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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신재집(日新齋集)
  • 권6
  • 서(5)(書(5))
  • 양처중에게 답함(與梁處中)

일신재집(日新齋集) / 권6 / 서(5)(書(5))

자료ID HIKS_OB_F9001-01-202101.0006.0001.TXT.0005
양처중에게 답함
봄부터 멍하니 서서 하루도 빠짐없이 한 번 만나 뵐 것을 기대하고 있었으나, 세월은 속절없이 흐르고 흘러서 한 해가 이미 저물어 갑니다. 그리워하는 마음 절절하여 그칠 줄을 모르겠습니다. 근래에 경함(景涵: 황철원(黃澈源, 1878~1932))과 함께 논설한 바가 있었는데, 그대가 경함에게 보내온 편지도 또한 얻어 볼 수 있었습니다. 일전에 또한 경함의 편지에 답하였으니, 대략 말하자면, "주자(朱子)께서 말하길 '깨달음의 행위 주체는 마음【心】의 영묘함이요, 깨달음의 대상이 되는 것은 마음의 이치이다'주 8)라고 하였는데, 만약 그대의 생각과 같다면, 마땅히 '일의 이치이다'라고 해야 할 것이요, '마음의 이치이다'라고 해서는 안 됩니다. 생생(生生)하기 때문에 영(靈)하고, 생생하기 때문에 각(覺)하는 것이니, 상채(上蔡)주 9)가 말하길 "마음에 지각(知覺)이 있는 것을 인(仁)이라고 한다"고 했는데, 바로 이 뜻입니다. 이것이 '깨달음의 대상이 되는 것은 마음의 이치이다'란 것이 아니겠습니까. 지(智)는 마음의 정(貞)이요, 지(知)의 이치이며, 사덕(四德 : 仁義禮智)의 근본이고, 만 가지 이치의 창고이니, 이것이 '깨달음의 행위 주체는 마음【心】의 영묘함이요'란 것이 아니겠습니까. 선사(先師 : 奇正鎭)께서 이른바 '이치를 싣고 있는 것이 체(體)이다'라고 한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영(靈)이 아니면 능히 깨닫지 못하며, 이(理)가 아니면 깨달을 대상이 없는 것입니다. 만약 '깨달음의 주체【能覺】'라는 한 구절이 없이 다만 '깨달음의 대상【所覺】'만을 말한다면, 진실로 이치로써 이치를 깨닫게 되는 혐의가 있게 될 것입니다. 여기에서 깨달음의 주체【能覺】와 깨달음의 대상【所覺】을 상대적으로 들어서 말하였으니, 또한 어찌 이러한 혐의가 있겠습니까. 혹 어떤 사람이 선사(先師)께 단지 깨달음의 대상【所覺】만을 들어서 지각(知覺)하는 것을 이치라고 여기며 질문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이에 선사께서 답하여 말하길 '어찌 이치로써 이치를 깨닫는 이치가 있단 말인가'라고 하였으니, 이는 깨닫는 행위 주체가 바로 영(靈)임을 말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하면(下面)에서 '이치를 싣는 것이 체이다【載理爲體】'라는 한 단락의 말을 들어 채운 것입니다. 무릇 선현(先賢)의 말씀은 상대방이 묻는 것에 따라 답을 하는 것이니, 비록 그 답이 똑같이 않더라도 그 지향하는 바는 하나인 것입니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말하길 "'주재하는 바【所以主宰】'라는 말이 싫은 나머지 이를 두 주재함의 혐의가 있다고 여기고, 또 지각을 주재한다고 여기니, 이는 곧 소이연(所以然)입니다. 소이(所以)의 위에 다시 어떤 소이가 있겠습니까?"라고 하였는데, 이 말이 어떠한지 모르겠습니다. 나는 이미 논변한 바가 있으나, 바빠서 미처 편지로 써서 보내지 못했을 뿐입니다. 부디 그대가 다시 한 마디 일깨움을 주는 말【一轉語】주 10)을 적어서 보여주는 것이 어떠하겠습니까. 스스로의 집착을 너무 고집하는 것은 진실로 이 사람의 병이니, 새로운 것을 좋아하고 특이한 것을 만들어 이 지경에 이르렀는지 모르겠습니다.
주석 8)
《주자어류》 권5에 "지각하는 것은 마음의 이(理)이고 지각할 수 있는 것은 기질의 영(靈)입니다.【所覺者心之理, 能覺者氣之靈.】"라고 한 말이 있다.
주석 9)상채(上蔡)
중국 북송 때 성리학자 사량좌(射良佐, 1050〜1130)의 호입니다. 정호(程顥)의 주요한 제자로, 여대림(呂大臨)․양시(陽時) 등과 함께 정문사선생(程門四先生)으로 불리며, 뒷날 육구연(陸九淵)의 상산학(象山學)에 영향을 주었다.
주석 10)일전어(一轉語)
깨달음의 계기를 제공해 주는 한 마디의 번뜩이는 선어(禪語)를 말한다.
與梁處中
自春以來。無日不佇待一穩。而荏苒侵尋。歲已暮矣。憧憧懷思。曷有己已。近與景涵有所論說。而賢所抵景涵書。亦得以見之矣。日前又答景涵書。略曰。朱子曰。能覺者心之靈。所覺者。心之理。若賢意。則當曰事之理。不當曰心之理。生生故靈。生生故覺。上蔡云。心有知覺之謂仁。卽此意也。此非所覺者心之理乎。智者心之貞。知之理。四德之本。萬理之藏。此非所覺者心之理乎。先師所謂載理爲體。卽此也。非靈不能覺。非理無所覺。若無能覺一句。而只說所覺。則固有以理覺理之嫌。今以能覺所覺對擧言之。又安有此嫌耶。或人之問於先師。只擧所覺。而認知覺爲理。故先師答云。安有以理覺理之理乎。此言能覺者。是靈故也。是以其下面。擧載理爲體一段語以足之。夫先賢之言。隨問隨答。雖若不同。而其致則一也。云云。且駁所以主宰之語。以爲有兩主宰之嫌。又以爲主宰知覺。卽所以然。而所以之上。復有何所以云云。未知此說何如耶。愚已有所論辨。而忙未書呈耳。願賢更下一轉語以示之。如何。自執太固。固此人之病。而不知其喜新立異至於此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