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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남근현대문집
- 일신재집(日新齋集)
- 권6
- 서(5)(書(5))
- 박경립에게 보냄(與朴景立)
일신재집(日新齋集) / 권6 / 서(5)(書(5))
박경립에게 보냄
지난번에 그대의 당숙(堂叔)께서 돌아가신 뒤로 그대로 막연하게 소식이 끊어지게 되었습니다. 모르겠습니다만 조부모와 부모를 모시면서 상복을 입고 지내는 정황이 좋으며, 함애(咸哀)주 38)도 무양(無恙)하게 지내며 책을 읽고 있는지요? 양친이 모두 잘 계시고 형제가 무고한 것은 복 있는 집안의 운수라고 할 것이지만 순식간에 기울어져 이와 같은 지경이 되고 말았습니다. 인생의 모든 일들은 헤아리기가 어려우니 어버이를 잃은 어린 것들을 어루만져주고 돌보아주십시오. 경립(景立) 또한 한 층 세상의 풍파를 겪게 되었습니다. 다만 오늘날 경립의 정세(情勢)는 그 부담이 실로 나머지 사람들과는 다릅니다. 선친(先親)께서 부탁하신 뜻과 가문이 업신여김을 당하지 않는 계책 및 사우(士友)들의 기대가 그대의 한 몸에 모여들었으니 어찌해야 하겠습니까? 비록 온갖 바쁜 일이 수없이 있어 어지러운 와중에서도 책을 읽는 한 가지 일은 결단코 그만두어서는 안 됩니다. 모쪼록 바라는 것은 1부(副)의 규구(規矩)를 뽑아 정리하여, 몸과 집안을 가장 잘 다스리는 계책으로 삼는다면 어떻겠습니까? 의림(義林)은 병든 몸에 실낱같은 목숨이 붙어 있어 날마다 고단한 상황으로주 39) 나아가고 있습니다. 비록 다소간 자신을 책려(策勵)하여 구업(舊業)을 정리하여 만에 하나라도 뒤미처 보완하고자 하지만 그렇게 할 수가 없습니다. 매번, "내 이럴 줄 알았다면 태어나지 않느니만 못하였다."주 40)라는 구절을 읽을 때마다 저도 모르게 슬픔과 한스러움이 마음속을 가득 채우게 됩니다. 경립은 나를 전철 삼아 경계하기를 바랍니다.
- 주석 38)함애(咸哀)
- 상중에 있는 조카를 가리킨다.
- 주석 39)고단한 상황으로
- 원문은 '권루(卷婁)'인데, 외물을 좇아 자신의 심신을 고되게 만드는 것이다. 《장자》 〈서무귀(徐無鬼)〉에 나오는 구절이다.
- 주석 40)내 이럴 …… 못하였다
- 《시경(詩經)》 소아(小雅) 〈초지화(苕之華)〉에 나오는 구절이다.
與朴景立
向者令堂叔返駕後。信息隨以漠然。不審重省下持服衛重。咸哀無恙讀字否。俱存無故。福家氣數。轉眄之頃。至於如此。人生萬事。有難料測撫孤恤哀。景立亦添一層世故矣。但今日景立情勢。其擔負。實有異於餘人者。先親付託之意。門戶禦侮之計。士友期待之望。萃於一身者。爲何如耶。雖百忙千撓之中。而讀書一事。斷不可已。望須折斷得一副規矩。以爲身家究竟之計如何。義林病軀殘喘。日就卷婁。雖欲策理多少。以爲追補萬一之地。而不可得。每讀知我如此。不如無生之語。而不覺悲恨塡中。幸景立視爲前車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