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화콘텐츠
  • 특화콘텐츠
  • 호남근현대문집
  • 일신재집(日新齋集)
  • 권3
  • 서(2)(書(2))
  • 박학중에게 보냄(與朴學仲)

일신재집(日新齋集) / 권3 / 서(2)(書(2))

자료ID HIKS_OB_F9001-01-202101.0003.0001.TXT.0025
박학중에게 보냄
경립(景立)이 담헌(澹軒)에서 돌아왔을 거라고 짐작하고 사온(士溫)을 보내 안부를 묻게 했더니, 사온(士溫)이 길을 가던 중간에 경립을 만나 함께 돌아왔습니다. 한창 걱정스럽던 시기에 마음이 매우 흡족하였습니다. 제게 끊임없이 물으시니 노형(老兄)께서는 역시 예학(禮學)에 대하여 매우 상세하고 세밀하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다만 이렇게 용렬하고 천박한 사람이 어떻게 견줄 수 있겠습니까. 제 의견으로는 우암(尤菴 송시열(宋時烈))과 동춘(同春 송준길(宋浚吉))이 사계(沙溪 김장생(金長生))의 주장에 비해서 더욱 온당한 듯합니다. 이미 "시기가 지나면 담제(禫祭)주 67)를 지내지 않는다."고 했다면, 담제를 지내는 달에 대상제(大祥祭)를 지내는 것은 시기가 지났다고 할 수 없습니다. 날을 가려 대상제를 지내고 그 다음에 중순이나 하순에 다시 날을 가려 담제를 지내는 것은 무엇이 안 되겠습니까. 왕숙(王肅)이 "그달 안에"라고 한 것 또한 하나의 증거가 아니라고 할 수 없습니다. 또 시기가 지나면 담제를 지내지 않는 것은 마찬가지이니, 어찌 공제(公祭 국가의 제사)와 사제(私祭 사가(私家)의 제사)의 구별이 있겠습니까. 상중에는 담제를 지내지 않는다는 주장은 본래 부모의 상을 동시에 치르는 경우를 두고 하는 말입니다. 어찌하여 가벼운 상의 장례를 치른 뒤 무거운 상의 담제를 지내지 않겠습니까. 그렇더라도 가벼운 상이 만약 장례를 치르기 전이라면 무거운 상의 담제를 지낼 수 없습니다. 2년이 되는 날 이미 고사(告辭)를 했다면 대상제(大祥祭) 때의 축문(祝文)은 차이가 없을 듯합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것은 모두 천박한 견해이고 근거 없는 말이니 노형께서 다시 지당한 논의를 가르쳐 주시기 바랍니다. 다만 축하드릴 만한 말이 하나 있습니다. 노형께서 근래 병에 매여 계시니 누구인들 염려스럽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문을 닫고 홀로 지내며 쓸데없는 빈객을 맞지 않고 쓸데없는 얘기를 듣지 않으며 오직 성현의 서적에만 침잠 반복(沈潛反復)하실 뿐입니다. 이 때문에 지식이 날로 열리고 사유(思惟)가 날로 넉넉해지니 시력을 일찍 잃지 못한 것이 한스럽다는 주부자(朱夫子)의 말을 알기에 충분합니다. 게다가 두 자제가 아침저녁으로 감화를 받는 기회가 되는 것은 어찌 한량이 있겠습니까. 위로가 됩니다.
주석 67)담제(禫祭)
삼년상에서 25개월이 되는 달에 대상제(大祥祭)를 지낸 뒤 한 달을 건너 27개월째에 지내는 제사이다. 담은 담담한 듯 평안하다는 뜻으로, 대상제를 통해 실제적인 삼년상의 과정을 마무리함으로써 부모에 대한 친애(親愛)의 정감을 다할 수 있었던 효자(孝子)의 마음을 표상하는 상제(喪祭)이다. 담제를 지내고는 음악을 연주하고 정사(政事)에 복귀하는 등 상례 이전의 일상으로 돌아간다. 일반적으로는 정현(鄭玄)의 주장에 따라 27개월째에 지내지만 대상제와 동일하게 25개월이 되는 달에 지낸다는 왕숙(王肅)의 이설(異說)도 있다.
與朴學仲
意景立自澹軒還。送士溫候之。士溫行到中路。逢景立俱還。企慮之際。甚愜情緖。俯詢縷縷。足見老兄於禮學。亦甚詳密。顧此疏慵淺劣。何足以上下也。鄙意尤菴同春。比沙溪說。似益穩當。旣曰過時不禫。則禫月行祥者。不可謂過時矣。卜日行祥。其次中旬及下旬。又卜日行禫。何所不可乎。王肅所謂是月之中者。亦不可謂非一副證佐矣。且過時不禫一也。豈有公祭私祭之別乎。喪中不禫。本以父母偕喪說也。豈以輕喪葬後不行重喪之禫乎。然雖輕喪若其葬前。則不可行禫也。再期日。旣有告辭。則祥時祝文。似無異同矣。如何如何。此皆淺見臆說。幸老兄更示以至當之論。第有一說可奉賀者。老兄近來爲病所縶。孰不悶慮然閉戶獨居。不接閒人客。不聞閒說話。而所沈潛反復。惟是聖賢書籍而已。是以知識日開。神明日腴足見朱夫子却恨盲廢不早之語也。况爲令允兄弟日夕薰染之地者。豈有量哉。慰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