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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호남근현대문집
  • 일신재집(日新齋集)
  • 권3
  • 서(2)(書(2))
  • 정후윤【재규】에게 답함(答鄭厚允【載圭】)

일신재집(日新齋集) / 권3 / 서(2)(書(2))

자료ID HIKS_OB_F9001-01-202101.0003.0001.TXT.0005
정후윤주 8)【재규】에게 답함
구진(邱珍)이 짐을 꾸려 돌아간 지 지금 얼마나 되었습니까? 소년 시절과 장년 시절에 서로 떨어져 있다가 노쇠한 나이에 서로 그리워하니, 평소 애틋한 심정을 말해 무엇 하겠습니까. 지난겨울에 보내신 편지는 초가을에 초지(草枝)에서 도착하였고, 이어서 오장(吳丈)이 돌아오는 편에 또 존신(尊訊)과 여러 형들이 보낸 편지 수십 통을 받았습니다. 삼가 읽고 감축하며 '나는 얼마나 형편없는 사람인가. 그런데도 외람되이 당대 현덕(賢德)에게 버림을 받지 않는 것이 이와 같단 말인가.'라고 생각하였습니까. 삼가 연래에 부모님을 모시고 지내는 중에 복됨을 알았으니, 실로 멀리 떨어져 있는 저의 마음에 위로가 됩니다. 다만 중제(重制)주 9)를 만났다는 말을 듣고 깜짝 놀랐습니다. 지극한 마음 더욱 융중(隆重)할 것이니, 애통한 마음을 어떻게 견디십니까. 크게 흉년이 든 것은 영남도 호남과 같을 것이니, 숙수(菽水)의 어려운 정상주 10)이 눈에 선합니다. 다만 아무도 모르게 홀로 깨달은 실상이 날로 더욱 드러나 믿고 따르는 자가 많으니, 바야흐로 세상이 쇠퇴하고 도가 미약해진 나머지에 한 도맥을 부지하여 사방에서 추앙을 받는 것은 성대하지 않겠습니까. 생도들이 운집하였는데 뜻을 부칠 수 있는 자는 몇입니까? 대저 자품이 온후한 자는 과감함이 부족하고 영특한 자는 독실함이 부족하니, 행실이 중도에 맞는 사람을 얻기 어려움은 예전에도 이미 그러하였습니다. 오직 형세에 따라 잘 인도하는 것은 가르치는 사람이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 있을 따름입니다. 다만 근래 과거의 규정이 옛날과 달라 과문을 익힌 자가 나아가 과거를 보지 않으므로 물러나 여기에 의탁하는 자가 매우 많습니다. 겉으로는 성대한 기풍이 있는 듯하지만 이욕을 추구하여 따르니, 그 폐단이 아마 역시 적지 않을 것입니다. 보내 주신 편지에 '의리(義利)' 2자는 말이 매우 간절합니다. 대저 천고 만고에 치란과 흥망이 애초에 여기에서 말미암지 않음이 없고 성현의 천언만어도 다만 이 경계를 발명한 것입니다. 노형(老兄)께서 이것을 제일의 의체(義諦)로 삼으시니 번다하지 않고 요체를 얻어 힘쓸 바를 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인용한 태사공(太史公)의 설은 사람으로 하여금 절로 한번 크게 탄식을 자아내게 합니다. 세상에서 장각(章閣)에 대해 말하지 않은 것은 비록 우리 유자 가운데 실다운 마음을 지닌 사람이라고 일컬어지는 경우에도 종종 이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니, 괴이한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대저 거경(居敬)은 의리를 정밀하게 하는 것이니, 이미 거경 공부가 없는데 어떻게 의리를 정밀하게 하겠습니까. 이는 일에 임할 때 애매모호하게 얼버무려 시비와 사정(邪正)이 늘 전도되는 것이니, 이는 우리들이 바로 급급하게 처방법을 강구해야 할 곳입니다. 