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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호남근현대문집
  • 일신재집(日新齋集)
  • 권3
  • 서(2)(書(2))
  • 정후윤에게 보냄(與鄭厚允)

일신재집(日新齋集) / 권3 / 서(2)(書(2))

자료ID HIKS_OB_F9001-01-202101.0003.0001.TXT.0011
정후윤주 25)에게 보냄
방장산(方丈山)에서 헤어진 뒤 두 해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가을이 깊어가는데 형의 체후(體候)는 동정(動靜)이 어떠신지 모르겠습니다. 농사가 풍년이니 영남도 이와 같으리라고 생각됩니다. 흉년이 거듭된 뒤라 위로가 될만할 듯하지만 시국이 이처럼 소란스러우니 앞으로 편안히 앉아 배불리 먹을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동문(同門)의 옛 친구들은 여기저기 흩어지고 남아 있는 이가 이제 몇 사람 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또 모두가 노쇠하여 수백 리 먼 곳에 떨어져 지내느라 서로 소식도 접하지 못하고 어려움에도 서로 관여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매번 머리를 들어 동쪽을 바라볼 때마다 커다란 탄식을 이기지 못할 따름입니다. 면우(俛宇)주 26)가 세상에 나갔을 때 형도 더불어 나아갔으니 시사(時事)는 과연 어떤지, 처하는 곳은 또 어떤지 모르겠습니다. 멀리 떨어져 있어 서로 자세히 알지 못하기에 늘 소식을 듣고자 하는 마음이 절실합니다. 아, 눈앞에 닥친 시색(時色)이 진펄에서 위태로움을 기다리고주 27) 칼이 살갗에 이른주 28) 듯합니다.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떠나고 싶은 마음이 지금에 와서 절실합니다만 그럴 수 없으니 어찌하겠습니까. 형은 근년에 산재(山齋)에 머무르셨습니까, 계정(溪亭)에 머무르셨습니까? 만년에 성정(性情)을 함양하는 운치, 영재를 키우는 즐거움이 작지 않으리라고 생각됩니다. 지난가을에 계획했다가 이루지 못한 호남행은 올가을에 다시 도모하시는지요? 저는 해마다 묶여 있는 채 벗어날 수 없어 상황이 고달프기만 합니다. 새장 속에 갇혀 있는 날개(새)가 앞으로 마음껏 날아오르는 날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영정(咏亭)에 기와를 얹는 일을 마친 지 이미 여러 해가 지났건만 경비를 아직도 갚지 못하여 매번 이것이 근심이었습니다. 일전에 송사(松沙)주 29)의 편지를 받았더니 가족을 데리고 금계산(金雞山)으로 들어갈 생각이며 금계산은 옥과(玉果)와 담양(潭陽) 등에 걸쳐있다고 합니다. 연간에 황생 철원(黃生澈源)주 30)과 의견을 주고받은 일이 있습니다. 대체로 황생은 "영(靈)은 묘용(妙用)을 주재(主宰)하지 못하고 묘용을 주재하는 것은 신(神)이다. 영은 온갖 사물의 이치를 갖추어 만사(萬事)에 응하지 못하고 온갖 사물의 이치를 갖추어 만사에 응하는 것은 신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아우는 이르기를, "이와 같다면 영은 쓸모없는 물건이 되고 이(理)는 작용(作用)과 상관없는 일이 됩니다. 대체로 심(心)은 원래 허령(虛靈)한 것이고 허령한 것은 본래 오묘하게 합합니다. 이 때문에 당체(當體)로 보자면 기(氣)라고 하고 본체(本體)로 보자면 이(理)라 하고 묘처(妙處)로 보자면 신(神)이라고 합니다. 