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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호남근현대문집
  • 일신재집(日新齋集)
  • 권4
  • 서(3)(書(3))
  • 양청일【재덕】에게 답함(答梁淸一【在德】)

일신재집(日新齋集) / 권4 / 서(3)(書(3))

자료ID HIKS_OB_F9001-01-202101.0004.0001.TXT.0062
양청일【재덕】에게 답함
인편으로 매번 죽었는지 살았는지 안부를 물으시는데 거리가 멀수록 편지는 더욱 정성스럽고 교제가 오랠수록 정의(情誼)는 더욱 독실하였습니다. 다만 이렇게 어리석고 국량이 좁은 사람은 1전(錢)의 가치도 없는 처지이니 어떻게 고명(高明 상대방)에게 이와 같은 대우를 받겠습니까. 고마운 마음은 크지만 조금이라도 고명의 뜻에 부응할 방도가 없으니 죄송스럽습니다. 학문에 관해 하문하신 뜻이 간절하고 지극히 정성스러웠지만 이처럼 분별없는 사람이 어찌하겠습니까. 그러나 벗 사이에 강습(講習)하는 도리는 절대로 의심을 쌓아두고 단점을 비호하여 지극히 합당한 곳으로 돌아가지 못하도록 하면 안 됩니다. 다시 회답해 주시기 바랍니다.
대체로 마음은 한 몸의 주재(主宰)이고 만사(萬事)의 본령(本領)입니다. 마음이 존재하지 않으면 몸에 주재가 없고 만사에 근본이 없습니다. 그래서 옛날부터 성현이 사람을 가르치는 법도는 풀어진 마음을 수습하는 것【收放心】을 우선하지 않은 적이 없고 풀어진 마음을 수습하는 도리는 반드시 경(敬)을 첫 번째로 삼았습니다. '경(敬)' 자의 뜻을 정자(程子)는 일찍이 정제 엄숙(整齊嚴肅)주 84)이라고 하였고 또 주일 무적(主一無適)주 85)이라고 하였습니다. 반드시 의관을 정제하고 시선을 존엄하게 하여 엄숙한 태도로 항상 상제(上帝)의 뜻을 받들어 섬기듯이 해야 합니다. 책을 읽을 때는 책을 읽기만 하고 옷을 입을 때는 옷을 입기만 하여 두 가지 일을 하지도 않고 세 가지 일을 하지도 않으며 동쪽으로 가지도 않고 서쪽으로 가지도 않는다면 정신은 자연스럽게 안정되고 도리는 자연스럽게 모여듭니다. 또 모름지기 오늘 하나의 이치를 바로잡고 내일 하나의 이치를 바로잡으며, 오늘 한 가지 일을 하고 내일 한 가지 일을 하여 과정(課程)을 엄정하게 세우고 목숨을 바쳐 앞으로 나아간다면 쌓인 것이 많아진 뒤에는 저절로 초탈하여 구속이 없게 될 것입니다. 가장 두려운 점은 입지(立志)가 단단하지 못하고 입심(立心)이 미덥지 못하여 꼼꼼하지 못하고 조심성이 없이 늑장을 부리다가 일정함이 없이 중간에 그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한 해가 다 지나가도 어찌 성취하는 바가 있겠습니까. 의림(義林)은 일찍이 사우(師友)를 따랐기 때문에 대략 이와 같은 것을 알았지만 지금도 오하아몽(吳下阿蒙)주 86)인 것도 이 때문입니다. 때를 놓치고 안타까워하는 탄식은 죽더라도 어찌하지 못할 것입니다. 좌하(座下)의 총명함과 독실함으로 반드시 이 점에 대해서 소릉(昭陵)을 보듯 했으리라고주 87) 생각되니 달빛 아래 촛불을 밝히고 시주(詩酒)를 즐기는 것이 어찌 제가 하고자 하는 바이겠습니까. 단지 고루한 견해를 바로잡지 않을 수 없고 또 저를 비루하게 여기지 않는 마음에 조금이라도 보답하고자 합니다.
주석 84)정제 엄숙(整齊嚴肅)
《이정유서(二程遺書)》 권15 〈입관어록(入關語錄)〉에 "다만 외면을 정제하고 엄숙히 하면 마음이 곧 전일해지니, 전일해지면 저절로 사악함이 침범하는 일이 없게 된다.【只整齊嚴肅 則心便一, 一則自無非辟之干.】"라는 내용이 보인다.
