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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신재집(日新齋集)
  • 권6
  • 서(5)(書(5))
  • 홍사증에게 답함(答洪士拯)

일신재집(日新齋集) / 권6 / 서(5)(書(5))

자료ID HIKS_OB_F9001-01-202101.0006.0001.TXT.0045
홍사증에게 답함
뜻밖에 한 폭의 서신을 받게 되니, 감사한 마음을 무엇에 비유하겠습니까. 하물며 서신에 담긴 말과 뜻이 모두 지극하여 형식과 실질을 겸비하였으며, 또한 별지(別紙)에 적힌 수십 개의 조항이 모두 스스로 깊이 탐구하여 자세히 풀어내는 가운데에서 나왔으니, 근래 일상생활을 하는 중에도 세밀하게 힘써 조예가 깊어졌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구구하게 위로가 되어 기쁘니, 어찌 남의 일처럼 느끼겠습니까. 다만 여러 조목 가운데, 구두【句讀】를 말함에 자질구레한 뜻은 많고, 핵심을 논설할 때는 중요한 뜻은 적으니 이는 참으로 알지 못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정자(程子)가 말하기를, "학문은 채찍질하여 내면으로 가까이하여 자기 몸에 붙게 하여야 한다."주 112)라고 하였는데, 어찌 이를 말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신을 신은 채 발바닥을 긁고, 궤만 사고 구슬은 돌려주는 격주 113)이니, 깊이 경계해야 할 것입니다.

【질문】
'존심(存心)'이란 마음을 잡아 보존하고 잃어버린 것을 찾는 일이니, 이것은 배우는 자들이 처음부터 힘써야 할 곳이고, '진심(盡心)'이란 공부의 가장 지극한 경지인 것입니까?
【대답】
'마음을 다하여 성(性)을 안다'는 것은 아는 것의 일이고, '마음을 보존하여 성을 기르는 것'은 실행하는 일입니다. 아는 것에는 다소 여러 가지가 있고, 실행하는 것에도 다소 여러 가지가 있으니, 앎이 진보할수록 행실에 힘이 더하게 되고, 힘써 행할수록 앎이 더욱 진보하게 됩니다. 그러니 본심을 잃지 않도록 보존하고 기르는 것【存養】이 초학(初學)이 된다고 하고, 마음을 다하는 것【盡心】이 가장 지극한 것이라고 일괄적으로 논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질문】
"명(命)이 아닌 것이 없다."주 114)라는 말에서, '명'은 진씨(陳氏)는 '기(氣)'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제 생각에는, '막비(莫非)' 두 글자는 마땅히 정명(正命)과 합치되는 듯한데, 정명이 아니라면 어떻게 온전히 기(氣)를 가리키는 것이라 할 수 있겠습니까.
【대답】
명(命)은 기(氣)에서 나오는 것이 있고 이(理)에서 나오는 것이 있는데, 이에서 나온 것은 진실로 기를 띠고 있는 것으로는 볼 수 없고, 기에서 나온 것은 진실로 그 이치가 없다고 할 수 없습니다.
【질문】
《맹자(孟子)》에, "만물의 이치가 모두 내 몸 안에 갖추어져 있으니, 자신의 몸을 돌이켜 보아 참되다면 이보다 더 큰 즐거움이 없다."주 115)라고 하였는데 이는 윗 글에 나온 '진심(盡心)'의 공효(功效)일 것입니다.
【대답】
만물이 다 나에게 갖추어져 있음을 아는 것이 바로 마음을 다하여 본성을 안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몸을 돌이켜 보아 참되다는 것이 바로 마음을 보존하고 본성을 기르는 것입니다.
【질문】
"남과 같지 못함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주 116)라고 말한 부분은, 수오지심(羞惡之心)이니, 사람이라면 누구나 지니고 있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의 어짊과 능함을 보고 자신의 불능을 생각하면, 어느 누가 부끄러워하는 마음이 없겠습니까? 다만 저의 병통은 이러한 마음이 단지 잠깐씩만 있다가 잠깐 사이에 사라져서 확충(擴充)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대답】
이미 남과 같지 못함을 부끄러워하였다면, 또 성인(聖人)과 같지 못함을 마땅히 부끄러워해야 할 것이니, 이것이 확충하는 방법입니다.
【질문】
"패자(覇者)의 백성은.……"주 117)이라고 한 부분에서, 먼저 패도(覇道)를 말한 뒤 왕도(王道)에 이른 것은 어째서입니까? 음식으로 비유해 보자면, 패도는 입에 맞는 육류와 같아서, 오래도록 먹으면 물리는 느낌이 있으나, 왕도는 숙속(菽粟)이 입에 들어오는 것과 같아서 평이하고 담백하여 별다른 맛이 있지는 않지만, 오래도록 먹어도 물리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대답】
말은 본디 중요한 것을 먼저 말하고 가벼운 것을 뒤에 말하는 경우가 있으며, 또한 가벼운 것을 먼저 말하고 중요한 것을 뒤에 말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물며 다음 글에서 진술한 바와 같이 왕자(王者)의 일이 아님이 없음에 있어서는 어떠하겠습니까? 만약 이를 음식으로 비유한다면, 왕자는 굶주린 사람을 보면, 애처로워하는 마음이 있어 음식을 줄 것입니다. 패자(覇者)는 굶주린 사람을 보면 명예를 얻고자 하는 마음에 음식을 줄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사람이 감응한 것과 감응하지 않은 것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질문】
"선정(善政)이 선교(善敎)만 못하다.……"주 118)라고 한 부분에서, 선정이 세워진 이후에 선교가 행해질 수 있는 것이니, 만약 선교가 행해진 이후에는, 선정을 베풀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맹자가 정사를 먼저 말한 이후에 가르침을 말씀하신 것인지요?
