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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신재집(日新齋集)
  • 권5
  • 서(4)(書(4))
  • 홍문영에게 답함(答洪文寧)

일신재집(日新齋集) / 권5 / 서(4)(書(4))

자료ID HIKS_OB_F9001-01-202101.0005.0001.TXT.0038
홍문영에게 답함
아득히 헤어져 만나지 못한지 얼마인가요. 애타는 심정이 너무나 간절하여 잠깐의 틈도 없습니다. 알지 못하겠습니다만 시성(侍省)하는 상황은 절서마다【連序】 왕성하신지요? 가르치는 데 몸이 매여 있더라도 또한 교학상장(敎學相長)으로 이익을 취할 방법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찾아가 뵙고자 하지만 소식을 듣고자 하는 마음을 가눌 수가 없습니다. 저는 몸이【鼎器】주 84) 망가져서 한가지를 얻으면 그대로 잃어버려서 전혀 바뀌지 않는 데로 돌아갈 것 같습니다. 생각하면 슬픔이 밀려와 어찌 말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물어보신 권경(權經)에 대한 설은 철저하게 연구한 정밀함을 충분히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권(權)과 경(經)은 단지 하나면서도 둘이고 둘이면서도 하나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정자(程子)의 말씀이 아니라면 사람들은 그것을 둘로 보고 하나라고는 보지 않을 것입니다. 또한 주자(朱子)의 말씀이 아니면 사람들은 그것을 하나라고만 보고, 둘이라고는 보지 않을 것입니다. 두 설(說)이 서로 연관되어 그 뜻이 갖추어지게 되니 정자의 설이 잘못되었고 주자의 설이 옳다고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주자는 경(經)을 이미 정해진 권(權)이라고 하였고, 권(權)을 아직 정해지지 않은 경(經)이라고 하였다는 것이 이미 충분히 명백하게 밝혀졌으므로 다시 평할 여지가 없습니다. 무릇 권(權)과 경(經)은 진실로 분수(分數)가 있습니다. 그러나 마땅히 경이어야 할 때는 경이고, 마땅히 권이어야 할 때는 권인 것입니다. 또 일찍이 경이 아님이 없는 것이고, 또한 권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대(對)로 말하자면 권은 스스로 권이고, 경은 스스로 권입니다. 단언(單言)하면 권은 경이 되기도 하고 경은 권이 되기도 하는 것입니다. 정자와 주자의 두 가지 설을 문득 그 사이에서 선택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보내오신 편지에서, '경은 일정하게 획정한 것이고 권은 대상의 경중을 헤아리는 것이다.'라고 하셨는데 과연 두가지 사물로 보신 것입니까? 자세히 생각해보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주석 84)몸이【鼎器】
원문의 '정기(鼎器)'는 원래 단약(丹藥)을 고아내는 솥인데, 여기서는 육신을 비유하는 말이다.
答洪文寧
蒼莽葦刀。貽阻幾時。耿耿懷逞。無間晷刻。未審侍省候節。連序茂謐。絆身斅學。亦不無相長取益之方。爲之瞻溯。不在願聞。義林昇器敝漏。隨得隨失。其爲不移之歸決矣。撫念悲悼曷以云喩俯詢權經之說足見硏窮之密然愚意以爲權與經。只是一而二而一者也。非程子之言。則人見其爲二。而不見其爲一。非朱子之言。則人見其爲一。而不見其爲二。二說相須。其義乃備。不可以程子之說爲失。而朱子之說爲得也。朱子所謂經是已定之權。權是未定之經者。已是十分明白。無容更評夫權與經。固有分數。然當經而經。當權而權。亦未嘗不是經。又不可不謂之權也。是故。對言則權自權。經自經。單言則權便是經。經便是權。不當將程朱兩說。而輒可取舍於其間也。且來諭以爲經是一定畵定。權是稱物輕重。則此果二物乎。細思之如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