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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호남근현대문집
  • 일신재집(日新齋集)
  • 권3
  • 서(2)(書(2))
  • 정경지【재홍】에게 답함(答鄭敬之【在洪】)

일신재집(日新齋集) / 권3 / 서(2)(書(2))

자료ID HIKS_OB_F9001-01-202101.0003.0001.TXT.0043
정경지【재홍】에게 답함
두보(杜甫)의 시(詩)에 "봄이 오면 오래도록 회포를 펼치리라고 생각했건만, 늙어가면서 친하게 알고 지내는 사람 얼굴 보기 드물다."주 96)라고 하였습니다. 아우는 궁벽한 골짜기에서 움츠리고 지내서 찾아오는 사람이 전혀 없으니 외롭고 쓸쓸하여 마음을 가눌 길이 없습니다. 매번 이 노인의 시는 오로지 저를 위해서 마련하고 지은 것으로 생각하고 한번 읊조리고 한번 탄식하면서 그럭저럭 자신을 위로하였습니다. 다행스럽게 노형(老兄)께서 뭇사람이 버린 상황에서도 저를 버리지 않고 글과 술로 저를 맞이하고 뛰어난 시로 저에게 넌지시 간하며 저에게 안부를 묻고 강론과 토의로 저를 면려하는 것이 느리지도 않고 빠르지도 않으며 정겨움이 넘쳐났습니다. 그 뜻을 어찌 잊을 수 있으며, 그 뜻을 어찌 소홀하게 여길 수 있겠습니까. 두보가 생각만 하고 이루지 못한 것을 오늘에 이르러 내가 이룰 수 있으리라고 어찌 알았겠습니까. 위로되는 마음 가득합니다. 보내신 서신에, "눈앞에 놓인 어지러운 시속(時俗)은 별달리 다스릴 방도가 없고 벗들과 의리를 강구하는 것처럼 급박한 일이 없다."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참으로 그렇습니다. 그러나 지금과 같은 세상에서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비록 근심이 없는 태평한 시기일지라도 선비가 추구해야 하는 것은 이 일뿐입니다. 이것 외에는 추구할만한 일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군자는 이유를 자기에게서 찾고 소인은 남에게서 찾습니다. 그러나 소인이 구하는 것은 얻는 데 도움이 되지 못하니 외부에 있는 것을 구하기 때문이고, 군자가 구하는 것은 얻는 데 도움이 되니 자기에게 있는 것을 구하기 때문입니다. 하물며 우리에게 남은 생애가 지금 세상에 살고 있으니 어찌 뜨락 밖으로 한 발자국이라도 내딛는 것을 용납하겠습니까. 문을 걸고 담 구멍을 막아 세상과 서로를 잊으며 내 옷을 입고 내 음식을 먹으며 내 책을 읽어 늘그막에 조그마한 공을 거두는 것이 가장 좋은 요결(要訣)입니다. 형께서도 이미 잘 알고 계시리라고 생각합니다.
주석 96)봄이……드물다
두보의 〈십이월일일삼수(十二月一日三首)〉 가운데 3수에 해당하는 구절이다.
答鄭敬之【在洪】
杜子詩曰。春來準擬開懷久。老去親知見面稀。弟跧滯窮峽。過終絶罕。踽踽凉凉。無以爲懷。每疑此老詩偏爲此生準備而作也。一諷一歎。聊以自慰。幸有老兄不棄於衆棄之中。邀我以文酒。諷我以瓊律。訊我以寒暄。勉我以講討。不徐不疾。款款津津。其義何可忘。其義何可少耶。杜子所以準擬而未就者。安知至於今日而我得就之耶。滿心慰慰。來喩以爲目今俗擾。別無所營。從友講義。莫此爲急。此固然矣。然非惟今俗爲然。雖在昇平無虞之時。士之所當求者。此事而已。外此了無一事可求者。是以君子求諸己。小人求諸人。然彼求無益於得。求在外故也。此求有益於得。求在我故也。況吾輩殘生。坐在今日世界。豈容一步於門庭之外耶。杜門塞竇。與世相忘。衣吾衣。食吾食。讀吾書。以收桑楡萬一之功。此是太上要訣。想兄已諒悉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