【대답】
만약, "선정이 세워진 이후에 선교를 행한다."고 말하면 괜찮지만, 만약, "선교가 행해진 이후에는 선정을 베풀 필요가 없다."고 말하면 불가합니다. 그러므로 요순시대에 화목해진 것주 119)과 성왕과 강왕의 시대에 형벌을 쓰지 않은 이후주 120)로 다시는 베풀 만한 정사가 없었던 것입니까?
【질문】
주자(朱子)가 말하기를, "이 몸은 단지 한 개의 몸통이니, 안과 밖으로 천지 음양의 기(氣)가 아님이 없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몸통만 유독 천지 음양의 기가 아닌 것인지요?
【대답】
몸통은 음양이 모이는 곳이요, 안과 밖은 음양이 흐르는 곳입니다.
【질문】
"마음에는 출입이 있다.……"라고 한 것은 비유하자면, 화로에 한 점의 불씨가 숨어 있는데, 불씨가 다해 갈 때 바람을 불어주면 다시 환해지는 것과 같습니다.
【대답】
출입한다는 것은 곧 존망(存亡)의 뜻이니, 화롯불에 비유할 수 있을 것입니다.
【질문】
하나의 이치가 하늘에 있어, 원(元)·형(亨)·이(利)·정(貞)이 되고, 사람에게 있어서는 인(仁)·의(義)·예(禮)·지(智)가 됩니다. 그러나 천지의 운용(運用)에는 질서가 있으나, 사람은 그렇지 않습니다.
【대답】
하늘의 운행에는 질서가 있으나 사람은 그렇지 않다는 것은, 곧 분수처(分殊處)가 됩니다. 그리하여 하나의 생각이 생겨남에 사계절의 질서가 갖추어지지 않음이 없습니다.
【질문】
구사(九思)주 121)는 보고 듣는 것을 먼저 하니, 앎의 차원에서 말한 것이고, 구용(九容)주 122)은 손과 발로 행동을 먼저 하니, 실천의 차원에서 말한 것인지요?
【대답】
옳은 듯합니다.
【질문】
천지가 만물을 생성하게 하고, 성인이 모든 일에 응하는 것이 다 하나의 이치입니다. 그러나 성인은 다만 사물에 응할 뿐 만물을 생성하지는 않고, 천지는 다만 만물을 생성할 뿐 지나친 것을 억제하고 모자란 것을 보충하여 조화를 이루도록 하지는 않으니, 반드시 하늘과 인간이 상수(相須)한 뒤에야 도리(道理)에 흠결이 되는 부분이 없지 않겠습니까?
【대답】
이 단락은 매우 좋습니다.
【질문】
무릇 '치지(致知)'를 단지 성정(情性)에서 구한다면 간략함을 힘쓰는 것이 심한 것 같고, 단지 만물에서 구한다면 이 또한 넘침에 힘쓴 것이 심한 것 같습니다. 그리하여 정자(程子)는, "먼저 사단(四端)에서 구하라."라고 하였고 또,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도 모름지기 살펴야 한다.……"주 123)라고 말한 것입니까?
【대답】
이른바, "체(體)와 용(用)을 모두 거론하고 사물과 자신을 모두 다한다."는 것은 '치지(致知)'에서 또한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질문】
정자(程子)가 어떤 이의 물음에 답하기를, "성인의 말씀은 절로 가까운 곳에 있다가, 절로 먼 곳에 있다.……"주 124)라고 하였는데, 이 말은 멀고 가까움이 두 가지 일인데, 가까운 곳에 있어서는 억지로 파낸다고 깊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라서 그런 것입니까? 무릇 한 가지 일에는 가까움이 있고 멂이 있으니, 깨끗이 쓸어 청소하고 손님을 응대하는 것이 지극히 비근하지만 스스로 그렇게 되는 이치는 지극히 먼 것이 아니겠습니까?
【대답】
정자가 여기서 멀고 가까움을 이야기 한 것은, 각 조(條)에서 이야기한 것이니, 땅과 같이 가깝고 하늘처럼 멀다는 말과는 같지 않은 듯합니다.
【질문】
정자가 말하기를, "자신으로부터 남에게 미치는 것을 '인(仁)'이라고 하고, 자신을 미루어 사물에 미치는 것은 '서(恕)'이다." 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니 '이(以)'라는 글자에도 또한 미룬다【推】는 뜻이 있는 것 같습니다.
【대답】
하늘의 도는 변화하여 각기 성(性)과 명(命)을 바르게 하니, 이는 천지의 자연스러운 추이입니다. 하나의 이치가 혼연하여 널리 응하고 세세히 들어맞으니, 이는 성인의 자연스러운 추이입니다.
【질문】
형이상과 형이하의 뜻에 대해 제가 어리석고 밝지 못하니, 원컨대 한 문장으로 상하의 분별을 보여주시기 바랍니다.
【대답】
【형이상과 형이하의】 상과 하는 형체가 나타나는 상하가 아니니, 바로 이 '형(形)' 한 글자는, 도기(道器)주 125)의 경계가 이와 같음을 말한 것입니다.
【질문】
무극(無極)으로 성(性)을 말하고, 태극(太極)으로 심(心)을 말하니, 고요한 가운데 조짐이 아닌 것이 없음이 무극이요, 유행(流行)하여 방체(方體)가 있는 것이 태극입니다.
【대답】
무극과 태극은 단지 하나의 이치로, 마음에 갖추어진 것입니다. 장차 무극이 도성(道性)을 부르거나 장차 태극이 도심(道心)을 부를 수 없으니, 이는 무극과 태극의 뜻을 알지 못하고 아울러 마음과 본성의 분별도 역시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질문】
항상 온후한 생각을 보존하면 자연히 환히 드러날 수 있게 되고, 자연히 참열(慘烈)하게 되며, 자연히 수렴할 수 있게 됩니다. 세 가지 가운데 온화함이 환히 드러나게 되면 쉽게 볼 수 있는데, 만약 참열(慘烈)·강단(剛斷)·수렴(收斂)과 같은 경지에 이르게 되면 흔적이 없어 끝내 보려고 해도 볼 수 없게 될 것입니다.