이로써 마음을 보존하고 단속하는 공부를 더욱 알아 초학자가 제일의 법문으로 삼으면 신체에 지키는 바가 있어 이 마음이 바야흐로 머물 곳이 있게 될 것입니다. 기본이 이미 확립되면 위로는 덕에 나아갈 수 있고, 아래로는 삼가고 조심하는 선비가 되는 데 차질이 없을 것입니다. 문군 송규(文君頌奎)는 이달 15일에 끝내 일어나지 못했으니, 실로 우리들에게 있어 불행입니다. 통탄스럽고 애석합니다. 《답문유편(答問類編)》은 이미 완성하였다고 하니, 참으로 사문(斯文)의 다행입니다. 그 범례(凡例)를 보건대 휘류(彙類)는 조리가 있고 칭정(稱停)주 11)은 정밀하니 물을 담아도 새지 않는다고 할 만합니다. 지나친 곳을 찾아내라고 한 말은 우매하고 용렬한 제가 어찌 감히 할 수 있겠습니까. 다만 구구한 제가 이 책을 보고 싶은 마음은 비록 형의 말씀이 아니더라도 기갈 든 것과 같을 뿐만이 아닙니다. 그러나 어리석은 저의 견해로 헤아려 보건대 권질(卷帙)이 너무 방대한 듯합니다. 모름지기 질문한 말 가운데 지리하고 중복되는 것은 일체 삭제하여 정밀하고 간결함을 보존하게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또 원집(元集)은 아직 간행하지 않은 책이니 원집과 중첩된 곳은 줄일 수 없습니다. 삼가 생각건대, 이쪽의 사우가 늦게 나아갔으니, 백언(伯彦)은 맨 앞에 서는 것을 사양할 수 없을 듯합니다. 이 사람은 박식하고 정밀하며 모든 거취에 매우 조리가 있습니다. 이 형과 함께 한번 나아가 질정하고자 하지만 이 형도 세파에 시달리느라 몸을 빼기 쉽지 않으니 어찌합니까. 제가 근년에 겪은 일을 모두 거론하지는 못하지만 몸을 빼기 어려운 점은 또한 이 사람과 다름이 없습니다. 당초에 제가 조금 집안의 형편이 넉넉하였을 때 백언이 스스로 생계를 꾸리지 못하여 남에게 자기를 얽매이는 것을 가지고 오유(迃儒)라고 하자, 백언은 내가 사람마다 역량이 각각 조금 차이가 있어 억지로 할 수 없다는 것을 알지 못하는 것을 가지고 나를 오유라고 하였으니, '오유' 2자를 서로 미룬 지 오래되었습니다. 그 뒤에 경범(景範)이 듣고서 웃으며 말하기를 "나는 백언의 말을 따르겠다."라고 하였으니, 대개 경범의 처지가 백언과 같았기 때문입니다. 지금 입장에서 보면 어찌 나 역시 백언의 말을 따라야 함을 모르겠습니까. 평생 사업은 끝내 성취한 것이 없고 쇠퇴하는 조짐은 날로 달로 달라지는 것을 매양 매우 스스로 근심하였습니다. 이번 겨울에 벽산서실(碧山書室)에 갔는데 박생 준기(朴生準基)라는 사람이 그 주인이었습니다. 또 김홍기(金弘基), 박용동(朴容東), 홍승환(洪承渙), 송광수(宋光壽)가 있어서 바야흐로 함께 교유하였는데 모두 단정하여 사랑스러웠습니다.
문군(文君)이 죽기 전에 편지를 보내 영결의 말을 청하였습니다. 제가 벗들과 함께 즉시 달려갔지만 병이 이미 깊었습니다. 제가 형이 보낸 위장(慰狀)을 전하니, 문군이 눈물을 머금고 감격하여 말하기를 "애산(艾山) 어른을 한번 보는 것은 이미 가망이 없고, 정신은 온전하지 않으며 호흡은 가빠 또 답장을 쓰지 못하겠다. 후일 애산 어른을 보거든 나를 위해 감사하다는 말을 전해 달라."라고 하였으니, 그 뜻이 몹시 슬펐습니다. 그가 죽자 향리에서 매우 애석하게 여겨 신위를 만들어 곡하거나 제문을 지어 애도를 표하거나 했으니, 본성을 지니고 덕을 좋아하는 것이 아직 민멸되지 않았음을 볼 수 있었습니다. 만일 뒤에 인편이 있다면 형께서 혹 제문을 지어 보내 이 슬픈 혼백을 위로해 주십시오.
주석 8)
정후윤(鄭厚允):정재규(鄭載圭, 1843~1911)이다. 본관은 초계(草溪), 자는 후윤(厚允), 호는 애산(艾山) 또는 노백헌(老栢軒)이다.
