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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호남근현대문집
  • 일신재집(日新齋集)
  • 권3
  • 서(2)(書(2))
  • 정후윤에게 보냄(與鄭厚允)

일신재집(日新齋集) / 권3 / 서(2)(書(2))

자료ID HIKS_OB_F9001-01-202101.0003.0001.TXT.0008
정후윤에게 보냄
변방의 적막한 모퉁이에 현인군자가 한번 왕림해 주시어 산천초목으로 하여금 영광스럽게 하였습니다. 돌아가신 뒤에 소식이 막혀 적막하기 그지없었습니다. 7월 사이에 을지(乙枝)에 도착하여 비로소 소식을 들었습니다. 이후로 고요히 수양하시는 체후는 시절과 더불어 강녕하시며, 영종씨(令從氏)는 어떠하십니까? 계남(溪南 최숙민(崔琡民)), 산석(山石 김현옥(金顯玉)), 순경(舜卿), 자후(子厚) 및 알고 있는 벗들은 모두 편안합니까. 농사가 흉년이 든 가운데 귀중(貴中)은 어떠하신지요? 동쪽에 떠 있는 구름을 바라보며 날마다 마음이 달려갑니다. 저는 현재 예전처럼 지내고 있으며 나머지는 말할 만한 것이 없습니다. 다만 날로 몸은 노쇠하고 세상사는 나날이 어지러워지는 가운데 구구한 이의 구업(舊業)은 만분의 일도 수습하지 못하니, 슬픔과 탄식이 어찌 끝이 있겠습니까. 작년 2월에 은혜로이 보내 주신 편지는 지금 하형(夏兄)이 왔을 때 비로소 받았지만 바쁘고 어수선하여 자세히 보지 못하다가 나중에 보니 또한 다소 논의할 것이 없지 않았습니다. 제가 이전 편지에서 "원두(源頭)로 말하면 이 이(理)가 있고 이 기(氣)가 있으니, 이는 이(理)가 주재(主宰)가 되는 소이(所以)이다. 당체(當體)로 말하면 이 기가 있어 이 이를 갖추고 있으니, 이는 심이 주재가 되는 소이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이에 대해 형이 논박하여 말하기를 "이가 주재가 되는 것은 다만 원두에서 말할 수 있지만, 품부받은 이후는 한결같이 기가 주(主)가 되는 것이니 이른바 이가 주재가 된다는 것은 다만 근거가 없는 허황된 말이어서 실사(實事)가 없다."라고 하였습니다. 대저 이 이(理)가 있으면 이 신(神)이 있으니, 신이라는 것은 이(理)의 오묘한 것입니다. 그 묘용을 헤아릴 수 없어 절로 일에 따라 교부(交付)하여 소이(所以)가 없어도 절로 이(以)가 되는 것이 이(理)가 주재가 되는 소이입니다. 나중에 《율리만록(栗里漫錄)》을 구했는데, 형이 산석(山石)에게 보낸 두 번째 편지를 보니 "만약 이가 절로 주재가 되어 사람을 기다림이 없다고 한다면 성현이 논한바 극(極)을 세워 성(性)을 정하여 도심(道心)으로 하여금 주가 되게 한다는 여러 가지 말씀은 모두 폐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이전 편지의 뜻과 너무나 현격한 차이가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제가 이전 편지에서 말한 원두(源頭)니 당체(當體)니 하는 것은 뚜렷한 구분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 당체에 나아가 그 본연을 궁구한다면 이것이 곧 원두입니다. 이미 이 이(理)가 있은 뒤에 이 기가 있는 것이니 이 기는 처음부터 끝까지 이가 하는 바가 아니겠습니까. 그렇다면 비록 심이 주재가 되더라도 주재가 되게 하는 소이(所以)는 이(理)이니, 사람은 도를 넓힐 수 있고 심은 성을 단속할 수 있습니다. 형께서 인용한 "극을 세워 성(性)을 정한다.", "도심으로 하여금 주가 되게 한다."라는 등의 말은 모두 이 뜻이 아니겠습니까. 이(理)의 자연함은 실로 소이(所以)가 없고 본래 이(以)입니다. 그러나 반드시 기의 신령함이 있은 뒤에 바야흐로 이 오묘함이 있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죽은 고목과 불이 꺼진 재도 이 오묘함이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주자(朱子)가 사(事)와 물(物)의 뜻에 대해서 말하기를 "사를 말하면 물이 그 가운데 있고, 물을 말하면 사가 그 가운데 있지만, 사와 물을 상대하여 말하면 사는 절로 사이고 물은 절로 물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저는 "심성(心性)" 2자의 뜻도 이와 같다고 말할 따름입니다. 게다가 부동심(不動心)을 정심(正心) 이후의 일이라고 하는 것은 불가하니, 비록 성인의 지극한 공이라도 정심 이후에는 더 이상 갈 곳이 없습니다. 더구나 「정심장(正心章)」에서 이른바 우(憂), 환(患), 공(恐), 구(懼) 등의 말주 20)은 동심(動心)의 공이 아님에 있어서야 말해 무엇 하겠습니까. 바라건대 더 가르쳐 주시기 바랍니다. 지난번에 을지(乙枝)에서 《대곡유집(大谷遺集)》주 21)을 본 다음 가지고 와서 깨끗하게 써서 편을 완성하려고 생각하였습니다. 아, 노형(老兄)께서 교정하고 교감하고 산석(山石)이 편집하였습니다. 그런데 저도 당시의 친구 가운데 한 사람이 아니라고 할 수 없으니, 어찌 홀로 조금이라도 보충하고 성과를 내는 수고로운 정성을 바치지 않겠습니까. 더구나 격언(格言)과 요어(要語) 및 논변한 것이 정밀한 곳은 아침저녁으로 펴서 읽을 수 있어서 손에서 놓지 않고자 합니다. 행장(行狀)은 송사(松沙)가 이미 기술하였고, 전(傳)은 제가 형의 말씀대로 또한 집필하였습니다. 《정암집(靜菴集)》 2질은 삼지재(三芝齋)에게 부탁하였지만 다만 일을 주관한 사람들이 지금 경락(京洛)에 있으므로 운반할 수 없을 따름입니다. 내년 봄 뇌용정(雷龍亭) 유람은 송사(松沙)께서 장차 옮겨서 황산재(凰山齋)주 22)에서 모임을 가지려 하니, 아마도 그때 선사의 묘비(墓碑)에 관한 일이 마무리되기 때문일 것입니다.