【대답】
춘하추동(春夏秋冬)의 계절을 보면, 각자 하나씩 그 시기가 있으니, 봄에 생겨나는 기운이 아닌 것이 없으면서 그 가운데 운행하니 이것으로 알 수 있습니다.
【질문】
음(陰)이 구괘(姤卦)에서 생겨나 곤괘(坤卦)에 이르러 순음(純陰)이 됩니다. 양(陽)은 복괘(復卦)에서 생겨나 건괘(乾卦)에 이르러 순양(純陽)이 됩니다. 양의 극열(極熱)하고 홍염(洪炎)한 기운이 순양월(純陽月)주 126)에 있게 되면 반대로 양이 쇠하고 음이 생겨나는 때가 되니, 이것은 어떤 이치인지요? 음 또한 그러합니까?
【대답】
미세한 양의 기운이 아래에서부터 생겨나면, 궁음(窮陰)주 127)이 위에서 다하게 되고, 미세한 음의 기운이 안에서부터 생겨나면 항양(亢陽)주 128)이 밖으로 타오릅니다. 이러한 까닭에 아교가 꺾이고 손가락이 얼어 떨어지는 추위와주 129) 쇳덩이가 흐르고 돌이 녹는 열기는 대부분 동지(冬至)와 하지(夏至) 이후에 생겨나는 것입니다.
【질문】
《근사록(近思錄)》의 주(註)에 의하면, "노심초사하며 억지로 통하게 해서는 안 된다."라고 하였는데, 초학자에 있어서 어찌 노심초사하지 않고서 자연히 통철(洞澈)하게 되기를 앉아서 기다릴 수 있겠습니까? 그렇다면, "생각하고 생각하되, 또 거듭 생각해야 한다."주 130)는 말은 무슨 뜻입니까?
【대답】
이 말은 전적으로 힘써 고심하고 탐색하되 함양(涵養)에 힘쓰지 않는 자를 감발시키기 위한 것입니다. 함양이 무르익으면 독서(讀書)와 궁리(窮理)에 모두 힘을 쓰기 쉬워질 것입니다.
【질문】
《근사록(近思錄)》에서, "마음을 침잠하여 묵묵히 생각하라."주 131)라고 하였는데, 억지로 마음이 침잠하여 묵묵히 생각하고자 하더라도 잡스럽게 어지럽고 요란스러운 마음이 머리를 내밀어 일정함이 없습니다. 대개 공부를 시작할 때, 먼저 먼저 의관을 가다듬고 용모를 바르게 한 뒤에, 오래도록 느슨해지지 않는다면, 어느 날 절로 묵묵히 생각하는 경지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대답】
이것이 언제나 마음을 불러 일깨운다는 말이 있는 까닭입니다. 그러나 이것만 믿고 궁리(窮理)하는 공부에 힘쓰지 않으면 안 됩니다. 아랫 부분의 문장에 담긴 뜻은 약간 이포새(伊蒲塞)주 132)의 기미가 보입니다.
【질문】
사람 마음의 어리석고 막힌 부분을 무심(無心)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정자가 말한 '무심'은 그저 사심(私心)이 없는 것을 말한 것일 뿐입니다.
【대답】
비록 어둡고 막힘이 극에 달하였더라도 본심(本心)이 없다고 말할 수는 없으니, 그러므로 정자가 '무심'은 불가하다고 여긴 것은 이러한 뜻이 아닙니다.
【질문】
《근사록(近思錄)》에서 말하기를, "사람의 성(性)은 본래 선하니, 순리대로 나아가면 본심 또한 어렵지 않다.……"라고 하였습니다. 다만 어리석은 저의 생각에 내면에 기품(氣稟)의 구속됨이 있고, 밖으로 사물에 얽매이는 폐단이 있으면, 매번 순리대로 나아가면 어려움이 없다는 구절을 외우며 자신에게서 징험해 보이고자 한들, 제지당하고 모순될 것이니, 어떻게 해야 어렵지 않은 공부가 가능하겠습니까?
【대답】
앎이 참되지 않기 때문에 항상 그 어려움을 괴롭게 여기는 것입니다. 그러나 참된 앎은 창졸간에 분별할 수 없는 것이니 어찌 참된 앎을 기다리면서 힘써 행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다만 아는 바를 따르되 지극히 어려운 공부에 이르게 된다면 점차 어렵지 않은 효험이 나타날 것입니다.
【질문】
사람의 법도를 세우는 것【立人極】주 133)은 반드시 정(靜)을 주로 삼아야 하니, 염려되는 것은 이것이 회암부자(晦庵夫子 주희(朱熹))의 말씀인데 다른 날 육씨(陸氏 육구연(陸九淵))의 주정(主靜)을 나무란 것은 어째서입니까? '정'이라는 한 글자에 두 가지 뜻이 있는지 몰랐던 것입니까?
【대답】
정을 주로 한다는 것은 주자(周子 (周敦頤))의 말이지 상산(象山 (陸九淵))의 말이 아니니, 상산의 학문은 정을 주로 한다는 말과 매우 다릅니다.
【질문】
《중용》 「귀신장(鬼神章)」의 주에 이르기를, "사람의 마음이 움직이기 시작하자, 마음이 기에 도달하게 된다."라고 하였는데, 그렇다면 사람의 마음이 움직이지 않을 때에는 천지의 기와 더불어 서로 접속(接續)되지 않아서 끊어짐이 있는 것입니까?
