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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호남근현대문집
  • 일신재집(日新齋集)
  • 권6
  • 서(5)(書(5))
  • 양 처중에게 답함(答梁處中)

일신재집(日新齋集) / 권6 / 서(5)(書(5))

자료ID HIKS_OB_F9001-01-202101.0006.0001.TXT.0008
양 처중에게 답함
임생(任生)이 와서, 또한 보내주신 편지를 잘 받았습니다. 편지를 통해 부모님을 모시고 지내시는 체후가 더욱 평안하다는 것을 알고서, 위로되고 기쁜 마음을 금치 못하겠습니다. 저는 권루(卷婁)주 12)하여 마음이 어수선하여, 도무지 말할 것이 못 됩니다.
심(心)은 오직 영묘하기 때문에 능히 주재할 수 있는 것이니, 만약에 영묘하지 못하여서 마른 나뭇가지나 불 꺼진 재【枯木死灰】주 13)와 같다면, 어찌 주재함이 있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이 때문에 하단에 '능자자(能字者)'라는 글자는 심(心)을 말한 것입니다. 영묘한 바는 이(理)가 있기 때문이니, 이(理)가 아니면 어찌 이 영묘함이 있겠습니까. 이 때문에 하단에 '소자저(所字底)'라는 글자는 성(性)을 말한 것입니다. 주자(朱子)께서 말하길 "깨달을 수 있는 것은 기(氣)의 영묘함이요, 깨닫게 되는 것은 마음의 이(理)이다"라고 하였으며, 또한 "주재(主宰)하는 것은 심(心)이요, 주재하는 것의 근원은 성(性)이다"라고 하였으니, 또한 이 뜻이 아니겠습니까. 심성(心性)의 경계에 구분을 분명히 하여서, 부디 세 번 생각을 더하기를 바랍니다. 어떻게 이(理) 위에 이가 있고, 이로써 이를 부린단 말입니까. 아마도 꼼꼼히 살피지 못하여서, 그 말이 나온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대저 심(心)과 성(性)은 진실로 두 개로 나뉜 것이 아니니, 그 본체의 이름과 뜻에 구차함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다시 가르침을 보여주시기를 바랍니다.
주석 12)권루(卷婁)
《장자》 〈서무귀(徐無鬼)〉에 나오는 말로, 외물을 좇아 자신의 심신을 고되게 만드는 것을 말한다.
주석 13)고목사회(枯木死灰)
불교에서 흔히 쓰는 화두(話頭)로서, 사람이 욕심이 없거나 생기가 없는 모습을 형용하는 말입니다. 유학자가 불가(佛家)의 참선(參禪)을 비판적으로 표현할 때 사용하기도 한다. 《근사록집해》 권13 〈변이단(辨異端)〉에 정호(程顥)의 말을 인용하여 "마음의 근원이 안정되지 못하므로 마른 나무나 꺼진 재와 같아지려고 한다.【釋爲心源不定, 故要得如枯木死灰.】"라고 하였다.
答梁處中
任生來。又承惠存。以審侍體增謐。慰浣無任。義林卷婁憒憒。無足云喩。心惟靈故能主宰。若不靈如枯木死灰則何有主宰之可言。此所以下能字者字而言心。然其所靈以有理故也。非理安有此靈。此所以下所字底字而言性。朱子曰。能覺者氣之靈。所覺者心之理。又曰。主宰者心。主宰底性。亦非此意耶。此於心性界至。截得分明。願加三思。如何理上有理。以理使理。恐偶未照管而說得到此耳。大抵心性固非二物。而其當體名義。有不可苟也。更示之爲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