주석 20)정심장(正心章)에서……말
《심경부주》 권2 〈정심장(正心章)〉에 "우환(憂患)과 공구(恐懼)는 똑같은 뜻인 듯하다고 묻자, 주자가 똑같지 않다. 공구는 당장에 핍박함이 긴급한 것이어서 사람으로 하여금 공구하여 어찌할 줄을 모르게 하는 것이요, 우환은 장래에 큰 화복과 이해가 있음을 사려하여 미리 방비하는 것이다.[ 問憂患恐懼四字, 似一般. 曰不同, 恐懼是目下逼來得緊底, 使人恐懼失措. 憂患是思慮預防將來有大禍福利害.]"라고 한 내용을 이른다.
주석 21)대곡유집(大谷遺集)
김석귀(金錫龜)의 문집으로 1902년에 간행하였다.
주석 22)황산재(凰山齋)
전라남도 장성군 동화면 황산마을에 있는 재사이다.
與鄭厚允
天荒寂寞之隅。得賢人君子一番光顧足令草水勤榮。駕旋消息。寂然無際。七月間到乙枝。始得聞之矣。未審伊後燕養候節。與時康泰。令從氏何狀。溪南山石舜卿子厚及所知諸益。一齊平適耶。年事不均。未知貴中何如。瞻向東雲。無日不馳情。弟見樣依舊。餘無可道。惟是衰徵日侵。世故日深。而區區舊業。未見有萬一之收。悲憤憂嘆。曷有涯極。去年二月所惠書。今夏兄來時。始已得之。而拘於怱撓未得仔細追後見之亦不無多少商確處鄙前書有曰以源頭而言。則有是理而有是氣。此理之所以爲主宰也。以當體而言。則有是氣而具是理。此心之所以爲主宰也。兄駁之曰。理爲主宰。只可以言於原頭。而稟賦以後。一是氣爲之主。則所謂理爲主宰者。只是懸空虛說。而無實事也。夫有是理。斯有是神。神也者。理之妙也。其妙用不測。自有隨事交付。無所以而自以者。此理之所以爲主宰也。其後得栗里漫錄。見兄所抵山石第二書。有曰。若以理自爲主宰。而謂無待乎人。則聖賢所論立極定性使道心爲主諸般說話。皆可廢歟云云。此與前書之意。不其大相懸絶耶。弟前書所云源頭當體。非有判然地頭。卽此當體而究其本然。則這便是源頭也。旣有是理而后有是氣則是氣之自始至終。非理之所爲耶。然則。雖曰心爲主宰。而其所以爲主宰。理也。人能弘道。心能檢性。及兄所引立極定性使道心爲主等語。皆非此義耶。理之自然。固無所以而自以然必須氣之靈而後。方有是妙。不然。枯木死灰。亦可謂有是妙耶。朱子言事物之義曰。言事則物在其中。言物則事在其中。事物對言。則事自事物自物弟以爲心性二字之義。亦如是云耳。且以不動謂之正心以後事。不可。雖聖人之極功。於正心以後。更無可去處。況正心章所論憂患恐懼等語。其非不動心之功耶。幸加敎之也。向於乙枝見大谷遺集。因以袖來。思欲淨書成篇耳。嗚乎。老兄勘校之。山石編輯之。而弟亦不可謂非當日知舊之一。則安獨無一分補效之勞乎。況其格言要語。及論辨精微處。有可以晨夕披玩而不欲離也。行狀松沙已述之傳。則弟依兄敎。亦爲下筆耳。靜菴集二帙。託于三芝齋。但其主事諸員。今在京洛。故未得運送耳。明春雷龍之游。松沙將欲移爲凰山之會。蓋其時先師墓碑役。將就故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