【대답】
"하나이기 때문에 신묘하다."주 134)라고 하였으니 사람의 몸에서 사체(四體)와 같으니 사물과 닿으면 느끼지 않음이 없으니, 한 몸이기 때문입니다. 고요할 때 만약 한 몸이 아니라면, 움직일 때 어찌 능히 서로 느낌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질문】
우진(祐鎭)주 135)은, "기질(氣質)이 비록 다르더라도 성(性)은 본디 다르지 않다."라고 하였는데, 승환(承渙)은, "본연의 성(性)은 총명하고 밝으나, 기질(氣質)의 성(性)은 맑음과 혼탁, 순수와 잡됨이 있다."라고 하였습니다. 이(理)는 본디 혼연하여 잡됨이 없으나, 형(形)과 기(氣)의 가운데로 떨어지게 되면 선악의 편벽되어 다름이 생기는 것입니다. 만약 이를 같다고 한다면, 사람이 태어난 측면을 가리켜 설명하는 것이니 어떠합니까? 우진은, "성은 기질에 있어서 물이 그릇에 담긴 것과 같다."라고 하였는데, 어찌 그릇이 더러워진 것을 가지고 물 또한 탁하다고 하겠습니까?
【대답】
성(性)은 본디 두 가지가 아니나 기질(氣質) 속으로 들어가면, 단지 이(理)만을 가리켜서 말한 것은 본연의 성(性)이고, 기질을 겸하여 말한 것은 기질(氣質)의 성(性)이 됩니다. 총명하고 밝음을 본연의 성으로 삼으면, 이는 곧 심(心)을 성(性)으로 인식한 것입니다. 맑고 혼탁하며 순수하고 섞인 것이 기질의 성이 되니, 이것이 바로 기를 불러 이(理)를 세운다는 것입니다. 또 이르기를, "모두가 사람이 태어난 측면을 가리켜 말한 것이다."라고 하였는데 곧 사람이 태어난 이후에는 다시는 본연의 성이 없는 것입니까? 사증(士拯)의 말은 구절마다 막히는 부분이 있으니, 문녕(文寧)의 말이 조금 낫습니다. 그러나 그릇이 더러워진 것은 아니니 물과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질문】
마음은 변할 수 있으나 형체는 변할 수 없다는 뜻을 논하였는데, 우진(祐鎭)은, "우리의 몸이 본래 천지에서 난 것이므로, 우리의 마음이 사계절에 통한다."라고 하였습니다. 천지는 하나의 빈껍데기요, 사계절은 하나의 도리(道理)이니, 하늘과 땅이 서로 영원히 바뀌지 않고, 사시(四時)는 1년 동안 변화합니다. 승원(承源)은, "마음이 물과 불로 이루어진 것이므로 변할 수 있고, 형체는 나무와 돌로 이루어진 것이므로 변할 수 없다."라고 하였습니다. 승환(承渙)은, "매달아 놓는 거울이 진흙에 묻혀있는 것과 같으니 거울을 닦아서 연마할 수 있으나, 그 갑(匣)도 변화할 수 있는 것입니까?"라고 했는데, 마음은 빛과 같고, 형체는 갑과 같은 것입니다.
【대답】
형체는 국한되어 정해져 있으니 변할 수 없고, 심체(心體)는 허령(虛靈)하여 변할 수 있습니다. 대개 사물의 이치가 그러합니다. 그러나 학문에 힘씀이 지극하면, 형체 또한 바꿀 수 있으니, 이른바 수면앙배(粹面盎背)주 136)요, 이른바 용모와 자발(髭髮)주 137)이 평소보다 배로 많다는 것은 변화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문녕(文寧)의 말은 타당하지 못한 듯하니 어찌 천지를 빈껍데기라 하고 사계절을 도리라 하는 것입니까? 마음은 비유하면 천지의 주재(主宰)요, 몸은 비유하자면 천지의 형체입니다. 윤심(允深)의 말이 무리라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마땅히 말하기를, "마음은 오행의 정영(精英)인 까닭에 변할 수 있고, 몸은 오행의 체질(體質)이니 변할 수 없다."라고 해야 합니다. 만약 하나의 몸을 오행과 짝짓는다면, 흙과 돌이 뼈와 피부요, 기와 혈액은 물과 불입니다. 사증(士拯)이 말한, "거울의 빛은 문질러 닦을 수 있지만, 갑(匣)은 바꿀 수 없다."는 이 비유는 매우 정당합니다. 그러나 줄로 갈아내고, 옻칠하여 윤이 나게 하면 갑 또한 변하게 할 수 있을 것이니,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질문】
"공경하는 마음을 가지고 내면을 곧게 하고, 의로운 마음을 가지고 외면을 방정하게 한다."주 138)는 구절을 논함에 승환(承渙)은, "'직(直)'은 스스로를 속임이 없는 것이고, '방(方)'은 사물마다 각기 그 마땅히 구분하여 이른 것을 칭한다."라고 하였습니다. 우진(祐鎭)은, "'직'이란 근원을 함양하는 공부라고 하였고, '방'은 마땅히 해야 하는 지선(至善)을 얻는 곳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승원(承源)은, "터럭만큼도 사곡(邪曲)이 없어야 '직'이라 하고, 오로지 일의 시시비비(是是非非)를 가리는 곳을 '방(方)'이라고 한다."라고 하였습니다.