신(神)과 영(靈)이 어찌 일찍이 별도의 방향이나 처소가 있고 별도로 시기가 있는 것이겠습니까? ……"라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황생은 여전히 그렇다고 믿지 않으니 또 제 견해에 잘못이 없다는 것을 어찌 알겠습니까. 형께서 상세히 분변하여 알려주시기를 바랍니다. 대체로 심(心)은 기(氣)를 가지고 말하는 경우가 있고 이(理)를 가지고 말하는 경우가 있어, 진실로 각각 한 쪽만 고집하면서 다른 사람과 논쟁을 벌여서는 안 됩니다. 다만 기(氣)를 위주로 말하는 오늘날에는 그러한 주장을 바로잡을 근거를 도리(道理)의 측면에서 자세히 밝히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것이 선사(先師)께서 '정상(精爽)은 피상적인 것이다.'주 31)라고 말씀하신 까닭이고, 노형(老兄)이 '기(氣)를 자조(資助 돕는 것)이다.'라고 말씀하신 까닭입니다. 황생의 견해는 대체로 여기에 근원을 두면서도 지나쳐 이렇게 허령한 것은 심(心)이 아니라는 말까지 하였으니 옳겠습니까. 삼가 기억하건대 요 몇 해 사이에 형께서 황생에게 편지를 보내서 "묘용(妙用)의 운행과 정영(精英)의 발현이 곧 이른바 심(心)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이 제 생각에는 매번 의혹이 없을 수 없었습니다. 묘용의 운행이 비록 이(理)이기는 하지만 그 안에 정영(精英)을 포괄하고 있으니 하단에 별도로 정영을 말하여 짝지은 것은 지나친 췌언(贅言)이 아니겠습니까. 만약 이(理)만 말하고 정영은 간여하는 것이 없다고 한다면 이른바 이(理)는 작용(作用)으로 귀결되지 않겠습니까. 이것은 기자이(機自爾 기(機) 자체의 작용)라고 말하고 이어서 이승(理乘 이가 기를 타고 주재하는 것)의 의리를 말하는 것과 다름이 없을 듯합니다. 지난번에 면우(俛宇)가 다른 사람에게 보낸 편지를 보았더니 간간이 지나치게 이(理)를 위주로 한 부분이 있었습니다. 혼자 제멋대로 개탄하기를, "나에게 있는 도가 대공지정(大公至正)하더라도 한 번 전해지고 두 번 전해지다 보면 착오가 없을 수 없다. 하물며 나에게 있는 것이 먼저 잘못되었다면 말할 나위가 있겠는가."라고 생각하였습니다. 후학들에게 이와 같은 폐단이 결코 없으리라는 점을 보장할 수 없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주석 25)정후윤(鄭厚允)
정재규(鄭載圭, 1843~1911)의 자이다. 또 다른 자는 영오(英五)이고 호는 노백헌(老柏軒), 애산(艾山), 물계(勿溪)이며 본관은 초계(草溪)이다. 정방훈(鄭邦勳)의 아들로 1864년(고종1) 경상도 합천에서 전라남도 장성 기정진(奇正鎭)의 문하에 들어가 수학하였다. 제자로는 정면규(鄭冕圭), 권운환(權雲煥) 등이 있으며, 합천 경덕사(景德祠)에 봉안되었다. 저서로 《노백헌집(老柏軒集)》 49권이 있다.
주석 26)면우(俛宇)
곽종석(郭鍾錫, 1846∼1919)의 호이다. 본관은 현풍(玄風), 자는 명원(明遠)으로 경상도 단성(丹城) 출신이다. 25세 때 이진상(李震相)의 문하에 들어가 수학하였다. 1903년 통정대부, 비서원 승에 제수되었고 저서로는 《면우문집(俛宇文集)》이 있다.
주석 27)진펄에서 위험을 기다리고
《주역》 〈수괘(需卦) 초구(初九)〉에 "먼 들녘에서 기다린다."라고 하고, 〈구이(九二)〉에 "모래밭에서 기다린다."라고 하고, 〈구삼(九三)〉에 "진펄에서 기다린다."라고 하여, 점점 험난한 지역에 접근함으로써 위험에 빠지게 됨을 비유하였다.
주석 28)칼이 피부에 이른
《주역》 〈박괘(剝卦) 육사(六四)〉에 "상을 깎아 살갗에 이르니 흉하다."라고 하고, 그 상전(象傳)에 "상을 깎아 살갗에 이르는 것은 재앙이 매우 가까워진 것이다."라고 하였다.
