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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신재집(日新齋集)
  • 권7
  • 서(6)(書(6))
  • 강자명에게 답함(答姜子明)

일신재집(日新齋集) / 권7 / 서(6)(書(6))

자료ID HIKS_OB_F9001-01-202101.0007.0001.TXT.0011
강자명주 17)에게 답함
생각을 지극히 하여 마음이 상해 무근(無根)의 화(火)주 18)가 날마다 가슴속에 성하게 생긴다고 하니, 이것은 알지 못하겠네. 만약 태사공(太史公)이 빌미를 만든 것주 19)이 아니라면 혹 사마자휘(司馬子徽)의 좌치(坐馳)주 20)를 범한 잘못일 것이네. 저것 때문이든 이것 때문이든 모두 좋은 의사는 아니네. 지금 사람은 대부분 단계를 뛰어넘고 쉽게 여겨 망령되이 행동하여 고생만 하고 실득이 없어 이런 병을 초래하네. 만일 이치를 궁구하는 것을 말하자면 마땅히 일상의 평이한 곳에서 그 사물을 변별하여 곧 공사(公私)의 천리와 인욕의 구분을 또렷하고 분명하도록 하고, 만일 실천을 말하자면 마땅히 어묵(語默)과 동정(動靜)에 십분 힘을 붙여 성(誠)을 기르고 진(眞)을 쌓아 오래 되어 절로 편안히 쉬는 날이 있도록 해야 할 것이요, 흐릿하고 아득한 곳에서 탐색하고 생각하며, 마음을 보존하고 지키는 공부에 안배하고 조작하여 마음이 수고롭고 기가 부족하도록 하여 병폐를 생기게 해서는 불가하네. 그렇게 되면 이것은 창포(菖蒲)나 복령(伏令) 등으로 효험을 바랄 수 없네. 보내온 편지에서 이른바 마음을 보존한다는 '존심(存心)' 두 글자는 실로 창편(倉扁)주 21) 집안 제일의 법문(法門)이 되니, 모름지기 허다한 생각과 허다한 수고와 분주한 것을 쓸어내어 어린아이가 처음 학교에 갈 때의 모양을 하여 쇄소응대(灑掃應對)와 사친종형(事親從兄)을 하는 것에서부터 오늘 한 가지 일을 행하고 내일 한 가지 일을 행하여 성심(誠心)이 날마다 자라도록 힘쓴다면 사의(私意)는 사라지기를 기약하지 않아도 절로 사라질 것이니, 반드시 채워지지 못한 힘으로 갑자기 배척하고 공격하다가 스스로 낭패를 취하지 않을 것이네.