【대답】
스스로 속임이 없는 것이 방미(防微)주 139)이니, 기미를 아는 공부를 하여 이로써 마땅히 내면을 곧게 하려는 뜻은 잘못되었습니다. 문녕(文寧)이 이른바 근원을 함양하는 것과 윤심(允深)이 이른바 터럭만큼도 사곡이 없다는 말도 비슷합니다. 그러나 혹 이전 사람들이 이미 이루어낸 말에 빠지고, 혹은 임시로 안배함이 있으니 모두 실질적인 견해는 아닙니다. 그러니 모름지기 한 번 크게 헤아려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질문】
《홍범구주(洪範九疇)》에서 첫째 조목으로 5행을 논한 부분은, 당나라 공씨(孔氏)의 주(註)에서, "'윤하(潤下)'부터 '종혁(從革)'까지주 140)는 모두 성(性)을 말한 것인데, 토가 오행을 겸하여 정해진 위치가 없고, 완성된 성질이 없다.……"라고 하였는데, 승환(承渙)은, "'윤하(潤下)'와 '염상(炎上)', '곡직(曲直)'과 '종혁(從革)'주 141)은 오행이 나타나 이루어진 체(體)이니, 곧 체를 가리켜 성(性)이라고 하면 가능하겠습니까?"라고 하였는데, 제 생각에는 수(水)의 성질은 차고, 화(火)의 성질은 뜨거우며, 목(木)의 성질은 부드럽고, 금(金)의 성질은 강한데, 토(土)도 오행의 하나인데 어찌 홀로 성질이 없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승원(承源)이 말하기를, "공씨(孔氏)의 설은 그 본연을 가리킨 것입니다. 아래로 내려가는 것은 물의 본연이요, 위로 타오르는 것은 불의 본연이며, 굽거나 곧아지며 형태가 변화하는 것은 목과 금의 본연입니다. 토는 네 가지의 가운데에 자리하여 그 성질을 따라서 성(性)이 되는 것입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우진(祐鎭)은, "네 가지가 그렇게 되는 이유를 일러 성(性)이라고 한다면 가능합니다. 그러나 눈앞에 드러난 당연한 바를 일러 성(性)이라고 이르는 것이 가능하겠습니까?"라고 하였습니다. 하늘에 있어서는 오행(五行)은 단지 이(理)일 뿐이지만, 땅에서는 오행은 기(氣)가 됩니다. 이(理)는 보기 어렵고, 기(氣)는 보기 쉽습니다. 그러므로 원형(元亨)은 보기 어렵고, 봄과 여름은 쉽게 보이는 것입니다. 네 가지는 기(氣)가 쉽게 보이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토는 덕을 말하고 성을 말한 것이 아니니, 본래 그 정해진 위치가 없고, 완성된 성이 없기 때문입니다.
【대답】
"체(體)를 가리켜 성(性)이라고 하는 것이 가능하겠습니까?"라는 말을 보면, 사증(士拯)이 성(性)에 대해 알지 못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성은 단지 이 기(氣)의 그러지 않을 수 없는 부분입니다. 만약에 이러한 성이 없다면 나무가 어찌하여 곡직(曲直)이 있고, 물이 어떻게 아래로 내려가겠습니까? 이루어진 성이 없는 것이지, 성이 없다는 것을 이르는 것이 아닙니다. 만약 토의 본성이 '신(信)'이라면, 단지 진실이 인(仁)이 되고 진실이 의(義)가 되는 것이니, 그렇다면 '신(信)'이 인의(仁義) 위에 있는 것이고 예지(禮智) 또한 그러하니, 이는 이른바 이루어진 성이 없는 것입니다. 윤심(允深)이 이른바, "본연지성(本然之性)."이라는 것은 아마도 반드시 이처럼 말할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천하의 만물은 본성 외에도 더하여 어떠한 성이 있다는 것이니, 단지 토(土)가 사행(四行)에 머무르며 그 성질을 따라서 성(性)을 삼는다는 말이 좋은 듯합니다. 문녕(文寧)은, "그렇게 되는 이유가 성(性)이요, 소당연(所當然)은 성이 아니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소당연은 어떤 물건입니까? 또, 오행(五行)이 하늘에 있으면 이(理)요, 땅에 있으면 기(氣)라는 것 또한 온당치 않습니다. 어찌 천지를 하나의 이(理)와 하나의 기(氣)로 구별할 수 있겠습니까? 하단에서 말한, "이(理)는 보기 어렵고, 기(氣)는 보기 쉽다."라고 하였는데, 이 말은 진실로 옳습니다. 이로써 생각해본다면 보기 어려운이(理)가 쉽게 볼 수 있는 기(氣)에서 벗어나지 않음을 알 수 있으니 어째서 나귀를 타고 나귀를 찾겠습니까.주 142)
주석 112)정자(程子)가 …… 하여야 한다
《논어(論語)》 〈위령공(衛靈公)〉 5장의 주(註)에 나오는 정자의 말이다.
주석 113)신 신은 채 …… 돌려주는 격
궤만 사고 구슬은 돌려준다는 것은, 근본은 모르고 지말(枝末)만 좇는 행위를 비유한 것이다. 춘추(春秋) 시대 정(鄭) 나라 사람이 초(楚) 나라 사람에게서 궤【櫝】를 사오면서 그 궤에 장식되어 있는 좋은 구슬들은 모두 본주인에게 돌려 주고 궤만 샀다는 고사에서 유래하였다. 이는 무슨 일을 하느라고 애를 쓰기는 하지만 정곡을 찌르지 못해 답답해한다는 뜻으로 쓰이기도 한다.
주석 114)명(命)이 아닌 것이 없다
《맹자(孟子)》 「진심 상(盡心上)」에서, 맹자가 이르기를, "천명이 아닌 것이 없으나, 순하게 정명을 받아야 한다.【莫非命也, 順受其正.】"라고 하였다.
주석 115)만물이 …… 큰 즐거움이 없다
《맹자》 「진심 상(盡心上)」에 나오는 구절로, "만물의 이치가 모두 내 몸 안에 갖추어져 있으니, 자기 몸을 돌이켜 보아 참되다면 이보다 더 큰 즐거움이 없다.【萬物皆備於我矣, 反身而誠, 樂莫大焉.】"라고 하였다.
주석 116)남과 같지 못함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맹자》 〈진심 상(盡心上)〉에 나오는 구절로, "남과 같지 못함을 부끄러워하지 않으면 어느 것이 남과 같은 것이 있겠는가.【不恥不若人, 何若人有.】"라고 하였다.
주석 117)패자(覇者)의 백성은
《맹자》 〈진심 상(盡心上)〉에 나오는 구절로, "패자의 백성은 매우 즐거워하고 왕자의 백성은 광대하여 스스로 만족한다.【覇者之民, 驩虞如也, 王者之民, 皥皥如也.】"라고 하였다.
