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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신재집(日新齋集)
  • 권6
  • 서(5)(書(5))
  • 양처중에게 답함(答梁處中)

일신재집(日新齋集) / 권6 / 서(5)(書(5))

자료ID HIKS_OB_F9001-01-202101.0006.0001.TXT.0003
양처중에게 답함
3월 6일에 보내온 편지를 4월 보름에 이르러서야 보게 되었습니다. 이를 통해 소상하게 다 알려주시어, 많은 깨우침을 얻었습니다. 어찌 감사할 줄 모르겠습니까. 주자(朱子)께서 성(性)을 논한 것에 대해, 어떤 이가 말하길 "비유컨대 약성(藥性)을 논하면, 오한과 발열도 또한 형상을 논한 곳이 없는데, 단지 복용을 완료한 후에야 열이 떨어지기도 하고, 열이 오르기도 하는 것이 바로 성(性)이다"라고 하는데, 지금 사람들은 왕왕 지각(知覺)이 있는 것을 가리켜서 성(性)이라고 여기니, 이는 단지 심(心)에 대해 말한 것에 불과합니다. 무릇 오한과 발열은 진실로 신(神)이라고 말할 수 없으니, 약을 복용한 후에 곧바로 열이 내리거나 오르는 것이 바로 신(神)인 것입니다. 인성(人性)에 인의예지(仁義禮智)가 있는 것을 진실로 신(神)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미 이러한 이(理)가 있어서 곧바로 허다한 일에서 나오게 되어 측은지심·수오지심·사양지심·시비지심과 같은 것이 바로 신(神)입니다. 이 때문에 주자께서 신(神)자에 대해 기(氣)로 말한 경우가 있고, 이(理)로 말한 경우도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신령(神靈)을 성(性)이라고 할 수도 없고 또한 신(神)이라고 할 수도 없다고 한 것은 이(理)의 발용(發用)을 말한 것이다"라고 한 것과 같습니다. 혹은 이(理)가 아니라고 말하고, 혹은 기(氣)가 아니라고 말하기도 하였는데, 예를 들어, "'신(神)이 바로 이(理)입니다.'라고 하면 아마도 그렇지 않은 것 같다.【謂神卽是理, 却恐未然.】"라고 하고, 뒤이어 "신(神)을 완전히 기(氣)로 간주하여 보는 것도 또한 잘못이다.【將神全作氣看, 則又誤.】"라고 한 것과 같습니다. 이러한 몇 가지 설들을 관찰해보면, 신(神)의 뜻을 분명히 알 게 될 것입니다. 전날에 있었던 한 편의 말은 이(理)로 인정하고, 다른 한 편의 말은 기(氣)로 인정한 것은, 어찌 치우친 의논이 아니겠으며, 왜곡된 견해가 아니겠습니까. 내가 이에 대해서 너무 놀란 나머지 얼이 빠질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이로부터 그것을 삼가 지킬 것을 생각해봐야 하니, 그대도 또한 그것을 깊이 생각해보고 힘써 귀착으로 삼아야 합니다. 예를 들어 상단의 절반과 하단의 절반에서 기(氣)의 신(神)과 이(理)의 신(神) 등에 대한 설명도 또한 옳지 못하니, 신(神)은 두루하여 정해진 방소가 없는 것입니다. 어찌 상단과 하단의 절반에 옳은 말이 있겠습니까. 신(神)은 하나이지 둘이 아닌 것입니다. 어찌 이(理)와 기(氣)가 각각 그 신(神)과 하나가 된다고 명명할 수 있겠습니까. 또한 '신명(神明)' 두 글자는 끝내 다 합쳐지지 못한 곳이 있으니, 이 또한 상세하게 연구해보면, 저절로 바른 결론에 이르게 되는 날이 있을 것입니다. 주서(朱書)에 신명(神明)은 바로 물(物)이라는 논설이 분명히 있는데, 다시 그것을 운운한단 말입니까. 저의 논설이야 진실로 말할 것도 없겠지만, 주서(朱書)의 설은 장차 어떻게 처리하려고 하십니까? 지난번에 〈경함에게 보내는 편지【與景涵書】〉주 5)가 있었는데, 아울러 살펴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주석 5)경함(景涵)
조선 말기 유학자인 황철원(黃澈源, 1878~1932)으로, 자는 경함(景涵)이고, 호는 중헌(重軒)‧은구재(隱求齋)입니다. 기정진(奇正鎭)의 제자인 정의림(鄭義林)과 정재규(鄭載圭)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902년(광무 6) 전라남도 구례(求禮) 천은사(泉隱寺)에서 최익현(崔益鉉), 기우만(奇宇萬)과 강론을 벌였고, 스승 정재규의 권유로 「납량사의기의추록변(納凉私議記疑追錄辨)」 등을 지어 간재(艮齋) 전우(田愚)의 성리설(性理說)을 논박하였다. 이후 한일합방이 되자 이를 분통하게 여기며 후학들을 기르는 데 전념하였다. 1932년 6월 20일 광주(光州)에서 향년 55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저서로 《중헌집(重軒集)》 10권 4책이 있다.
答梁處中
三月六日書。四月望間始得見矣。縷縷纖悉。警發多矣。曷不知感。朱子論性有曰。比如論藥性寒熱。亦無討形象處。但服了後。做得寒做得熱。便是性。今人往往指有知覺者。爲性。只說得箇心。夫寒熱固不可以言神。然服了後。便做得寒熱。便是神。人性之有仁義禮智。固不可以言神。然旣有此理。便有許多事出來。如惻隱羞惡辭讓是非。便是神。是以朱子之於神字。有或以氣言。或以理言。如曰神靈不可以言性。及神者理之發用之說是也。有或言非理。或言非氣。如曰謂神卽是理。却恐未然。及以神專作氣看。又誤之說是也。觀是數說。神之爲義。若可領了矣。前日之一邊之言。認以爲理。一邊之言。認以爲氣者。豈非偏論曲見耶。區區於此。不覺瞿然自失。思以爲從此謹守之計。賢亦深思之。而勉爲歸宿也。若其上一半下一半。及氣之神理之神等說。又恐不然。神周而無方者也。豈有上下一半之可言。神一而不二者也。豈有理氣各一其神之可名。且神明二字。終有未盡合處。此亦細細詳究。自有結案之日矣。朱書明有神明是物之論。而乃復有所云爾耶。鄙說固不足道。而朱書說亦將何以區處乎。向有與景涵書。倂以照及如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