〔문〕심술(心術)의 사이에 염려의 은미함이 조금이라도 미진한 것이 있는 것 이것이 안자(顔子)의 비례처(非禮處)이니, 시청언동(視聽言動) 상에 무슨 비례(非禮)가 있어 사물(四勿)주 22)로 알려준 것입니까?
〔답〕심술염려와 시청언동은 비록 내외의 구별이 있지만 그 작용은 서로 기다리지 않은 적이 없으니, 어찌 심술에서 잃고서 시청에서 얻는 자가 있겠는가?
〔문〕쇄소응대(灑掃應對)는 효제(孝弟) 가운데 한 가지 일이고, 효제는 성명(性命) 가운데 한 가지 일이라면 쇄소응대의 소이연(所以然)은 효제이고, 효제의 소이연은 성명입니다.
〔답〕실로 그러하네.
〔문〕병들어 침상에 누워 있을 적에 용렬한 의원에게 내맡기는 것은 자식을 사랑하지 않고 어버이에게 효도하지 않음에 비견된다고 하였는데,주 23) 병들어 침상에 누운 사람은 자신을 말하는 것입니까, 부모와 자식을 말하는 것입니까? 허씨(許氏)의 설주 24)로 보면 자신을 말하는 것이 아니겠으며, 진씨(陳氏)의 설주 25)로 보면 부모와 자식을 말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답〕허씨 설은 조금 상고하였다고 하겠지만 끝내 진씨 설이 평온한 것만 못한 듯하니, 율곡(栗谷)이 진씨 설을 따랐던 이유이네.
〔문〕"사람이 능히 이와 같지 못한 것은 단지 실리(實理)를 보지 못했기 때문이니, 실리라는 것은 실제로 옳음을 보고 실제로 그름을 보는 것이다."주 26)라고 하였는데, 주자(朱子)가 말하기를 "실리(實理)와 실견(實見)은 같지 않으니, 아마 기록할 때 빠진 글자가 있는 듯하다."라고 하였습니다. 대개 이(理)는 실하지 않음이 없고 다만 보는 것이 실하지 않음이 있는데, "실리라는 것은 실제로 옳음을 보고 실제로 그름을 보는 것이다."라는 문장으로 보면 실제로 봄이 있은 뒤에 실리가 있는 듯하기 때문에 주자가 "기록할 때 빠진 글자가 있는 듯하다."라고 말한 것입니까?
〔답〕실리는 천연적으로 절로 인력(人力)과 상관이 없으니, 어찌 사람이 보는 것의 실불실(實不實)이 어떠한가를 기다리겠는가? 만약 수양하는 측면에서 말하자면 실제로 본 뒤에 실리가 있는 것이네.
주석 17)강자명(姜子明)
강진섭(姜晉燮, 1870~?)을 말한다. 자는 자명, 본관은 진주(晉州)이다. 정의림(鄭義林, 1845~1910)의 문인이다.
주석 18)무근(無根)의 화(火)
명문(命門)과 원양(元陽)의 병 기운으로 되는 화를 말한다. 허해서 생기는 화〔虛火〕라고도 한다. 《국역 동의보감》
주석 19)태사공(太史公)이……것
지나치게 책을 읽어 병이 생기는 것을 말한다.《주자대전》 권47 〈여자약에게 답함〔答呂子約〕〉26서에 "다만 보내신 편지에서 보면 수고롭게 심력을 소비한 소치라고 생각하고 있으며, 다른 벗들의 편지에서도 독서하는데 지나치게 힘을 들여 그렇게 되었다고 하는데, 무슨 책을 읽는지요? 성현이 남긴 말들은 마음을 보존하고 본성을 기르는 일이 아님이 없으니, 결단코 도리어 병을 생기게 하는데 이르러서는 마땅하지 않습니다. 아마도 태사공이 병의 빌미를 만들었을 것입니다.〔但來書以爲勞耗心力所致, 而諸朋友書亦云讀書過苦使然, 不知是讀何書? 若是聖賢之遺言, 無非存心養性之事, 決不應反至生病. 恐又只是太史公作祟耳.〕"라고 한 데서 나온 말이다.
주석 20)사마자휘(司馬子徽)의 좌치(坐馳)
조용히 앉아 있는 듯해도 마음속으로는 온갖 번뇌가 치달리는 것을 말한다. 좌치는《장자》 〈인간세(人間世)〉에 "저 비어 있는 공간을 볼지어다. 텅 빈 방에 햇살이 비치니 길상은 고요한 곳에 머무르는 것이다. 또한 (길상이 머물지 않는 것은) 마음이 고요히 머물지 않기 때문이니, 이것을 일러 몸은 가만히 앉아 있지만 마음이 이리저리 치닫는다고 한다.[瞻彼闋者, 虛室生白, 吉祥止止. 夫且不止, 是之謂坐馳.]"라고 한 데서 나온 말이다. 송(宋) 나라 사마자휘(司馬子徽)가 《장자》에 나오는 '좌망(坐忘)'의 설을 좋아하여 〈좌망론(坐忘論)〉을 짓자, 정자(程子)가 "잊으려고 하는 그 자체가 벌써 좌치(坐馳)에 떨어진 것이다."라고 비평한 고사가 있다. 《近思錄 卷4 存養》
주석 21)창편(倉扁)
한나라 때 창공(倉公)과 전국 시대 편작(扁鵲)으로, 모두 명의(名醫)로 일컬어진다.
주석 22)사물(四勿)
《논어》 〈안연(顏淵)〉에서 공자의 제자 안연이 '극기복례(克己復禮)'의 조목을 물었을 때 공자가 "예가 아니면 보지 말며, 예가 아니면 듣지 말며, 예가 아니면 말하지 말며, 예가 아니면 움직이지 말라.[非禮勿視 非禮勿聽 非禮勿言 非禮勿動]"라고 한 것을 말한다.
주석 23)병들어……하였는데
《소학》 〈가언(嘉言)〉에 나오는 정이(程頤)의 말이다.
주석 24)허씨(許氏)의 설
병상에 누운 사람은 부모와 자식이 아니고 자신이 병들어 누운 것이라고 하였다.《소학집주증해》에서 이 문장의 고증(攷證)에 나온다. 허씨는 허형(許衡, 1209~1281)을 말한다.
주석 25)진씨(陳氏)의 설
이 구절 주석에 나오는 진순(陳淳, 1159~1223)의 설을 말한다.
주석 26)사람이……것이다
《근사록》 권7 출처(出處)에 나오는 정이(程頤)의 말이다.
答姜子明
致思傷心。無根之火。日熾于中。此則未喩。若非太史公作祟。則或犯司馬子徽坐馳之失耶。以彼以此。皆非好意思。大抵今人。多是躐易忘作。徒勞無得。致有此病。如言窮理。則當於日用平易處。辨別其物。則公私天理人欲之分。使之了了分明。如言踐履。則當於語默動靜上。十分着力。使之養誠積眞。久自有稅駕之日。不可探索摸想於悅惚渺茫之地。安排造作於操存持守之功。使心勞氣乏。以生病敗也。然則此非菖蒲伏令等所可責效。來喩所謂存心二字。實爲倉扁家第一法門。切須掃却許多思量。許多勞攘作小兒子初上學時模樣。自灑掃應對事親從兄上。今日行一事。明日行一事。務使誠心日長。則私意不期消而自消。不必以未充之力。遽加排攻。而自取狼狽也。
心術之間。念慮之微。少有未盡者。是顔子之非禮處。則視聽言動上。有何非禮。告之以四勿。
心術念慮。與視聽言動。雖有內外之別。而其用。則未嘗不相須。豈有失於心術而得視聽者哉。
灑掃應對。是孝弟中一事。孝弟是性命中一事。則灑掃應對所以然。孝弟是也。孝弟所以然。性命是也。
固然。
病臥於床。委之庸醫。比之不慈不孝。病臥於床者。以身之謂耶。以父母與子之謂耶。以許氏說觀之。則非以身之謂耶。以陳氏說觀之。則非以父母與子之謂耶。
許氏之說稍考。終不似陳說之爲平穩也。所以栗谷從陳氏之說。
人不能若此者。只爲不見實理。實理者。實見得是。實見得非。朱子曰。實理與實見不同。恐記錄漏字。蓋理無不實。但見未有實。而以實理者。實見得是。實見得非之文。觀之。則似有實見然後。有實理。故朱子言記錄之漏否。
實理。是天然自有不犯人力底。何待乎人之見實不實如何也。若以修爲上言之。有實見而後實理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