주석 118)선정(善政)이 선교(善敎)만 못하다
《맹자(孟子)》 「진심 상(盡心上)」에 나오는 구절로, "백성의 마음을 얻는 데 있어서는, 법령 위주의 선정(善政)보다는 도덕에 입각한 선교(善敎)가 훨씬 낫다. 선정은 백성들이 두려워하게 되고 선교는 백성들이 사랑하게 되나니, 선정은 백성의 재물을 얻게 되고 선교는 백성의 마음을 얻게 된다.【善政不如善敎之得民也. 善政民畏之, 善敎民愛之, 善政得民財, 善敎得民心.】"라고 하였다.
주석 119)요순시대에 화목해진 것
《서경》 「요전(堯典)」에서, "만방을 화합하여 융화하게 하시니 백성들이 아! 변하여 이에 화목해졌다.【協和萬邦, 黎民於變時雍】"라고 하였다.
주석 120)성왕과 강왕의 …… 않은 이후
《사기(史記)》 「주본기(周本紀)」에서, "그러므로 성왕과 강왕의 시대에는 천하가 평안하여 형벌을 놓아두고 40여 년간 쓰지 않았다.【故成康之際, 天下安寧, 刑錯四十餘年不用.】"라고 하였다.
주석 121)구사(九思)
군자가 생각하는 아홉 가지 일로, 밝게 보기를 생각하고【視思明】, 밝게 듣기를 생각하는 것【聽思聰】 등이다. 《논어(論語)》 「계씨(季氏)」에 나온다.
주석 122)구용(九容)
군자가 가져야 할 아홉 가지 몸가짐을 가리킨다.
주석 123)정자는 먼저 …… 살펴야 한다
《이정전서(二程遺書)》 권18에서, 정자의 제자가 아는 것을 이루는 데 먼저 사단(四端)에서 구하는 것이 어떤가를 물었을 때, 정자가 답하기를, "성정에서 구하는 것이 실로 몸에 절실하기는 하지만, 일초·일목에 모두 이치가 있으니 반드시 이것을 살펴야 한다.【求之性情, 固是切於身, 然一草一木, 皆有理須察.】"라고 하였다.
주석 124)성인의 말씀은 …… 유원한 곳에 있다
《근사록(近思錄)》 권3 「치지(致知)」에 나오는 말이다.
주석 125)도기(道器)
형이상(形而上)과 형이하(形而下)에 관한 철학적 범주로, 도(道)는 무형의 법칙을 가리키며, 기(器)는 유형의 사물을 가리킨다. 《주역(周易)》 「계사전(繫辭傳)上」에서, "형이상을 도라 하고, 형이하를 기라 한다."라고 하였다.
주석 126)순양월(純陽月)
4월을 가리킨다.
주석 127)궁음(窮陰)
음기(陰氣)가 꽉 찼다는 뜻으로 겨울을 가리킨다.
주석 128)항양(亢陽)
양기(陽氣)가 꽉 찼다는 뜻으로 여름을 가리키며, 매우 심한 가뭄을 뜻하기도 한다.
주석 129)아교가 …… 추위와
원문은 '절교(折膠)'와 '타지(墮指)'인데 모두 극심한 추위를 가리킨다. 절교는 활의 재료인 아교가 너무 단단하게 굳어서 활이 부러지는 상황을 말하는 것이며, 타지는 동상에 걸려 손가락이 떨어져 나가는 것을 가리킨다.
주석 130)생각하고 …… 생각해야 한다
《성리대전(性理大全)》 권57에서, 정이(程頤)가 관중(管仲)의 말을 인용하여, "생각하고 생각하며 또 거듭 생각할지니, 이렇게 생각을 해도 통하지 않으면 귀신이 통하게 해 줄 것인데, 이는 귀신의 힘이 아니라 정기의 극치라고 해야 할 것이다.【思之思之, 又重思之, 思之而不通, 鬼神將通之, 非鬼神之力也, 精氣之極也.】"라고 하였다.
주석 131)마음을 침잠하여 묵묵히 생각하라
《근사록(近思錄)》 권3 「치지(致知)」에서, "모름지기 마음을 침잠(沈潛)하여 묵묵히 알아서 완색(玩索)하기를 오래하면 거의 스스로 터득할 수 있을 것이다.【須心潛黙識, 玩索久之, 庶幾自得.】"라고 하였다.
주석 132)이포새(伊蒲塞)
불교(佛敎) 용어로 오계(五戒)를 받은 남자 중을 이른다. 여기에서는 상대방의 글에 불교적인 색채가 드러나므로 경계하는 내용으로 보인다.
주석 133)사람의 법도를 세우는 것【立人極】
송(宋)나라의 학자 주돈이(周敦頤)가 지은 〈태극도설(太極圖說)〉에, "성인은 중정과 인의로써 정하되 정(靜)을 위주로 하여 사람의 법도를 세웠다.【聖人定之以中正仁義而主靜, 立人極焉.】"라고 하였다.
주석 134)하나이기 때문에 신묘하다【一故神】
장재(張載)의 《정몽(正蒙)》 〈태화편(太和篇)〉에, "하나의 물(物)에 두 개의 체(體)가 있는 것이 기(氣)이다. 하나이기 때문에 신묘하고, 둘이기 때문에 변화한다. 이것이 천(天)이 삼(三)이 되는 이유이다.【一物兩體, 氣也. 一故神, 兩故化. 此天之所以參也.】"라고 하였다.
주석 135)우진(祐鎭)
홍우진(洪祐鎭, 1868~?)이다. 자는 문녕(文寧), 호는 희암(希庵)이며 본관은 풍산(豊山)이고 능주(綾州)에 거주하였다. 정의림의 제자이다.
주석 136)수면앙배(粹面盎背)
얼굴에 윤택하게 드러나고 등에 가득 차 넘친다는 말로서, 군자의 내면에 축적된 것들이 넘쳐서 몸으로 드러난 것을 말한다. 《맹자》 「진심 상」에서, "군자의 본성은 인의예지가 마음속에 뿌리하여, 그 드러나는 빛이 얼굴에 윤택하게 나타나고 등에 가득하게 나타난다.【君子所性, 仁義禮智根於心, 其生色也. 睟然見於面, 盎於背.】"라고 하였다.
