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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호남근현대문집
  • 일신재집(日新齋集)
  • 권5
  • 서(4)(書(4))
  • 문경오【재희】에게 답함(答文敬五【載熙】)

일신재집(日新齋集) / 권5 / 서(4)(書(4))

자료ID HIKS_OB_F9001-01-202101.0005.0001.TXT.0035
문경오【재희】에게 답함
서신을 받은 후에 며칠이 지났는데 한가로이 거처하는 체후가 계속해서 몹시 좋고 하부(下部)의 뜻밖에 생긴 질병도 속히 절로 낫기를 거듭 바랍니다. 그리워하는 마음을 금치 못합니다. 편지에서 '분을 내어 뛰어오르고, 떨쳐서 빨리 일어난다.【發憤勇躍, 奮迅興起】'라고 하셨는데, 이것은 학문(學問)의 본령(本領)이 됩니다. 그렇지 않다면 무릇 말하고 행동하는 것이 기름에 그림을 그리고 얼음을 새기는 것처럼 될 것이니 어찌 근거하여 지킬 만 한 바가 있겠습니까? 또 '위태위태하면주 79) 나아가 편안할 수가 없고, 무미건조하고 껄끄러우면 즐길만한 맛이 없다.【危殆捏扤, 無可卽之安, 枯燥生澁, 無可嗜之味】'라고 하셨는데 이는 함양(涵養)이 미숙(未熟)하여 밝지 않음을 끝까지 구하면서 이르게 된 것입니다. 무릇 독서(讀書)는 진실로 궁리(窮理)의 일단입니다. 그러나 종일토록 고달프게하면서 정신이 피폐해지면 또한 도움이 안될 것입니다. 모름지기 문장의 단과 마디를 따라서 끝까지 궁구해 파헤쳐보면 십분 분명해질 것입니다. 거듭 남은 힘이 있으면 단정하고 고요하게 앉아서 정신(精神)을 모으고 뜻을 오로지하면 이것이 근본을 바르게 하고 근원을 맑게 만드는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주자(朱子)께서, '반나절은 독서하고 반나절은 정좌한다.【半日讀書, 半日靜坐】'라고 한 것이 바로 이 뜻입니다. 또한 날마다 생활하는 모든 사항에 의리(義理)를 다할 수 있도록 힘쓰고 조금도 구차하거나 스스로를 속이는 폐단이 없도록 하여야 합니다. 그렇게 세월이 쌓여서 이어지고 그치지 않는다면 선한 힘이 점점 확장되고 악한 힘은 점점 줄어들어 장자(張子; 장재(張載))가 이른바, '안과 밖, 손님과 주인의 구분【內外賓主之分】'주 80)이니 대처할 방도를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저는 일찍이 이 일에 대하여 한나라와 초나라의 전쟁과 같다고 여겼습니다. 한나라의 힘은 본래 초나라를 상대하기에 부족하였지만 고조(高祖)가 관중(關中)을 평정함으로써 먼저 근본을 보존하고 단단하게 만드는 계책을 썼습니다. 또한 모신(謀臣)과 맹장(猛將)으로 하여 위(魏) 나라를 치고 조(趙) 나라를 공격하여 그 손과 발을 잘라버렸더니 항우(項羽)는 스스로 무너졌던 것입니다. 만약 고조가 자신의 힘을 헤아리지 않고서 갑작스럽게 항우를 공격하였다면, 항우를 반드시 이길 보장은 없고 단지 자신의 멸망만 자초하였을 것입니다. 무릇 오직 은미한 마음과 충분하지 못한 힘으로 그 습관을 제거하려고 한다면 오래된 폐단과 단단하게 굳은 삿된 것들이 사방에서 흘러나와 뻣뻣하여【倔强】 복종하지 않게 되리니 마치 살아 생동하는 용과 호랑이와 같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공자 문하의 여러 자제들은 오직 안자(顔子)의 학문이 건도(乾道)에 속하며 염자(冉子) 이하로는 모두 경서(敬恕)를 지양(持養)하는 사이를 종사함을 면치 못한다는 것을 여기에서 볼 수가 있습니다. 서로 깊이 그리워하고 있기에, 어리석은 견해를 망령되이 보내드립니다.
주석 79)위태위태하면
원문은 '올날(扤捏)'이다. 《서경》 〈주서(周書) 진서(秦誓)〉의 끝에 진나라 목공(穆公)이 건숙(蹇叔)의 말을 따르지 않고 다른 신하의 말을 듣고서 정(鄭)나라를 쳤다가 패배하고 난 뒤 뉘우치면서 한 말에서 유래하였다.
주석 80)안과 밖, 손님과 주인의 구분
이 말은 《논어집주》 〈옹야〉 5장 장하주에서 장재(張載)가, "학문을 시작하는 요점은 '삼월불위(三月不違)'와 '일월지언(日月至焉)' 중에서 무엇이 안이고 밖인지와 무엇이 손님이고 주인인지의 차이를 알아야하는 것이다.【始學之要, 當知三月不違, 與日月至焉, 內外賓主之辨.】"라고 한데서 유래한다.
答文敬五【載熙】
書後有日。更請齋居候節。連護茂謐。下部無妄。趁早勿藥。懸溯無任。所云發憤勇躍。奮迅興起云者。此是爲學問本領。不然凡所云爲。無非脂畵氷鏤。何足有所據守哉。又云危殆捏扤。無可卽之安。枯燥生澁。無可嗜之味。此是涵養未熟窮索未明之致也。夫讀書固是窮理之一端。然終日矻矻。疲獘精神。亦無益也。須逐段逐節。窮覈到底。截斷得十分分明。而更於餘力。端莊靜坐。使精神注泊。志慮精專。此是端本淸源太上法。朱子所謂半日讀書。半日靜坐者。正此意也。且於日用凡百。務盡義理。不要有一毫苟且自欺之獘。積以歲月。接續不綴。則善力漸長。惡力漸縮。而張子所謂內外賓主之分者。可以知所處矣。愚嘗謂此事如漢楚之交爭。漢之力。本不足以敵楚。而高祖定關中。先爲存本固根之計。又使謀臣猛將。擊魏攻趙。剪除其手足。而羽已自獘矣。若使高祖不量其力。而徑欲攻羽。則羽未必勝。而適以自速滅亡也。夫以惟微之心。未充之力。而欲祛其習。則久放蔽累膠固之私。滲漏四出。倔强不服。如生龍活虎也。是以孔門諸子惟顔子之學。爲屬乾道。而自冉子以下。皆不免從事於敬恕持養之間。此蓋可見也。相向之深。妄輸愚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