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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신재집(日新齋集)
  • 권5
  • 서(4)(書(4))
  • 서성장【황】에게 답함(答徐聖章【璜】)

일신재집(日新齋集) / 권5 / 서(4)(書(4))

자료ID HIKS_OB_F9001-01-202101.0005.0001.TXT.0050
서성장【황】에게 답함
학문의 도는 아는 것【知】와 행하는 것【行】 두 가지일 뿐입니다. 그러나 알지 못하면 그것을 행할 수 없으므로, 학문은 이치를 깊이 연구하는 것【窮理】을 우선으로 삼습니다. 이치를 깊이 연구하는 방법도 역시 한 가지만 있는 것이 아니니, 모든 천지의 만물과 고금의 사변 등, 내가 깊이 연구해서 지극하게 해야 할 것이 아닌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비근한 것을 먼저 깊이 연구한 이후에 원대한 것에 이르고, 쉬운 것을 먼저 깊이 연구한 이후에 어려운 것에 이르는 것이 학문의 절도입니다. 청소하고 손님을 맞이하는 것, 앉고 눕고 가고 걷는 것, 신심(身心)과 성정(性情), 인륜과 일상생활의 사이에서부터 먼저 하나하나 음미하고 찾아내서, 마땅히 해야 하는 것이어서 그만둘 수 없는 것과 그렇게 된 이유가 있는 것이어서 바꿀 수 없는 것을 보고, 오늘 한 건을 깊이 연구하고 내일 한 건을 깊이 연구하며 나날이 이같이 해서 혹시라도 멈추지 않는다면, 서로 이어서 유추하게 되고 미묘한 것도 환하지 않음이 없어져 저절로 깨닫게 될 것입니다. 독서 역시 이치를 깊이 연구하는 한 가지 방법입니다. 만약 《대학(大學)》을 읽으면, 먼저 성인이 대학을 지은 뜻이 무엇이고, 또 대인(大人)의 학문이 무엇이며, 명덕(明德)이 무엇이고, 신민(新民)이 무엇인지를 구해야 합니다. 한 글자마다 한 글자의 뜻을 구하고 한 구절마다 한 구절의 뜻을 구해서, 모두 아주 분명하게 해서 털끝만큼이라도 남은 의심이 없기를 구해야 하는데, 이것을 궁리(窮理)라고 합니다. 만약 마음에서 증험하고 몸에서 체득해서, 성현의 마음을 자기의 마음으로 삼고 성현의 행동을 자기의 행동으로 삼는다면, 이것은 앎과 행동이 서로 융합되었을 때 체득하는 것에서 말하였으니, 오로지 궁리(窮理)에만 귀속시킬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경(敬)과 존심(存心)은 두 항목의 일이 아닙니다. 경은 곧 보존하는 것이고 보존하는 것은 곧 이 경을 보존하는 것이니, 지극히 정미한 것에 처해서, 절대 조장(助長)하는 데 마음을 쏟아서 병폐가 생기게 해서는 안 됩니다. 정자(程子)는 "앎을 지극히 하고서도 경(敬)을 보존하지 못하는 경우는 있지 않다.【未有致知而不在敬】"라고 하였으니, 경이 아니면 마음을 보존할 수 없고 마음을 보존하지 않으면 이치를 궁리할 수 없습니다. 마음을 보존하는 것은 처음부터 끝까지 해야 하는 것이니, 이치를 궁구하는 것【窮理】의 선후로써 논할 수 없습니다. 또 존양(存養)주 109)을 존심(存心)이라고 하면 괜찮지만, 성찰(省察)을 궁리(窮理)라고 하면 안 됩니다. 성찰(省察)은 방미(防微)주 110)와 지기(知幾)주 111)의 측면에서 말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숙흥야매잠(夙興夜寐箴)」에서 '단정하게 앉아 몸가짐을 추스른다.【端坐斂形】'라고 한 것은, 생각하지 않고 말하지 않는 것이라고 말한 것은 좋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다만 마음 씀씀이가 너무 지나쳐, 혹 천태산(天台山)에 은거한 사마승정(司馬承禎)을 좌치(坐馳)주 112)라고 비난한 일을 겪게 될까 두려울 뿐입니다.주 113) 따라서 단지 하루 12시간에 항상 상제(上帝)를 마주하고 큰 손님을 만나듯이 해서, 절대로 조금의 게으름도 피우지 말아야 합니다. 부모님을 받들고 다른 사람을 대접하거나 만물의 변화에 순응하고 일을 처리하는 사이에 이르러서는 스스로 기만하거나 스스로 만족스럽게 여기는 일이 없이, 진심을 쌓고 성실함을 길러서 천리(天理)와 분수(分數)로 하여금 날마다 기르고 길러 주(主)가 되게 하고 내재할 수 있게 한 이후에야 여기에 힘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보낸 편지에서, 덕(德)을 이룬 이후의 일로 여긴 것은, 적절한 듯합니다. 그러나 어찌 덕을 이룬 이후의 일이라는 것에 핑계를 대고 자신에게서 구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다만 경(敬)은 주일(主一)의 뜻이니, 초학자로서 오래도록 마음대로 한 상태에서 갑자기 주일하기에는 어려울 것입니다. 따라서 먼저 사물의 드러난 자취에서 일정한 규율을 먼저 정해서, 이 일을 마주할 때는 다른 일이 있는 줄 모르고 이 책을 읽을 때에는 다른 책인 있는 줄 모르며 이 이치를 깊이 연구할 때는 다른 이치가 있는 줄 모르게 해서, 오래도록 그치지 않으면 점차로 힘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이 성인 문하의 가장 중요한 도리이니 힘쓰고 힘쓰기를 바랍니다.
