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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남근현대문집
- 일신재집(日新齋集)
- 권5
- 서(4)(書(4))
- 이덕재에게 보냄(與李德哉)
일신재집(日新齋集) / 권5 / 서(4)(書(4))
이덕재에게 보냄
서한에서 자세히 말씀하셨으니 근래 형세가 매우 급박하다는 것을 충분히 알겠습니다. 무릇 일본(一本)과 대본(大本)은 본래 두 가지가 아닙니다. 그러나 세분하자면 일본은 이(理)의 측면에서 말한 것이고 대본은 심(心)의 측면에서 말한 것입니다. 이 때문에 일본은 만수(萬殊 만물의 다양함)와 대가 되고주 35) 대본은 달도(達道)와 대가 됩니다.주 36) 또 일본과 만수는 본래 나뉘는 경계가 없습니다. 일본을 말하면 만수가 이미 갖추어지고 만수를 말하면 일본은 이를 벗어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만약 나누어 말하자면 나뉘는 경계가 전혀 없다고 할 수 없으니 현자(賢者 상대방)가 말씀하신 "물은 샘에 근본하고 나무는 뿌리에 근본한다."는 것이 그것입니다. 이(理)와 기(氣)는 본래 선후가 없습니다. 그러나 사물의 근원으로 말하면 이 이(理)가 있은 다음에 이 기(氣)가 있으니 이가 먼저이고 기가 나중이라고 말해도 됩니다. 운행으로 말하면 이 기가 있은 다음에 이 이가 갖추어지니 기가 먼저이고 이가 나중이라고 말해도 됩니다. 성(性)은 본래 오성(五性)의 총체적 명칭이지만 혼연(渾然)하게 뒤섞여 있는 것 가운데 또 찬연(粲然)하게 구분하여 말할 것이 없지 않습니다. 이러한 뜻으로 이해한다면 그 형상을 알 수 있습니다. "머리를 나란히 하고 함께 서 있는 것은 마치 화살의 활촉과 같고 각기 껍질이 있는 것은 석류의 씨와 같다."라고 한다면 잘못입니다. 합하여 말한다면 하나의 성(性)이라고 이를 수 있지만 나누어 말하자면 오성(五性)이라고 이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주자(朱子)가 "하나의 성이 혼연하다……"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다만 오리(五理), 오태극(五太極)은 말이 되지 않습니다. 이것이 조리(條理)나 문리(文理)를 이른다면 천하에 어찌 일찍이 오리만 있겠습니까. 태극이 이(理)의 총체적 명칭이라면 세상에서 또 어찌 일찍이 오태극을 말할 수 있었겠습니까. 만약 성(性)이 이(理)를 감싸 안고 있는 것이라면 일성(一性), 오성(五性)이라고 이르는 것이 어찌 불가능하겠습니까. 좁은 견문으로 어찌 조그마한 의미라도 밝혀낼 수 있겠습니까. 다만 강습(講習)의 도리로 볼 때 답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에 보잘것없는 생각을 말씀드리니 거듭 신중하게 생각하여 회답을 주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 주석 35)일본은……되고
- 《주자어류》에 "만 가지 다른 것이 하나의 근본이 되는 것과 하나의 근본이 만 가지로 다르게 되는 것은, 마치 한 근원의 물이 흘러나가 만 갈래의 지류가 되고 한 뿌리의 나무가 나와 수많은 가지와 잎이 되는 것과 같다.【萬殊之所以一本, 一本之所以萬殊, 如一源之水流出爲萬派, 一根之木生爲許多枝葉.】"라는 내용이 보인다. 《朱子語類 卷27 論語9 里仁篇下 子曰參乎章》
- 주석 36)대본은……됩니다
- 《중용장구》 제1장에 "기뻐하고 노하고 슬퍼하고 즐거워하는 정이 발하지 않은 것을 중이라 이르고, 발하여 모두 절도에 맞는 것을 화라 이른다. 중이란 것은 천하의 큰 근본이요, 화란 것은 천하의 공통된 도이다.【喜怒哀樂之未發謂之中, 發而皆中節謂之和. 中也者, 天下之大本也; 和也者, 天下之達道也.】"라는 내용이 보인다.
與李德哉
示喩縷縷。足見近日喫緊。甚不草草。夫一本大本。固無二致。然細分之。則一本是理上說。大本是心上說。是故一本與萬殊爲對。大本與達道爲對。且一本萬殊。固無界位。言一本而萬殊已具焉。言萬殊而一本不外焉。然若以分言之。則不可謂全無界位。如賢所謂水本於源。木本於根是也。理氣本無先後。然若以源頭言。則有是理。而後有是氣。謂之理先氣後可也。若以流行言。則有是氣而後是理具焉。謂之氣先理後可也。性固五性之總名。而渾然之中。又不無粲然之可言。以此意會。其象可見。若曰齊頭倂立。如箭之有簇。各有甲殼。如榴之有核則誤矣。合而言之。則謂之一性可也。分而言之。則謂之五性可也。是以朱子不曰一性渾然云云乎。但五理五太極。不成說理是條理文理之謂。則天下何嘗有五理而已乎。太極是理之總名。則天下又何嘗有五太極之可言乎。若夫性是理之結窠處。則謂之一性五性豈有不可乎。謏聞寡見。安足以發明萬一之意。但於講習之道。不容無答。玆以仰布鄙意。幸加三思而爲之回敎之。如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