주석 29)송사(松沙)
기우만(奇宇萬, 1846~1927)의 호이다. 본관은 행주(幸州), 자는 회일(會一)이다. 기정진(奇正鎭)의 손자로 가학을 계승하여 성리학을 연구하였으며 1895년 이후 의병을 일으켜 일제에 저항하였다.
주석 30)황생 철원(黃生澈源)
황철원(黃澈源, 1878~1932)은 전라남도 화순군(和順郡) 능주(綾州) 운곡(雲谷)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장수이고 자는 경함(景涵)이며 호는 중헌(重軒), 은구재(隱求齋)이다.
주석 31)정상(精爽)은……것이다
《노사집(蘆沙集)》 권6 〈답박형수(答朴瑩壽)〉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보인다. "사람의 몸으로 말하면 호흡(呼吸)의 나가고 들어옴, 영위(榮衛)의 오르고 내림이 모두 이 기(氣)입니다. 반드시 '기(氣)' 자 아래에다 '정상(精爽)'이란 글자를 붙여야 '심(心)' 자의 경계로 들어가게 됩니다. 그러나 '정상'이란 글자도 피상적인 설명에 불과합니다.【就人身而言, 噓吸之出入, 榮衛之陞降, 皆是物也. 必氣字下, 著精爽字, 方說入心字境界.然精爽亦是皮殼說話.】"
與鄭厚允
方丈一別。星霜再周。未審秋高。兄體動止何似。年形得稔。想嶺中如之耶。荐凶之餘。有若可慰。而時騷如此。未知前頭可以安坐飽喫否也。同門舊契。零星餘存。見無幾人。而又皆衰老。相滯於落落數百里之遠。音聞不相接。痛癢不相關。每矯首東望。不勝浩歎而已。俛宇之出。兄與同升。未知其時事果何如而所處又何如。遠未相悉。每切願聞。嗚乎。目前時色。如需之至泥。如剝之到膚。惠好同歸之思於斯爲切。而不可得。奈何奈何。兄近年住着在山齋乎溪亭乎。晩年恬養之趣。英育之樂。想有不淺淺者矣。前秋所營湖行而未就者。更於今秋圖之耶。弟年年絆已。出脫不得苦況苦況。未知縶籠之翼。其將有任意翶翔之日乎。咏亭蓋瓦了已有年。而債費尙未了刷。每以爲悶曰。前得松沙書。有絜家入金雞山中之意。山在玉果潭陽等地云耳。年間與黃生澈源有所論說者。蓋黃生以爲靈不能主宰妙用。而主宰妙用者。神也。靈不能具衆理應萬事。而具衆理應萬事者。神也。弟以爲如此。則靈爲無用之長物。理爲作用之別事。夫心合下是虛靈底。虛靈合下是妙合。是以以其當體則謂之氣。以其本體則謂之理。以其妙處則謂之神。神與靈。曷嘗是別有方所別有時節者哉云云。而黃生猶不信之然。又安知鄙見不有差誤處耶。願兄詳辨以示之也。大抵心有以氣言者。有以理言者。固不可各執一邊與之嘵嘵也。但在今世主氣之日。而所以捄之者。不得不於道理上加詳焉。此先師所以有精爽皮殼之語。老兄所以有氣爲資助之說。黃生之見。蓋源於此而過之。至爲此虛靈非心之語者。可乎。竊記頃年兄與黃生書。有曰妙用之行。精英之發。卽所謂心。此語於鄙意。每不能無疑。妙用之行。雖是理。而包精英在其中。下段別言精英以配之。不已贅乎。若曰專言其理。而精英無與云爾。則所謂理者。不其歸乎作用乎。此與說其機自爾。而繼言理乘之義。恐無異矣。曩見俛宇與人書。間間有主理太過處。私竊慨嘆。以爲道之在我。大公至正。而一傳再傳。猶不無差失。況在於我者。已不免先有差失乎。此後學之敝。不可保其必無也。如何如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