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화콘텐츠
  • 특화콘텐츠
  • 호남근현대문집
  • 일신재집(日新齋集)
  • 권4
  • 서(3)(書(3))
  • 김문견【규원】에게 답함(答金文見【奎源】)

일신재집(日新齋集) / 권4 / 서(3)(書(3))

자료ID HIKS_OB_F9001-01-202101.0004.0001.TXT.0013
김문견【규원】에게 답함
이보다 앞서 인편이 출발하였는데 모두 화급(火急)하여 단지 한 폭의 편지만 써서 여러 형이 돌아가면서 보게 할 계획이었습니다. 비록 소략하기는 하지만 힘이 미치지 못하는 것을 어찌하겠습니까. 뜻밖에 여러 형의 편지를 받았는데 각각 수백언(數百言)이나 되었습니다. 펼쳐 본 뒤 부지런함과 태만함이 서로 현격한 것이 몹시 부끄러웠습니다. 저에 대한 칭찬이 실제보다 지나치니 어찌 아우에게 그런 면이 있겠습니까. 한마디 말로 백대(百代)를 넘어 서로 감동하는 자가 있건만 하물며 한 시대를 함께 하면서 두 차례나 편지를 주고받은 경우야 말할 나위가 있겠습니까. 아우가 어찌 다시 훈계를 할 만한 사람이겠습니까. 세상에는 자연히 이를 감당할 수 있는 식견을 갖춘 대가가 있을 것입니다. 등잔을 밝히고 새벽을 잇는다는 것은 전한 사람의 망녕된 말입니다. 예전에 익힌 학업은 기억하지 못하고 새로운 지식은 이어지지 않고 그저 오래도록 세월만 허비하고 있을 뿐입니다. 함양(涵養) 운운하신 것은 온당하지 못한 듯합니다. 대체로 공부(功夫)는 동(動)과 정(靜)을 통합하여 말하는 것이지 적연부동(寂然不動) 한쪽만 가리켜서 말하지 않습니다. 또한 공부에는 본래 존심 양성(存心養性)의 때, 궁리 격물(窮理格物)의 때, 성찰(省察)의 때가 있어 적연부동만으로 이 마음의 이치를 밝힐 수 없습니다. 또 적연부동에만 의지하면서 응접(應接)이 저절로 적절해지기를 바랄 수도 없습니다. 만약 이 말과 같다면 아마도 이보새(伊蒲塞)의 기미와 서로 멀지 않을 것16)16) 이보새(伊蒲塞)의……것:불교의 학설에 가깝게 된다는 말이다. 이보새는 범어 upāsaka의 음역으로, 오계(五戒)를 받은 재가 남자 불교 신도를 말한다. 우바새(優婆塞)라고도 하며 근사남(近事男), 근선남(近善男), 청신남(淸信男), 청신사(淸信士) 등으로 의역된다.
이니 어찌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함양은 본래 학문의 본령입니다. 그러나 또한 눈꼬리를 치켜세우고 분을 부라려서 분별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반드시 책을 읽어 이치를 궁구하고 실심(實心)으로 실천하여 날이 쌓이고 달이 거듭된 다음에야 공이 드러날 것입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答金文見【奎源】
前此便發。擧皆火急。只擧一幅書。爲僉兄輪照計。雖涉草草。而其於力不及何哉。料外得僉兄書。各具數百言。披玩以還。甚愧勤慢之相懸也。吹噓過實。弟豈有是耶。以片言單辭。而有曠百世相感者。況竝一世而有再度往復耶。更加藥石。弟豈其人乎。天下自有一副大方可以當之者。焚油繼晷。傳之者妄也。舊業不記。新知無繼。只是悠悠玩愒而已。涵養云云。恐未穩。大抵功夫。是統動靜說。非但指寂然不動一邊說。且功夫固有存養時。有窮格時。有省察時。不可專以寂然不動。而明此心之理也。又不可專靠寂然不動。而欲應接之自得其宜也。若如此說。則與伊蒲塞氣味。恐不相遠。豈不可懼。涵養固爲學問之本領。然亦非撑眉努眼所可辦。必讀書窮理。實心踐履。日積月累而後。可以見功。如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