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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호남근현대문집
  • 일신재집(日新齋集)
  • 권4
  • 서(3)(書(3))
  • 손자익【영모】에게 답함(答孫子翼【永謨】)

일신재집(日新齋集) / 권4 / 서(3)(書(3))

자료ID HIKS_OB_F9001-01-202101.0004.0001.TXT.0056
손자익【영모】에게 답함
연전에 올린 서찰은 역시 때가 매우 늦었습니다. 급히 달려가 조문하려 했으나 도리어 차질이 생겨서 어쩔 수 없이 그렇게 서찰로 대신 위로를 드렸습니다. 인정과 도리로 보자면 매우 실정에 맞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애시(哀侍 상중에 있는 상대방)께서 저를 허물하지 않으시고 외람되게도 서찰을 보내셨으니 극도로 정성스럽고 간절하여 무어라고 답을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묵은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는 때에 부모를 잃은 슬픔과 사모하는 마음을 어떻게 견디시는지 다시 묻습니다. 멀리서 그리움이 간절하여 견디기 어렵습니다. 의림(義林)은 늙고 병든 몸으로 칩거하느라 만사를 다 제쳐 두었지만, 배움을 놓쳤다는 탄식만은 잠시도 떨쳐내기 어렵습니다. 매번 아직 남아있는 동료들 가운데 견줄 이가 매우 드문 애시(哀侍)의 문장과 품행을 볼 때마다 늘 경애하는 마음이 들어 가까이하면서 밤낮으로 가르침을 받아 조그마한 성취를 이루는 데 도움을 얻고자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운명이 순탄하지 않고 얽매인 몸이 벗어나지 못해 매번 애시의 풍류와 운치를 우러러보면서 그저 그리운 마음만 절실할 뿐이었습니다. 어찌 집사(執事)께서 저를 멀리하지 않고 이렇게 서신으로 왕래하는 길을 열어 주시는 것이 이처럼 부지런하리라고 생각하였겠습니까? 이것이 참으로 만년에 이른 저의 보잘것없는 소원이었으니 감히 지극한 뜻을 받들어 힘쓰기를 스스로 도모하지 않겠습니까.
문목(問目)의 여러 조항은 모두가 핵심이 되는 말들이니 학문이 정밀하고 심오한 경지에 나아가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저처럼 보잘것없는 사람이 어찌 그 사이에서 우열을 따질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물었는데 답을 하지 않는 것은 불공(不恭)에 가까우니 감히 비루한 견해를 대략 말씀드립니다. 다시 가르침을 주시기 바랍니다.

【문】 지손(支孫)이 부제(祔祭)주 62)할 때 간혹 종자(宗子)가 멀리 나가 있다면 종자가 돌아온 뒤로 물리어 행합니까, 지손이 섭주(攝主)가 되어 행합니까? 또 종가(宗家)가 멀리 있으면 지손의 집에서 지방(紙傍)으로 행하는 것은 어떤지 모르겠습니다.
【답】 종자가 돌아오는 것을 기간을 정해 기다릴 수 없다면 섭행(攝行 대신 거행함)하는 사유를 고하고 행하는 것이 옳습니다. 또 종자가 먼 곳에 산다면 지방(紙榜)으로 행하는 것도 가능합니다.
【문】 무릇 제사에서 유식(侑食)주 63)의 절차를 행할 때 숟가락을 꽂고 젓가락을 바르게 한다는 규정이 있지만, 삼년상 동안 제사할 때는 어디에도 없으니 무엇 때문입니까?
【답】 우제(虞祭)주 64)를 지낼 때 숟가락을 꽂고 젓가락을 바르게 한다는 규정이 없는 것이 매우 의심스럽기 때문에 《상례비요(喪禮備要)》에서 이를 보충해주 65) 넣었습니다.
【문】 우제와 졸곡(卒哭)주 66), 대상(大祥)주 67)과 소상(小祥)주 68)에 참신(參神)주 69)의 절차가 없는 것이 삼년상 동안 항상 살아계실 때처럼 궤연을 모시는 상주의 의리 때문이라면 사신(辭神)주 70)의 절차도 없어야 하건만 있는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답】 상례의 제사에서 참신을 하면서 재배(再拜)를 한다는 규정이 없더라도 또한 곡을 하는 것으로 참신을 대신하는 절차도 없습니다. 사신을 하면서 재배를 하는 것은 끝맺음을 귀하게 여기는 예(禮)의 정신 때문인 듯합니다.
【문】 "무릇 제사에서 삼헌(三獻)을 하면서 술로 고수레를 하는 것은 신령을 대신하여 고수레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시제(時祭)의 경우는 술을 올린 뒤에 고수레를 하고 우제의 경우는 고수레를 한 뒤에 올리는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답】 고수레를 하고 올리는 것은, 이때는 슬픔에 경황이 없는 중이라서 세세한 절문을 다 갖출 수 없어서 생략하는 듯합니다.
