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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호남근현대문집
  • 일신재집(日新齋集)
  • 권3
  • 서(2)(書(2))
  • 정후윤에게 답함(與鄭厚允)

일신재집(日新齋集) / 권3 / 서(2)(書(2))

자료ID HIKS_OB_F9001-01-202101.0003.0001.TXT.0006
정후윤에게 답함
세월이 머무르지 않아 선부인(先夫人)의 연사(練事)주 12)가 이틀 뒤에 행해질 것이니, 삼가 생각건대 애모(哀慕)함이 망극한 가운데 어떻게 견디십니까. 먼 외지에서 사모하는 마음을 감당하지 못하겠습니다. 저는 영남에서 2월 7일에 비로소 집으로 돌아왔고, 그 다음 다음 날에 숙부님의 상을 당하였으니 지극히 통탄스러운 마음 어떻게 말로 형용하겠습니까. 유명(遺命)에 따라 돌아가신 다음 달에 선산에 장사 지냈습니다. 기력은 날마다 떨어지고 세상사는 나날이 어지러워지니, 구구한 이의 평소 마음은 그 가운데 한둘도 부합하지 못하였고, 지금 또 시골 숙사(塾舍)에 머무르며 사람들을 응대하느라 분분하게 날로 마음이 치달리니 어찌 침체되지 않겠습니까. 지난번에 만난 것은 십수 년 만이었으니 정히 크게 논의가 있을 때였는데 저는 구덩이에 빠지는 것에 가까웠을 뿐만이 아니었습니다. 다만 노형께서는 언론이 분명하고 의리가 밝으며, 행동거지와 법도가 정연하여 본받을 만하였습니다. 편찬한 《언행록(言行錄)》및 논한 바 심성론(心性論) 등의 책 약간 편을 보니 세밀하고 자세히 분석하여 이치는 분명하고 말은 사리에 맞았으니, 참으로 덕이 있는 사람의 말이었습니다. 오늘날 세상에 이러한 글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너무나 공경스럽고 감격스럽습니다. 「문답편(答問編)」은 지난번에 송사(松沙)의 편지를 받으니 간행하여 유포할 뜻이 있었습니다. 저는 정자(程子)의 "《역전(易傳)》을 아직 주석하지 않았으니, 행여 다소라도 진전이 있기를 바라서"라는 말주 13)을 인용하여 고하였는데, 송사(松沙)의 답장에 "《역전》은 정자가 스스로 지은 것이므로 신중함이 실로 이와 같은 것이다. 이는 다만 종류대로 덧붙여 편을 만든 것이니, 그 의체(義諦)와 아주 다르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어리석은 견해로 생각해 보면 그렇지 않은 듯합니다. 옛날에 두 분 정자(程子)의 유서(遺書)는 전사하는 과정에서 진면목을 잃은 것이 많아 구산(龜山)이 삭제하여 바로잡고자 하였지만 감히 실행하지 못했고, 남헌(南軒)은 《희안록(希顔錄)》주 14)을 편찬하면서 문득 삭제한 것이 많았습니다. 오봉(五峯) 호자(胡子)는 이에 대해서 "이는 종신토록 해야 할 일이니, 곧 함부로 삭제해선 안 된다."라고 하였습니다.주 15) 그렇다면 삭제하여 바로잡는 것과 스스로 논의를 세우는 것은 어렵게 여기거나 쉽게 여기는 데에 차이가 없을 듯합니다. 이 편지는 지난번에 비록 다 읽지는 못했지만 나중에 생각하니, 헤아려 볼 점이 없지 않은 듯하였습니다. 원하건대, 형이 비록 갑자기 광범위하게 수정하지 못하더라도 모름지기 가까이 사는 노성하고 박아(博雅)한 몇 사람과 며칠의 일정을 정하여 다시 세밀하게 다듬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세상에서 명덕(明德)을 논하여 기(氣)라고 하는 자는 그 설이 《대학(大學)》에서 허령(虛靈)하다 운운한 것주 16)을 잘못 알고 말한 것입니다. 그 설에 "허령하고 어둡지 않은 것[虛靈不昧]은 심(心)이요, 심은 기(氣)의 맑은 것이니, 명덕은 기(氣) 쪽에 속한 것이지 이(理) 쪽에 속한 것이 아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저는 이에 대해 "허령하고 어둡지 않다는 이 한 단락은 사람이 태어나서 정(靜)하다는 이하의 말이다. 덕(德)은 얻는 것이다. 이는 마음에서 얻고 자기에게서 얻는 것을 이르니, 주자(朱子)가 '덕(德)' 자에 근거하여 풀이하였으므로 그 형세상 어쩔 수 없이 겉으로 드러나는 부분을 가지고 말한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이 나면서 정(靜)한 상태 이전에는 본래 태극이 있어 동(動)하여 양(陽)을 낳고 정하여 음(陰)을 낳으니, 모름지기 명덕이 태극과 같아서 동정은 태극 가운데의 일이고 허령은 명덕 가운데의 일임을 알아야 한다."라고 하였습니다. 이 설이 어떠합니까? 회답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다만 슬픔을 절제하고 변화에 순응하여 멀리 있는 저의 바람에 부응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주석 12)연사(練事)
연제(練祭), 즉 소상제(小祥祭)를 말한다. 연(練)은 삼베를 마전하는 것으로 소상부터는 마전한 삼베로 만든 상복을 입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주석 13)행여……말
《근사록》 권3 〈치지(致知)〉에 보인다.
