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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호남근현대문집
  • 일신재집(日新齋集)
  • 권7
  • 서(6)(書(6))
  • 이치경【수혁】에게 답함(答李致慶【洙爀】)

일신재집(日新齋集) / 권7 / 서(6)(書(6))

자료ID HIKS_OB_F9001-01-202101.0007.0001.TXT.0045
이치경【수혁】에게 답함
처음에 건산(巾山)이 방재(傍材)보다 멀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접때 두 소년이 떠날 때 운여(雲汝)에게는 편지를 쓰고 치경(致慶)에게는 쓰지 않았네. 소년이 돌아와서야 비로소 멀다고 여겼던 곳이 가깝고 가깝다고 여겼던 곳이 먼 줄을 알았고, 심지어 전인(專人)주 109)이 있었는데도 한 글자의 안부도 묻지 못했으니, 저버린 마음 매우 부끄러워 사례할 길이 없네. 다만 그대는 이런 것들을 따지지도 않고 이렇게 손수 편지를 보내 정성스러운 뜻이 편지에 넘쳐나니, 넓게 포용하는 마음을 알겠기에 더욱 감탄하네. 모르겠다만 편지를 받은 지 여러 날이 되었으니 어버이를 모시며 경서를 공부하는 체후는 절서에 따라 더욱 진중한가? 그리운 마음 감당할 수 없네. 의림(義林)은 비루하고 용렬함이 어제와 같아 말할 것이 없네. 미발(未發)과 이발(已發)의 설은 매우 상세하니, 조예가 정밀하여 참으로 헛되지 않은 줄 알겠네. 중인(衆人)들이 비록 미발이라고 하더라도 마치 바람이 안정 된 뒤에도 오히려 여파가 있는 것과 같다고 한 것은 더욱 온전히 형용해 낸 곳이네. 대개 일이 이르지 않았는데 미리 맞이하고 일이 이미 지나갔는데 그것을 잡으면, 잠깐 일어났다가 사라지고 혹 어두웠다가 어지러워져 평온한 경계가 없을 것이네. 그러나 또한 전적으로 미발한 시절이 없다고 해서는 불가하니, 마치 야기(夜氣)가 아침에 갑자기 휴식하여 우연히 순수한데로 돌아가는 곳 같은 것이 이런 경우이네. 공부의 요체는 바로 이런 곳에 있으니, 다만 뜻을 붙여 잡으려고 하다가 병폐를 생기게 해서는 불가할 것이네. 주자가 이른바 "일용의 사이에 장경(莊敬)과 함양(涵養)의 공부가 지극하여 인욕의 사사로움이 어지럽게 하는 것이 없으면 발하기 전에는 맑은 거울 잔잔한 물과 같으며, 발한 뒤에는 절도에 맞지 않음이 없다."라고 하였으니, 참으로 만고의 지극한 말씀인데 어떻게 생각하는가?
주석 109)전인(專人)
어떤 소식이나 물건을 전하기 위해 특별히 사람을 보내는 것 또는 그 사람을 말하며, 전족(專足), 전팽(專伻)이라고도 한다.
答李致慶【洙爀】
初謂巾山遠於傍材。故向日兩少年之去。修書於雲汝。而未及於致慶矣。其迴也始知遠者近而近者遠。至有專人而無一字相問。愧愧負負。無以謝爲。但賢者不較不猶。致此手訊。繾綣之意溢於幅面。仰認包洪。尤可感歎。未審信後有日。侍旁經履。連序增重。慰溯無任。義林陋劣如昨。無足奉提。未發已發之說。極其詳悉。可認造詣精密。儘不虛矣。衆人雖曰未發。而如風定之後猶有餘波者尤形容十分處。蓋事未至而迎之。事已過而將之。乍起乍滅。或昏或亂。無有妥帖境界。然亦不可謂專無未發時節。如夜氣平朝。霎爾休息。偶然回淳處。是也。工夫要處。正在此處。但不可着意把捉。以生病敗也。朱子所謂日用之間。莊敬涵養之功至。而無人欲之私而亂之。則其未發也。鏡明水止。其發也。無不中節。眞萬古至言也。如何如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