주석 9)중제(重制)
상례 복제(喪禮服制)에서 사촌이나 고모 또는 고종사촌 등 대공친(大功親) 이상의 상사 때 입던 상복(喪服)이다.
주석 10)숙수(菽水)의 어려운 정상
숙수는 가난한 생활 속에서도 자식이 어버이를 극진히 봉양함을 말한다. 공자가 "콩죽을 끓여 먹고 물을 마시더라도 기쁘게 해 드리는 일을 극진히 행한다면, 그것이 바로 효이다.[啜菽飮水盡其歡, 斯之謂孝.]"라고 하였다. 《禮記 檀弓下》
주석 11)칭정(稱停)
내용이 과장됨이 없이 사실에 부합하는 것을 말한다.
答鄭厚允【載圭】
邱珍治任。今機日月。少壯相分。衰暮相思。其尋常飢渴。謂何如。前冬惠書。初秋自草枝來到。繼而吳丈之廻。又拜尊訊及僉兄書數十度。伏讀感祝。以爲此是何等無狀。而猥爲一時賢德所不棄若是也。恭尋年來省歡百福。實慰遠情。但重制聞之恒然。惟至情加隆。哀痛何堪。年侵大無。嶺亦如湖。菽水戞戞之狀。如在目前。惟闇然獨覺之實。日以益章。信從者衆。方世衰道微之餘。所以扶持一脈而爲四方依仰之地者。顧不大歟。生徒坌集。可以寄意者。幾人。大抵資稟溫厚者。欠果敢開悟者。少篤實。中行之難。在古已然。惟因其勢而利導之。在乎敎者之如何耳。但近來科規不古。爲詞令者。進無所售。故退而託於此者。甚多。外若有蔚然之風。而懷利從逐。其敝想亦不細矣。示中義利二字。語甚切至。夫千萬古治亂興亡。未始不由於此。而聖賢千言萬語。只是發明此箇界至者也。老兄以此作第一義諦。可謂不煩而要。知所務矣。所引太史公說。不覺令人喟然一晞也。世上章閣之勿說。雖吾儒中稱爲實心人。往往出脫此關不得。可謂咄咄怪事矣。夫居敬所以精義。旣無居敬。何以精義。此於臨事之際。含胡籠罩。是非邪正。常爲迭用此吾輩正當汲汲用方處也。以此益知持斂之功。爲初學者第一法門。身體有所持循。此心方有頓放處。基本旣立。上可以進德。下不失爲謹勅之士矣。文君頌奎。今十五日。竟不起。實吾輩之不幸。痛惜痛惜。答問類編聞已斷手。誠斯文之幸。見其凡例。彙類條理。稱停精密。可謂置水不漏矣。櫛過之云。以弟昧劣。豈爲敢然。但區區願見之心。雖靠兄敎。不啻飢渴矣。然以愚料之卷帙似爲浩大。須於問語中。其支離者重複者。一切刪去。以存精約。如何。且元集是不刊之書。與元集疊見處。亦可減裁也。竊念此邊士友晩來進就。恐伯彦不得讓其頭矣。此人博洽精詳。凡百去就。甚有條理。欲與此兄一晉相訂。而此兄亦是困於世放者。抽身不易。奈何。弟年來經歷。都不擧似。而其抽身之難。亦與此人無異。當初弟稍有家力特以伯彦不能自獄家計。而絆已於人。謂之迃儒。伯彦以予不知人之事力。各有分寸。不可强謂予爲迃儒。以迃儒二字相推久之。其後景範聞之笑曰。吾則從伯彦之言。蓋景範身體與伯彦同故也。以今觀之。豈知吾亦從伯彦之言也。平生志業。迄無所就。而衰頹之徵。月異而日不同。每切自悶。今冬住碧山書室。蓋有朴生準基者。其主人也。又有金弘基朴容東洪承渙宋光壽者。方與同遊皆端勅可愛。文君未死之前。走書請訣。予與諸友卽馳往。病已劇矣。予傳兄所抵慰狀。文君飮泣感激。且曰。一見艾丈。已矣無望。而神短氣促。又未修答。日後見艾丈。幸爲我謝焉。其意極可悲也。其沒也。鄕里痛惜。或設位而哭。或操文而侑。可見彛好之不泯也。如有後便。則兄或爲之製送侑文。以慰此哀魂也。