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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호남근현대문집
  • 일신재집(日新齋集)
  • 권6
  • 서(5)(書(5))
  • 양처중에게 답함(答梁處中)

일신재집(日新齋集) / 권6 / 서(5)(書(5))

자료ID HIKS_OB_F9001-01-202101.0006.0001.TXT.0002
양처중에게 답함
직접 찾아와 준 것에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습니다. 잘 알지 못하겠습니다만, 섣달 추위에 덕을 함양하면서 신명의 도움을 받으며 일상의 생활도 평안하신지요? 몹시 그리워하는 마음을 금치 못합니다. 저는 그저 궁벽한 시골집에 칩거하면서 나날이 더욱 쇠약해져만 갑니다. 단지 절절하게 그리워하며 만나 뵙지 못하는 아쉬움만 더할 뿐입니다. 세상이 온통 어지러운 이 시기에 실심(實心)으로 이 일을 대하는 이는 오직 그대【高明】 한 사람뿐입니다. 아침저녁으로 함께 어울리는 것이 애초부터 가졌던 구구한 소원이 아님이 없었지만, 험하고 기구한 운명으로 인해 나아갈 만한 여력이 없으니, 어찌한단 말입니까. 보여주신 문목(問目)은 조목마다 응답해 나아갔으니, 다시 상세하고 확실하게 내용을 정리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음양(陰陽)·강유(剛柔)·인의(仁義)에는 삼재(三才)의 도(道)가 갖추어져 있습니다. 섞이지 않은 본체의 측면에서 말하면 음양(陰陽)·강유(剛柔)는 진실로 도(道)가 아니며, 체용이 떨어지지 않은 측면에서 말하면 음양과 강유는 '도가 아니다【非道】'라고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이(理)가 이(理)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오직 세심하게 살펴봐야 알 수 있는 것이니, 그렇기 때문에 공자(孔子)께서 말하길 "한 번 음이 되고 한 번 양이 되는 것을 도(道)라고 한다."라고 하였고, 장자(張子)는 "기화(氣化)로 말미암아 도(道)라는 이름이 있게 된 것이다"라고 하였으며, 주자(朱子)는 "도의 체용(體用)은 음양의 밖에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하였으니, 이 말 모두를 참고할 만합니다. 사람의 성품은 본래 선한데, 어째서 선한지 않음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만약 이에 대한 해답을 찾지 못한다면, 성악설(性惡說)을 논파할 만한 때가 없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덕(先德)께서 '기질성(氣質性)' 세 글자를 설명하여서, 성선설(性善說)을 보완하고 성악설을 배척한 것입니다. 그러나 후인(後人)들은 이(理)가 기(氣)에 갖추어져 있는 것을 모두 '기질지성(氣質之性)'이라 여기고, 나아가 미발(未發)도 또한 기질지성이며, 요순(堯舜)도 또한 기질지성이라 여깁니다. 오호라, 선덕(先德)들이 논리를 세워서 장차 성악설을 배척하려고 하였는데, 후인들이 이 세 글자를 가지고 도리어 성악설을 증명하는 말로 사용할 줄 어찌 알았겠습니까? 만약 기(氣)에 갖추어져 있는 것을 모두 '기질지성(氣質之性)'이라 여긴다면, 천하의 어떤 이(理)인들 기(氣)에 갖추어져 있을 것이겠습니까? 반드시 공허한 의론에 묶이고 얽매일 것이니, 우뚝 홀로 선 연후에야 본연의 성품이 될 것입니다. 이(理)의 묘처(妙處)를 신(神)이라고 하는데, '묘(妙)' 자와 '신(神)' 자를 만약 기(氣)에 속해 있는 측면에서 본다면, 이(理)는 완전히 공허하여 하나라도 쓸 데가 없는 물건이 될 것입니다. 더구나 그 용(用)의 측면에서 신(神)이라고 한 상단과 하단의 글들은 태극(太極)의 참다운 면목을 말한 것이 아님이 없습니다. 어찌 중단(中段)의 '신(神)' 한 글자에 대해서만 홀로 기(氣)에 대해 말한 것이겠습니까. 칠정(七情)은 사람의 정(情)을 통틀어 말한 것이니, 사단(四端)은 특히 이 칠정 중에 나아가, 그 선한 것만을 끄집어낸 것입니다. 칠정과 사단은 본래 양단으로 나뉜 것이 아니니, 어찌 내외로 구별을 두었겠습니까. 옆에서 자라 나오고 곁에서 빼어난 것도주 4) 또한 불가한 것이니, 다만 사단(四端)과 상대되어 말한 것일 뿐입니다.
주석 4)옆에서 자라 나오고 곁에서 빼어난 것도
《심경부주》 권2 〈성의장〉에 조치도(趙致道)가 주자에게 질문한 것으로 "혹 옆에서 나와 꽃이 피고 곁에서 빼어나 기생하는 겨우살이나 사마귀와 혹과 같은 것은 이것도 비록 성이 동한 것이기는 하나 인심의 발현이요 사욕의 유행이니, 이른바 악이라는 것입니다.【其或旁榮側秀, 若寄生疣贅者, 此雖亦誠之動, 則人心之發見, 私欲之流行, 所謂惡也.】"라고 한 부분입니다.
答梁處中
委枉何等感荷。未審臘寒養德有相。動止珍休。馳仰不任。義林跧伏窮廬。衰索日甚。只切悠悠靡逮之恨而已。缺界滔滔。實心此事者。惟高明其人也。昕宵遊從。未始非區區之願。而崎嶇險釁。無力可就。奈何奈何。所示問目。逐條塡去。更加詳確如何。
陰陽剛柔仁義。三才之道備矣。以不雜者言之。陰陽剛柔固非道也。而以不離者言之。陰陽剛柔不可謂非道也。理之爲理。正在於此。惟細心看之可得。是故孔子曰一陰一陽之謂道。張子曰。由氣化有道之名。朱子曰。道之體用。不外乎陰陽。此皆可攷也。人性本善而何故而有不善只此不善二字。若不區處。則性惡之說。無時可破。是故。先德說氣質性三字。以補性善之說。以斥性惡之論。後人以理之具於氣者。統謂之氣質之性。至以爲未發亦有氣質之性。堯舜亦有氣質之性。嗚乎。先德立論。將以斥性惡之論。豈知後人將此三字。反以爲性惡之證佐耶。若以具於氣者。統謂氣質之性。則天下何理有不具於氣者。必懸空係虛。兀然獨立然後。爲本然之性耶。理之妙處謂之神。妙字神字。若屬氣邊看。則理是空空一殼無用之長物矣。況其用則謂之神上下文段。無非太極眞面說。豈於中段神一字。獨言氣乎。七情統言人之情。四端特就七情中剔出其善者矣。七情四端。本非兩端。則何嘗有內外之別也。謂之旁榮側秀亦不可。但與四端對言云然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