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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호남근현대문집
  • 일신재집(日新齋集)
  • 권3
  • 서(2)(書(2))
  • 정후윤에게 보냄(與鄭厚允)

일신재집(日新齋集) / 권3 / 서(2)(書(2))

자료ID HIKS_OB_F9001-01-202101.0003.0001.TXT.0007
정후윤에게 보냄
연전에 장(蔣) 노인의 일에 대해서는 이미 들었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그의 맏아들이 돌아가는 편에 여러 통의 편지를 부쳤는데 잘 도착하였습니까? 봄 사이에 담헌(澹軒)의 강회에 갔다가 형이 이사하였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새로 이사한 나머지에 황량한 곳의 절선(節宣) 등 모든 일이 어떠하십니까? 어디를 간들 가난하지 않겠으며, 어디에 거처한들 곤궁하지 않겠습니까. 오직 이는 선대의 고향이니, 생각건대 끝없이 흠모하는 생각을 붙일 것입니다. 그리고 또 현종(賢從 상대방의 종제)과 침상을 나란히 하여 함께 정담을 나누며 만년에 정신을 함양하는 곳으로 삼은 것은 그 뜻이 어찌 우연이겠습니까. 저는 선친에게서 물려받은 가산을 탕진하고 전혀 의지할 곳이 없이 아침저녁 사방으로 떠도는 것이 마치 낙엽이 바람에 따라 굴러다니는 것과 같은 신세입니다. 구구한 이의 생각은 다만 옛집으로 돌아가 선영을 가까이서 바라보며 늘그막의 여생을 보낼 계책으로 삼고자 하지만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노형께서는 어떻게 이것을 이루었습니까. 듣자니 승룡(乘龍)의 짝은 명호(明湖)의 조카로 정했다고 하는데, 이 사람의 기골은 일찍이 훌륭해 보였습니다. 양가는 덕을 짝한 것이니 남은 복을 헤아릴 수 있을 것입니다. 이전 편지에서 논한바 완이(莞爾) 어른과 주고받은 몇 가지 조목과 산석(山石)이 보여준 우리들이 주고받은 부분의 말은 이미 보셨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바라건대 절충하여 이렇게 몽매함을 제거해 주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종산강록(鍾山講錄)》주 17)과 제가 지은 《영행록(嶺行錄)》주 18)은 또한 일일이 밝게 살피고 헤아려 보신 다음 아울러 돌려보내 주십시오. 병자년(1876, 고종13) 여름에 우리 두 사람이 송별한 글은 이는 선사(先師)의 명이니, 심상하게 저술한 것에 비할 것이 아닙니다. 다만 그 체제는 좋지 않으니, 다시 편찬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참으로 형의 말과 같습니다. 저는 돌아와 분주하여 이에 힘쓸 겨를이 없었습니다. 지금 인편이 있다는 말을 듣고 마침내 비로소 창졸간에 붓을 들었지만 오히려 20년 전 옛말을 다시 되풀이하는 것을 면하지 못하였으니, 학업의 진보가 없는 것이 도리어 이와 같단 말입니까. 지난번에 면암(勉菴) 어른의 편지를 받고서 성재(省齋)가 논한바 심설(心說)이 자못 자세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대개 성재의 뜻은 '심(心)은 물(物)로 말할 수 있지만 칙(則)으로 말할 수 없다. 화장(火臟 심장)으로 말하면 화장은 실로 물이고 인의(仁義)는 칙(則)이 되며, 신명(神明)으로 말하면 신명도 물이고 인의는 칙(則)이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선사 벽계(檗溪) 선생이 일찍이 신명을 가지고 기(氣)라고 말하지 않은 것은 물칙(物則)의 구분에 대해서 그다지 분명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하기까지 하였습니다. 형도 근래 이 설을 보았습니까? 이 어른은 평소 수학(邃學)이라고 불렸는데 그 언론이 도리어 근세의 그릇된 폐단을 답습한단 말입니까. 대저 기(氣)의 묘용(妙用)을 실로 신(神)이라고 하고, 이(理)의 오묘한 곳을 또한 신(神)이라고 하니, 비록 기의 묘용이라고 말하더라도 또한 이 이가 운행하는 손발에 불과합니다. 심은 물(物)을 가지고 말하는 자가 있고 칙(則)을 가지고 말하는 자가 있습니다. 물을 가지고 말한다면 인(仁)은 그 칙(則)이 되고, 칙으로 말하면 신(身)이 그 물(物)이 됩니다. 맹자가 이른바 인은 인심(人心)이라고 한 것과 정자(程子)가 이른바 "하늘에 있으면 명(命)이라 하고, 사람에게 있으면 성(性)이라 하고, 몸에서 주재(主宰)하면 심(心)이라 한다."주 19)라고 한 이러한 '심(心)' 자는 또한 모두 물(物)로 간주하는 것입니까? 평소 이해하지 못하여 감히 이렇게 우러러 여쭙니다.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내년 봄에 쌍계(雙溪)에서 만나자는 약속은 앞으로 또한 머지않았습니다. 약속을 정할 때 그 사이의 시간을 보니, 넉넉히 공부하여 만날 때 문변(問辨)할 자료로 삼을 수 있을 듯하였는데, 곧이어 다시 그럭저럭 세월만 보내고 있으니 끝내 쓸데없이 어울리는 것을 면치 못할 것입니다. 종산(鍾山)의 모임에서 이미 볼 수 있었습니다. 이는 우리들이 강론하는 본의가 아닐 뿐만 아니라 이처럼 세월을 보낸다면 몇 년 되지 않아 알려지지 않은 채 생을 마치지 않겠습니까. 두려워할 만합니다. 또 두세 동지가 조용히 서로 약속해도 그 끝내는 필시 큰 모임이 될 텐데, 더구나 빽빽한 자리에서 많은 사람이 약속하는 것이 이미 많은 것이야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그때 두 도(道)의 인사(人士)가 필시 적지 않을 것입니다. 원하건대, 형은 미리 조약(條約)을 정해 번거롭고 산만한 폐단이 없이 보고 느끼는 실제가 있게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다시 바라건대 스스로를 소중히 여기고 더 아끼십시오.