【문】 '지지능득(知止能得)'주 71)부터 '물유본말(物有本末)……'주 72)까지 보건대, 《전(傳)》 4장에서 본말에 대해서만 풀이한 것은 무슨 뜻입니까? 이 장이 삼강령(三綱領)의 뒤 팔조목(八條目)의 앞에 들어가 있는데 또한 둘 곳이 있습니까? 삼강령과 팔조목 사이에 둘 공간이 있느냐는 뜻인 듯합니다.)
【답】 '지지(知止)'와 '물유(物有)' 두 구절은 삼강령과 팔조목의 중간에서 맥락이 이어지는 곳입니다. 그러나 지지(知止)는 바로 지지(知至)주 73)를 말하니 별도의 전문(傳文)을 마련할 필요가 없습니다. 다만 '본말(本末)' 2자는 바로 그사이의 요체가 되는 곳이므로 특별히 풀이한 것입니다.
주석 62)부제(祔祭)
졸곡제(卒哭祭)를 지낸 다음 날 지내는 상제(喪祭)의 명칭이다. 사당(祠堂)에서 부제를 마친 후 새로 죽은 사람의 신주(神主)는 협제(祫祭)를 지낼 때와 마찬가지로 곧바로 정침(正寢)으로 되돌려 놓는다. 그 후 삼년상이 끝나는 일정한 시점에 친진(親盡)한 고조의 신주를 조묘(祧廟)로 옮겨 안치하고 새로 죽은 사람의 신주를 사당에 들이는데 이를 천묘(遷廟) 또는 부묘(祔廟)라고 한다.
주석 63)유식(侑食)
제사의 한 절차로, 신에게 식사를 권한다는 뜻이다. 삼헌(三獻)을 마친 뒤 밥에 숟가락을 꽂고서 모든 제관(祭官)이 밖으로 나와 문을 닫고 서서 아홉 숟갈을 먹는 시간【九飯之頃】을 기다린다.
주석 64)우제(虞祭)
매장을 한 뒤 혼령이 방황하지 않도록 안정시키기 위하여 지내는 상제(喪祭)이다. 신분에 따라 9번, 7번, 5번, 3번 지낸다. 《의례》 〈기석례(旣夕禮)〉에 "세 번 우제(虞祭)를 지낸다.〔三虞〕" 한 것에 대해 정현(鄭玄)은 주(注)에서 "우(虞)는 상제(喪祭)의 이름이다. 우는 안정시킨다는 뜻이다. 뼈와 살은 흙으로 돌아갔으나 정기는 가지 않는 곳이 없으므로, 효자는 그 혼령이 방황하지 않도록 세 번 제사를 지내 안정시킨다. 아침에 장례를 치르고 해가 중천에 있을 때 우제를 지내는 것은 차마 하루라도 혼령이 돌아갈 곳이 없게 할 수 없기 때문이다.【虞, 喪祭名. 虞, 安也. 骨肉歸於土, 精氣無所不之, 孝子爲其彷徨, 三祭以安之. 朝葬, 日中而虞, 不忍一日離.】"라고 하였다.
주석 65)《상례비요(喪禮備要)》에서……보충해
《상례비요(喪禮備要)》 〈우제(虞祭) 유식(侑食)〉의 "집사자가 주전자를 들고 나아가 잔에 첨작을 한다.【執事者執注, 就添盞中酒.】" 구절의 소주(小註)에 "밥에 손잡이를 서쪽으로 향해서 숟가락을 꽂고, 젓가락은 바르게 놓는다. ○ 살피건대, 모든 제사에서 유식을 하고 나서는 숟가락을 꽂고 젓가락을 똑바로 올려놓는다는 문구가 있으나, 《가례》의 우제ㆍ졸곡ㆍ부제ㆍ소상ㆍ대상ㆍ담제에는 다 같이 없고, 《가례의절》에도 없으니, 어떻게 된 것인지 모르겠다.【扱匙飯中 西柄, 正筯. ○ (按) 凡祭侑食, 俱有扱匙正筋之文, 而家禮虞卒哭祔練祥禫祭幷無之, 儀節亦無, 未知何也.】"라고 하였다.
주석 66)졸곡(卒哭)
우제(虞祭)를 모두 마친 다음 첫 번째 강일(剛日)에 지내는 상제(喪祭)이다. 슬픔이 줄어들어 이후로는 무시(無時)로 하던 곡을 그치고 조석곡(朝夕哭)만 하므로 졸곡제라고 한다. 졸곡제 이전에는 살아 있는 분을 섬기듯이 하는 예를 계속 적용하지만 졸곡제를 지낸 다음에는 신명(神明)으로 대우하게 되므로 귀신의 이름을 공경하는 뜻에서 사자(死者)의 이름을 부르지 않는다. 《의례》 〈기석례(旣夕禮)〉에 "졸곡제(卒哭祭)를 지낸다.〔卒哭.〕" 한 것에 대해 정현(鄭玄)은 주(注)에서 "졸곡(卒哭)은 삼우제(三虞祭) 뒤에 지내는 제사 명칭이다. 처음에는 조석곡을 하는 사이라도 슬픔이 밀려오면 곡을 하지만, 이 제사를 지내고 난 후에는 그치고 조석곡만 할 뿐이다.【卒哭, 三虞之後祭名. 始朝夕之閒, 哀至則哭, 至此祭, 止也, 朝夕哭而已.】"라고 하였다.
