요는 희가 드러나 또 심한 것입니다. 대개 사람으로 하여금 그 드러난 것에 나아가 분명하게 살피게 하려는 것입니다.
[답] 만일 "심에 노하는 바가 있으면 그 바름을 얻지 못하고, 심에 기뻐하는 바가 있으면 그 바름을 얻지 못한다.……"라고 하면 말과 뜻이 갖추어지지 않아 반드시 정이 치성한 뒤에는 그 바름을 얻지 못하는 것이 많네.
[문] 명덕장(明德章)에서는 '하늘의 밝은 명[天之明命]'으로 말하였고, 신민장(新民章)에서는 '그 명이 오직 새롭다.[其命維新]'는 것으로 말하였으니, 이에 '명(明)'과 '신(新)'은 모두 천명 가운데의 일이고 인력이 사사롭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님을 알겠습니다.
[답] 위아래의 '명(命)' 자는 의가 같지 않는 것이 있네.
[문] 재동(在東)은 "기(器) 또한 도(道)이고 도 또한 기이니, 기 또한 도라는 것은 아래에서 위로 설명한 것이고 도 또한 기라는 것은 위에서 아래로 미루어 온 것이다."라고 하고, 철원(澈源)은 "이것은 상하가 없는 곳에 상하가 있는 것이다. 도 또한 기라는 것은 바로 체용이 일원이라는 것이고 기 또한 도라는 것은 현미(顯微)가 간격이 없다는 것이다. 명도(明道)는 사람들이 도와 기를 가지고 두 가지 물로 간주할까 걱정하였기 때문에 기 또한 도이고 도 또한 기라고 하였고, 이천(伊川)은 사람들이 도와 기를 가지고 하나의 물로 간주할까 걱정하였기 때문에 도는 절로 도이고 기는 절로 기이다고 하였으니, 성현의 가르침이 치밀함이 이와 같다."라고 하였습니다.
[답] 설명한 것이 어긋나지 않네.
주석 7)소주(小註)에서……것
이 장의 소주에 신안(新安) 진씨(陳氏)가 "《시경》을 인용하면서 낙천 한 쪽을 언급하지 않은 것은 또한 우연일 뿐이다.[引詩不及樂天一邊, 亦偶然耳.]"라고 한 것을 말한다.
주석 8)철원(澈源)
황철원(黃澈源, 1878~1932)을 말한다. 자는 경함(景涵), 호는 은구재(隱求齋)·중헌(重軒), 본관은 장수(長水)이다. 전라남도 화순군 이양면 기운동에서 태어났다. 정의림의 문인이다. 저서로는 《중헌집》이 있다.
주석 9)주자가……것
《차의(箚疑)》에 "태왕은 이의 당연함을 알고서 경으로써 이를 따랐고, 구천에 이르러서는 순전히 사사로운 뜻이기 때문에 절로 같지 않다.[太王知理之當然而敬以循之者, 至於句踐, 則純是私意, 故曰自不同也.]"라고 한 것을 말한다.
與吳陽路
近年以來。竊聞賢者擺脫外驚回心易慮。講討問辨。日有課程云。此是人世間何等勝算。此是知舊間何等好消息。大抵賢者資質本非不美。意思本非不好。而中間無端出脚。浪走塵土。一時差失。至爲不少。旣而幡然改悟。旋卽反正己如此。所謂前日之失。不過爲洗鑑之舊塵而已。乃知良心有必反之日。美質無終迷之理。然前日之差失。必有其故。今日之反正。亦豈無其故賢者之心。不須人言。而想必了然已悟矣。一身得失所係如此。豈不可畏。此不惟爲一時之至戒。持以爲平生要訣。親賢就德。以爲究竟樹立之地企仰。
在東以爲畏天之威于時保之上文。倂言樂天畏天。而此只言畏天者。少註所謂偏論者是。澈源以爲方承上畏天。故帶言其一邊。然分此引詩。而自爲一段盖有意。大抵樂天。亦自畏天中出來。能畏天而保其國。則可以樂天而保天下。其所以不言樂天者。乃所以眞言樂天之功夫也。在東曰。太王句踐。皆以智者事言之。其事大有不侔。太王是自然明乎義理之當然。而識其時勢之必然。故循其道而無違。句踐則見其利害。而識其勢之不敢逆。知其理之不敢悖。强因其道而不違者也。朱子所謂意思自不同者。以此也澈源曰似然。
樂天亦自畏天中來。故自爲一段者。得之。吾嘗思得如是。今見此論不爽。可喜。在東分太王句踐之等。甚詳且悉。未見有一句相違於吾意。
天命之謂性。章句人物各得其所賦之理云云。旣云各得其所賦之理。則可見人全物偏。許多分殊。莫非天命之本然也。繼曰以爲健順五常之德。則可見分殊之不外乎理一也。又曰人物各循其性之自然則分殊也。而又曰。性道同。則理一不外乎分殊也。分而一一而分。此理之妙也。世儒以徧全爲氣質。決非朱子意也。
咀嚼出意味。甚平正。
人能弘道。此人字。是人心主宰處。主宰旣是理。以主宰之理。主宰此道。似有以理主理之嫌。然心統性情之妙。於是乎可見。
見得正。
不曰怒而曰忿懥不曰喜而曰好樂。盖忿懥。是怒之著且留。好樂。是喜之著且甚。盖欲使人就其著。而明察之。
如曰心有所怒。則不得其正。心有所喜。則不得其正云云。則語意未備。必情熾而後。多不得其正。
明德章。以天之明命言之。新民章。以其命維新言之。乃知明新皆天命中事。非人力之所私也。
上下命字。義有不同。
在東曰。器亦道道亦器。器亦道。自下說上去。道亦器自上推下來。澈源曰。此是無上下處有上下者。道亦器。卽體用一原也。器亦道。即顯微無間也。明道憂人把道器看作兩物也。故曰。器亦道。道亦器。伊川憂人把道器看作一物也。故曰道自道。器自器。聖賢垂教之密。如此。
說得不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