주석 17)종산강록(鍾山講錄)
권기덕(權基德, 1856~1898)이 벗들이나 문하생들과 역사, 예절, 성리학, 경전 등에 대해 문답한 것으로 현재 《삼산유고(三山遺稿)》에 실려 있다.
주석 18)영행록(嶺行錄)
정의림이 영남을 유람하고 기록한 책이다.
주석 19)하늘에……한다
이 말은 《근사록(近思錄)》 권1 〈도체(道體)〉에 보인다. 어떤 이가 심(心)에도 선악(善惡)이 있는가를 물었는데, 정이(程頤)가 "하늘에 있으면 명(命)이라고 하고 사물에 있으면 이(理)라고 하고 사람에 있으면 성(性)이라고 하고 몸에서 주재하면 심(心)이라고 하니, 그 실제는 하나이다. [在天爲命, 在物爲理, 在人爲性, 主於身爲心, 其實一也.]"라고 하였다.
與鄭厚允
年前蔣老人事。想已聞之矣。其遺胤回便付上諸札。不至浮沈耶。春間赴澹軒講會。聞兄搬移之報矣。未審新移之餘蕪處節宣。凡百何如。安往而不貧。何處而不困。惟是桑梓故邱。計寓贍慕無窮之思。而又與賢從聯兀對討。爲晩年游養之所者。其意豈偶然哉。弟蕩失先業。漫無聊賴。朝東暮西。如落葉隨風。區區之念。只欲返舊庄瞻近墳墓。爲殘生終老之計。而不能得未知老兄何以辨此耶聞乘龍之擇。在明湖之姪。此郞氣骨。曾所艶見。兩德作述。餘祿可量。前書所論莞爾丈往復數條。及山石所示吾輩往復一段語。想已照及。幸爲折衷。祛此蒙部如何。鍾山講錄反弟所述嶺行錄。亦爲一一澄裁。倂以見還也。丙子夏吾兩人送別文字。此是先師之命。則非尋常著述之比。而但其體裁未善。不可不更爲修潤者。誠如兄敎矣。弟歸來役役無暇及此。今聞有便。及始倉卒下筆。而猶不免再誦二十年舊語。其業之不進。及如是耶。向得勉菴丈書。知省齋所論心說頗詳。蓋省齋之意。以爲心可以物言。不可以則言。以火臟言。則火臟固物也。而仁義爲則。以神明言。則神明亦物也。而仁義爲則。至謂其師檗溪先生。未嘗以神明言氣者。於物則之分。不甚端的云。未知兄亦近見此語否。此丈素號邃學。而其言論反襲近世謬獘耶。夫氣之妙用。固謂之神。而理之妙處。亦謂之神雖曰氣之妙用。而亦不過此理運行底手脚也。心有以物言者。有以則言者。以物言則仁爲其則。以則言。則身爲其物。孟子所謂仁人心。程子所謂在天爲命。在人爲性。主於身爲心。此等心字。亦皆以物看耶。尋常未瑩。敢此仰布。以爲如何。明春雙溪之約。將亦不遠矣。定期之初。見其間日月。若可以優着功夫。爲供臨時問辨之資。而旋復因循。竟未免一場閒追逐。其於鍾山之會。已可見矣。此不惟非吾輩講聚之本意。而如是捱過。未幾年。其不終於無聞耶。可懼。且二三同志。從容相約。其終必至於浩大。況稠座衆諾所及已多乎。其時兩省人士必將不少。願兄預定條約。無繁渙之獘。有觀感之實。如何更乞珍重加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