주석 67)대상(大祥)
죽은 지 만 2년째(기년상의 경우는 13개월째)에 지내는 상제(喪祭)이다. 상(祥)이라고도 한다. 고례(古禮)에 따르면, 삼년상의 경우 만 2년째인 25개월에, 특별히 아버지가 생존 중인 상황에서 돌아가신 어머니를 위해 하는 기년상의 경우에는 13개월째에 지내는 제사로, 상주가 상복(喪服)을 벗고 길복(吉服)을 입은 채 제사를 지낸다. 그러나 아직 완전한 길(吉)로 나아간 것이 아니므로 잿물에 담갔다가 말려 희고 부드럽게 하지 않은 호관(縞冠)만은 착용하고, 아침저녁의 정해진 곡을 하지는 않지만 슬픔이 북받칠 때는 곡을 하며, 고기도 먹을 수 있다.
주석 68)소상(小祥)
돌아가신 지 만 1년째(기년상의 경우는 11개월째)에 지내는 상제(喪祭)이다. 연(練)이라고도 한다. 연(練)은 누인다, 곧 '잿물에 담갔다가 말려 희고 부드럽게 한다'는 뜻으로, 소상(小祥)에는 누인 대공포(大功布)로 만든 중의(中衣)와 누인 대공포로 만든 관(冠)을 착용하고 상제(喪祭)를 지내므로 소상을 연제(練祭) 또는 연이라고 한다. 연제를 지낸 뒤에야 야채와 과일을 먹을 수 있다. 아버지의 생존 중에 어머니가 사망한 기년상의 경우에는 11개월째에 연제를 지낸다.
주석 69)참신(參神)
제사 지낼 때 신주(神主)에 절하고 뵙는 것을 이른다.
주석 70)사신(辭神)
종헌(終獻)한 다음 신주를 들이기 전에 신주에게 절하고 작별하는 의식이다.
주석 71)지지능득(知止能得)
《대학장구》 경(經) 1장에서 "그칠 데를 안 뒤에 정함이 있으니, 정한 뒤에 고요할 수 있고 고요한 뒤에 편안할 수 있고 편안한 뒤에 생각할 수 있고 생각한 뒤에 얻을 수 있다.【知止而后有定, 定而后能靜, 靜而后能安, 安而后能慮, 慮而后能得.】"라고 하였다.
주석 72)물유본말(物有本末)
《대학》 경 1장에 "물에는 본과 말이 있고, 일에는 종과 시가 있으니, 먼저 하고 뒤에 할 것을 알면 도에 가깝다.【物有本末, 事有終始, 知所先後, 則近道矣.】"라고 하였다.
주석 73)지지(知至)
《대학장구》 경 1장에 "사물이 이른 뒤에 앎이 지극하고【物格而后知至.】"라고 하였는데, 집주에 "지지(知至)는 내 마음의 앎이 다하지 아니함이 없는 것이다.【吾心之所知, 無不盡也.】"라고 하였다.
答孫子翼【永謨】
年前一疏。亦已晩矣。期擬匍匐。輒見差池。而爲此不得己替慰之擧。揆以情理。太不稱停。然而哀侍不以爲咎。而辱賜手疏。極其懇惻。不知所以攸答。更問歲次餞迓哀慕孝思。何以支堪。馳溯憧憧。不在情懇。義林衰病跧伏。萬事都休。而惟是失學之歎。耿耿難遣耳。每覵哀侍文學操履。在今儕流。甚罕其比。尋常愛仰。思欲獲近日夕擩染光薰。以爲毗倚扶竪。萬一之計。而命道不媚身繫莫解。每瞻望風韻。只切依然。豈意執事爲之不遐。開此書疏往復之路。若是密勿哉。此誠葉楡區區之願。敢不承膺至意以自圖勉也。問目諸條。無非肯綮語。可見所造之情且深也。以若膚淺。何足以上下其間。然有問無答。近於不恭。敢以鄙見。略綽言之。幸復見敎也。支孫祔祭時。或宗子出遠。則退行於宗子返後耶。以攝主行之耶。此宗家遠。則紙傍行之。未知如何。宗子之還。若不可以日月支待。則告攝行之可也。且宗子遠居。則紙榜行之亦可。凡祭侑食。雖有扱匙正筋之文。而三年內竝無之何虞之無扱匙正筋。殊涉可疑。故備要補入之。虞卒哭大小喪。無參神之節。是三年內孝子常侍之義。則辭神亦當無而獨有之。何耶 喪之祭。雖無參神再拜之文。而亦無以哭代參之節乎。辭神之有再拜。似是禮貴有終之義也。凡祭三獻祭酒。乃代神之祭。而時祭則獻而後祭。虞祭則祭而後獻。何也。祭而後獻。此在哀遽之中。似不得盡其節文之委曲。故略之也。自知止能得至物有本末云云。傳四章特釋本末者。何義。此章八於三綱後八條前。亦有所措歟。知止物有兩節。此是三綱八條中間脈理連續處。然知止卽知至之謂。不必別立傳文。但本末二字。乃其間總要處。故特釋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