보낸 편지에서, 모두 스스로 내면에서 제재할 수 있게 된 이후에 자신의 사욕을 알아서 금지한다고 하였는데, 이것은 앞뒤를 바꿔 말한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천하의 일은, 그것이 천리가 되고 그것이 인욕이 되는 줄 안 이후에 극기복례의 일을 착수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어찌 먼저 제재한 이후에 그것이 사욕인 줄 알겠습니까? 또 수응(酬應)하는 곳에는 매번 후회와 의혹이 많은 것은, 이 일이 오기 전에 생각이 어지러워서 초래한 것이라고 하였는데, 이 말은 진실로 옳습니다. 그러나 생각은 억지로 굽히게 할 수 없습니다. 다만 지식이 점차로 열리고 실천이 점차 확고해지면 자연히 매우 타당한 것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함양(涵養)의 묘법은, 굳게 지키고 오랫동안 쌓아서 정신으로 융회하고 마음으로 이해해야하는 것이니, 말로써 지도할만한 것이 아닙니다. 일이 없을 때 생각이 삼대처럼 가득하면 가장 가라앉히기 어려우니, 일상생활에서 일을 하고 손님을 하는 가운데 성실함을 기르고 진심을 쌓아서 차례대로 힘써 나갈 수 있는 것만 못합니다.
정심장(正心章)에 대해 말한 것은, 참으로 옳습니다. 그러므로 성인께서 '착한 행동을 하라【遷善】'라는 것을 설명할 때 먼저 '허물을 고쳐라.【改過】'라고 하였고 '성실함을 보존하라【存誠】'라는 것을 설명할 때 먼저 '사악함을 막아라.【閑邪】'라고 하였으며 '예를 회복하라【復禮】'라고 설명할 때 먼저 '자신의 사욕을 이겨라.【克己】'라고 하였습니다.
《맹자》 「고자 상」에서 '잡으면 보존된다.【操則存】'라고 말한 것에 대해서, 나는 인심의 변화는 헤아릴 수 없이 오묘하다고 여긴 적이 있으나, 음양의 변화가 어떻다고 말한 적이 없습니다. 이것은 성인(聖人)과 평범한 사람의 마음이 이와 같다고 말한 것입니다. 어찌 단지 성인의 마음만을 가지고 말한 것이겠습니까?
이치를 깊이 연구하는 방법【窮理之方】은 진실로 한 가지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어떨 때는 그 생각이 일어나는 것을 따라 깊이 연구하기도 하고, 어떨 때에는 특별한 하나의 일을 일으켜서 깊이 연구하기도 하니, 어찌 거리낄 것이 있겠습니까? 다만 그 선후와 완급의 차례는 없어서는 안 됩니다.
정자(程子)가 "그것을 생각하지 말라고 말한 것이라고 하면 적절하지 않다. 다만 망령되이 생각하지 말라고 한다면 적절하다."라고 하였으니, 보낸 편지에서 이른바 '다만 사악한 마음을 막아라.【但防邪意】'라고 한 것도 또한 이 뜻일 것입니다.
독서할 때 틈틈이 휴양하는 것은, 단지 다른 생각을 그만두게 할 뿐만 아니라 근본을 배양하고 근원을 깨끗하게 하니, 진실로 마땅히 이와같이 해야 합니다.