주석 85)주일 무적(主一無適)
《심경부주(心經附註)》 권1 〈경이직내장(敬以直內章)〉에 "주일을 경이라 이르니, 안을 곧게 한다는 것은 바로 주일의 뜻이다.【主一之謂敬, 直內乃是主一之義.】"라고 하고, 또 "마음은 지키면 보존되고 놓으면 잃어서 출입하는 것이 일정한 때가 없어 그 방향을 알 수 없으니, 다시 어떻게 마음을 붙여 둘 곳을 찾겠는가. 그저 마음을 지킬 뿐이니, 마음을 지키는 방도는 경을 하여 안을 곧게 하는 것이다.【操則存, 舍則亡, 出入無時, 莫知其鄕, 更怎生尋與寓? 只是操而已. 操之之道, 敬以直內也.】"라는 내용이 보인다.
주석 86)오하아몽(吳下阿蒙)
학식이 없는 사람을 기롱하는 말이다. 오하아몽은 삼국(三國) 시대 오(吳)나라 장수 여몽(呂蒙)을 가리키는데, 손권(孫權)이 여몽과 장흠(蔣欽)에게 학문을 하여 깨우치라고 하자 여몽이 독실하게 공부를 하였다. 그 뒤 노숙(魯肅)이 주유(周瑜)를 대신하여 도독(都督)이 되어 여몽에게 들렀는데 그가 괄목상대할 만큼 학문의 진전을 이룬 것을 보고 여몽의 등을 치면서 말하기를, "그대가 무략만 있는 줄 알았는데 이제 박학하고 영준한 것을 보니 더이상 오하아몽이 아니다."라고 한 데서 유래된 말이다. 《三國志 卷54 吳書 呂蒙傳 注》
주석 87)소릉(昭陵)을……했으리라고
수많은 학설을 모두 독파했을 것이라는 말이다. 소릉은 당 태종(唐太宗)의 황후인 문덕황후(文德皇后)의 능이다. 태종이 황후를 장사 지낸 뒤 후원(後苑)에 망대(望臺)를 만들어 놓고 늘 올라가 바라보다가 한번은 위징과 함께 올라갔었는데, 위징은 당 태종이 소릉을 가리키는데도 눈이 어두워 보이지 않는다고 시치미를 뗐다. 위징의 본의도 모르고 당 태종이 저것이 아니냐고 답답한 듯이 말하자 위징이 비로소 "신은 폐하께서 헌릉(獻陵)을 말씀하시는 줄 알았습니다. 소릉은 신이 진작부터 보았습니다."라고 하였다. 헌릉은 태종 어머니의 능이니, 이것은 태종이 어머니는 생각하지 않고, 부인만 생각한다고 꼬집은 것이다. 이리하여 태종은 울면서 그 망대를 헐어 버린 고사가 전한다. 《唐書 魏徵列傳》
答梁淸一【在德】
便頭每得死生之問。地愈遠而書愈勤。交愈久而誼愈篤。顧此愚劣褊淺。不直一錢漢。何以得於高明如此。爲感則厚。而無以副其萬一之意爲可罪也。下問爲學之意。非不懇惻。而奈此倥倥何。然朋友講習之道。切不可蓄疑護短。以昧至當之歸。幸復回敎也。夫心者一身之主宰。萬事之本領也。心有不存。則一身無主。萬事無本。是以從古聖賢敎人之法。無不以收放心爲先。收放心之道。必以敬爲第一義。敬字之義。程子嘗以整齊嚴肅言之。又以主一無適言之。必須整衣冠。尊瞻視。儼然肅然。常若對越上帝。而讀書時只讀書。着衣時只着衣。不二不三不東不西。則精神自然凝定。道里自然湊泊。又須今日格一理。明日格一理。今日行一事。明日行一事嚴立課程。舍死向前。則積累多後。自當有脫然處。最怕立志不牢。立心不實。而悠悠泛泛。間斷無常。則卒歲窮年。豈有所成就也。義林早從師友之後。粗知如此。而尙今吳下阿蒙者。亦爲是故也。無念失時之歎。有死莫追。以座下明睿篤實。想必於此有昭陵之見。則月下擧燭。愚豈所欲也。但固陋之見。不可不正。又以塞不鄙萬一之意。