주석 14)희안록(希顔錄)
장식(張栻)이 정자(程子)로부터 오도(吾道)를 맡을 사람이라고 크게 권면하는 편지를 받은 뒤 고무되어 옛 성현을 목표로 삼는다는 의미에서 안자(顔子)의 언행을 수집하여 엮은 책이다. 《성리전서(性理全書)》 권41 〈장식(張栻)〉에 실려 있다.
주석 15)오봉(五峯)……하였습니다
호자(胡子)는 송(宋)나라 호안국(胡安國)의 아들로 오봉 선생이라고 일컬어졌던 호굉(胡宏)을 가리킨다. 그의 문집인 《오봉집(五峯集)》 권2 〈여장경부(與張敬夫)〉에 이 말이 수록되어 있다.
주석 16)대학(大學)……것
《대학장구(大學章句)》 경(經) 1장 주희(朱熹)의 주에 "명덕은 사람이 하늘에서 얻은 것으로, 허령하고 어둡지 않아서 온갖 이치를 구비하고 만사에 응하는 것이다.[明德者, 人之所得乎天而虛靈不昧, 以具衆理而應萬事者也.]"라고 하였다.
與鄭厚允
日月不留。先夫人練事。行將隔日。伏惟哀慕罔極。何以堪支。遠外慰戀。不任下誠。弟自嶺中。二月初七日始返巢。再明日遭叔父喪。至情之痛。夫何言喩。從遺命。以翌月葬於先麓耳。年力日替。世故日深。區區宿心未有以副其一二今又住接村塾耳目酬應。紛然日馳。其何不爲汨沒之歸耶。向日相奉。是出於十數年之後。正是大有議論之日。而弟則不啻墮坑而落塹矣。但老兄言論光明。義理昭晣。動靜規矩。粹然可則。及觀所撰言行錄及所論心性等書若干篇。其毫析縷分。理明辭達。眞有德之言。未知今日域中有此等文字耶。敬感萬萬答問編。向得松沙書。有刊布之意。弟引程子易傳未傳。尙覬有進之語以告之。松沙答云易傳是程子所自作。故審愼固有如此者。此則只是類附成編。與其義諦逈別。然以愚思之。恐未然。昔二程子遺書。多傳寫失眞處。龜山欲刪正。而未敢下筆。南軒編希顔錄。輒多刪去。五峯胡子謂之曰。此是終身事。不可便容易而削之也。然則夫刪正與自己立說。其難易似無異矣。此書向日雖未了閱。追來思之。恐不無合商量處。願兄縱未能遽加廣訂。須與居近老成博雅幾許人。定爲幾日之規。更加細櫛。如何世之論明德爲氣者。其說誤認大學虛靈云云而發焉。其說曰。虛靈不昧。心也。而心是氣之精爽。則明德是屬氣邊底。非屬理邊底。余曰虛靈不昧此一段是人生以靜以下語。德者得也。是得於心得於己之謂。則朱子據德字而解之。故其勢不得不從地盤上說來。然人生而靜上面。自有太極動而生陽。靜而生陰。須知明德猶太極也。而動靜是太極中事。虛靈是明德中事。未知此說何如回敎之爲望。只祝節哀順變以副遠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