주석 137)자발(髭髮)
코밑수염과 머리털을 가리킨다.
주석 138)공경하는 마음을 …… 방정하게 한다
《주역》 「곤괘(坤卦)」 육이(六二)에 나오는 구절이다.
주석 139)방미(防微)
마음에서 생각이 일어나 막 선악(善惡)이 나뉘는 기미를 보고 방비한다는 뜻이다.
주석 140)'윤하(潤下)'부터 '종혁(從革)'까지
《서경》 「홍범」에서, "오행은 첫 번째는 수(水), 두 번째는 화(火), 세 번째는 목(木), 네 번째는 금(金), 다섯 번째는 토(土)이다. 수의 성질은 아래로 내려가 만물을 적셔주며, 화의 성질은 위로 타오르며, 목의 성질은 굽고 곧으며, 금의 성질은 사람의 뜻에 따라 형태가 바뀌며, 토의 덕은 이에 작물을 심고 거둔다.【五行:一曰水, 二曰火, 三曰木, 四曰金, 五曰土. 水曰潤下, 火曰炎上, 木曰曲直, 金曰從革, 土爰稼穡.】"라고 하였다.
주석 141)곡직(曲直)과 종혁(從革)
곡직(曲直)은 나무가 자라는 것이 굽기도 하고 곧기도 함을 말하고, 종혁은 쇠가 사람이 만드는 대로 그대로 따라서 변할 수 있음을 말한다.
주석 142)
자신이 이미 가지고 있으면서도 도리어 밖에서 구하는 것을 비유한다. 《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 〈지공화상대승찬(志公和尙大乘贊)〉에 "마음이 바로 부처라는 것을 알지 못하면 진실로 나귀를 타고 나귀를 찾는 것과 같다.【不解卽心卽佛 眞似騎驢覓驢】"라고 하였다.
答洪士拯
一幅書。獲之不意。感感何喩。況其辭義俱到。華實兼至。又有別紙數十條。無非自沈索細繹中出來。可見近日用功之密。造詣之深也。區區慰悅。曷異在己。但於諸條中。說句讀零碎義多。說肯緊要切義少。此固不可不知也。程子曰學要鞭辟近裏。着己而已者。豈不謂是耶。隔靴而爬癢買櫝而還珠。可戒可戒。
存心卽操存求放之事。是學者初用力處。盡心則工夫極至地位否。
盡心知性。是知之之事。存心養性是行之之事。知有多少般數。行亦有多少般數。知之進則行益力。行之力則知益進。不可槪以存養爲初學。盡心爲極至也。
莫非命。此命字。陳氏謂氣。竊恐莫非二字。似當合正命。非正命。安可謂全指氣乎。
命有出於氣者。有出於理者。出於理者。固不可帶氣看。出於氣者。固不可謂無其理也。
萬物備我。反身而誠。樂莫大焉。便是上文盡心功效。
知萬物備我。是盡心知性也。反身而誠。是存心養性也。
不恥不若人云云。羞惡之心。人所同有。見人之賢能。思吾之不能。孰無恥之之心哉。但吾病痛。只在乍存乍亡不能擴充耳。
旣恥不若人。則不若聖人。亦吾所當恥也。此擴充之方也。
覇者之民云云。先言覇而後及王道。何也。比之飮食。則覇道如芻豢之悅口。久則有厭色。王道如菽粟之八口。平平淡淡。非別有異味。久久不厭。
言固有先重而後輕者。亦有先輕而後重者。況下文所陳。無非王者之事耶。若以飮食比之。則王者見人之飢。有哀矜之心。而予之食焉。覇者見人之飢。有要譽之心。而予之食焉。則其人之感與不感。可以知矣。
善政不如善敎云云。善政立而後。善敎可行。若善敎行而後。善政無足施矣。故孟子先言政而後言敎耶。
若曰善政立而後。善敎行則可。若曰善敎行而後。善政無足施則不可。然則唐虞時雍成。康刑措之後。更無政可施歟。
朱子曰。此身只是箇軀殼。內外無非天地陰陽之氣。然則軀殼獨非天地陰陽之氣耶。
軀殼是陰陽團聚處。內外是陰陽流行處。
心有出入云云。譬如爐有一點火隱伏。若滅吹之。則復光明。
出入卽存亡之義。爐火之譬得矣。
一理在天。爲元亨利貞。在人爲仁義禮智。然天地運用有序。而人則不然。
天運有序。而人則不然者。此便是分殊處。然一念之發。四時之序。無不具焉。
九思先視聽。知上說。九容先手足。行上說否。
恐得之。
天地之生萬物。聖人之應萬事。便是一理。然聖人只應物。而未生物。天地只生物。而不裁成輔相。必天人相須然后。道理無欠缺處否。
此段甚好。
凡致知。但求之情性。則似涉務約。只求之萬物。則又涉務泛。故程子以爲先求四端之間。又言一草一木。須是察云耶。
所謂體用兼擧。物我兩盡者。於致知。亦可見。
程子答或問曰。聖人之言。自有近處。自有遠處云。此言遠近爲二事。而於近處。不可强要鑿得深遠也耶。凡一事上。有近有遠。如灑掃應對。雖至近。而其所以然之理。則非至遠耶。
程子此言遠近。是各條說。與近如地遠如天之語。恐不同。
程子曰。以己及人。仁也。推己及物。恕也。然以字。亦有推去底意。
乾道變化。各正性命。是天地自然之推也。一理渾然。泛應曲當。是聖人自然之推也。
形而上形而下之義。小子昏愚未瑩。願下一言。以示上下之分。
上下非有形底上下。是就一形字。言道器界至如此。
以無極言性。以太極言心。則寂然無兆眹者。無極。流行有方體者。太極也。
無極太極。只是一理。而具於心者。不可將無極喚道性。將太極喚道心。此不惟不識無極太極之旨。兼亦不識心性之分。