주석 109)존양(存養)
존심양성(存心養性)의 준말로, 본심(本心)을 보존하고 본성(本性)을 기른다는 뜻이다. 《맹자》 「진심 상」에 "본심을 보존하고 본성(本性)을 배양하는 것이, 하늘을 섬기는 것이다.【存其心, 養其性, 所以事天也.】"라고 하였다.
주석 110)방미(防微)
잘못이나 나쁜 일을 경미할 때 막는 것이다.
주석 111)지기(知幾)
일의 기미를 알아채는 것이다.
주석 112)좌치(坐馳)
움직이지 않고 앉아 있지만 잡념이 끊이지 않는 것을 말한다.
주석 113)혹 …… 두렵습니다
사마승정(司馬承禎, 643~735)은 당나라 현종ㆍ예종 때의 도사(道士)로서, 자는 자미(紫微)이고 호는 백운거사(白雲居士)다. 천태산에 은거해, '물아(物我)를 모두 잊어 도와 일체가 된 정신세계를 추구한다는 내용의 《좌망론(坐忘論)》 등을 지었는데, 정자(程子)는 "이것이 바로 좌치(坐馳)이다."라고 비판하였다.
答徐聖章【璜】
夫學問之道。是知行二端而已。然不知則無以行之。故學以窮理爲先也。窮理亦非一端。凡天地萬物。古今事變。無非吾窮格處。然先近而及遠。先易而及難。此其節度也。自灑掃應對。坐臥行步。身心性情。人倫日用之間。先須一一玩索。見其所當然而不容已。與其所以然而不可易。今日格一件。明日格一件。日日如此。無客間斷則推類相次。無微不徹。而自當脫然矣。讀書亦窮理之一端。如讀大學。則先求聖人所以作大學之意是如何。且大人之學是如何。明德是如何。新民是如何。一字求一字之義。一句求一句之義。皆要了了分明。無毫髮餘疑。此之謂窮理也。若其驗之於心。體之於身以聖賢之心爲己心。以聖賢之行爲己行。此是知行交際體認上說。非可以專屬於窮理也。敬與存心。非兩項事。敬便存存便存。此處極精微。最不可着意助長以生病敗也。程子曰。未有致知而不在敬者。非敬無以存心。非存心無以窮理。存心是徹頭徹尾底。不可以窮理先後論也。且以存養謂存心則可。以省察謂窮理則不可。省察是防微知幾底說也。端坐斂形不思不語之云。非不好矣而但恐用心太過。或致天台山人坐馳之譏也。但一日十二時。常常如對上帝。如見大賓。母或有一毫怠慢。至於奉親接人。應物處事之間。無有自欺自斂之端。積眞養誠。使天理分數。日以長長。足以爲主爲內而後。可以得力於此矣。來喩以爲成德以後之事者。得矣。然豈可諉諸成德而不之自求乎。但敬是主一之義也。初學其在放心之久。猝難主一。先於事物粗迹上。先定劃一規矩應此事時。不知有他事。讀此書時。不知有他書。窮此理時。不知有他理。久久不已。且將漸次得力矣。此是聖門第一義。勉之勉之。示喩以爲皆得自內制之然後。知其私欲而禁之。此是倒說。夫天下事。知其爲天理。知其爲人欲而後。可下克復之功。豈有先制之而後。知其私欲者哉。又曰酬應處。每多悔惑。是事來前思慮紛紜之致也。此說固然。然思慮强伏不得。惟是知識漸開。踐履漸固。則自然見得妥帖矣。
涵養之妙。持守積累。自當神會心得。非言說所可指授。無事時。思慮如麻。最難按伏。不如就日用應接上。養誠積眞。次第得力去。
正心章云云。固然。故聖人說遷善。先言改過。說存誠先言閑邪。說復禮。先言克己。
操則存云云。愚嘗以爲人心變化不測之妙。未嘗言陰陽變化云云矣。凡言聖人凡人之心如此。豈但指聖人之心而言者耶。
窮理之方。固非一端。或隨其思慮之所起而窮之。或別起一事而窮之。何妨也。但其先後緩急之序。則不可無也。
程子曰。謂之無思慮則不可。但無妄思可矣。來喩所謂但防邪意者。亦此義耶。
讀書時。間間休養。非特爲要息外念。培本淸源。固當如此。大抵激勵奮發。勿使少有怠緩而後可。不然畵脂鏤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