常存得溫厚意思。便自然會宣著。自然會慘烈。自然會收斂。三者之中。溫和之爲宣著。可易見。至若慘烈剛斷收斂。無痕迹。終看不出。
看春夏秋冬。各一其時。而無非春生之氣。行乎其中。則可以識此矣。
陰生於姤。至於坤。純陰也。陽生於復。至於乾。純陽也。陽之極熱洪炎。當在純陽之月。而反在於陽衰陰生之時。何理也。陰亦然也。
微陽下生。窮陰上極。微陰內生。亢陽外熾。此所以折膠墮指之寒。流金爍石之熱。多在於冬至夏至之後也。
近思錄註曰。不可勞心極慮而强通。其在初學。豈可不勞心極慮而坐待自然洞澈耶。然則思之思之。又重思之。是何意耶。
此言爲專務窮索。而不務涵養者發也。涵養熟則讀書窮理。皆易爲力
近思錄心潛黙識疆欲潛心黙料。則雜亂紛擾之心。闖發無常。蓋下手之初。先整衣冠正容貌。久久不弛。他日自當有黙識境界矣。
此所以有常常喚醒之語。然不可恃此而不務窮理之功。下文語意。些有伊蒲塞氣味。
人心之昏愚蔽塞處。不可謂無心。故程子說無心只當云。無私心也。
雖昏蔽之極。不可謂無本心。然程子以無心爲不可者。不是此意。
近思錄曰。性本善。循理而行。本亦不難云云。顧此愚蠢內有氣稟之拘。外有物累之蔽。每誦循理不難之語。而竊欲驗之於己。則掣肘矛盾。何如可以得不難功夫耶。
知不眞。故常苦其難。然知之眞。非倉卒可辦。豈可等待眞知。而不力行乎。但隨所知。而致極難之功。漸見不難之效。
立人極者。必主乎靜。恐是晦庵夫子之言。而他日譏陸氏之主靜何也。未知一靜字。有二義否。
主靜是周子語。非象山語。象山之學。與主靜之語。大煞不同。
鬼神章註云。人心才動。必達於氣。然則人心不動之時。便與天地之氣。不相接續。而有間斷歟。
一故神。如人身四體。觸之而無不覺者。一體故也。靜時若非一體。則動時。安能相感也。
祐鎭以爲氣質雖不同。而性則固不異。承渙以爲本然之性。聰明睿智也。氣質之性。淸濁粹駁也理。固渾然無雜。而才墮形氣之中。有善惡偏窒之殊矣。若謂之同。則指人生以上說。如何。祐鎭以爲性之在於氣質。如水之在器。豈以器之汚濁。而謂水亦汚濁耶。
性本無二。就氣質中。單指理言。則本然之性也。兼氣質言。則氣質之性也。以聰明睿智爲本然之性。則是認心爲性也。以淸濁粹駁爲氣質之性。則是喚氣做理也。又謂同是指人生以上說。則人生以後。更無本然之性耶。士拯之言。節節有礙。而文寧之言。稍長。然亦不是器之汚濁。自無與於水也。
論心可變。而形體不可變之義。祐鎭以爲吾身本乎天地。吾心通乎四時。天地一箇空殼。四時一箇道理。天地互萬古不易。四時周一歲變化也。
承源以爲心水火所成。故可變。形體木石所成。故不可變也。承渙以爲懸鏡埋塵。光可磨也。匣可變乎。心如光形體如匣。
形體局定。故不可變。心體虛靈。故可以變。蓋物理然也。然學問之力至。則形體亦可以變。所謂粹面盎背。所謂容貌髭髮。倍勝平昔者。其非變移者耶。文寧之言恐未穩。豈以天地爲空殼。四時爲道理耶。心比則天地之主宰也。身比則天地之形體也。允深之言。非曰無理。然當曰心是五行之精英。故可變。身是五行之體質。故不可變也。若以一身配五行。則土石是骨肉也。氣血是水火也。士拯之言光可磨。匣不可變。此一節比喩。極正當。然鑢以磨之。漆以潤之。則匣亦可變。如何如何。
論敬以直內。義以方外。承渙以爲直是毋自欺也。方是事事物物。各稱其當之分謂。祐鎭以爲直是涵養本源工夫。方是合做得至善處。承源以爲無一毫邪曲。便是直。惟事是是非非處。便是方。
毋自欺。是防微知幾底功夫。欲以此當直內之義。則誤矣。文寧所謂涵養本源。允深所謂無一毫邪曲之說。似矣。然或陷前人已成說。或有臨時安排的。皆非實見。更須一番大思量。如何。
論洪範一五行。唐孔氏註以爲自潤下至從革。皆以性言。土兼五行。無正位無成性云云之義。承渙以爲潤下炎上曲直從革。是五行見成之體。則指體爲性可乎。竊以爲水之性寒。火之性熱。木之性柔。金之性剛。而土亦五行之一。則豈可謂獨無其性乎。承源以爲孔氏之說指其本然也。潤下水之本然。炎上火之本然。曲直從革木金之本然也。土寓四者中。因其性而性焉。祐鎭以爲四者之所以然。謂之性則可也。其於眼前顯露所當然。謂之性可乎。在天之五行。只是理在地之五行。便是氣理難見。氣易見。故元亨難見。春夏易見。四者非氣之易見耶。土言德而不言性。本無正位。無成性故也。
觀指體爲性可乎之語。可知士拯不識性。性只是此氣之不得不然處也。如無此性。木何以曲直。水何以潤下乎。無成性。非是無性之謂也。如土之性信也。而只是眞實爲仁。眞實爲義。則信在仁義上。在禮智亦然。此所謂無成性也。允深所謂本然之性者。恐不必如此說。不然。天下之物。本性之外。更有何性。但土寓四行。因其性而性焉之說。似好文寧以所以然爲性。以所當然爲非性。然則。所當然爲何物耶。又以五行之在天者爲理。在地者爲氣。此亦未安。安有以天地爲一理一氣之別耶。下段有曰理難見氣易見。此語誠是。以此思惟。可知難見之理。不外於易見之氣。何其騎驢而覓驢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